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46
권무진은 지쳐 있다.
이렇게까지 지친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눈앞에 있는 상대의 모습조차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심신(心身)이 망가져 있었으며 그것을 통제할 정신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두 자루의 도만큼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칼을 쥔 채 적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 또한 마찬가지다. 살의를 품은 듯 품지 않은 듯, 또한 적의를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감정조차 죽어 버린 듯하면서도 명백히 상대를 바라보며 검을 치켜들고 있는 그 모습은, 틀림없이 눈앞에 있는 이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가졌다.
‘이 자식……!’
대도를 들고 있는 마독진은 당황했다.
독기 오른 놈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이십 년이 넘게 곁에 두고 키워 왔으니 성격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권무진은 어딘가 다르다.
처참하게 깨지면서도 악바리처럼 달려드는 것은 똑같지만, 상대의 허를 완벽하게 찌르고 들어온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
한쪽 눈마저 잃어버리고 그것에 적응조차 되지 않았음이 분명한데도, 놈은 확실히 마독진을 압도하고 있었다.
‘어찌 된 것이야!’
마독진은 옆구리를 매만지며 식은땀을 흘렸다.
권무진의 칼에 베인 상처다.
깊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얕지도 않다.
오랫동안 권무진의 일격을 받아 본 마독진이었지만, 이처럼 교묘하고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는 검로는 또 처음 보았다.
‘달라졌어!’
고작해야 일 년 남짓.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다 하여도 자신과 권무진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격차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벌목세수를 받아 가며 성장을 해 왔으며, 내공은 물론이고 익히고 있는 무공 또한 다르다.
한데 지금.
일 년 만에 그 판이 뒤집히려 하고 있다.
마독진은 까득 이를 갈았다.
도대체 육겸사 놈은 뭘 하는 것이야?
당장 단우현과 다른 놈들을 베어 버리고 찾아와야지!
일말의 기대를 갖고 눈알을 굴려 육겸사를 바라봤다.
“……!”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그렇게 믿고 있던 육겸사가 무너졌다.
괴로움에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땅을 뒹굴었다.
단전을 부여잡고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는 그 모습은, 틀림없이 단전이 파괴되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찌 이런 일이?
“흐…… 흐흐. 왜 그래? 못 믿겠지?”
“놈!”
권무진의 나지막한 음성이 흘렀다.
흐흐 하며 작은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마독진에 대한 조소를 날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살기를 흘리며 대도를 움켜쥐었다.
“네놈 따위가 이길 수 있는 분들이 아니다. 무황성 전 병력을 이끌고 와도 어찌할 수 있는 분들도 아니다.”
“네놈이 드디어 실성을 했구나. 저딴 놈들과 무황성을 비교하다니.”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권무진을 보며 마독진은 더욱 심사가 꼬였다. 단우현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은 안다. 육겸사가 졌으니 마독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이다.
하지만 무황성과 비교를 한다?
웃기지 마라.
무황성이라는 곳은 사파에서도 정예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또한 세가에서 많은 무사들을 이끌고 왔으나, 아직까지도 이보다 더한 전력들이 즐비해 있는 곳이 사도칠세의 한 축 항산 마씨세가다.
한때 구파의 주 전력이라 할 수 있었던 항산파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였으니, 그 힘이 결코 작지 않음이다.
그런데도 비웃어?
그것이 더욱 화가 치밀었다.
“죽어라.”
“퉤! 너나 죽어 새끼야.”
권무진은 침을 뱉으며 더욱 굳게 도를 쥐었다.
한 번쯤 해 보고 싶었던 말이다.
그렇게 마독진에게 얻어맞고 당하면서도 화 한 번 낼 수 없었던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자존심이 상했던가? 비록 꼴이 말이 아니기는 하지만, 이 한 마디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흐릿했던 시야가 잠시 돌아왔다.
카카캉!
격렬한 칼부림이 일어났다.
선공은 마독진.
그의 대도는 빠르게 그러면서도 날카롭고 힘 있게 치고 들어왔다. 예전보다 더욱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닐 거다.
일 년여라는 시간 동안 권무진이 성장했듯이 마독진 또한 한층 더 성장을 한 것이다.
하지만.
‘얕아! 그리고 가볍다!’
대도를 받아 내고 있는 권무진은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마독진의 도는 빠르고 대단히 무겁지만, 대도의 특성이 살아나 있지 않다.
단우현은 말했다.
대도란 본디 두 손으로 잡고 그 일격 일격에 그 파괴력을 담는 법이라고. 이미 한 차례 단우현에게 졌음에도 이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독진 나름대로 이 도법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르르릉!
“윽!”
휘둘러진 칼을 막아 내고 그 칼날을 따라 권무진의 쌍도가 움직였다. 마치 물결을 타고 움직이는 물고기처럼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깜짝 놀란 권무진이 부리나케 뒤로 물러섰다.
촤악!
하나, 권무진의 쌍도는 확실하게 그의 가슴을 베었다.
피가 튀는 것이 보였다.
손맛 또한 확실히 있다.
“이놈!”
마독진이 울분을 터트렸다.
이렇게 될 리가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권무진 따위에게 지다니? 그게 어디 있을 법한 일인가? 이십 년이 넘게 아래로 내려다보며 살아왔던 놈에게, 당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드니 그의 머릿속이 크게 헝클어졌다.
손에 쥔 대도가 크게 출렁이며 거칠게 힘을 썼다.
