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50
“크억!”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피를 토한 적무성은 눈앞에 벌어진 현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장원이었던 풍경은 언제 바뀌었고, 어찌하여 자신은 땅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건가?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고통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자연스레 호신강기를 치고 있었음에도, 한순간에 그것마저 깨져 버렸다.
퍽!
“컥!”
복부 깊숙이 단우현의 발이 파고들었다.
주르륵 뒤로 밀려 나간 적무성은 한순간 호흡이 멎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폐부에 있던 모든 공기가 토해져 나가니 숨을 쉴 수조차 없음이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크으윽…….”
“뽑지 말라 했거늘…….”
들려오는 말에 시선을 올려 상대를 바라봤다.
여유로운 표정.
사람을 내려다보는 눈빛.
오만한 기세.
그런 것들이 오황의 일인 적무성의 심기를 거슬렸다.
적무성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통을 참아 내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제법 하는구나.”
“하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있는 적무성은 다소 여유로웠다.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상대의 실력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대단함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처음이야 방심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가?
오황의 일인자 사파의 왕이다.
진다는 생각 따위 일말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칼에 힘을 주고 마음을 다스렸다.
비웃는 상대의 표정조차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번 같은 것이 통할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그렇군.”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다.
적무성, 그가 가진 기세가 주위를 장악하고 있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웃고만 있다. 마치, 어린아이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어른의 표정 같다.
달려간다.
기다리고 있는 거나 상대를 파악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일격, 일격에 힘을 싣고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 지금의 적무성을 만들어 놓은 전술이기도 했다.
심지어 상대는 칼조차 들고 있지 않다.
권각을 주로 쓰는 무인이라 하면 칼을 쓰는 무인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입신지경에 오른 무인의 검강은 금강석조차 두 동강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예리함을 보인다.
하여 권각을 주로 쓰는 무인이 다소 불리하다.
촤악촤악!
세차게 휘둘러진 검은 그 검로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피한다고!’
벌써 휘두른 것만 다섯 초식이 넘어간다.
남궁천이나 설령 사도학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피해 낼 수 없다 자부할 수 있는 검식이었는데, 마치 칼날이 짧아져 버린 듯 그의 검은 단우현의 코앞에서 닿지 않았다.
이를 갈며 한 걸음 앞으로 움직이는 순간.
쾅!
느닷없이 뻗어 온 기세에 주르륵 밀려 나갔다.
“큭……!”
“괜찮구나. 검술만 보면 남궁천과 비교해 부족하지 않을 정도군.”
들려오는 한마디가 더욱 머리로 피를 몰았다.
적무성은 바득바득 이를 갈며 균형을 잡고 땅에 섰다.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은, 마치 잡아 죽일 듯이 활활 타올랐다.
“죽여 버린다. 놈!”
더없이 날카로운 살기를 뿜으며 큰 기세를 뿜었다. 상대에게 농락을 당하고 있다는 것, 뭉개진 자존심, 이 모든 것들은 무도(武道)를 걷고 있던 그가 태어나 처음 당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비등한 승부라도 한다면 약 오르지 않는다.
하나, 일방적이나 다름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오황의 자리에 올라와 있는 적무성의 입장에서 모든 것들을 곱게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다.
“기세만 좋군.”
“이놈! 말만 많구나!”
피식 하는 단우현의 비웃음 소리가 또 한 번 귀로 파고들었다. 그것을 들을 때마다 마치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살심이 치솟았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두 번째도 방심을 하였다!
아니, 상대의 농락에 넘어가 버린 탓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욱 미칠 것 같았으니까.
“이제야 알았다. 왜 남궁천이나 사도학이 사파를 쳐 주지도 않는 것인지. 네놈 꼴을 보니 영 쓸모가 없어.”
“이, 이…… 이 자식이……!”
“오황이라? 그 실력으로 용케 올랐구나.”
그 모든 한마디가 진심으로 들렸다.
눈빛과 표정,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적무성의 가슴을 깊게 후벼 팠다. 정사대전이 벌어지면 사파는 단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사마대전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후기지수들끼리 싸움이 일어나도 이긴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여 많은 이들이 세 개의 파벌 중 사파가 가장 약하다 말을 하였고, 그런 생각을 깨 주기 위해 섬서를 공격했던 것이기도 했다.
적무성은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것을 누구보다 듣기 싫어하는 사파의 왕이라 불리는 자다.
하여 더욱 화가 나고 이가 갈렸다.
“검은 낭인처럼 거칠고 행동은 파락호나 진배없구나. 또한 마음가짐조차 왈패와 다름없으니, 이것을 무인이라 해야 하나?”
“흥! 그런 입을 놀릴 수 있는 것도 지금까지다!”
“또한…….”
단우현은 한 마디를 중얼거리며 슬쩍 발을 내디뎠다.
쾅!
거칠게 땅이 파이고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주변은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크게 흔들렸다.
