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52
삐딱한 간판은 당장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곳곳에 쳐진 거미줄은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했다.
폐하나 다름없는 풍경은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귀신이 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곳은 한때 호남, 악양 동정호의 명물이었던 소홍주를 팔던 호연세가였다.
과거의 빛바랜 영광은 이미 사라져 존재하지 않으나, 오랫동안 악양의 술도가를 장악해 왔기에 현판에 적힌 이름만큼은 아직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호연세가라…….”
“예! 이곳입니다!”
금은학은 식은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이미 이야기를 들어 알고는 있었다.
추문세가와의 세력 싸움에서 밀렸고, 그 후 누군가의 습격을 받고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사람들조차 찾지 않는 폐가였지만 말이다.
“정말로 이곳이냐?”
단우현이 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가 생각해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안에는 사람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거지들조차 이곳에 살 것 같지 않은 곳.
게다가 안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냉기를 품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머물렀다간 얼어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트, 틀림없습니다.”
금은학의 대답에 단우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뻗었다. 당장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대문을 슬쩍 밀었다.
끼이이익-!
묘한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귀를 긁어 대는 소리가 한동안 들리더니 쿵! 하며 문짝이 내려앉았다.
“…….”
“…….”
단우현과 금은학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다 망한 세가라 해도 문 정도는 좀 고치지.
“계십니까?”
먼저 들어간 금은학이 소리를 쳤다.
악양에서 호연세가까지 왔다. 거리가 상당한 탓에 한 시진은 족히 움직였으니, 하다못해 세가의 사람이라도 만나야 했다.
하지만 안에서는 기척이 전혀 없었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한숨을 쉬는 순간.
뒤에 있던 단우현이 고개를 돌렸다.
“누구…… 세요?”
이제 갓 약관이 되었을 법한 여인이었다.
긴 머리는 제대로 손질하지 못한 듯 헝클어졌으며, 입고 있는 옷은 넝마나 다름이 없었다. 손은 추위 탓인지 붉게 달라올라, 자칫 동상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허리에 낡은 바구니를 낀 채 가만히 단우현을 주시하고 있는 그 여인의 시선은 다소 복잡해 보였다.
“넌 누구지?”
“……제가 먼저 물었는데요.”
단우현의 질문에 여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놓고 오히려 그 주인에게 누구냐 묻다니? 정신머리가 어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난 단우현이다.”
“호연지예요. 이 집의 주인이죠.”
“……사람이 살기는 했군.”
“실례되는 말을 막 내뱉는군요.”
호연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같지만, 안으로 들어간다면 한 사람 정도는 쉴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 있었다.
혼자 사는 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괜스레 뿔이 난 그녀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자, 그럼 설명해 주시겠어요?”
호연지를 바라보며 금은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폐가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의 가장 안쪽에는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눕힐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 있었다.
손님을 맞이할 처지조차 되지 않는 곳인지라, 단우현과 금은학은 밖에 있는 툇마루에 앉았다.
여인은 대접할 수 있는 것이 마땅하게 없는 것인지, 물 두 잔을 내어놓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단우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마치 딱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 같았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미관상 좋지 않은 광경일지언정, 단우현의 눈에는 꽤 색다르게 다가왔다.
또한 사방에서 냄새가 났다.
바로 약초의 향기였다.
산과 들에서 나는 약초들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좋은 곳이군.”
“비꼬지 말아 주실래요?”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딱히 그럴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나쁜 인상이 단단히 박힌 듯했다.
“약초 냄새가 짙군. 의방이라도 열려는 것이냐?”
“본래 저희 집안은 의원 출신이에요. 단지 선대의 어른들께서 술빚는 걸 너무 좋아하셨던 탓에 술이 유명해진 거죠.”
호연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세가가 무너지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살고 있지만, 아직 가문의 책들이 조금 남아 있었다.
하여, 훗날 무엇이라도 하기 위해, 침술과 약학을 익히고 있었다.
다시금 과거 호연세가의 위명을 되찾기 위함이 아닌, 자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군. 난 술로 유명한 호연세가라는 소문 때문에 찾아왔는데 말이지.”
“많아요, 당신 같은 사람들. 술을 빚어 달라고 떼를 쓰는 이들도 있죠. 하지만 불가능해요.”
“왜지?”
“전 술을 안 만드니까요.”
술 때문에 집안이 쫄딱 망했다.
물론 어렸을 때 벌어진 일이었고, 그 당시에는 뭐가 뭔지 전혀 알지 못하였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집안이 이렇게 되어 더 이상 재기조차 불가능해진 이유 모두 술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 알았다.
