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61
삐이이이익-!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달리고 있는 이들에겐 지옥의 소리였으며, 쫓는 이들은 다급함이 엿보였다.
마교의 뇌옥,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탈주자도 허용하지 않았던 그곳에서 탈옥수가 나온 것이다.
반드시 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자칫 몇 명의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천산 전체에 비상이 걸렸으며 수많은 마교도들이 추적을 위해 움직였다.
그야말로 상황은 일촉즉발로 치달았고, 긴장감은 더없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제길! 이대로 가다간 목이 잘릴 것 같은데?”
힘없이 늘어진 동방구를 둘러업은 마장강이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봤다. 아직 추적자들이 가까이 따라붙은 것 같지는 않지만, 이렇게 더딘 속도로 가다간 곧 붙잡힐지도 몰랐다.
아직 그들은 천산조차 벗어나지 못했다.
하다못해 이 산에서라도 빠져나갔다면 그나마 도주가 수월했을 텐데, 그조차 힘들었으니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길을 찾지 못한 세 사람은 그저 앞으로 움직이고만 있었다.
동쪽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수월하게 빠져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천산의 산길이 워낙 복잡하고 험한 탓에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길을 잃기 일쑤다.
장삼태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길을 전혀 알지 못하는 지금, 무작정 걷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남는 흔적들을 지우는 것도 힘이 들었다.
강행돌파를 해야 하나?
아니, 그랬다간 모두 죽고 말 것이다.
긴장감이 더해지자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어쩔까? 어쩌지?’
힐끗 마장강을 돌아봤지만 그는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길을 찾아 움직이는 데다, 동방구를 업고 있는 탓에 장삼태보다 여유가 없었다.
‘내가 돌파구를 찾아야 해.’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
스륵-!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깜짝 놀란 마장강과 장삼태가 숨을 죽이며 자세를 낮췄다.
흔적을 지우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마교의 추적 능력을 허투루 보아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잔뜩 날을 세우고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짐승 한 마리가 지나갔다.
“후우…….”
“이런 제길! 짐승과 사람도 구분하지 못하다니…….”
마장강이 거칠게 욕을 뱉으며 인상을 썼다.
평소라면 저런 것 따위에 놀라지는 않았을 테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촉각을 곤두세워 짐승이든 사람이든 일단 소리만 들리면 기겁했다.
“뭐, 어쩔 수 없는 거 아뇨? 그보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다 죽을 것 같수…….”
“버리고 가야 하나?”
“그것도 한 방법이긴 한데…… 들은 게 너무 없잖수.”
마교에 변고가 생겼다는 것은 보면 알았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또 총사인 동방구가 어째서 뇌옥에 갇힌 것인지 가장 중요한 정보들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하여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을 동방구를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어차피 오래 버틸 것 같지도 않은데…….”
마장강이 인상을 썼다.
동방구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 당장 의원에게 찾아가 치료를 받아도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런 이를 살리고자 남은 두 사람이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장삼태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단우현의 명령을 수행해야 했으니까.
“나…… 나를 내려놓게나.”
“정신이 드셨소?”
“쿨럭, 쿨럭! 어서!”
동방구는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았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 것인지 그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깃들었다.
그 호통 때문인지 마장강이 서둘러 동방구를 내려놓았다.
“쿨럭……! 자…… 잘 듣게나.”
“뭐든 말만 하십쇼.”
“교주께 가서 절대 마교로 돌아오지 마시라 전하게.”
“엑? 그게 무슨 소리요?”
“듣기만 하게나!”
회광반조(回光返照).
죽어 가던 눈빛이 또렷해졌고, 목소리 또한 한층 맑아졌다.
다소 힘들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가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 정신을 차렸음은 확실했다.
장삼태가 서둘러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마교는 현재…… 흑풍신마라는 자가 장악했네. 교주님의 수족을 모조리 잘라 냈고, 모든 교도들이 그를 모시는 상황이라네.”
“그게 말이 됩니까?”
동방구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본인 또한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 마교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면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마교는 본디 강자지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
교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자리를 꿰찬 이가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강하다면, 충성심보다 그 강함을 따를 이들이 많았다.
사도학에 대한 충성심 하나만으로 버텨 왔던 이들 대부분이 저항조차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죽은 이유이기도 했다.
한때나마 믿었던 이들이 힘에 굴복하고 고개를 숙였다는 사실을 동방구는 참을 수 없었으나, 그것이 마교의 법칙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저 씁쓸함을 삼켜야만 했다.
“도대체 흑풍신마라는 자가 얼마나 강하기에 사 어르신께 돌아오지 말라 하는 겁니까?”
마장강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도학은 무려 오황의 일인이었다.
검황 남궁천과 호각을 다투었으며, 그것은 이 중원에서 두 손가락에 꼽히는 절대자라는 뜻이었다.
그런 사도학이 이기지 못할 상대라니?
하나, 동방구는 그 물음에 답해 주지 않은 채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그로서는 흑풍신마의 강함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에 답해 줄 시간도 남지 않았다.
“어서 가게나! 마교의 배신을 알리고, 교주를 도와주시게!”
“……괜찮겠수?”
