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66
단우현은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있는 곳은 장사에서 남서쪽으로 며칠을 가야 도착하는 형산(衡山)이었다.
한때 구파일방의 한 축이었던 형산파가 존재했던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 세가 다하여 이제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머리속에 남아 있는 곳이었다.
한때나마 호남 최강을 자처하던 형산파였으니, 호남의 자부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록 마교에게 무너진 뒤로는 세를 복구하지 못하였고, 그 덕분에 공동파가 구파일방의 이름을 차지했다.
그 허름한 곳 앞에 단우현은 우두커니 섰다.
반쯤 기울어져 있는 현판을 일별하고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허름한 문 또한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다.
형산파의 옛 영광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곳을 한동안 응시하던 그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귀를 긁는 소리만으로도 상태를 짐작케 했다.
과연 이런 곳에 누가 있겠냐는 의문이 들었으나 확실히 안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한 걸음 한 걸음,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망가진 건물들의 잔재가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간간이 검게 변한 혈흔 또한 보였다.
그런 곳에서 단우현은 한 건물을 주시했다.
본청으로 보이는 제일 큰 곳이다.
다른 곳들은 대부분 무너져 있었는데, 그곳만큼은 상당히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보수를 해 온 것처럼, 그곳은 이제는 사라진 형산파의 위엄을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있었다.
단우현은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본청으로 들어가기 위해 두 개의 문을 지나 드디어 그 앞에 선 순간, 안쪽에 흐릿한 인영이 보였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 인영은 향을 피워 두고 있었다.
그 앞에는 수많은 위패들이 세워져 있었다.
짙은 향 냄새와 위패.
위패는 틀림없이 형산파 문도들의 것이리라.
그렇다면 저 인영도 형산파의 사람일까?
단우현이 기척을 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뉘신지요?”
무릎을 꿇고 있던 사내의 목소리가 진중하게 흘렀다. 비록 등을 돌린 채로 위패를 바라보고 있는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목소리는 상당히 젊게 느껴졌다.
이게 갓 이립이 넘었을까 싶은 사내가 곁에 가지런히 놓아 두었던 검을 한 손으로 굳게 움켜쥐었다.
적이라면 가차 없이 벨 기세였다.
단우현은 그것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구무악을 찾고 있다.”
“……무슨 일로 말입니까?”
“하오문의 문주라지?”
챙-!
검이 뽑혀 나왔다.
순식간에 뽑혀 나온 검이 단우현의 코앞으로 날아들었다. 피할 만한 겨를조차 없이 날아온 그 검은 뇌전(雷電)과도 같았다.
하나, 검은 단우현의 머리 앞에서 우뚝 멈춘 채 움직이지 못했다.
어느새 뻗어진 단우현의 검이 가볍게 호수(護手)를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찰나의 순간에 발검을 막아 내다니?’
심지어 호수(護手)를 검의 끝으로 가볍게 누르는 것만으로 한 수를 파훼해 버렸으니, 이 놀라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명문 정파의 내공이로군. 이곳 형산에는 문파가 하나 있었다고 하던데…… 네놈이 그 문파의 마지막 후예인가?”
“…….”
긴장한 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단우현은 충분했다.
살짝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오문의 문주 구무악, 맞지?”
“……나에게 무슨 용무요?”
구무악은 한숨을 쉬며 검을 거두었다.
상대는 고수.
그것도 자신은 상대조차 되지 않는 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고작 한 번의 부딪침이었지만, 확실하게 그 격차를 느꼈다.
저자가 마음을 먹는다면 칼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객기를 부려 칼을 휘두른다는 것은 그저 발악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구무악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실소를 흘렸다.
“정보를 사고판다고?”
“하오문이 원래 그렇소. 그렇게 해야 먹고 사니…….”
“하지만 건드려서는 안 되는 정보도 있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군.”
퍽-!
한순간에 휘둘러진 단우현의 검이 그의 배를 후려쳤다. 겉보기엔 검집째 살짝 두드린 것에 지나지 않으나, 구무악의 몸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날아가 구석에 처박혔다.
콰다다당-!
멀쩡했던 집기들이 부서지며 나뒹굴었다.
신음을 내뱉으며 쓰러진 구무악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쿨럭!”
입에서는 한 움큼 피가 쏟아져 내상을 입었음을 짐작케 했다.
“그동안 왈패 놈들 관리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제 그만 쉬게 해 주마.”
저벅, 저벅.
단우현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상대를 반드시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쓰러진 채 온몸을 떨고 있는 구무악은 입술을 씰룩였다.
이런 곳에서 죽고자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다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을 치켜들며 단우현을 향해 겨누었다.
비록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지만, 궁지에 몰린 쥐새끼는 고양이도 무는 법.
깨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허공에 칼이라도 한번 휘두르고 싶었다.
“하아…… 어디의 누구시오?”
“호남단가.”
“…….”
구무악은 인상을 찌푸렸다.
들어 본 적은 있었다.
그 역시 호남에 머물렀던 만큼, 호남단가의 이름을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하오문에서 수차례나 조사를 해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감춰진 곳이었다.
이렇다 할 정보를 수집하지 못해, 정보를 취급하는 곳에서는 호남단가를 다들 하급으로 취급했다.
고작해야 푼돈밖에 되지 않는 곳이란 말이다.
