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35
“제갈운…… 그자가 이곳엔 무슨 일로 왔던가?”
제갈운이 돌아가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남궁천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가장 그와 친분이 있고, 그렇기에 더욱 들키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단우현은 말없이 남궁천의 앞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남아 있는 소홍주를 들어 잔을 채웠다.
“마셔 봐라.”
뜬금없고 영문 모를 말이지만 남궁천은 의심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소홍주 한 잔을 입에 넣으니 마치 꿀처럼 목구멍을 넘어갔다.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제법 맛있군…… 아니, 그게 아니라…….”
“좋은 술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더군. 그의 곁에 머문 바람이 제법 마음에 들어.”
남궁천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그런 것을 물어본 게 아닌 것 같은데?
“인연은 언제나 소중히 해야지. 막 버리면 쓰나?”
“커험! 자네에게 듣고 싶지 않네.”
“하하, 뭐 그럴지도 모르지. 그자가 이곳에 온 이유라…… 나를 찾아왔다더군.”
“무슨 이유로?”
“정도 무림을 함께 지켜 나가자고 하던데……?”
남궁천은 인상을 썼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다. 제갈운은 틀림없이 천도회 혹은 무림맹에 단우현을 집어넣으려는 심산이다. 이 인간의 실력을 완벽히 알지는 못할 테지만, 상당한 고수라는 점을 주목했던 것일 터.
“관심 있나?”
“아니 없다.”
피식 단우현이 웃었다.
무림 일에 나설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의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필요 없다. 단우현은 어느 한 단체에 머물 생각이 없었으며 그들을 위해 일을 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는 지극히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눈도 대단하군. 한눈에 자네를 알아보다니…….”
“예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만…….”
“그자가 인정을 한 사내라면 자네가 대단한 것이야. 다른 일들을 내팽개치고 누군가를 찾으러 돌아다닐 사람은 아니니 말일세.”
“그렇군.”
쪼르르.
비어 있는 잔에 다시금 술을 채웠다.
어느새 옆에 끼어든 사도학도 빈 잔을 내밀었다.
단우현이 아무렇지 않게 그의 잔도 채웠다.
“제갈운…… 동방구 그놈과 비견되는 머리라고 하는 놈이야. 비상하지. 그만큼 마음에 안 들고.”
사도학이 거칠게 목 넘김을 하며 씩 웃었다.
과거 몇 차례 그의 책략에 빠져 당한 기억이 생각났다.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마교를 위해서 가장 먼저 제거를 해야 했을 놈이다.
“이상한 짓 하지 마라.”
단우현이 내뱉는 한마디에 사도학이 움찔 몸을 떨었다. 술을 마시며 툭 하고 나온 말이었으나, 그 안에 짙은 살기가 섞여 있다.
단우현의 말이 귓속을 파고드는 순간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학은 주먹을 질끈 쥐었다.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는 웃었다.
‘이래서 여길 떠나지 못한다니까!’
생전 처음이다.
누군가에게 공포를 느낀 것은.
그렇기에 더욱 단우현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이 공포를 극복해 낼 수만 있다면, 그는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 술 정말 맛있군.”
“술병을 보니 이건 확실히 호연세가의 것이로군. 이제 더 이상 술을 빚지 않는다고 하던데…… 제갈가 그놈 용케 구했어.”
사도학이 이리저리 술병을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호연세가라 한다면 술로써 유명한 세가. 지금은 추문세가에게 밀리고 망한 탓에 더 이상 술을 빚지 않는다고 한다.
세간에 남아 있는 호연세가의 술은 그 탓에 상당히 비싼 금액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
고로, 제갈운은 금 수십 냥짜리를 단우현과 인연을 트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다음에 또 온다더군. 그때는 이보다 더한 술을 가지고 올지도 모르겠어.”
“하하하, 그거 기대되는데? 뼛골까지 빨아먹자고.”
“제갈세가가 그렇게 돈이 많은 집안은 아니네. 그런 생각은 하지 말게나!”
남궁천은 두통이 일었는지 미간을 부여잡았다.
이놈들은 다른 사람 뜯어먹는 데 도가 튼 놈들인가?
돈도 많은 것들이 제 돈 주고 사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을 뜯어먹는 데 재미 들린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시간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저녁을 먹고 그렇게 하루를 끝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웃음을 짓고 있던 단우현이, 문득 잔을 내려놓고 한곳을 바라봤다.
누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누군가 오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흐르는 바람을 느끼며 그 속에 머문 불길함을 잡아냈다. 잔을 내려놓은 단우현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휘적휘적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보게! 어딜 가는 겐가!”
“따라오지 말거라. 가능한 이 장원에서도 나오지 말고.”
“응?”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한마디에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했다. 더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지만, 단우현은 대답을 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서서히 어두워지는 밤길을 따라 장원을 벗어났다.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사도학과 남궁천이 서로를 바라봤다.
“궁금하지?”
“그, 그러네만?”
“따라가 볼까?”
사도학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따라가고 싶다.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있는 거다. 어쩌면 대단히 강한 인간이 나타났을지도 모르고, 혹은 무신의 후예라 하니 선인이 되어 버린 무신이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우현의 정체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궁천은 고개를 저었다.
“가는 순간 걸릴 걸세.”
“그렇지?”
“그렇고말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 또한 이 중원에서 손꼽히는 강자다. 하지만 단우현은 그보다 더욱 위에 있는 자.