“어차피 죽을 목숨…… 내가 이곳에서 시간을 끌 터이니 어서 가!”
장삼태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시간을 끌기는 무슨.
칼 한 자루 잡을 힘조차 없는 인간이다. 그러나 반대로 마교 놈들에게 중요한 인물이었으니, 동방구를 수습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몰랐다.
“지금 와서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복수는 꼭 해 드리리다.”
“하하하…… 꼭 부탁하네.”
장삼태를 보며 동방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흑풍신마는 지금까지 봐 왔던 무인들과는 격이 다른 인간이었다.
그런 이에게 복수해 주겠다는 말이 우습게 들리면서도, 괜스레 마음이 든든해지는 걸 느꼈다.
“동북쪽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천산을 벗어날 수 있을 걸세.”
장삼태와 마장강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이미 목숨을 걸기로 다짐을 한 동방구였다.
그를 설득할 자신도 없거니와, 죽음을 각오한 사내를 치욕스럽게 만들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희생을 받아들이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그것이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마교에는 추적술에 능한 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최고가 누구냐 묻는다면 모두 은영단(隱影團)을 꼽을 것이다.
단 한 번도 목표물을 놓친 적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마교에서도 가장 큰 신뢰를 받는 자들이었다.
은영단의 단주 문주학은 가만히 눈앞에 있는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말조차 하지 않는 그는 마치 벙어리 같기도 했다. 하나, 눈빛만큼은 칼날처럼 예리하여 보는 순간 베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했다.
“하하…… 결국 자네가 나섰구먼…….”
주저앉아 있는 동방구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은영단은 사도학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단체였다. 그렇기에 지금 그들이 살아 있는 이유도 바로 사도학 덕분이었다.
한데, 그런 이들이 배신을 하고 등을 돌렸다.
동방구의 입장에선 쉬이 납득할 수가 없었다.
“총사도 아시지 않소? 마교는 강자만 살아남는 법이오.”
“알지, 암…… 잘 알지.”
드디어 입을 연 문주학에게 동방구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하나, 아무리 강자존이라 하여도 한평생 몸 바쳐 지켜왔던 주군을 단박에 버리다니?
흑풍신마의 힘이 그렇게도 컸단 말인가?
아니면 그가 내민 힘이 탐이 났던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흑풍신마…… 그자가 교주님보다 위대하던가?”
“그분의 강함은 나 따위는 입에 담을 수조차 없고, 수하를 대하는 자비로움도 전 교주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소.”
“하하하, 전 교주라…….”
흑풍신마가 마교를 휘어잡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반나절
압도적인 무예로 장로들과 권력자들을 쳐 죽였으니, 어느 누가 그의 무위를 거짓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제일 먼저 붙잡혀 그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동방구조차 믿을 수가 없었거늘.
심지어, 그가 내민 당근은 달콤했다.
죽은 장로나 단주, 대주들의 비급을 무상으로 풀어 주었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자가 있다면, 그리고 실력만 뒷바침된다면 누구든 그 비급을 열람하게 하였다.
자신의 등에 비수를 꽂을 이를 자신의 손으로 키우는 일이 될지도 모름에도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군주의 위엄이었고,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는 힘이었다.
지금 문주학 또한 그랬다.
사도학이 마교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하지 않았던 행동들마저 거침없이 실행하는 과감함과 십만 마도인을 단숨에 무릎 꿇게 만든 흑풍신마의 힘은, 문주학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마지막으로 묻겠소. 전 교주는 지금 어디에 있소?”
“하하하.”
동방구는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
사도학이 교를 나갈 당시, 그 위치를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 않은 게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곳은 폐허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흑풍신마, 흑풍신마…….’
동방구는 질끈 눈을 감고 그를 떠올렸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흑풍신마의 모습이 두려웠지만, 자신의 주군 사도학이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비록 자신은 이렇게 가겠지만.
그 영광스러운 광경을 목도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언젠가 배신자들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사라질 것을 알기에.
자신의 주군이라면 능히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기에.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의 달빛이 유난히도 밝았다.
천천히 그 색이 바래기 시작했고, 어느새 눈이 침침해졌다.
“목을…… 베시게나…….”
동방구는 그 말과 함께 고꾸라졌다.
숨이 멎은 것인지 호흡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동공 또한 서서히 풀려 가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그 육신이 차가운 땅에 닿으려는 순간.
서걱!
시뻘건 피가 튀어 오르고 목이 바닥을 뒹굴었다.
“빌어먹을…….”
문주학은 인상을 쓰며 욕을 뱉었다.
곱게 보내고 싶지 않아 목을 베었지만, 그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목적은 이루지도 못했다.
“이자와 탈출한 놈들을 쫓아라. 그놈들은 분명 사도학의 거처를 알고 있을 것이다.”
“명!”
하지만, 시간이 너무나도 지체되었다.
동방구를 상대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이것도 이자의 계략이었을 테지…….’
그것을 지금에야 깨달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하다못해 수하들이라도 먼저 보냈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고문한 놈들의 잘못이었다.
동방구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되는 이였거늘, 온갖 고문을 해 놓고 치료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방치하였기에 이렇게 허무하게 죽은 것이다.
빠득!
문주학이 저도 모르게 이를 갈며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