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54
술을 빚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얼마나 좋은 재료를 준비하느냐, 그것들을 이용해 어떤 방식으로 술을 담그느냐, 숙성의 시간은 얼마만큼 가져야 하는가.
많은 것들을 신경 써야 하며, 그만큼 잘 지켜봐야 했다.
호연지는 어린 시절부터 술 빚는 것을 배웠다.
사실 배웠다기보단 옆에서 보고 익힌 것들이었다.
그것을 따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웬만한 술도가보다는 잘 만들 자신이 있는 그녀였다. 실제로 단우현이 먹다 만 술 또한, 인근에서 파는 싸구려 술보다 몇 배는 나았으니까.
“그래서 약술을 만들어 볼까 해요!”
이른 아침에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호연지는 소리치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미 술을 빚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마당이니,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술에 대한 열정을 마음껏 드러낼 생각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단소미가 벌떡 일어나 손을 높이 올렸다.
“소미도! 소미도 도와줄게요!”
“그럴까?”
“네네! 소미도 하고 싶어요.”
번쩍 손을 단소미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기에 호연지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동생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 마음이었다.
“그러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한데, 단우현의 반대가 그녀의 생각을 산산이 부쉈다. 그쪽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보았지만, 아무런 동요 없이 식사를 하는 단우현이었다.
소미를 장원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슬쩍 단우현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하나둘, 시선을 마주하자 다들 고개를 돌렸다.
마치 그녀만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느낌이다.
“왜요? 손재주가 그렇게 없나요?”
“흠…….”
“커험…….”
남궁천과 사도학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손재주가 없냐고? 물론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 강했다. 무슨 일을 시켜도 사고만 치는 통에 아예 없는 것이 좋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단우현 또한 그것 때문에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남궁소혜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소미는 아직 어리고 술을 빚기에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일 거예요 다들…….”
“저는 저 나이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배웠는걸요. 더군다나 곁에서 도와주기만 할 뿐이지, 애한테 술을 맛보게 하진 않아요.”
“그…… 그런가요?”
남궁소혜가 슬금슬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외면하는 모습에 약간 위화감을 느꼈지만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단소미를 보자, 저도 모르게 감싸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소미야! 언니랑 나가자. 산에서 약초도 캐고 맛있는 것도 찾는 거야!”
“네네! 소미는 뭘 해도 즐거워요! 헤헤헤.”
자리에서 일어난 호연지가 단소미의 손을 잡았다.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꽤 들떠 보였다.
그러자 곳곳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안타깝군.”
“허허허.”
“아아……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의 탄식에 단우현이 피식 웃더니,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는 멀어지는 두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그가 조심스레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가끔 좌절을 맛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 법이지.”
* * *
호연지는 단소미의 손을 잡고 산을 올랐다.
이렇게 기분 좋은 때는 어린 시절 이후에는 없었을 거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누구 하나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을 때 말이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였지만, 호연지는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동심에 빠진 어린아이의 표정이었다.
“뭐부터 하면 돼요?”
“으음…… 글쎄? 일단 약초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볼까?”
“네! 그건 소미도 잘해요!”
호탕하게 손을 들어 올리며 밝게 답하는 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 해맑은 미소가 영원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이 아이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게 노력할 것이다.
좋은 술을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첫 걸음이었다.
어쨌거나 일단 좋은 약초를 찾아야 했다.
호연세가가 술로 유명해진 이유는 바로 몸에 좋은 약술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향을 좋다거나 맛이 좋은 것이 아닌, 술을 마심으로써 그 사람의 몸이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었다.
그녀가 약초를 찾아 주변을 둘러봤다.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곳곳에 약초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약초꾼들이 이 근처에는 잘 찾아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것이 살짝 이상하기는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양질의 약초를 구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힐끗 옆을 바라보니 단소미가 열심히 약초를 캐고 있는 게 보였다.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 약초를 캐고 있는 것인지 잡초를 캐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꽤 빠르게 무언가를 주워 담고 있었다.
‘그래, 저 아이가 약초에 대해서 뭘 알겠어.’
그냥 풀이면 다 약초라 생각하는 것이리라.
더군다나 손에 물 한번 묻혀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아이였다. 저런 커다란 장원에서 살고 있는 데다 남궁세가의 비호를 받고 있었으니까.
호연지는 그저 단소미의 행동을 귀엽게만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아무것도 없었던 바구니에 한가득 약초를 캤으니, 이제 그만 다른 것들을 찾아봐야 할 시간이었다.
“다 캤니?”
“네!”
“후후, 어디 보자.”
옅은 미소를 지은 호연지는 단소미가 가지고 온 바구니를 살폈다.
무엇을 그리 많이 캤는지 한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자신의 바구니를 바라봤다.
시꺼먼 흙이 잔뜩 묻어 있는 약초들이 보였다. 더군다나 뿌리까지 제대로 캐지 못해 여기저기 잘려 나간 것도 있었다.
나름대로 상급의 약초와 뿌리들을 잘 캤다고 자부하고 있던 그녀였는데, 단소미가 캐 온 결과물과는 너무나도 비교되어 할 말을 잃었다.
“……자, 잘 캐는구나.”
그야말로 깔끔했다.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자기가 털었을 땐 제대로 털리지도 않았던 흙까지 완벽하게 털어 냈으며, 의방에 가져다 팔면 돈이 될 만한 최상품들만 바구니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헤헤, 아빠랑 자주 오니까요.”
