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30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남궁소혜는 자존심이 강하다.
팔대세가의 한 축, 그곳의 직계로 태어나 세가의 정통적인 검술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에, 또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후기지수라 불리며 그 선두에 서 있었다는 것에.
그러한 것들이 지금의 남궁소혜를 만들어 냈다.
호되게 가르친 남궁천의 교육이 오히려 그녀의 콧대 높은 자신감을 만들어 낸 원천이 되어 버린 셈이다.
“하아…… 하아…… 하아…….”
“헉…… 헉…….”
멀리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남궁천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할 말을 잃은 듯하면서도 어쩌면 이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칼에 담긴 것은 기교…… 인가?”
중얼거리는 단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남궁소혜의 검에 담긴 것은 틀림없이 남궁천이 가지고 있는 기교다. 하나, 그녀는 단지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고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니 의미가 없다.
“흉내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지.”
단우현은 비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남궁소혜보다 장삼태의 역량이 확연히 떨어진다. 경험은 물론이고 배운 검술조차 그 격이 다르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남궁소혜는 장삼태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사도학의 가르침 덕분에 빠른 칼과 주먹에 그 눈이 익숙해져 버린 것도 있지만, 본래 그가 가지고 있는 경공과 보법은 남궁소혜가 가진 검술과 비교해도 그 수준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을 단우현과 사도학이 다듬었으니, 남궁소혜의 입장에서 아무리 대단한 검술을 펼치고 그 경험을 모조리 끌어낸다 한들 쉽게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남궁소혜가 숨을 헐떡이며 아미를 찌푸렸다.
벌써 일각이 넘었다.
한 초식이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대련 시간이 일각이 넘었고 이대로 간다면 곧 이 각이 지날 것 같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힐끗 하며 시선을 주었다.
단우현의 곁에 서 있는 남궁천의 모습이 보였다. 어떤 표정조차 보이지 않고 있기에 그것이 더욱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면 안 돼!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야!’
남궁소혜는 더욱 세게 검을 쥐었다.
지난번 사혈단 사건이 있은 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연무를 하고 또 칼을 길들여 왔던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세가를 책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기에, 그녀는 피땀 어린 훈련을 반복하며 지금에 서 있었다.
한데, 고작해야 장삼태 따위에게?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더욱 이를 갈며 꾹 칼을 쥐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승부를 내겠다는 결심이 서린 눈빛으로 헐떡이고 있는 장삼태를 노려봤다.
“조급하군.”
“허허…….”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은 회의적이다. 상대의 빠른 발을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수로 결정을 지으려는 것은 크나큰 실수이다.
그사이 남궁소혜가 달렸다.
단박에 땅을 박차고 빠르게 신법을 펼쳤다.
자신이 가진 최대의 속도로 접근을 하며 그보다 빠르게 섬광처럼 칼을 뿌렸다.
촤아악!
그러나 맞지 않는다.
옷깃을 베어 내었지만 장삼태의 몸에 닿지 않았다.
어느새 멀찌감치 벗어난 장삼태가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헐떡였다.
“뒤…… 뒤질 뻔했네. 이봐! 진짜로 하면 어떻게 해!”
비무라고 하더니 지금 느껴진 살기는 진짜다.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이 몸을 베여 내려 했다. 움직이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피를 흘리고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순한 대련이라고 하더니!
장삼태가 날카롭게 단우현을 쏘아봤다.
“이거 반칙 아닙니까?”
“잘 피했다. 죽지 않았으니 되었지.”
“죽는 줄 알았습니다요!”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의 대련은 무의미한 것 같군.”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주저앉아 무릎을 꿇고 있는 그녀의 시선은 멍했다. 최후의 한 수라도 좋을 만큼 온 힘을 다해 내지른 검이다.
장삼태 따위가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실패를 했다는 것이 그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죠?”
“뭐가 말이냐?”
“저…… 저 사람은 분명히……!”
“삼류도 되지 못한 버러지였지.”
“버러지라니…… 자…… 장주님…….”
장삼태가 식은땀을 흘리며 어이없이 쳐다봤다. 사람의 욕을 할 거면 없는 곳에서 하든가, 곁에 사람을 놔두고 너무 말이 심하지 않은가?
뿔이 난 표정으로 쏘아보았지만 단우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쓰러진 남궁소혜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날리고는 등을 돌렸다.
“그럼 이것으로 나와의 비무는 없던 것이로군. 뭐 하느냐? 슬슬 아침 준비를 해야지.”
“아, 알겠습니다요!”
장삼태가 허겁지겁 부엌을 향해 내달렸다. 이른 아침부터 험하게 몸을 굴린 탓에 여기저기 쑤시고 있었지만, 단우현의 명령이니 거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연무장을 벗어나며 주먹을 꾹 쥐었다.
‘내가 남궁소혜한테 이겼단 말이지?’
“흐흐흐.”
실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결코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여인이다. 그 이름과 배경만으로도 사람을 위축시키게 만드는 힘 같은 것이 있었으니까.
한데 지금은?
닿았다.
물론 이것을 이겼다라고 말을 하기에는 힘들 것이다. 결국 장삼태의 공격은 단 하나도 남궁소혜를 맞추지 못하였으니까.
