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56
“이 술을 말씀이십니까?”
오랜만에 장원으로 온 홍원창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최근 그도 소식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호남에서 퍼지고 있다는 호연세가의 명주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한 차례 몰락했던 호연세가가 다시금 재기할 것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대단한 맛이라 했다.
한번 마셔 보고 싶었으나, 비싼 가격도 가격이고 구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한데 그것을 만든 게 단우현의 장원이었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바로 찾아와 맛이라도 봤을 것이다.
“그래.”
탁자 위에는 한 병의 술이 놓여 있었다.
성인 남성 손바닥만 한 병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것처럼 양이 적어 보였다.
‘저것이 바로…….’
호남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는 명주!
홍원창은 군침을 꿀꺽 삼켰다.
마셔 보고 싶다.
또르르 눈을 굴려 단우현을 바라봤다.
‘왕야 말고 내가 마시면 안 될까요?’라는 뜻이 담긴 시선에 단우현이 피식 하며 비웃음을 머금는 것이 보였다.
실망한 홍원창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걱정하지 마라. 네 몫은 따로 챙겨 두었다.”
툭 하며 단우현이 바닥에 놓여 있던 커다란 술병 하나를 꺼냈다. 탁자 위에 있는 것과 크기부터 다른 술병이었다.
커다란 병 속에는 한가득 술이 담겨 있는 듯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희미하게 풍기는 향 또한 색달랐다.
심지어 봉인지가 같았다.
그렇다면 분명 호연세가의 술이다.
“이…… 이것이 더 많지 않습니까? 차라리 이것을 왕야께 보내시는 것이…….”
“아니, 이건 실패작이다.”
‘에라, 이 좀생이 같은…….’
그럼 그렇지 하며 홍원창이 고개를 돌렸다.
“실패작이라 해도 이쪽이 진짜 호연세가의 술이지.”
“예? 그럼 이것은 아닙니까?”
“이것은 소미가 만든 거다.”
‘또 그 아이가 새로운 걸 배웠군.’
장차 며느리로 들어온다면 맛난 술을 매일 마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들뜨기 시작한 홍원창이었다.
“그럼 이걸 가져가면 되는 겁니까?”
“그래, 금환상단의 상단주가 동행할 거다. 상행은 알아서 꾸릴 테니 왕야라는 놈에게 상단주를 소개시켜 주기만 하면 된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만…….”
왜 하필이면 금환상단인가?
규모로만 따지면 호남상단이 이 일대에서 가장 커다란 곳이다. 그런 곳의 상단주라면 왕야께 소개하는 것에 있어 창피함이 없을 테지만, 금환상단은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홍원창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 시키는 일이다.
가타부타 잔말하지 않고 행하는 것이 옳았다.
그가 하는 일 중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은 없었다.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래, 한 가지 더.”
“뭐가 있습니까?”
“아직 금환상단의 여력으로는 제대로 된 호위를 구할 수 없다. 하여 상행에는 네놈과 권무진을 보낼 거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홍원창은 빠르게 생각했다.
단우현이 일을 시켰다.
고작해야 술을 다른 곳도 아닌 왕야에게 보내는 것이고, 금환상단주를 소개시켜 주기만 하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권무진을 함께 보낸다는 소리는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홍원창이 시퍼렇게 질린 표정으로 단우현을 올려다봤다.
“그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무…… 물론입니다만…….”
“만?”
“물론입니다!”
“불안하면 실력 좋은 늙은이 둘을 더 보내마. 단 뒷일은 책임져야지.”
“끄응…….”
실력 좋은 늙은이라면 이 장원에서 밥만 축내고 있다는 두 사람이리라.
함께 간다면 그보다 더 든든한 아군이 없을 테지만, 그 까다로운 성격을 하나하나 맞추다 보면 이쪽이 견디지 못한다.
“저도 갈께요.”
그때, 문 밖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들리더니, 방 안으로 들어오는 여인이 있었다. 그 홍원창은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 안이 환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절세가인(絶世佳人).
그러한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 남궁소혜였다.
“엿듣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닌데?”
“밖에 있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
남궁소혜의 반박에 단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엿듣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같이 가겠다고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저도 그 상행에 동행하게 해 주세요.”
“왜?”
“밥만 축낸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
지난번 싸움으로 제법 자신감이 붙은 것인지, 남궁소혜가 단우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확실히 예전보다 눈빛에 담겨 있는 깊이가 달라진 것 같았다.
단우현이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라.”
“고마워요.”
남궁소혜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몸을 회복하고 할아버지인 남궁천에게 수 개월 동안 가르침을 받았다. 검황의 모든 심득을 이어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더 올랐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꾸준한 경험이 필요했다.
그것 위해 가는 거다.
또한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매일같이 수련만하고 밥만 축내니 눈치가 보였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그때, 또 다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뛰어온 것인지 숨이 거칠었다.