그렇기 때문에 안다.
단우현의 오감과 기감이 자신들의 몇 배나 뛰어나다는 사실을. 아무리 기척을 죽이고 다가간다 한들 움직이는 순간 걸리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은 탁자를 바라봤다.
아직 술이 남아 있다.
지금은 이것으로 만족할까?
단우현은 가만히 앉아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커다란 봉분이 하나 있었다. 삼천의 유해를 묻어 놓은 그 봉분이다.
시선 아래로는 장원의 풍경이 보였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소리다.
아마도 이 소리가 사라진다면 또다시 외로워질 것 같았다.
“그것인가? 삼천의 유해가 묻힌 봉분이.”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우현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한 사내가 봉분 앞까지 다가왔다. 기나긴 적발을 바람결에 휘날리며 선 사내는, 품에 넣어 두었던 술을 뿌리며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자네가 마신 소홍주보다는 못하지만 나름 괜찮은 술이라네. 이 녀석들의 넋을 달래 줄 정도는 되지.”
단우현이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적발의 사내.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의 곁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나도 익숙한, 그리고 너무나도 이가 갈리는 적풍(赤風)이다.
“천 년이 지났는데 살아 있다는 게 놀랍군. 분명 머리를 쪼갰던 걸로 기억하는데?”
단우현이 그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명백히 상대를 도발하는 어조. 심지어 그의 눈빛은 사내를 그저 벌레 한 마리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짓밟아 죽일 수 있는 그런 벌레.
“나는 최고였지만 최강이 되지는 못하였지. 그렇기에 네놈을 상대하기 전에 이런저런 술법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 덕분이지.”
“역천대법인가?”
“하하하. 잘도 아는군.”
단우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혼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그 대법.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남자아이 오백과 여자아이 오백의 피가 필요하다.
결국 저 혼자 살아남기 위해 천 명의 어린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나와 맞는 몸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세월이 걸렸네.”
그 말인 즉, 결국 역천대법을 이용하여 세월을 거듭하였고, 결국 지금에서야 맞는 몸을 찾아 완전 부활을 했다는 것이다.
단우현의 눈빛이 게슴츠레 좁혀졌다.
“설마 자네가 나타날 줄은 몰랐네만.”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것 또한 선인들의 의지인지도 모르겠군. 자네가 그토록 증오하는 선인들이, 이 혈마를 막을 수 있는 게 자네밖에 없다라고 생각했던 거지.”
“농담도 잘하는군.”
그 말인 즉, 스스로 풀었다 생각한 봉인을 어쩌면 선인들이 풀어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기에, 단우현의 기세가 폭발하듯 터져 올랐다.
혈마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천 년(千年).
말이 천 년이지 아득한 세월이다.
그런 세월을 몇 번이나 반복을 했던 혈마와는 다르게, 단우현은 천 년 전, 그날을 기점으로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날카로움.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그만큼 비웃음 또한 있다.
“그만두게나. 지금 자네는 나를 어찌하지 못해.”
“세월이 지나더니 농담도 많이 늘었는데?”
“하하하, 세월이 그만큼 흘렀으니 응당 변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지 않겠는가?”
혈마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 빛이 번뜩이더니 단우현의 코앞에서 터졌다.
지법.
순식간에 쏘아 낸 혈마도 그렇지만 그 짧은 시간에 막아 낸 단우현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반사 신경이다. 한데 기이한 것은.
고작해야 지법에 단우현이 주르륵 반 보 뒤로 밀렸다.
단우현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그의 눈빛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단우현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자네의 그런 표정 처음 보는군. 하하하.”
혈마는 웃었다.
그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단우현을 내리깔았다. 지금까지 언제나 최고였으나 최강이 되지 못하였기에, 그의 앞에서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내려다보는 혈마의 시선은 자신감이 가득 차 있다.
이 자리에서 단우현과 사생결단을 낸다 한들,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천 년이라는 세월이 그에게 준 것들은 결코 한낱 꿈으로 끝날 것들이 아니다.
“조금 더 위로 올라오게. 지금 자네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하네.”
“…….”
“다시 한 번…… 최고와 최강을 걸고 싸워 보자. 이 중원과 우리들의 목숨을 걸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혈마가 하하 웃었다.
순간 그가 슬쩍 뒤로 반 보를 물러섰다.
쾅!
동시에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이 귀를 가득 메웠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파편들이 마치 암기처럼 쏘아져 날아갔으나, 호신강기조차 쓰지 않은 혈마는 가볍게 그것들을 피해 내며 조소를 머금었다.
“흑풍신마를 풀어 놓았네.”
“……!”
“막을 수 있겠는가? 나를 죽일 수 있겠는가? 막을 수 있다면 어디 한번 막아 보거라! 나를 죽일 수 있다면 또다시 죽여 보거라! 죽고 죽이는 운명! 그것이 너와 나의 삶이니! 하하하!”
혈마는 물러섰다.
그의 몸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뒤늦게 퍼져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단우현의 귀를 자극하고 그의 자존심을 뭉갰다.
우두커니 서 있는 단우현이 주먹을 쥐었다.
“흑풍신마라…….”
그것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다.
영혼강림술은 그가 즐겨 사용했던 술법이었고, 또한 혈마신교가 한때 중원 최고에 올랐던 이유이기도 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