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6
이른 아침, 연무장에서 우두커니 앉아 운공을 행하고 있던 단우현은 느닷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천천히 눈을 떴다.
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한차례 단우현을 휘감더니 스르륵 사라졌다.
“바람이 불겠군.”
단우현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힐끗 시선을 연무장 한편으로 주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장삼태가 식은땀을 뻘뻘 흘린 지 벌써 두 시진째.
삼류들조차 익히지 않는다는 태극권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심지어 보통의 태극권과도 달랐다.
단우현은 가만히 그것을 바라봤다.
장삼태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손끝에서 내력이 느껴졌다. 그도 모르게 단전에서 자연스럽게 내력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는 좋은 현상이었다.
“시간이 되었구나. 소미를 깨우고 밥을 먹도록 하지.”
“헥헥…… 조…… 조금 쉬면 안 될깝쇼?”
“흙냄새가 그리운가 보구나.”
“……가, 가겠습니다.”
장삼태는 해쓱해진 안색으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단우현이 방금 내뱉은 말은 자꾸 개기면 파묻어 버린다는 뜻이었다.
‘협박을 해도 참 고상하게 하는 인간이라니까.’
장삼태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재빠르게 부엌으로 향했다.
단우현 또한 천천히 걸어 마당에 도착하자 부스스한 몰골로 툇마루에 앉아 있는 화소미가 보였다. 멍한 시선이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직도 잠이 덜 깬 것 같았다.
“일어났느냐?”
“우음…….”
역시 아직 덜 깼다.
아이가 눈을 비비더니 이내 양손을 쭉 뻗었다.
안아 달라는 건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화소미를 품에 안았다. 번쩍 들어 올리는 감각 때문인지, 곧 까르르 하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잘 잤어요?”
“그래, 잘 잤다.”
“소미도 잘 잤어요. 헤헤.”
그러고는 품 안에 쏙 들어왔다.
얼굴을 파묻고 비비는 모습이 마치 고양이 같았다.
애교를 부리는 그 모습에 강한 부성애가 피어올랐다. 화소미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 주고는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씻고 오너라. 아침 먹어야지.”
화소미는 붕붕 고개를 저었다.
먹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이제 막 일어난 상황에 입맛이 있을 리가 없다.
피식 웃음을 지은 단우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잘 크지 못한다.”
“하지만 소미는…… 안 커도…… 돼요…….”
“그러다간 밥 안 먹는 어린아이만 잡아가는 귀신이 찾아온다.”
“에엑?!”
화소미는 벌떡 일어났다.
귀신이라는 소리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덜덜덜 몸을 떨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단우현을 지그시 올려다봤다.
마치 사실이냐 묻는 것 같았다.
“음…….”
단우현은 망설였다.
진실을 이야기해 줄지 아니면 이대로 속여야 하는지. 아이에게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왜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라면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정말이다.”
“바…… 밥 먹을게요! 소미는 밥 먹을 거예요.”
“잘 생각했구나, 하하.”
단우현이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쪼르르 부엌을 향해 달려가는 소미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또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다시금 단우현의 몸을 휘감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단우현은 인상을 썼다.
“왜 그러십니까?”
부엌으로 들어서자 단우현의 안색을 살핀 장삼태가 물었다. 저 인간이 인상을 쓰고 있으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드는 것 왜일까.
“유난히 바람이 부는구나.”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장삼태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뭔 미친 소리여?’
가끔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인간이었기에 장삼태는 미친 소리에 대답해 주지 않고 식탁을 가득 채워 나갔다.
이른 아침에 먹는 식사지만, 그 양이 상당히 많아 그릇들을 싹 비우고 나면 배가 터지는 느낌일 들 정도였다.
어느새 식사를 하고 있는 단우현과 화소미를 번갈아 바라보던 장삼태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저 또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배가 고프다.
요리를 만들면서 주섬주섬 먹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아직 양이 모자랐다.
그때.
“다녀와야 할 곳이 있다.”
“예?”
뜬금없는 소리에 장삼태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갑자기 다녀와야 할 곳이 있다니? 오늘따라 유난히 단우현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듯했다.
“악양.”
“사 올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무슨 변화가 있나 그것만 확인해 보면 된다.”
“알겠습니다요! 이 장삼태, 밥 먹고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장삼태는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가슴을 탕탕 쳤다. 다른 건 몰라도 경공 하나만큼은 자신 있는 그였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다녀올 수 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단우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이내 탁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지금.”
“예?”
“지금.”
“……저, 밥도 아직…….”
“지금.”
‘시벌, 밥은 먹자!’
이건 밥 처먹지 말고 당장 갔다 오라는 뜻이었다.
