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32
어딘지 모를 산골 깊숙한 곳.
사람이 지어 놓은 풍경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다. 무릉도원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그 풍경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빼앗고야 말 것만 같았다.
주변에 세워져 있는 건물 하나하나 또한, 우아함과 기품이 있어 보였으며 어느 면에서 황성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 두 사람이 걷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고 있는 혈의의 사내.
그 뒤를 따르는 이는 틀림없는 만후량.
함께 걷는 것조차 송구스럽다는 표정과 행동으로 뒤를 따르며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만 보더라도 이 사내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았다.
“흐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구나.”
“아, 아닙니다.”
혈의의 사내는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가볍게 스친 시선에 불과한데 만후량은 전신을 떨었다. 그만큼 이 사내가 두렵다.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수차례 죽음을 맛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다.
“왜 모용혁문을 살렸는지 궁금하느냐?”
“……예.”
“하하.”
혈의 사내는 작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궁금하기도 할 테지.
버린 말이라고 생각했던 놈을 주워 오다니.
하나하나 계략으로 움직이고 필요 없다 싶으면 내다 버리는 만후량의 입장에선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 혈의 사내는 다르다.
그가 번뜩 눈을 빛내며 웃었다.
입가에 맺힌 것은 명백히 사람을 농락하는 조소.
그 시선으로 만후량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람이 강해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줄 아느냐?”
“무…… 무기와 그의 걸맞은 무공…… 그리고 재능 아니겠습니까?”
“아니다. 누군가를 향한 분노와 질투심, 그리고 살심이다.”
“…….”
만후량은 할 말을 잃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많은 무인들을 보아 왔다고 자부하는 그이다. 검황은 물론이고 오황 대부분, 그리고 칠성과 십존까지.
그러나 누구 하나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강해지긴 위해선 대부분 재능과 그에 걸맞은 무예가 필요하다 하였으니까.
하지만 만후량은 부정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혈의 사내의 말이다.
그가 하늘이 곧 땅이라 한다면 땅인 것이고, 땅이 하늘이라 한다면 하늘인 것이다. 그의 말은 황제의 말보다 더한 무게를 주고 있으며, 그의 행동은 하늘조차 막아서지 못할 것이다.
“하여 거두었다. 그자라면 틀림없이 이 무림을 쑥대밭으로 만들 테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두려움을 떨쳐 낸 만후량이 되물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사내의 목적은 무림을 통치하고 가지려는 것이 아니었던가? 한데, 어찌하여 분열시키고 치고받게 하며 혼란에 빠트리려는가?
지금 가지고 있는 힘으로도 마교는 물론이고 정파와 세외까지 굴복시킬 수 있을 터인데.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기에 되물었다.
“하나를 부수는 것보다 두 개를 부수는 것이 재미있는 법이고, 조용한 곳을 잡아채 가지는 것보다 시끄러운 곳을 찍어 눌러 가지는 것이 재미있는 법이다.”
그제야 만후량은 이 사내의 목적을 알았다.
검황을 죽이고 검성을 타락시켜 정도 무림을 분열시켰다. 이것으로 정파 무림은 두 개의 세력을 나뉘었고, 결과적으로 그 빈틈을 노리고 사파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과거처럼 화합이 되지 않으니 무림맹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중원 무림 전체가 크게 들썩일 것이다.
더군다나…….
“흑풍신마…… 그자를 보낸 이유도 같습니까?”
“그렇지. 하하하,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아는구나.”
꿀꺽 하며 만후량의 침이 넘어갔다.
흑풍신마.
혈의 사내가 가지고 있는 강림 주술을 이용하여, 새로운 육체에 그의 영혼을 불러다 만들어 낸 존재. 비록 그 육신은 천 년 전 그와는 다르지만 흑풍신마 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또 놈이 누군가를 좀 끌어내 주었으면 하거든.”
“누군가란 말씀은……?”
“글쎄다…… 누구일까.”
피식 사내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그러나 형형하게 빛나는 그 눈빛으로 보아 결코 모르는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기에 만후량은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패는 던져 두었다. 과연 어떻게 움직일지…….”
혈의 사내의 웃음이 점점 더 짙어졌다.
* * *
“이렇게 찾아도 없는데…… 혹시 호남이 아닌 거 아닐까요?”
동정호가 보이는 악양 어딘가.
제갈연은 풀 죽은 표정으로 주저앉아 긴 한숨을 쉬었다. 벌써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줄 아는가?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제갈세가 또한 그의 맞춰 가야 할 길이 있는 법인데, 아비는 도통 포기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사람 찾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사실 찾는 사람의 용모조차 이제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흐릿하였기에, 그냥 포기하는 것이 가장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갈연은 당과를 씹고 툴툴거렸다.
“아니 아니, 분명히 있다니까. 찾기만 한다면야…… 다시 정도 무림의 세상으로 돌리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야.”
“그 말을 백 번은 더 들은 것 같아요.”
제갈연이 어깨를 으쓱하자 제갈운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하긴 세가를 관리하지도 않고 이러고 있으니 딸아이 입장에선 한심해 보이기도 할 거다.
더군다나 지금 정도 무림은 존폐의 위기에 서 있지 않은가.
‘돌아가야 봐야 뻔 하지.’
제갈운도 잘 알고 있다.
지금 무림맹과 천도회, 이 두 곳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 정도는 말이다. 천도회의 경우 같은 팔대세가의 일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 힘을 보탤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반대로 지금은 맹주가 되어 버린 선진은, 검황의 곁을 잘 보필했던 제갈운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무림맹은 아직도 팔대세가와 화합을 원하고 있고, 그들이 돌아온다면 받아 줄 수 있다는 도량을 보여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제갈운을 반드시 무림맹의 품 안에 넣으려 할 것이다.