하나, 이것만으로도 용기를 얻기에 충분했다.
장삼태는 자신이 한층 더 무인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
남궁천은 가만히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분해 하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신보다 역량이 한참이나 밑도는 상대와의 대련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한 채 끝이 났다는 것만으로도 울화가 치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극도에 인내로 참아 내는 중일 터.
남궁천이 작은 한숨을 쉬었다.
“분하더냐?”
“왜…… 왜 이렇게 되죠? 이게 말이 되나요? 저는 남궁세가의…….”
“무공이라는 것은 실력의 고하도 있지만 상성이라는 것도 있다.”
“사, 상성요?”
“그래, 내 보기에 네 움직임과 검술, 그 모든 것들이 장삼태 저 녀석과 상성이 좋지 않았지.”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았더냐?”
상성?
그런 게 뭔가?
남궁소혜는 콧방귀를 뀌며 어이없어 했다. 무공의 고하라는 것은 상대와 내가 가진 검술 실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런 것 따위 가르쳐 주지도 않았잖아.
남궁소혜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네 검은 빠르고 경쾌하지.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나를 보고 흉내 내려는 가짜 검술에 불과하다. 또한 아무리 빨라도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 앞에서 무용지물.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올 법도 하지.”
“…….”
“아직 미숙하구나.”
마치 회초리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남궁소혜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남궁천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인 것 같았다.
이런 추태를 보이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연무를 한 것이 아니었는데.
“죄…… 죄송해요…….”
“허허,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 또한 다 경험이지 않으냐?”
“화…… 내지 않으시나요? 저는 지금…… 세가의 이름을…….”
남궁소혜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 끝에 보이는 남궁천의 얼굴이 묘하게 다르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누구보다 부리나케 화를 낼 사람이었거늘,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분위기를 감싸 안았다.
그녀가 알고 있던 남궁천의 모습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남궁소혜의 표정이 미묘했다.
그때, 남궁천이 손을 뻗어 소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그것은 마치 단우현이 단소미를 향해 하는 행동처럼 자연스럽다. 또한 보여 주는 표정마저 아픈 상처를 감싸 안아 주고 토닥여 주는, 그녀가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남궁소혜의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으아아앙!”
냅다 그 품으로 안겨 든 그녀의 울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 * *
“흠…… 기이하군.”
마교의 총사 동방구는 죽어 있는 시체를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목내이처럼 비틀려 죽어 있는 이들의 수는 대략 스물.
대부분 일류를 오가는 고수이며 어디 가서 함부로 당하지 않을 마교의 정예들이기도 했다.
한데.
“전투의 흔적이 없다고?”
“예, 아무리 찾아 봐도 싸운 흔적이 없습니다.”
동방구는 인상을 썼다.
이 정도의 인원이 습격을 당하였는데 전투를 벌인 흔적이 없다. 심지어 도주를 시도한 정황조차 보이지 않으니 마치 스무 명 전부가, 갑작스런 기습에 죽어 버린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기습?
동방구는 바닥에 있는 흔적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기습이라 한다면 상대들 또한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 했을 텐데, 어디에도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죽어 있는 어느 누구도 어떤 수법으로 기습을 당했는지 파악되지 않았다.
마치 자연스럽게 심장이 정지되어 버린 것 같았다.
동방구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벌써 몇 명의 마교인들이 당했던가?
사도학이 돌아오기 전에 범인을 잡아야 하는데…….
“안 그래도 무림의 일이 심상치 않아 머리가 아픈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썼다. 무림맹에서 벌어진 일, 또한 팔대세가가 따로 떨어져 나와 세력을 만든 일.
그 모든 것들이 마교에 미치지는 영향이 없지 않다. 세력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로 인하여 앞으로 마교가 어찌 가야 할지 그 방향을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범인을 잡지 못해서야…….
동방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순간.
우득!
어디선가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이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돌아갔다. 그곳에는 목이 꺾여 있는 수하 한 명이 스르륵 무너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보인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사람.
칠흑의 흑풍의를 온몸에 걸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씩 웃고 있는 사내. 그는 아무렇지 않게 동방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매섭게 귓가로 파고들었다.
틀림없이 경계 태세를 갖춰야 하는 상황이 분명한데도,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그것은 동방구 또한 마찬가지.
사내의 몸에서 흐르는 이 기묘한 마기도 그렇지만, 그 눈빛은 마치 사슬처럼 모든 이들의 몸을 휘어잡고 묶어 버린 것 같았다.
“누…… 누구냐…….”
동방구가 떨리는 시선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 존재감.
어쩌면 사도학과 동등.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꿇어라.”
쿵!
사내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가 청천벽력처럼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놀라게 만드는 것은, 마치 그의 말에 의지가 서려 있는 것처럼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동방구 또한 예외가 아니다.
덜덜 떨리는 시선으로 사내를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도대체 누구인가?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자가 나타났단 말인가?
입가를 씰룩이며 억지로 사내와 시선을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동방구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숨이 가빠졌다.
그리고 사내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흑풍신마의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이거라. 내가 너희들의 주인이니라.”
그 한마디가 뇌리에 틀어박혀 머릿속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