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34
“왜 제갈가주님이 여기에 있는 거예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남궁소혜는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췄다. 심지어 소혜의 친구이기도 한 제갈연까지 단소미를 안고 앉아 있으니 이 웃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술까지 마시는구나.”
남궁천은 허허 웃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그 풍경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커다란 정자 안에서 단우현을 비롯하여 제갈연과 제갈운, 그리고 사도학이 앉아 도란도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장삼태의 음식 솜씨 때문인지 제갈운의 표정이 활짝 펴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남궁천의 기분은 별로다.
좋은 술이 있지만 마시지를 못한다. 모습을 드러냈다간 남궁소혜 때처럼 목소리로 단박에 걸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
그런데 왜 하필
‘저놈이 마시고 있는 게야?’
부들부들 손을 떨며 인상을 썼다.
술이라면 남궁천 또한 잘 마신다. 제갈운만큼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꽤 많이 먹는 성격이다.
장삼태의 음식이 있고 질 좋은 술이 있다.
그곳에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그 술이야말로 꿀맛이 아니겠는가?
남궁천은 호흡을 골랐다.
“할아버지! 진정하세요.”
“무…… 물론이다. 진정하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심지어 저놈들이 오는 바람에 끼니를 걸렀으니 배고픔이 오죽할까? 늙으면 사는 낙이라곤 맛있는 음식과 술이라 할 수 있거늘…….
남궁천은 나중에 장삼태를 가만 놔두지 않겠다 다짐했다.
음식을 만들었으면 당연히 이곳까지 가져와야 할 것 아닌가? 한데, 저들끼리 마시고 웃고 떠들고 있으니 울화가 치민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제갈가주님께서 찾고 있던 사람이 단 공자였던 것 같네요.”
“찾고 있었다니?”
“지난번에 도움을 받았다고 했어요. 뛰어난 고수를 보았다고…… 반드시 무림맹으로 데리고 가겠다고도 했죠.”
“허허, 퍽이나 저 녀석이 무림맹으로 가겠구나.”
남궁소혜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단우현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리면 내렸지 받을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제갈세가의 두뇌가 있다 하여도, 단우현의 성격을 모르고 덤벼드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제갈운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다.
비싼 술만 낭비한 거지.
남궁천은 쯧쯧 혀를 찼다.
“좋은 술이다.”
단우현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입안 가득히 퍼져 나가는 향. 목 넘김 할 때도 부드러우면서도 뒤끝조차 남지 않는 깔끔한 맛이다.
같은 소홍주이고 비슷한 시기에 제조가 되었다 해도, 관리를 잘못했다간 싸구려 독주보다 못한 것이 술인데, 지금 이 술은 정말로 비싼 값어치를 한다.
그는 안주조차 입에 대지 않고 술만 음미했다.
마치 이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하하하, 그리 생각을 해 주니 고맙소. 내 가져온 보람이 있군.”
“이런 술을 구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고맙군.”
“그래그래, 이 늙은이가 봐도 이건 명주다 명주.”
사도학이 술을 따르고는 제갈운이 볼 수 없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제갈운 정도나 되는 높은 직급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도학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으니 들키면 꽤 상황이 곤란해진다.
그것을 알기에 사도학 또한 조심했다.
“그래서 이 술을 주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간단한 이야기네. 나는 자네와 인연을 맺고 싶네.”
“인연이라……?”
단우현은 슬쩍 말꼬리를 흐렸다.
인연이라는 것은 맺고 싶어 맺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하지만 이렇게 좋은 술이 곁에 있으니 아무렴 어떠냐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단우현의 입맛에 잘 맞는 술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현 정도 무림은 꽤 곤란한 상황이 되어 버렸네.”
“자업자득이라 하지.”
“으음…… 틀리지 않은 말이긴 하네만…… 마음이 아프군.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검황께서도 안 계시고 걸황께선 여전히 은거를 하고 계시니 자네 같은 고수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네.”
“흥미가 없다.”
딱 잘라 말을 하는 것을 보며 제갈운은 휘둥그레 눈을 떴다. 좋은 술, 그리고 단우현 앞에 있는 이는 팔대세가의 주축 가문 중 하나인 제갈세가.
그 세가주가 하는 말임에도 흥미가 없다니?
무림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인가?
“자네는…… 무림에 대한 생각이 없는가?”
“글쎄…… 생각이 있든 없든 나를 움직이는 건 내 의지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그렇고 말이지.”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모든 것은 그의 의지.
누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또한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단우현의 머릿속에서 나와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건 그러네만…….”
“더군다나 정도 무림을 돕는다 하여 내게 이득되는 것이 있던가?”
“며…… 명예와…….”
“흥미가 없군.”
사도학은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명예 따위 바라지 않는다.
그런 놈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곳에 처박혀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진즉 마교로 데려가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었을 거다.
통하지 않는다.
제갈운이 가지고 있는 모든 패가.
애초에 조금 안일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그러한 것들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작정 들이댄 것이 잘못이다.
‘뭐, 억만금을 준다 하면 달려들겠지만.’
사도학이 어깨를 으쓱하며 어이없이 웃었다.
명예도 지위도 권력도 관심이 없는 자.
