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36
단우현은 오랜만에 홀로 나와 장사를 향해 움직였다. 모든 것을 악양에서 해결을 하는 특성상 그가 장사로 가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곁을 수행하는 이들 또한 없다.
마치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홀로 나온 것 같았다.
상당히 먼 거리이기는 하지만 단숨에 움직였다. 한 걸음을 내딛는데 어찌나 이리도 빨리 움직이는지, 이것이 바로 축지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법 번화하군.”
장원을 나와 수 시진.
결코 그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님에도, 단우현은 그곳에 우두커니 선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악양과는 색다른 느낌이 있는 곳이다.
일단 넓다.
아니 크다고 해야 할까?
사람들의 수 또한 악양보다 수배는 많은 것 같다. 저 앞에 보이는 성은 호남을 다스리는 왕야의 것인가? 제법 크고 웅장하다 할 수 있지만 단우현의 시선을 끌기에는 미약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저잣거리로 가 볼까?
생각 없이 걷는 것은 아니지만 구경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노점에서 팔고 있는 당과다.
악양의 맛과는 다른가? 하며 하나 사 먹어 보았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좋지는 않다.
이걸 사 먹는 이들은 끔찍하게 미각이 퇴화한 사람일 거다.
그는 먹고 있던 당과를 길바닥에 내버리고 움직였다.
무엇을 그리 찾는 것인지 고개가 이리저리 잘도 돌아간다. 하지만 한참을 돌아봐도 원하는 것이 보이지 않자, 지겨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분명 여기라 했는데?”
단우현은 두리번두리번 다시금 주변을 둘러봤다. 혹 못 본 곳이 있는 것은 아닌지 처음보다 더욱 주의 깊게 둘러봤다.
그렇게 약 반 시진.
장사 거리 전체를 뒤지다 가장 외진 곳에 있는 허름한 장원 하나를 발견했다. 장원이라 해야 할지 상단이라 해야지 할지.
현판에는 떡하니 금환상단이라 쓰여 있기는 한데, 오가는 사람의 수도 적고 허름한 탓인지 사람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런 곳이 상단이라고?
보통 사람들이라면 조금 더 이름 있는 곳으로 갈 판이다. 하지만 단우현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상단이기만 하면 되었고, 또한 안면이 있다는 점이 주요하였다.
금환상단.
안휘로 가는 도중 만났던 상인 금은학의 상단이다.
단우현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대문 앞에 섰다. 문지기조차 없는 것인지 막아서는 이들도 없었다.
단우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허름한 문이 열렸다.
안에는 몇몇의 쟁자수들이 제법 지겨운 표정으로 늘어져 있다가, 단우현이 들어오자 잽싸게 일어나 일하는 시늉을 했다.
이런 모습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일감이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오서 오십쇼! 저희 금환상단을 찾아 주신 것에 대해…… 엑?”
그리고 눈앞에 익숙한 사람이 손을 비비며 나타났다. 오랜만에 오는 손님이라 생각을 했는지 얼굴은 한없이 밝았다.
하나, 그 상대가 단우현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핏기조차 사라진 표정으로 어버버 입을 벌렸다.
“오랜만이군. 이런 외진 곳에 있었나? 한참을 돌아다녀도 못 찾은 이유가 있었어.”
“대…… 대협 아니십니까? 어…… 어찌 저희 상단에……?”
금은학은 말을 더듬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구해 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에게 뜯긴 돈이 얼마던가? 오랜만에 장거리 상행을 했음에도 적자가 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원흉이 눈앞에 있다.
또 뭘 뜯어먹으려고?
금은학의 눈빛에 경계의 빛이 서렸다.
“이곳은 객을 밖에 세우나?”
“개…… 객입니까?”
“객이다.”
“안으로 드십시오!”
한순간 금은학의 표정이 밝아졌다. 재빠르게 태도를 바로잡고 단우현을 객당으로 안내했다.
그가 데리고 간 객당 또한 허름했다. 손님을 모시는 곳인지라 내부는 제법 깔끔하였는데, 겉으로만 보면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폐허였다.
금은학은 그곳에 단우현과 마주 보며 앉았다.
차와 다과를 내놓고 이야기를 기다렸다.
후룩.
단우현이 한 모금 차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봤다.
“허름하군. 정말 상단이 맞느냐? 귀라도 나오겠어.”
“하…… 하하. 저, 저희가 장사가 잘되는 곳이 아닌지라…….”
근근이 먹고산다.
그런 말 하지 않았던가?
그저 이런저런 인맥을 동원해 쟁자수들의 녹봉과 자신들의 먹을거리 정도 살 정도 버는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끊긴다면 더 이상 상단을 운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그런데 일감을 주시기 위해 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리 말했나? 객이라고만 이야기했는데…….”
금은학의 표정이 죽었다.
또 한 번 단우현에게 당했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내놓은 다과와 찻값이 생각났다.
이거라면 하루를 먹고사는 돈인데…….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자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상단이라는 게 다 돈이 되는 건 아닌가 보군.”
“그, 그게 호남은 이미 만금상단이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거래처 대부분에 만금상단 밑에 있는 상단들이 손을 뻗고 있는 실정입니다. 만금상단 휘하에 들어가지 못하면…… 대부분의 처지가 이렇습니다.”
“만금상단이라…… 분명 만후량이라는 자의 것이었지?”
“에, 예. 뭐…….”
“이 호남에 그의 영향력에 있는 상단이 몇 개나 되느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곳은 다름아닌 만금상단에서 떨어져 나온 호남상단이지요. 그리고 그 밖에 서너 곳 정도 됩니다만……?”