적무성은 한순간 균형을 잃었다.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휘둥그레 눈을 치켜뜨는 순간.
퍼퍼퍽!
“끄아아악!”
날아 들어오는 돌멩이들이 암기처럼 그의 전신을 두들겼다. 짧은 순간이지만 몸이 붕 떠오를 정도의 강한 타격이다.
땅에 떨어진 적무성이 비탈길을 구르며 신음을 흘렸다. 박혀 있는 돌과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은, 이제 흉기가 되어 적무성을 괴롭혔다.
“끄으으윽……!”
엎어진 채로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상대의 강함이 너무나도 확연하게 느껴진다.
여유를 부리지도 않았으며 방심조차 하지 않았다. 최대한 경계를 하고 죽이고자 하였지만, 어떤 것도 통하지 않으니 절망감마저 몰려들었다.
이길 수 없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눈앞에 있는 사내에 대한 공포가 몰려들었다.
공포?
이 적무성이?
사파 최고의 인재로 태어나 갖은 노력 끝에 올라온 자리이다. 그만큼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경험과 실력이 뒷받침되어 있음이다.
한데.
사악!
적무성은 다가오는 단우현의 발소리를 듣고 칼을 휘둘렀다. 횡으로 크게 휘두른 그것은, 소리가 뒤늦게 들릴 정도로 빠른 일 검이었다.
“끄으으윽……!”
그러나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적무성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상대는 휘둘러진 검을 발로 막아 냈다. 금강석조차 쉽게 잘라 내는 검강이 통하지도 않았다.
마치 단우현의 발에 닿은 곳만 공력이 흩어진 것 같았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는가.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그간 쌓았던 경험, 노련함, 그 강력했던 힘.
오로지 사람을 내려다보며 득의양양했던 적무성의 마음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처럼 부서지고 무너지며 산산이 흩어졌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온몸은 흙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칼을 손에 쥐고는 있으나 두려움에 그 손길마저 덜덜 떨려 왔으며, 눈빛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크게 흔들렸다.
“두려우냐?”
내뱉어진 단우현의 목소리에 움찔 몸을 떨었다.
그가 한 걸음 다가오면 한 걸음 물러섰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폭풍 같은 기세는 이미 뭉개져 사라졌다. 적무성은 그저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이 머릿속에 간절했다.
“웃기는 녀석이로군. 칼을 뽑을 때는 그만한 각오를 하지 않았느냐?”
“끄윽……!”
각오?
그딴 것 하지 않았다.
후기지수였을 때나 했을지 모른다. 하나, 사파의 정점, 오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적무성은, 베기 위해 검을 뽑아 상대를 죽이기만 하였지, 상대에게 당할 것이란 생각 따위 일체 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강자의 입장이다.
그리고 지금 적무성은 약자가 되었다.
“뭐…… 뭐 하는 놈이냐! 도…… 도대체 누구이기에……!”
“알 것 없다.”
단우현이 비웃음을 지으며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이런 빌어먹을!”
적무성이 두 걸음을 물러서더니, 이내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일생일대에 이렇게까지 빨리 달린 적은 아마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헉! 헉!”
달린다. 달려.
남아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며 앞만 보고 달렸다.
저 괴물 같은 것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떨어져야 한다.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괴물임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살기 위해 필사적인 도주를 택했다.
마주치고 싶지 않다.
그 목소리조차 듣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 악양 근처에 발도 안 디딜 것이다!’
그런 맹세를 하며 이를 악물었다.
“푸하하하!”
싸움이 벌어진 곳에 도착한 사도학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처참하게 당한 적무성이 꼬리를 말고 냅다 도망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황의 일인이며 사파 최고의 인물.
그런 그가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남궁천마저 슬쩍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차마 사도학처럼 박장대소할 수 없는 것은, 나름대로 근엄함을 지키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됐다.
“으히히히! 아이고 나 죽네!”
“크큼! 그만 웃게나! 뭐 좋은 꼴이라고.”
“아니, 저놈. 끄하하하!”
계속해서 터지는 웃음에 남궁천마저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만큼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은 충격적이라 할 법했다.
단우현 또한 다소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저 정도 되는 실력자가 도주를 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달리는 걸 보고 있음에도 쫓지 않았다.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으니 죽일 생각마저 사라진 거다.
“재미있군…… 적무성이라 했던가?”
“그래그래, 그 이름이 맞다.”
“많은 놈들을 보았다만…… 저런 놈은 또 처음이다.”
단우현은 피식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인생이라는 것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법이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었다.
사파 최고의 고수가 도망이라?
단우현은 그 사실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걸로 당분간 사파 쪽은 조용하겠군.”
적무성이 바보가 아니라면 함부로 덤비려 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고, 또 단우현을 상대하려면 지금의 자신으로는 턱도 없음을 깨달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고개를 돌려 서쪽을 바라봤다.
‘어찌하고 있으려나?’
단우현은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는 한 놈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