‘저 여인이 호연세가의 인물인가?’
과거 호연세가가 멸문했을 때 보았던 아이 같았다.
이 아이가 어찌 자랄까 싶었는데 이제 보니 어엿한 숙녀가 다 되었다.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했지만…….’
그 당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홍원창은 자신의 무능력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습격을 한 이들은 틀림없이 무림인. 그러나 누구인지 어떠한 목적으로 이러한 일을 벌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가장 크게 의심되는 것은 추문세가와의 연관성이었으나, 그마저도 꼬리가 드러나지 않았고, 관련자들 모두가 사라지는 바람에 결국 미제로 남았다.
이렇게 만난 것 또한 인연일지도 몰랐다.
“오늘은 객이 많구나. 무슨 일이냐?”
“그 술…… 왕야에게 보낸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래.”
“그렇다면 이 술도 한번 봐 주세요.”
품에 꼭 끌어안고 있던 술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길이 살짝 떨리고 있었는데, 단우현에게 어떠한 평을 듣게 될지 불안한 마음이 아닌가 싶었다.
“그간 두문불출하더니 이걸 만들려 그랬구나.”
“그래요! 비록 소미가 만든 것보다야 못할 테지만…… 그래도…….”
말을 하며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어린아이에게 졌다는 것이 자존심 상한 듯했다. 또한 호연세가의 인물도 아닌 단소미의 술이, 호연세가라는 이름이 붙은 채로 팔려 나가는 것 또한 그랬다.
심지어 단우현은 그녀의 술을 실패작이라 칭하지 않았던가?
이 술로 그 평가를 뒤집을 생각이었다.
“향이 좋군.”
“……그런 거 말고요.”
“하하, 그래. 잔을 가져오너라.”
미리 준비를 했다는 듯이 호연지는 술잔을 단우현 앞에 내밀었다. 이미 봉인지가 뜯겨 나간 술병에선 군침이 돌 만큼 달콤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곁에서 바라보고 있던 남궁소혜는 물론이고 홍원창까지 침이 넘어갔다.
이런 달콤한 냄새를 언제 맡아 본 적이 있었던가?
호연지가 단우현의 잔을 채웠다.
청명하기 그지없는 울림과 색감, 퍼져 나가는 향기까지. 사람의 오감을 자극시켰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모두 단우현의 입으로 모여들었다.
가만히 술을 마시려 했던 단우현이 행동을 멈췄다.
“부담되는군.”
“앗! 미안해요. 일부러 쳐다보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
“크큼!”
남궁소혜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작게 웃었다.
이윽고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단우현을 묵묵히 지켜보는 눈빛이 몹시 뜨거웠다.
그때, 단우현이 드디어 잔을 기울였다.
단박에 넘기지 않고 입안에 머금었다.
이윽고 꿀꺽 하는 소리가 들리며 술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호연지가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며 숨을 삼켰다.
‘자, 말해 봐! 어서 말해!’
재촉이 담긴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한동안 말없이 술병만을 응시했다. 그러곤 다시 손을 뻗어 술병을 부여잡더니 벌컥 들이켰다.
그 모습에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남궁소혜와 홍원창이었다.
지금까지 누구보다 따지는 것이 많았던 단우현은, 사람들 앞에서 술병으로 나발을 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기품 있었으며, 그렇기에 더욱 사람을 끌어들였던 남자가 지금 눈앞에서 술병째로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만큼 맛있는 건가?’
한 모금 크게 목구멍으로 넘긴 단우현이 드디어 술병을 내려놓았다.
탁!
“괜찮은 술이다. 벌꿀주인가? 제법 달달하고 맛있군. 소미의 것과는 다른 맛이다.”
“저…… 정말인가요?”
“그래. 이거라면 떳떳하게 호연세가의 새로운 술이라 할 수 있겠군.”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벌꿀주였다.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체통을 잃고 술병째 나발을 불었던 것이다.
“저, 저도 한 잔 받아 봐도 되겠습니까?”
“저도요!”
“마셔 봐라.”
단우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이 후다닥 밖으로 나가 잔을 가지고 왔다.
곧이어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확실히 소미의 것과 비교를 하면 손색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미가 특별한 것일 뿐이지, 이 술은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단소미가 만든 술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 또한 들어 있었다.
‘노련함인가?’
단우현은 웃었다.
고작해야 술에 노련함이 깃들어 있다니?
누가 들으면 웃을 법한 이야기였으나,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단우현은 몹시 기분이 좋았다.
과거 자신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벌꿀주를 다시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그때는 혼자였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은.
“아, 잠깐만요! 제가 먼저……!”
“소저! 먼저 집은 놈이 임자요.”
함께하는 이들이 있으니까.
부드럽게 미소 지은 단우현이 호연지를 바라봤다.
그녀가 다른 이들의 호평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있었다.
단우현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합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