빠르게 휘둘러지는 대도는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양손으로 부여잡고 세차게 내지르니 빠르기도 빠르기지만, 보다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이 새끼야!”
마독진은 눈에 불을 켰다.
놈을 죽이고 싶다.
잃어버린 한쪽 눈과 뭉개진 자존심.
그 모든 것들을 되찾고 싶다.
이런 식으로 몰릴 것이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모든 계획들이 이리도 어이없게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 여기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화가 난다.
죽이고 싶다.
저놈을 죽이고!
모든 것을 되찾고 싶었다.
“이제야 조금 제대로 하는군.”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단우현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조언을 받아들인 것인지, 양손으로 휘두르는 대도의 기세가 사뭇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한 손으로만 대도를 들고 싸운 것은, 이 무림의 법칙을 잘 지키려 했던 것일 터.
무인이란 본디 칠 푼의 힘을 드러내고 삼 푼을 감춰야 한다.
이는 생존을 위한 법칙이다.
“확실히 조금 전과는 다르구나.”
남궁천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휘두르는 방식이 바뀐 것에 지나지 않은데, 더욱 큰 파괴력을 지녔고 휘둘러지는 도초 또한 많이 바뀐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잖아?”
사도학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고작해야 일 년,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 모든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는 법이다.
지금 마독진은 큰 실수를 하였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생사를 건 사투라 한다면 더더욱.
최후의 일격이라면 또 모를까, 모든 것들을 단박에 보여 주어서는 상대 또한 금방 그것에 눈이 익기 마련이다. 그리되면 어찌 되는가?
“큭!”
여기저기 베이고 찢긴 권무진의 눈이 휘둘러지는 대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칼날은 그의 몸에 닿지 않고, 오히려 쌍도의 흐름이 더욱 거세져만 갔다.
카카카캉!
들려오는 경쾌한 울림은 마치 박자를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대도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가까스로 그것을 막아 내고 있기는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마독진의 얼굴에 여유로움이 사라졌다.
또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 칼. 한 칼.
그것이 목덜미를 노리며 들어올 때마다 오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을 몇 번이고 겪었으며, 그럴 때마다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가는 듯했다.
까득!
마독진은 이를 갈았다.
죽고 싶지 않다.
특히 권무진의 칼날에 맞아 죽고 싶은 마음 따위 없다.
그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날아드는 쌍도를 쳐 내며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마치 저승의 문턱에 한 발을 내딛는 것과 동일시 된 일 보였다.
순식간에 날아든 권무진의 칼날이 가슴팍을 찔렀다.
푹!
“……!”
한데, 칼날은 살짝 빗나가 어깨를 꿰뚫었다.
마치 처음부터 노리고 움직인 것 같았다. 또 다른 권무진의 칼날이 목을 향해 날아들었으나, 급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 피해 냈다.
이윽고 마독진은 또 한 발을 내디뎠다.
어깨에 박혀 있던 칼날이 더욱 안쪽을 쑤시고 들어갔다. 권무진은 그것을 뽑아내려 했으나, 근육으로 강하게 조이고 있는 것인지 쉽게 빠져나오지 않았다.
촤아아악!
마독진의 대도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권무진을 베어 냈다. 어깨에서부터 발끝까지. 깊지는 않으나 충분히 중상이라 말을 할 법한 상처다.
피가 튄다.
하나, 아픔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권무진은 재빠르게 칼을 뻗어 또다시 들어오는 대도의 도로를 흘려 냈고, 그대로 가슴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푹!
“커억!”
한 끗 차이.
그 말은 아마도 이 상황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쳐 냈다고 생각했던 대도는 권무진의 목덜미 앞에 멈춰 섰다. 틀어박힌 권무진의 도는 마독진의 심장을 꿰뚫고 나갔다.
자칫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죽는 것은 마독진이 아닌 권무진이 되었을 것이다.
스르륵!
칼을 뽑아내는 것과 동시에 마독진의 몸이 무너졌다. 숨을 헐떡이는 기색조차 없이 그대로 즉사를 하였는지, 쓰러진 상태로 동공이 풀린 채 전신을 움찔거렸다.
마치 죽어 가는 물고기를 보는 것 같았다.
“헉…… 헉…….”
권무진은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한 손으로 목을 쓰다듬으며 그 또한 주저앉았다.
심력을 다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겸사와의 대결 탓에 이미 중상을 입었던 몸으로 마독진을 상대하였으니, 심신(心身)이 지칠 수밖에 없다.
뚝뚝!
베인 가슴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혈을 하지 않고 쓰러진다면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하나, 권무진은 웃었다.
죽어 있는 마독진을 바라보며 웃었다.
씩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권무진의 시선이 단우현을 향했다. 자신이 이겼음을 알리는 그 표정에 단우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툭 하고 내뱉는 한 마디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힘이 되는 말이다. 권무진은 더없이 짙은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런 이런. 시체나 다름이 없구나.”
사도학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쓰러지는 권무진을 받아 들었다. 순식간에 뻗어진 손가락이 이리저리 혈을 짚자, 흐르던 피가 한순간에 멎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그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던 남궁천이 물었다.
결국 마독진을 죽였다.
무황성과 척을 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림맹 혹은 천도회와 손을 잡을 것인가?
남궁천은 그 생각 또한 부정했다.
궁금증이 극에 달하는 순간, 덤덤한 단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체를 무황성에 보내라.”
“……!”
“헉!”
두 사람이 기겁을 하며 단우현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