‘이건 자주 캔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초를 캐다 파는 게 생업이었던 호연지였다. 그런 그녀조차 하지 못한 일을, 이 어린 단소미가 너무나도 쉽게 해냈다.
품질 차이 또한 상당했기에 괜스레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그럼…… 돌아갈까?”
호연지는 슬쩍 자신의 바구니를 등 뒤로 숨긴 채 움직였다. 보여 주는 것도 창피했기에 그녀의 얼굴은 한껏 붉어져 있었다.
* * *
기분을 다시 가다듬고 술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채우고, 깔끔히 손질한 약초들을 차례차례 천으로 감싼 뒤 솥에 넣었다.
어찌 보면 약초를 달이는 것 같았지만, 호연세가의 술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제조되어 시중에 나갔다.
지금 당장은 그때의 맛에 한참 미치지 못하겠으나, 호연지는 다시금 그 맛을 되찾고자 다짐하며 열심히 작업을 했다.
“응? 너도 하게?”
“헤헤, 소미도 해 보려고요.”
단소미가 자그마한 솥을 하나 들고 와 물을 채웠다. 천을 깔고 자신이 캐온 약초를 하나하나 집어넣었다. 뚜껑을 닫고 아궁이 위에 올려놓는 모습이, 하나부터 열까지 호연지를 고스란히 따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운지 호연지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만드는 건 괜찮지만 마시면 안 돼. 알지?”
“네! 저도 알아요. 이건 아빠 줄 거니까 괜찮아요. 헤헤.”
호연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시지만 않는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더군다나 아빠를 생각하는 소미의 마음이 보기 좋았다.
이제 불을 지피고 기다리면 된다.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를 두 사람은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의 자존심을 뭉개 버리는 계기가 될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 * *
십 일 후.
드디어 술이 완성되었다.
호연지와 단소미는 자그마한 병 두 개에 서로 만든 술을 담아 다른 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식사를 끝마친 단우현과 남궁천, 그리고 사도학은 입이 심심한 것인지 남궁소혜가 가지고 온 다과를 입에 물고 있었다.
“완성되었나 보군.”
“네. 이번만큼은 정말 자신작이에요! 엄청 많이 만들어 놓았으니 맛만 좋다면 내다 팔아도 될 거예요.”
“그래?”
자신만만해 하는 호연지를 보며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을 보아, 꽤 성심성의껏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술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지켜보고 있었던 단우현이었기에, 그녀의 자신감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잘 알았다.
단지에 뚜껑을 열고 잔에 술을 따랐다.
쪼르르-
술이 잔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그윽하게 퍼지는 향은 술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남궁소혜조차 군침을 흘리게 만들었다.
사도학과 남궁천의 시선이 단우현에게로 모아졌다.
어떤 맛일까? 어서 먹어 보라고 재촉하는 시선이었다.
그 뜻을 받아들인 것인지 단우현은 단번에 술을 들이켰다. 꿀꺽 하고 넘어가는 그 울림에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이윽고 한동안 그 맛을 음미하던 단우현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확실히 지난번보다는 나아졌다. 하지만 안에 들어간 재료들이 좋아서 그런 것이지, 네 실력이 나아진 건 아니로군.”
“에……?”
“결과적으로 그다지 바뀐 게 없다는 거다.”
윽! 하며 호연지가 신음을 삼켰다.
단소미가 캐온 재료들이 좋았다. 그렇기에 더욱 좋은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우현은 그 점만 꼭 집어 지적했다.
“이 정도 술이라면 굳이 비싼 값을 치르고 마셔야 할 가치를 못 느끼겠군.”
“윽…….”
호연지가 아연실색하며 표정이 무너졌다. 사도학과 남궁천 또한 그 맛이 궁금했는지 한 모금씩 넘겼으나, 단우현과 비슷한 평인 듯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단소미가 쪼르르 달려와 단우현의 옆에 앉았다.
“아빠, 제 거예요! 제 거!”
“으흠? 네가 만든 것이라고?”
“네네! 아빠 주려고 엄청 열심히 만들었어요.”
“고맙구나.”
“헤헤.”
똑같은 방식으로 만든 술이었으므로 그다지 기대하지 않으나, 딸이 만들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단우현에겐 무척 소중한 술이었다.
단우현이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화악-!
사방으로 퍼지는 알싸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조금 전에 맛본 술에 실망했던 두 노인이 번뜩 고개를 들었다.
“그거 나한테도 좀 줘 봐라.”
쪼르르-
단소미가 제일 먼저 단우현에게, 그다음으로 사도학과 남궁천에게 조심스레 자기가 빚은 술을 따라 주었다. 잔에서부터 풍겨 오는 향이 아까와는 너무나도 다른 탓에 전혀 다른 술 같았다.
기죽어 있던 호연지마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꿀꺽-
“오오- 이건 괜찮네.”
“허허허, 이것은…… 이 노부의 생에서 손가락에 꼽을 만한 명주라네.”
“정말 맛있구나.”
“헤헤헤.”
곳곳에서 들려오는 호평에 호연지는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도 믿기 힘든 소리에 호연지가 재빨리 잔에 술을 따르고 입에 가져갔다.
그윽한 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가는 그 깔끔한 맛은.
그녀의 부모조차 흉내 내지 못할 수준이었다.
부들부들-
호연지는 몸을 떨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해야 할지도 까먹었다. 그녀의 시선이 단소미에게로 돌아갔고, 그 자그마한 두 손을 마주잡았다.
“스…….”
“스?”
“스승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변한 단소미를 바라보며, 호연지는 애써 눈물을 삼켰다.
호연세가의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