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58
남궁소혜의 이름을 모르는 무인이 있을까?
팔대세가의 주축 가문이자 검황의 본가.
지금은 그 이름이 언급될 리는 없었으나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명문 정파로 박혀 있는 곳이 바로 남궁세가였다.
그런 곳의 장녀이며 남궁소혜라다면, 뛰어난 무예와 아름다운 얼굴로 소문이 자자했다.
어린 나이에 그녀가 무림맹에서 얻은 직책만 보더라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사내들은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촤악!
물러서려는 순간 뻗어진 검이 또 다른 사내의 몸을 베었다. 흩뿌려지는 피가 사내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크윽……!”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단순히 포졸들만 상대하면 된다고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남궁소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일은 심히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버렸다.
그는 한 사람의 수준 높은 무인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불러일으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물러서야 할까?’
저벅저벅-!
그때, 남궁소혜의 뒤에 있던 권무진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고민하는 대장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명백히 상대를 조롱하는 웃음이었다.
“주군의 명령이다. 너흰 모두 죽는다.”
“미친놈! 고작해야 남궁소혜 하나를 믿고 우릴 업신 여기는 것이냐!”
사내는 화가 났다.
남궁소혜가 두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들 또한 그리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다소 희생을 감수한다면 죽이는 것 정도는 가능하리라.
“응?”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사내는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권무진이 양손에 들고 있는 쌍도.
그것이 너무 눈에 익었다.
오래전, 사파와의 분쟁이 있었을 당시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사내.
그 사내가 들고 있던 무기와 너무나도 닮았다.
다시 보니 저 눈빛과 얼굴이 익숙했다.
“설마…… 소…… 소쌍도?”
“나를 아나?”
“이런 미친!”
“아나 보군.”
사내는 욕을 내뱉으며 이를 갈았다.
이게 뭐가 편한 일인가?
건방진 현령을 잡아 오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방해하는 포졸들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지랄도 풍년이었다.
남궁소혜, 심지어 소쌍도 권무진까지 있는 이 상황은, 최악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우습다. 그저 지옥의 문을 연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살고 싶다면 달려야 한다.
“도……!”
“도망갈 생각은 버리라 하지 않았느냐!”
우웅!
우람찬 고함이 들렸다.
가장 뒤에서 커다란 소리를 내지른 홍원창이 붕 허공을 날아 그들 사이로 떨어졌다.
쿵!
땅이 깊게 파이는 것이, 그의 몸무게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인 홍진랑을 위해 사 두었던 영약과 내단을 이용해 일 갑자의 공력을 얻은 홍원창은,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며 주변을 휩쓸었다.
자신감?
그런 것이 아니다.
상대의 기세가 꺾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홍원창의 칼날이 거침없이 휘날렸다.
촤촤촤촤악!
“끄아아악!”
“아아악!”
권무진이나 남궁소혜처럼 단박에 상대를 제압할 만한 실력은 되지 않았지만, 겁을 먹은 이들의 기를 완벽히 눌러 버릴 만한 행동이었다.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이들을 향해 남궁소혜와 권무진이 달려들었다.
* * *
“아빠! 이것 봐요!”
어디선가 주워 온 돌멩이를 단우현의 앞에 내밀었다. 자그마한 돌이지만 그 생김새가 상당히 예뻤다.
단우현은 그것을 받아 들고 단검을 꺼냈다.
단소미가 이런 것을 단우현에게 가지고 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삭삭-!
단검이 이리저리 움직이니 자그마한 돌이 깎여 나갔다. 그것을 단소미가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빤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꽃이 피었다.
어느새 작은 돌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작은 아이가 강가에서 돌을 줍는 그림이었다.
“와! 고맙습니다! 엄청 예뻐요!”
“하하, 그리 말해 줘서 고맙구나.”
단소미의 방에는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그중 대다수가 단우현이 만들어 준 것이었고, 이런 세공품 또한 그의 작품이었다.
언젠가 단소미가 홍진랑에게 자랑을 하기 위해 가지고 나갔다가, 몇몇 상인들이 자신에게 팔라며 호들갑을 떨 정도였다.
단소미가 웃으며 돌을 받아 자신의 방으로 가져갔다.
또다시 장식해 놓을 생각인 듯했다.
“그 손재주는 여전하구나, 허허허.”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남궁천이 웃었다.
단우현의 손재주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런 자그마한 돌에도 그림을 새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남궁천은 슬쩍 손에 쥔 돌을 내밀었다.
“뭐지, 이건?”
“노부도 해 주게.”
“…….”
“해 주었으면 하네.”
단우현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딱히 힘든 일은 아니지만, 매번 부탁하러 오면 귀찮았다.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니까.
더군다나 이 늙은이가 새겨 달라고 하는 것은 매번 똑같았다.
“소혜의 모습으로 부탁하네.”
바로 남궁소혜였다.