그런데 돈은 밝힌다.
아니, 이걸 밝힌다라고 해야 할까? 단소미의 앞날을 위하여 많은 돈을 모으려 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만약 단소미가 없었다면 돈조차 통하지 않았을 거다.
사도학은 방에 있는 소림사 조각상을 생각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까요?”
그때, 제갈연이 나섰다.
그녀는 단숨에 술 한 잔을 목 넘김 하고 거칠게 내려놓았다. 남궁소혜와는 조금 다른 대범한 성격을 가진 여자인 것 같았다.
그런 것치고는 술이 좀 약해 보였다.
얼굴이 벌써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니.
“다르게?”
“만약 현 무림을 이대로 둔다면 당신의 가족들도 언젠가는 마교 혹은 사파의 위협을 받게 되겠죠. 그런 일이 있어도 되나요?”
“재미있는 이야기로군.”
“네! 참 재미있죠.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무림맹도 천도회도 아닌 너희들이 지금 와서 나와 손을 잡고 무엇을 하겠다고?”
“윽…….”
“커컴!”
단우현이 술잔을 내려놓고 가만 두 사람을 바라봤다.
물론 틀리지 않은 말을 했다.
다만 그들이 모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마교든 사파든 그 어디든 간에…… 내 장원과 내 딸에 손을 대려 한다면 모조리 죽인다.”
쿵!
한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사도학이 재빠르게 단소미의 귀를 틀어막았고, 자신의 기운을 이용해 단우현의 기세에 저항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한순간에 흘렀고,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심력을 다 쏟아붓는 것 같았다.
제갈운은 물론이고 제갈연조차 할 말을 잃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이 분위기는 무엇인가?
이 기운은 또 뭔가?
단우현의 몸에서 흐르는 기세는 처음 느껴 보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심신, 아니 심령조차 제압시켜 버리는 무언가였다.
더군다나 곁에 있는 가면을 쓴 늙은이…….
‘마…… 마기를……?’
단우현이 내뿜는 기운을 저항하기 위해 쏟아 낸 그것은 틀림없이 마기의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마교의 인물들이었단 말인가?
제갈운이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가다듬었다.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마교의…… 사람인가?”
“마교? 하하, 농담도 심하군.”
“저 노인께서 마기를 사용하는데 아니라……?”
“그건 그자의 무공인 것이지.”
제갈운은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이다.
그래, 단순히 마기를 뿜는다 하여 마교의 사람은 아니다. 세력을 나와 떠도는 자들도 있으며, 우연찮게 마공을 익힌 자들 또한 있다.
더군다나 그런 세력들을 신경 쓰지 않는 자들도 있다.
마공이고 정공이고 사공이고.
정사마 심지어 세외까지 포함하여 언제나 중립에 있는 자들.
지금 눈앞에 있는 단우현이 그래 보였다.
제갈운이 푸우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자네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로군. 본디 무공을 익힐 때부터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가야 할 길을 정하기 마련인데…….”
“무공이란 본디 몸을 지키기 위한 도구다. 거기에 무슨 신념이 있느냐?”
순간, 사도학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 또한 제갈운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승이 마교이기에, 혹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 마교의 땅이기에.
또 다른 이들은 복수를 하기 위해 칼을 쥐고 어떤 이들은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무공을 익히기도 한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정사마로 나뉘는 것이고, 그중 아주 극소수만이 중립의 길을 걷는다.
대부분 중립을 걷는 이들은 중소 문파라고 말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약소했다.
힘을 가지고 큰소리를 내지 못하니, 이곳저곳의 눈치를 살펴야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 중립을 걷는 것이니까.
한데…….
‘무공에 신념이 없다?’
허 하며 헛기침을 삼켰다.
하지만 가만 생각을 해 보면 단우현의 말이 맞다.
무공이라는 것에 신념이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신념이 무공에 깃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애초에 무공이란 정사마로 나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사도학은 묘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무신의 후예라 하더니…… 생각하는 것도 다르군.’
피식 웃었다.
아마도 자신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이와 같은 대답을 하지 못했을 거다. 이것은 남궁천이나 권무진 또한 마찬가지일 터. 그렇기에 단우현이란 존재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사도학이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동방구가 있으니 마교는 알아서도 잘 돌아갈 테지만, 오랫동안 그 자리를 비워 놓은 것도 다소 불안하기는 했다.
하지만 돌아가지 못한다.
저런 인간의 곁을 떠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배운다. 이제는 배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기에 그 충격은 매일매일 더했다.
“그대의 생각이 그렇다면 내 그것을 뭐라 하지 않겠네. 하지만 생각은 해 두게. 혼자보다는 다수가 무언가를 지킬 때 편하다는 것을 말이네. 굳이 무림맹이 아니어도 천도회가 아니어도, 제갈세가는 그대와 함께하고 싶네.”
“그렇군.”
제갈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단우현과 더 깊은 인연을 맺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추후 재정비를 하여 다시 찾아오면 그만이다.
이 장원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다음에 또 보세. 그때는 이보다 더 좋은 술을 가지고 오지.”
“기대하지.”
단우현이 웃음을 지으며 제갈운을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