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7
장원으로 되돌아온 장삼태는 단우현에게 허겁지겁 달려가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현재 악양의 상태가 심상치가 않아 보였으며, 흑도회의 일은 그 또한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어 있는 상황인지라 시퍼렇게 질린 안색은 도무지 펴질 줄 몰랐다.
“그런 일이 있었군.”
“흑도회 놈들이 분명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어쩔 깝쇼?”
장삼태는 단우현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단우현이 나선다면 흑도회 따위는 씹어 먹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안도감이 들면서도 단우현에게 기대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씁쓸했다.
“대체 그 흑도회라는 놈들은 무엇이냐?”
“낭인 집단입니다.”
“홍원창도 그리 설명하더군.”
단우현은 인상을 팍 썼다. 고작해야 낭인 무리들이 이렇게까지 날뛴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낭인은 낭인이다. 물론 그들 중 뛰어난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놈들이 제 안위를 위하여 단체를 형성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없었지만 세력을 이렇게까지 키울 수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흑도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봐라.”
“따…… 딱히 이렇다 할 내용은 없습니다요. 워낙 비밀스러운 곳이어서 저희 같은 놈들이 아는 건 다 거기서 거기입죠.”
“아는 대로만.”
장삼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어렵지도 않았다. 그는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흑도회는 지금부터 약 오십 년 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회주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구파일방과 척을 졌다는 말도 있고, 마교 출신의 누군가가 세운 곳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없군.”
“예, 그렇지요. 어쨌든 처음에는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 회주란 놈의 수완이 얼마나 뛰어난지 금세 대문파들을 위협할 만큼 세력을 꾸렸다고 합니다.”
“눈꼴셨겠군.”
단우현은 피식 웃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세력이 자신들을 위협한다. 안정을 추구하는 대문파 혹은 세가의 입장에서 그만큼 짜증 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의 일은 볼 것도 없다.
“맞습니다, 하하! 결국 팔대세가의 압박으로 무림맹이 나섰고, 그것을 피해 숨어든 이들이 지금의 흑도회입니다.”
“강호의 생리란 다 비슷한 법이지.”
단우현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다.
무림맹이라는 단체는 정파의 주축들이 세운 곳이라고 했다. 그런 이들의 추격을 피해 숨었다면, 그 회주란 놈은 분명 머리가 매우 비상한 자일 터였다.
‘예전이었다면 그조차도 불가능했을 테지만…….’
과거의 무림과 현재의 무림은 다르다.
같은 무림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많이 평화로워진 셈이다. 당시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흉흉하고 잔학하였다. 길을 걷다 보면 죽은 이들의 시신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을 정도니까.
당시에는 중원무림에 어떠한 체계도 잡혀 있지 않아 그런 면이 더욱 심했다.
구파일방, 팔대세가, 마교, 혹은 사파 집단.
각자 걷는 길이 있기는 했으나 정체성이 모호해 매일같이 전쟁을 벌였다.
그런데 고작해야 낭인들 따위가 단체를 형성하였다?
그 시절에 그런 이야기가 퍼졌다면, 그 순간 낭인 단체는 처참하게 박살 나고 무너졌을 것이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힘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이들이 과시 차원에서 풀 한 포기 남김없이 밀어 버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무림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따분하고 재미가 없다.
이 장원 생활에 익숙해진 탓이 아니라, 들려오는 이야기들만 보아도 그가 아는 무림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 어찌하시겠습니까? 현령이 상당히 곤란해할 텐데 말입죠.”
“내버려 두어라.”
“예? 자칫 장원에까지 피해가 올 수도 있습니다.”
장삼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단우현이라는 이름을 무덤까지 입도 뻥긋 않겠다는 약조를 하긴 했지만 고문을 받는다면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결국 흑도회는 장원으로 몰려들 것이다.
단우현 혼자라면 크게 상관하지 않겠지만, 이곳에는 화소미가 있었다. 자칫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단우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바람이라는 건 자연스럽게 흐르는 법이다. 억지로 비틀 수도 없는 노릇이니,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흐르게 내 버려두어야지.”
장삼태는 멍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한순간 단우현에게 넋을 잃을 만큼 아득한 감정을 느낀 것이다.
마치 사람이 아닌 듯한, 손을 뻗어 만지면 망상처럼 흩어질 존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장삼태는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미친놈.’
갑자기 뭔 개소린지 모르겠다.
* * *
홍원창의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흑도회의 인물들을 압송하여 황실에 넘겨줘야 하는 일이다. 그들의 방식을 모르지 않기에 반드시 무언가 사건이 터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홍원창은 초조함에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왕부에서 군을 보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왕야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북경으로 올라가는 길에 왕부가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 대협께 부탁이라도 하면…….”
초조해진 홍원창은 단우현을 떠올렸다.
그가 곁에 있다면 그만큼 든든한 일이 없을 것이었다. 흑도회는 물론이고 마교가 습격을 해 와도 걱정거리 하나 없다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상하게 단우현을 마주할 때면 기이한 공포심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껄끄러운데 그런 감정까지 느껴지니 지금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당연했다.
홍원창은 길게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그때.
스륵-!
날카로운 무언가가 홍원창의 목에 닿았다.
“헉!”
“홍원창, 맞지?”
뒤에서 스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사람이라기보단 저승사자의 것 같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과 동시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홍원창은 이들이 누구인지 단박에 눈치챘다.