어찌나 손녀딸을 생각을 하는지, 남궁천의 방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세공품들은 남궁소혜의 얼굴이나 그 모습이었다.
“그리 아끼면 따라가지 그랬나?”
단우현이 슬슬 손을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그가 단소미를 생각하는 것만큼 남궁천 또한 남궁소혜를 생각했다.
그렇기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다소 불안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소혜가 간 곳은 전장이니까.
그 이야기에 남궁천이 웃으며 곁에 앉았다.
“잘 알지 않은가? 그 아이는 천상 무인이네.”
“알지.”
“검을 든 이상 목숨은 칼자루에 맡겨야 하는 법. 죽고 사는 건 천운이며 그 아이의 실력이니 반드시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 그 아이에겐 실전이 필요하다네.”
“이미 무림맹에서 충분히 겪지 않았나?”
“허허허, 맹에서 내려준 임무들이 진정 실전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남궁천은 안다.
많은 이들이 검황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에게 험한 임무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싸움도 해 봐야 하는 법이었다.
“지금은 그렇다?”
“글쎄……?”
상대를 알지 못하니 가타부타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전장에 몸을 맡긴 것은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남궁천은 만족했다.
하지만 단우현은 웃었다.
“이번 일은 남궁소혜와 권무진을 위한 게 아니다.”
“응?”
“그 둘 중 한 사람만 갔어도 충분했을 테지.”
누구보다 두 사람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단우현이었으므로 이번 일이 사실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 상대는 이쪽에 역량을 전혀 모르기에 보낸 이들 또한 그리 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혹?”
“그래, 홍원창이지.”
홍원창은 장삼태와는 다른 의미로 단우현을 섬기고 있는 자였다.
장삼태가 정과 단소미, 그리고 단우현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 장원에 남아 있다면, 홍원창은 오로지 단우현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 자신이 바친 충성심만큼 얻은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등을 돌릴 수도 있는 것이다.
홍원창의 계산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성격상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하여, 이번 기회에 자신의 실력을 짚어 보라는 의미로 보낸 것이기도 했다.
“그자는 분명 사십 줄을 넘기지 않았던가? 대성하기에는…… 다소 늦은 듯하네만.”
“많은 무인들이 어린 시절부터 무공을 배우는 이유가 무엇이지?”
“몸의 유연성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익혀야 빠르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네.”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이들이 재능이니 뭐니 하면서 어린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일정한 재능도 중요했으나, 기본적으로 남궁천이 한 말이 정답이었다.
“그렇지, 하지만 나이를 먹더라도 노력한다면 유연성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실전을 통해 익힌 것들을 얼마만큼 빠르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냐는 것이지.”
“……음, 그리 생각해 보니 틀리지는 않은 것 같군.”
남궁천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몸이 굳어 있는 인간이라도 열심히 수련하다 보면 점차 풀리기 마련이었다.
어린아이들보다 더디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지, 무공을 익히는 데 큰 문제는 없다.
“홍원창은 앞으로 나아갈 거다. 이번 싸움은 그러기 위한 첫발이고.”
“호오…… 그자를 계속 쓰겠다?”
“나는 나를 따르는 이를 먼저 내치지 않는다.”
“허허허, 그렇군.”
남궁천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단우현은 때론 모진 성격을 보이기도 했다.
곁에서 지켜보며 느꼈던 것이기에 이것만큼은 틀림없었다.
장원에 있는 이들 중에서 필요 없는 이라 느꼈다면 무심하게 내쳤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이가 한 사람 두 사람을 품에 안으려 한다.
이것은 상당히 좋은 변화라 할 수 있었다.
“자네, 변했구먼.”
“변해? 내가? 나는 여전히 나일 뿐이다.”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아직 단우현은 자신의 변화를 깨닫지 못했다.
언제나 자신인 채로 있었기에 조금씩 바뀌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장삼태와 마장강은 어딜 간 것이야?”
“심부름.”
“조금 오래 걸리는 것 아닌가?”
남궁천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심부름이라 말한 것치고 벌써 몇 달째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여태 장원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워도 삼 일이 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장삼태는 상당히 먼 곳으로 나간 것 같았다.
지난번에는 금세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으나, 이렇게까지 오래 걸린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혹, 다른 일이 있는가?”
“그때도 말했다만 있다면 있는 것이고, 없다면 없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으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 테지.”
남궁천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단 한 마디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넘어가야 했다.
어떤 식으로 물어도 같은 대답이 들려 올 테니까.
그만큼 단우현의 입은 무거웠다.
“뭐…… 자네가 다 잘 알아서 할 테지. 아 참, 그 이야기 들었는가?”
“무엇을 말이지?”
“섬서를 침공했던 사파의 무리들이 철수했다더군.”
단우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수하든 말든, 피 터지게 싸움이 일어나든 말든 일말의 감흥조차 없는 것인지 표정조차 바뀌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돌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거 다행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