이 두 단체 사이에 낄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 상황이니 만큼, 제갈운은 당장 돌아가고 싶은 마음 따위 없었다.
‘사실 그 고수 찾기는 이미 진즉 포기했지.’
그렇지만 차마 속내를 말할 수가 없다.
호남 전체를 뒤졌음에도 나오지 않는 자를 어찌 찾는단 말인가? 더군다나 이미 호남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이것이야말로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일 아니겠는가?
힐끗 제갈운이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봤다.
축 처진 채로도 당과를 씹어 먹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그래 오랜만에 부녀지간의 유람이라 생각하지 뭐.’
“아버님.”
“그래, 무슨 일이냐?”
“혹…… 세가로 돌아가면 귀찮은 일들이 있을 것 같아 가지 않는 건 아니겠죠? 이미 사람 찾는 건 포기했는데…… 저랑 유람 삼아 돌아다니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죠?”
제갈운은 순간 뜨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멍해 보이는 아이이기는 한데 정말이지 예리할 때가 있다. 제갈세가의 피를 진하게 타고난 녀석이라 해야 할 정도다.
“아, 아니다.”
“그럼 돌아가요…… 제발! 이제 힘들어 죽겠어요.”
제갈연이 찡찡거리며 애타는 목소리를 냈다.
이제 남아 있는 돈도 얼마 없다. 세가까지 돌아가려면 한참을 걸릴 텐데 남은 돈이라고 해 봐야 은자 스무 냥 정도.
아끼고 아껴야 겨우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하…… 그, 그 정도로 힘들더냐?”
“차라리 개방 사람을 시키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어깨를 으쓱한 제갈연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앞에는 거대한 동정호의 모습이 보였다. 악양이 동정호로 유명한 곳이니 만큼, 이 풍경만큼은 눈에 담고 싶었던 그녀다.
하지만 말이지.
이렇게 피폐하고 처량한 꼴로 보고 싶었던 건 아니다.
또한 땀내 나는 아비와 함께 있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기왕 함께 있으려면 장래 낭군이 될 사람과 있는 편이 좋지 않은가?
그런 낭만을 꿈꿔 왔던 제갈연은 처참하기 그지없는 현실에 한숨만 줄줄이 새어 나왔다.
촤아악!
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응?’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을 하지 못했던 탓이다.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슬금슬금 걸어가 보니, 커다란 바위 때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곳에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커다란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낚싯대를 들고 있다.
옆에는 꽤 커다란 바구니가 물에 살짝 잠겨 있었는데, 그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니 제법 물고기를 잡은 것 같았다.
촤아악!
또다시 그 소녀가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크다.
낚시를 좋아하는 제갈운조차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삼십 년 낚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그조차 잡아 본 적이 없는 크기의 물고기들을 벌써 두 마리나 건져 냈다.
심지어 저 어린아이가 힘겨루기를 해서 이겼다고?
두 부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주시했다.
“끄으으응!”
또 입질이 온 모양이다.
힘껏 낚싯대를 잡아당기는 그 모습이 힘들어 보였다. 지금까지 낚은 것보다 더 큰 게 걸렸다고? 혹시 땅을 낚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나 가만 보니 낚싯줄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몸 또한 위태롭게 휘청거리더니 이내 크게 중심을 잃었다.
제갈운이 허겁지겁 그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꼬…… 꼬마야 조심하거라!”
풍덩!
한순간 균형을 잃어버린 아이는 그대로 동정호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깜짝 놀란 제갈연과 제갈운이 그곳을 향해 달려가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푸아앗!”
커다란 소리를 내며 아이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이윽고 ‘응?’ 하며 다가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헤, 실패했어요.”
“괘…… 괜찮으냐?”
“네! 소미는 괜찮아요. 아빠한테 헤엄치는 법을 배웠거든요. 무척 혼났지만…….”
슬금슬금 물 밖으로 나오면서 단소미는 고개를 돌렸다. 수영을 배울 당시의 일을 떠올린 것인지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 있었다.
배를 타려면 반드시 수영을 배우라는 말을 들었기에, 하는 수 없이 배우기는 하였는데, 설마 사람을 잡을 만큼 혹독하게 시킬 줄은 생각지 않았다.
꽈아아악!
물 밖으로 올라온 단소미가 옷을 짜내고 머리를 털었다. 이내 물속에 반쯤 담가 두었던 바구니를 꺼내어 끙차끙차 하며 가지고 왔다.
안에는 상당히 많은 물고기들이 파닥였다.
“어…… 엄청나게 잡았구나.”
“에? 오늘은 별로 못 잡았는데요.”
“이게 말이냐!?”
“네!”
제갈운은 깜짝 놀랐다.
바구니 안에는 족히 스무 마리가 넘는 고기들이 보였다. 대부분 손바닥만 한 것들이며 그보다 더 큰 것들도 간간이 보였다.
그런데도 별로 못 잡았다고?
하루 종일 낚시를 해서 많이 잡아야 열 마리 안팎인 제갈운에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 어린데 대단하구나.”
“아빠도 그런 소리를 해요. 다들 소미랑 낚시 같은 거 안 하려고 한다니까요. 재미없게.”
그야 그렇겠지.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보다 못 잡으면 하고 싶을까?
체면이라는 게 있지.
뿜뿜 하며 두 볼을 가득 부풀리며 불만을 표하는 아이를 보며 제갈운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 또한 차마 그 진실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그때, 단소미가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소미네 집에 오신 건가요?”
집이라는 한 마디에 제갈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근처에 집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