그런 곳에 이런 고수가 숨어 있었다니?
상대의 능력을 완벽하게 가늠할 수는 없으나,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다루는 것을 보면 이미 십존의 무위를 벗어나 칠성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되었다.
“돈이 되지도 않는 흔하디흔한 정보 하나 팔아먹었다고 너무한 거 아니오?”
“내가 말했지 않았느냐?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도 있는 법이라고.”
“내가 모르지 않았소!”
“이제라도 알았으니 되었지.”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던 구무악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상대는 이미 하오문의 문주를 죽이기 위해 온 것이다.
그것을 확실하게 느낀 이상, 고민해야 할 것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계책밖에 없었다.
하나, 그게 가능이나 할까?
말로 어찌할 수는 없엇다.
실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품에 남아 있는 독을 풀까?
아니, 소매 속으로 손이 들어가는 순간, 온몸이 난자되어 고깃덩어리로 변할 것이다.
그런 위기감에 머릿속은 점점 더 싸늘하게 식어 갔다.
상대의 눈은 이미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이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렇다면 구무악이 할 수 있는 수는 한 가지였다.
그가 검을 고쳐 쥐고 호흡을 골랐다.
무공을 익힌 순간부터 지금까지 결코 쓰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던 한 수.
이것마저 실패한다면 더 이상의 희망은 없었다.
이를 악문 구무악이 거칠게 바닥에 검을 내리꽂았다.
한순간 그의 비장한 기세가 바람을 타고 크게 흔들렸다.
이윽고 구무악은.
“살려 주십쇼!”
“…….”
목숨을 구걸했다.
단우현은 한순간 멍한 시선으로 구무악을 바라봤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진지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놈은 또 처음이었다. 심지어 무공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장삼태도 이러지 않았기에 충격은 상당했다.
“무인이 목숨도 구걸하나?”
“무인라니요? 대협, 저는 하오문의 문주입니다. 정보를 사고파는 장사치면 몰라도 무인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지요.”
“…….”
“정말입니다! 중원 무림인 백 명을 붙잡고 하오문이 무림 방파냐고 묻는다면 다들 고개를 저을 겁니다. 그러니 그곳의 수장인 저도 무인이 아니지요!”
그렇게 변명하며 비굴한 웃음을 흘렸다.
장삼태와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형산파는 명문 정파라 들었는데…….”
“형산파요? 그냥 우연히 주워 익히게 형산의 무공이었고, 그 인연 때문에 여기 온 겁니다. 제가 형산파의 문도였으면 하오문에는 들어가지도 않았을 겁니다.”
따지고 보면 맞는 소리였다.
비록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형산파는 명문 정파였던 곳.
그런 곳의 마지막 후예가 하오문 왈패들의 우두머리라니?
제대로 무공을 익혀 무림맹으로 갔다면 하오문보다 더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고,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기회나 문파를 새로이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우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너 같은 놈은 또 처음 본다.”
“저도 대협 같은 분은 또 처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하오문의 정보력을 통해 고수로 보이는 이들은 전부 피해 다녔다.
이런 고수가 어느 날 갑자기 앞에 나타날 리도 없을 테고, 무림인들의 성정상 하오문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기에 만날 일도 거의 없었다.
살짝 망설이는 단우현을 보며 구무악이 눈을 번뜩였다.
“여기 앉으십시오, 대협! 제가 차라도 한 잔 내오겠습니다.”
엎어진 탁자를 바로 세우고 먼지를 옷으로 닦아냈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의자를 가져와 팡팡 치니, 마치 점소이를 보는 것 같았다.
“제가 또 어렸을 적엔 저잣거리에서 제일 잘나가는 점소이였습니다.”
“…….”
단우현은 구무악의 뻔뻔함에 더더욱 할 말을 잃었다.
장삼태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입으로 무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한 단체의 수장이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하오문도들에게 이 꼴을 보여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새 살기가 사라졌다.
단우현은 아무렇지 않게 의자에 앉았다.
“헤헤, 잠시만 기다리시면 제가 맛있는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이런 곳에 차가 있다고?”
“아니, 제가 누구입니까? 하오문 문주입니다! 이런 궁벽한 곳에 있다고 해도 먹을 거, 입을 거, 쓸 거 다 옵니다. 그러려고 우두머리가 된 것입니다!”
“……그렇군.”
단우현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구무악이 만면에 웃음을 짓더니 차를 가져오겠다며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그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부엌이었다.
단우현이 있는 본청에서 상당히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최대한 빨리 차를 타오려는 것인지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윽고 부엌에 도착한 순간.
구무악이 등을 돌렸다.
본청과는 수십 장은 될 법한 거리가 벌어졌다.
‘튀자!’
구마악은 냅다 달렸다.
이런 곳에 차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저놈이 멍청해서 다행이야.’
하며 상대를 농락했다는 기쁨에 구무악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 몸을 숨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저놈에게 자신의 위치를 발설한 놈을 붙잡아 뼈와 살을 분리해 버릴 것이다.
그렇게 복수심을 불태우는 순간.
뻐걱!
“컥!”
느닷없는 충격에 눈앞이 시커멓게 변했다.
구무악이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고 바닥에 엎어졌다.
정신은 점차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기 직전, 단우현의 가소롭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과 똑같은 놈이 있었지. 다음부터는 조금 생각을 하고 도망치도록.”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