굳이 세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보니, 단우현은 지금 이 자리에 아직도 장삼태가 있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장삼태는 한껏 인상을 쓰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럴 땐 입 다물고 따라 줘야 한다. 반항을 해 봤자 날아드는 것은 주먹밖에 없으니까.
“헤…… 헤헤, 갔다 오겠습니다.”
“으음.”
고개를 끄덕인 장삼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걱우걱 식사를 하고 있는 화소미를 다소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문을 열고 나갔다.
탁- 하고 문이 닫히며 단우현의 시야가 가려지는 순간.
“퉤-!”
장삼태는 마당에 침을 뱉으며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주먹을 허공에 쳐 올렸다.
퍼걱-!
그 순간, 젓가락 하나가 날아들며 머리를 후려쳤다.
“아이고!”
장삼태의 곡성이 울려 퍼졌다.
* * *
일단의 무리들이 악양으로 들어섰다. 특별한 점이라곤 보이지 않는 평범한 자들이다.
무림인처럼 검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누구는 노점에서 당과를 씹어 먹으며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누구는 포목점에서 비단을 고르며 그렇게 사람과 섞여 들었다.
그러나 틀림없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무언가 다른 자들이었다.
한 사내가 슥 주위를 둘러보곤 노점에 앉았다.
“소면 하나.”
간단하게 주문을 하고는 빠르게 눈알을 굴리며 주위를 살폈다. 지나가는 사람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무언가를 파악하려는 것 같았다.
방추곡.
흑도회 표풍대(飄風隊)를 이끌고 있는 사내였다.
표풍대는 암살과 정보 수집에 특화되어 지금까지 맡은 일은 실패한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흑도회에서 표풍대를 보낸 것만 봐도, 이번 사안을 얼마나 크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대주님, 내일 현령이 장백산과 회원들을 황실로 압송한다고 합니다.
어느새 나온 소면을 먹으며 사내가 피식 웃었다.
하긴 지난 삼 개월 동안 악양에 가둬 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현령 딴에는 저들의 주리를 틀어 정보를 얻고 싶었겠지만, 흑도회의 인물들은 대부분 고문에 대항하는 훈련을 받았다.
고작해야 현령 따위에게 굽히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황실로 끌려가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동창과 금의위가 있었고, 현령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잔혹한 짓을 벌일 자들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두 가지였다.
구출해 오든가, 죽이든가.
방추곡은 젓가락으로 소면을 휘휘 저으며 전음을 날렸다.
-꺼내 올 수 있는 확률은?
-관부에 깔려 있는 포졸들의 수와 주변 상황으로 볼 때 사 할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전음을 주고받은 사내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관부의 경계가 삼엄했다. 은밀히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놈들을 구출해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필시 많은 희생자들이 나올 것이다.
용도로 볼 때, 그나마 장백산만 구하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표풍대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구해 올 가치는 없었다.
-살(殺).
-명!
남아 있는 소면을 들이켜며 방추곡은 곱씹었다.
붙잡힌 놈들은 모조리 죽인다.
그런 놈들을 처리하는 것쯤이야,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장삼태라는 놈과 현령, 그리고 일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은거기인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세상이 어느 땐데 은거기인 노릇이라니.’
방추곡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이 무림에는 수많은 기인이사들이 있다. 그중에서 강한 이들은 정말로 강할 테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저 어쭙잖게 배운 몇 수를 가지고, 삼류보다 조금 나은 실력으로 조용히 살아가는 자들 말이다.
이번에도 아마 그런 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실력은 있어 보였지만, 이 방추곡이 나선 이상 놈은 반드시 죽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한 사람이 보였다.
‘놈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용모파기로 보았던 그 얼굴과 똑같다.
장삼태, 암상인과 마지막으로 거래했고, 은거기인의 정체를 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
방추곡은 빠르게 그의 뒤를 쫓았다.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며 무언가를 확인하던 장삼태가 느닷없이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급한 마음에 방추곡의 발걸음 또한 빨라졌다.
‘제길! 뭐 이리 빨라?’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히 빨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잘도 빠져나갔다.
이윽고 대로를 빠져나와 서쪽으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자그마한 골목 안으로 쏙 들어갔다. 방추곡이 재빠르게 그곳으로 뒤따라 들어가는 순간.
“없…… 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아무리 빠르다 한들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는 없었기에 주변에 난 흔적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지만, 흔적조차 없었다.
방추곡이 이를 갈았다.
“제길…….”
눈치를 채고 도망간 건지, 아니면 이 근방에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놓쳤다는 생각에 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곤 다시금 장삼태가 움직이던 동선을 따라 걸었다. 무언가 자그마한 단서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관부…….’
놈은 관아 주변을 맴돌고 있던 게 분명했다.
방추곡의 서늘한 시선이 관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