그러므로 술만 봐도 꺼림칙했다.
“만드는 법을 모르는 모양이로군.”
“네네, 그렇게 도발해 봐야 소용없어요. 절대 안 만들 거니까.”
호연지는 피식 웃었다.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생각하는가?
과거에 마셨던 술을 생각하며 돈 많은 상인이나 혹은 고위 관료들까지 사람을 보내 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돈에 현혹되지 않고 모두 거절했다.
또다시 술에 손을 대었다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안다.
“술을 빚는 것이 저 손이니, 잘라 버려라. 술을 맛보는 것이 저 혀니, 뽑아 버려라”
한 사내의 목소리가 생생히 떠올랐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 모습.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던 부모님들의 얼굴.
복면을 썼으나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사내.
그 장면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 그녀의 공포로 남았다.
호연지의 안색이 한순간에 창백해졌다.
“호연세가의 술은 중원 최고였다더군.”
“예전에는 그랬죠. 지금은 추문세가가 최고예요.”
그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말투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단 추문세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그녀의 목소리가 잠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군.”
단우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슬쩍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잘 보이지도 않는 한쪽 귀퉁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곳에는 깨져 있는 몇 개의 술독이 보였는데, 최근 깨진 것인지 파편 사이에 고여 있는 술이 보였다.
호연지가 깜짝 놀라는 순간, 단우현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그것을 마셨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별로지만 제법 괜찮아. 하지만 추문세가의 술이 더 맛있다는 건 사실이군.”
“윽……!”
호연지가 인상을 구겼다.
그런 평가를 듣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저 부모님의 기일에 맞춰, 묘에 술 한 잔이라도 올리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것에 불과했다.
그 맛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깨 버린 것이고.
‘추문세가와 비교당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닌데…….’
그래도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호연지가 홱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어 보여.”
저벅저벅-
단우현은 마치 그녀의 마음을 옥죄듯 천천히 다가와 코앞에 섰다.
앉아 있는 그녀와 키를 맞추기 위해 주저앉은 그가 호연지의 두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 걸린 옅은 미소를 보는 순간, 호연지는 마치 그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뭐…… 뭐예요?”
“술을 빚어라.”
“뭐…… 뭐라고요? 저는 더 이상…….”
“그리한다면 내 너의 소원을 이루어 주지.”
“……소원?”
자신이 그런 걸 말한 적이 있던가?
자기가 신이 아니고서야 사람의 마음을 어찌 읽는단 말인가?
기가 찬 나머지 헛바람을 터트리며 웃었다.
“쿡쿡, 대체 내 소원이 뭔지는 알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
“…….”
확신 어린 표정으로 답하는 그의 모습에 호연지의 얼굴이 굳었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뭔데요?”
“추문세가를 멸문시켜 주마.”
“윽……!”
“네 안에 심어진 공포를 지워 주마.”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 사람…….’
처음에는 단순히 돈 많은 집의 철없는 공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추문세가를 멸문시키겠다는 말을 전혀 거리낌 없이 입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는 이들은 틀림없이 무림인뿐이었다.
“추문세가는 만금상단과 연관되어 있는 곳이에요. 더군다나 그곳을 지키는 무인들은 하나같이 일류고요.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중소 문파 하나쯤은 하루아침에 멸문시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이러시는 건가요?”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복수를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추문세가가 가지고 있는 힘은 너무나도 대단했다. 돈을 벌어 낭인을 끌어모은다 하여도, 추문세가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이 없었다.
불면 꺼지는 것이다.
그럴 텐데도 이 사람은 자신만만했다.
“모든 것을 내게 맡겨라.”
“…….”
“그리할 수 있다면 내 너의 소원을 들어주지.”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호연지는 물론이고 곁에서 바라보고 있는 금은학마저.
단우현이라는 사람이 내뱉는 말에서 느껴지는 자신감, 눈빛에 맺힌 강한 힘을 보고 있자니, 이 모든 것이 결코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더욱이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는 말에 소름마저 돌았다. 그것은 금은학, 자신에게도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중원 최고의 상단이 되고 싶다.
단우현은 그것을 이루어 준다 했다.
자신을 따른다면!
얼마 전과 비슷한 상황을 바라보며 금은학은 부들부들 떨었다.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던 호연지가 날카롭게 단우현을 쏘아봤다.
“정말 할 수 있나요?”
“내가 하지 못하는 건 없다.”
그 한마디가 호연지의 마음을 들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