떠오르는 것만으로 그 정도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은 대부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줄을 이용해 만금상단 휘하에 들어간 약소 상단일 것이다.
“흠.”
고개를 끄덕인 단우현이 물었다.
“상단을 크게 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느냐?”
“다, 당연히 돈입니다…… 그리고 꾸준한 거래를 할 수 있는 거래처가 있습니다.”
“만약 네가 악양에서 상단을 한다면 제일 먼저 어떤 것을 하겠느냐?”
뜬금없는 질문이기는 하지만 금은학은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묻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한 것이다.
“악양에서 명물이 될 법한 술을 팔겠습니다.”
“술?”
“예, 동정호가 옆에 있으니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을 노리기 위해 호연세가와 거래를 트겠지요.”
“호연세가라 하면?”
“술을 빚는 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과거에는 말입죠. 지금은 추문세가에 밀려 더 이상 하지 않지만, 그들이 다시 술을 빚어 판다면 돈이 됩니다. 아직도 그 술을 잊지 못한 갑부들이 많으니까요. 물론 맛이 변하지 않았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만…….”
“그렇군…… 그럼 그다음에는?”
“……저, 무슨 연유로 묻는 것인지 알아도 되겠습니까?”
“묻는 말에나 대답하거라.”
“큼!”
금은학은 헛기침을 했다.
연유를 알 수 없지만 단우현은 제법 진지했다. 눈빛을 보고 있자니 절로 위축이 되어 반문을 할 수 없어 대답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절대로 말이다.
“……다른 것들은 이미 기존의 상단들이 거래를 하고 있는 탓에 뚫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단, 쌀, 소금…… 이런 돈이 되는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가능한 것이 있지요.”
“무엇이냐?”
금은학은 한껏 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생각을 해 왔던 그의 목표였다.
다름 아닌…….
“서역의 향신료와 그곳에서 쓰이는 물건들입니다. 이는 만금상단만이 일 년에 몇 번 거래를 터 가지고 있는 물목들인데, 엄청난 가격으로 팔려 나갑니다.”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것들이라면 충분히 돈이 될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이 인간은 현실을 보지 못한다. 만금상단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약소 상단 그것도 밑바닥을 기고 있는 그가 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재미는 있다.
인간의 도전이란 끝이 없고 도전을 하지 않으면 언제나 답보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단우현이 보기에 이 금은학이라는 자.
자신의 앞에서는 꾸벅하고 있지만 강단이 없는 자가 아니다.
단우현은 품에서 전낭을 꺼내 그의 앞에 내던졌다.
짜그랑!
탁자에 떨어지는 순간 입구가 열리며 금자와 은자가 쏟아졌다.
“뭐…… 뭡니까?”
“선수금이다. 이곳의 상단을 접고 악양으로 옮겨라. 열흘 주지.”
“에?”
“못 들었나?”
“아, 아니 들었습니다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이런 곳에서 다 죽어 가는 상단 가지고 헐떡이지 말고 악양으로 오라는 소리다. 돈은 내가 대 주마. 만금상단을 뛰어넘는 상단을 만들어 보거라.”
“……에?”
만금상단을 뛰어넘는 상단?
말이여 방귀여?
지금까지 많은 상단들이 그곳을 뛰어넘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지만, 어느 누구 하나 이뤄 내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만금상단이야말로 중원 최고의 상단이며 그 힘을 예측할 수가 없을 정도라는 소리다.
그곳을 뛰어넘어라?
누구 죽이려고?
“아, 아니아니아니! 부…… 불가능합니다. 대협!”
“무서우냐?”
“에…… 아. 그, 그것도 있습니다만 저 같은 미천한 놈이 어찌 그런 곳을…….”
“미천한 놈일수록 이를 갈며 올라가는 법이지. 미천하고 싶지 않으니까.”
“……!”
“그리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시킨 일을 네가 받는다는 것은, 너는 내 사람이라는 뜻. 나는 내 사람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대, 대협…….”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주지.”
탁 하며 손에 쥔 잔을 내려놓고 단우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던져 두었던 전낭 주머니는 챙길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서서 금은학을 내려다봤다.
“돈은 놓고 가마. 할 생각이 있으면 열흘 안으로 악양으로 넘어오거라. 생각이 없다면…… 돈은 악양의 현령에게 맡겨라.”
“혀, 현령 말씀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금은학은 심장이 뛰었다.
말하는 투도 하는 행동거지도 하나같이 남자답다. 거침이 없다고 할까? 고작해야 한 번 인연, 그럼에도 자신을 믿고 찾아와 이런 일을 제안해 주는 대범함.
태어나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만나 보았지만 처음이다.
그렇기에 더욱 마음이 뛰었다.
두근두근.
벅찬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저를…… 믿으십니까?”
“믿지 않는다면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다.”
“저를 고작 한 번 보셨습니다.”
“내 눈이 그리 못미더우냐?”
“…….”
금은학은 처음으로 단우현의 눈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저 눈빛이 두려워 쳐다보는 것조차 불가능하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느낀다.
저 눈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그렇다고 단우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 따위 알 수 없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바로, 단우현의 눈빛은 틀림없이 금은학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은학은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네 아까운 시간이 한없이 줄어들기만 하는구나.”
피식 웃음을 지은 단우현이 등을 돌려 객당을 빠져나갔다. 그의 한마디가 송곳이 되어 가슴에 꽂히고 그 눈빛이 머릿속에 틀어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금은학은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이 준…… 기회라는 건가? 모르겠구나.”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