“흑…… 도회.”
“잘 맞췄군.”
홍원창은 당황했다.
이번에 동원한 포졸들은 평소보다 월등히 많았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침입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한 경계를 서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호각 소리 한 번 없이 이곳까지 올 수 있단 말인가.
홍원창은 애써 두려움을 감추며 엄포를 놓았다.
“이…… 놈들!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아주 무탈하겠지. 네놈이 끌고 가야 할 것들은 지금쯤 숨통이 다 끊어졌을 테니까. 이제 네놈만 죽으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게 무엇이냐.”
슥슥-!
사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몇몇 이들이 방 안에 나타났다. 검은 복면을 두른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동자만큼은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갑기 짝이 없는 자들이었다.
꿀꺽-
홍원창은 마른침을 삼켰다.
결국 이렇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이 찾아오고 만 것이다.
“끌고 가자.”
사내들은 홍원창의 혈을 짚었다.
그렇게 말을 뱉는 것은 물론이고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홍원창은 그저 이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들은 홍원창을 검은 천으로 둘둘 감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등에 둘러 업혀지는 순간, 홍원창은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른 속도를 느꼈다.
어디를 어떻게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단 한 명의 포졸에게도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면서도 누구도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또한 있었다. 관아에는 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없을 테니까.
의미 없는 시체들만 보게 될 것이다.
털썩-!
그리고 어느 순간 바닥에 내려졌다.
온몸을 둘둘 감은 천이 걷히고 시야가 드러났다. 어딘지 모를 야산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검은 복면을 뒤집어쓴 사내들의 차디찬 시선과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칼날과도 같은 기세뿐이었다.
그때 차디찬 바람과 함께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과는 다른,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은 느낌을 가진 자였다.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덜덜 떨려 와 홍원창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현령 홍원창?”
“그, 그렇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표풍대주 방추곡.
그가 품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스르릉-
날카로운 칼날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매서웠다.
홍원창은 한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잔털마저 곤두서는 감각을 느껴졌다. 낮게 다가오는 방추곡의 발소리 또한 두렵기 짝이 없었다.
“네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이곳까지 데려왔다.”
그 말인즉, 묻고 싶은 것이 없었다면 진즉 시체로 만들었을 것이란 뜻이었다. 하긴, 이 사내들은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홍원창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 없더군. 장백산과 암상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흑도회의 지회를 네깟 놈들끼리 쳤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은가.”
“……!”
“결국 네놈 뒤에 누군가가 있을 거란 말이다. 자, 얌전히 입을 열겠느냐? 아니면 강제로 열어야 하겠느냐?”
“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오.”
입을 열면 편해진다.
아마 모든 걸 토설한다면 저들은 자신을 고통 없는 방법으로 죽여 줄지도 몰랐다. 그러나 단우현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사실 눈앞에 있는 이들보다 단우현의 이름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 약조하였다! 사내대장부로서 어찌 한 입으로 두말하겠는가?’
이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도 지켜야 한다. 애초에 단우현이 아니었다면 장백산의 손에 죽었을 운명이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오로지 그의 공이니, 자신의 목숨은 이미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제까지 입을 열지 않을까……?”
그러나 방추곡은 고문에 능한 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의 입을 열게 하는 방법을 배워 온 자다. 그렇기에 보내졌고, 임무에 실패란 없다.
먼저 눈을 팔까? 아니면 손목을 자를까?
살을 한 점씩 베어 내는 것 또한 재미있을 것 같지만, 내공조차 없는 자인 데다 정신 훈련을 받지 아니하였으니 무림인들에게 했던 그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홍원창은 굳세 보이지만 심기가 약한 자였다.
그런 판단을 내리니 쉬운 방법이 떠올랐다.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방추곡은 품에서 새하얀 가루를 꺼내 보여 주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약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나, 이런 상황에서 약을 꺼낼 리는 없을 것이다.
홍원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백제다.”
극심한 환각 증세를 보여 주는 약이었다. 자연히 사람은 그 환각 속에서 저도 모르게 입을 열게 된다.
설령 무림맹주라 하여도 내공을 전폐하고 약을 투여하면, 일각도 되지 않아 입을 열게 할 자신이 있는 약이기도 했다.
홍원창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하는 순간, 방추곡이 그것을 불었다.
후우-
새하얀 가루가 홍원창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것은 숨을 들이마시는 그 짧은 순간 눈과 귀, 코와 입으로 삽시간에 빨려 들어갔다.
대처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흐르자 홍원창의 몸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잘 통하나 봅니다? 사실 아직 시험작이라 자신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 노괴가 만든 약이다. 그자의 실력은 당가에서조차 혀를 내두를 지경인데, 듣지 않을 리가 없지.”
방추곡이 씩 웃으며 홍원창의 안색을 뚫어지게 살폈다. 과연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았건만 몸은 사시나무 떨 듯하며 입과 코에서는 거품이 일고 있었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백치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약을 만든 이는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자. 그런 이가 약을 써도 죽거나 백치가 되지 않는다 확언하였으니 틀림없을 터였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자비한 고문을 하기엔 상대의 심기가 약해도 너무 약했다. 괜한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방추곡이 온몸을 떨며 게거품을 물고 있는 홍원창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잘 기억해 봐라. 네놈의 뒤를 봐준 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자는 어디에 있는지.”
낮게 깔린 방추곡의 목소리가 조용히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