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70
“어억……!”
막충헌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자리에 데려온 이들은 단순한 호위가 아니었다. 호남상단에서도 제법 힘을 쓴다는 이들로, 여차하면 금환상단의 상단주 금은학을 죽일 생각으로 이 자리에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들이 당할 것이라곤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한데, 어떻게 된 일인지 호위들의 칼날이 반쪽이 되어 나뒹굴었다.
상대가 어떤 식으로 검을 휘둘렀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호위들의 사색이 된 얼굴과 멍한 눈을 보니, 그들도 경악한 것 같았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계속할 심산인가?”
단우현의 한마디에 호위들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뭘 하고 자시고 한단 말인가?
이미 검은 부러졌고 상대의 행동마저 보이지 않았으니, 덤벼 봐야 벌어질 상황은 뻔했다.
“카, 칼을 거둬라.”
이미 반쪽이 되어 있는 검이었지만 그마저도 물리라 명령을 했다.
먼저 뽑은 쪽도 막충헌의 호위들이었기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긴 했으나 그 말을 차마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또한 목숨이 절벽 위에 놓인 위태로운 상황임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하나둘, 긴장 어린 시선으로 검을 뽑아 든 남궁천을 바라보며 무기를 회수했다. 그제야 강하게 압박하던 공기가 조금이나마 풀린 듯했다.
막충헌은 붉어진 얼굴로 등을 돌렸다.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지금 그에겐 고통이었다.
자존심이 완전히 짓밟혀 버렸다.
“이만 가겠네. 오늘 받은 굴욕은 절대 잊지 않을 걸세.”
“들어가십시오, 상단주.”
“흥!”
막충헌이 호위들을 이끌고 그곳을 벗어났다. 단숨에 많은 이들이 썰물 빠지듯 사라지니 방은 휑한 느낌이 가득했다.
그 속에서 금은학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하…… 하하하!”
금은학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켜보고 있던 단우현이나 사도학, 남궁천이 미친 사람을 쳐다보듯 금은학을 바라봤다.
결국 지켜보다 못한 단우현이 물었다.
“뭐가 그리 웃긴 것이지?”
“아, 죄송합니다. 그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산 같았던 막충헌이 이제는 개미로 보여 그랬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정말로 태산 같았다.
아무리 올려다봐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람 같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거대함을 다 눈으로 새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이 바로 금은학이 느꼈던 막충헌의 영향력이자, 힘이었다.
한데 지금은?
태산과도 같았던 그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직시해도 기가 죽지 않는 것을 보니, 금은학의 마음속에 막충헌이라는 자의 대단함은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궁천이 가면을 벗으며 탁자에 앉아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본디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네. 많은 이들이 칭송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로 높게 느껴지는 법이지. 하지만 그와 같은 선상에 선다면…… 그저 한 사람이었음을 느끼게 되는 법이라네.”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 느낀 막충헌은…… 거대하지도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습니다.”
“그만큼 네 시야가 달라졌다는 뜻이지.”
단우현의 말에 금은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지금의 금은학은 단우현이 만들어 놓았다. 그가 있기에 무서울 것이 없고, 그렇기에 더욱 앞으로 질주할 수 있었다.
금은학은 이 은혜를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다.
“자, 그럼 다음이다.”
“다음입니까?”
“술은 술대로 계속 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목적을 잊지는 않았을 테지?”
“만금상단…… 입니까?”
“그래…… 그러기 위해선 금환상단이 호남제일상단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 한마디에 금은학이 주먹을 꾹 쥐었다.
호남상단을 집어삼킨다.
이미 단우현이 만금상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러기 위해선 호남제일상단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호남상단은 만금상단 휘하에 있는 곳.
그곳을 삼킨다면, 만금상단으로 향하는 수익을 일부나마 차단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뭐부터 해야 할까?”
연속되는 단우현의 질문에 금은학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았다.
처음 그를 따르겠다고 생각을 했을 때부터 머릿속에 구상해 왔던 것이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하는 과제이기도 했다.
“호남상단의 상권을 가져올 생각입니다. 객잔, 다루, 포목점 등을 비롯하여 그들의 돈줄이라 할 수 있는 비단 사업까지 말입니다.”
“그 부분에 있어선 권무진과 상의해라.”
“알겠습니다.”
단우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상권이니 상인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잘 몰랐다. 오로지 칼을 들고 사람을 베는 것에만 재능이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전권을 금은학에게 맡긴 것이다.
그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확신이 있기 때문에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실패를 한다면 어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던 단우현은 피식 웃음을 지어 버렸다.
사람은 누구든 실패를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우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실패를 한다 해서 나무랄 것도 없었다. 시간은 많았으니까.
“아까 그놈들 곧 죽겠네.”
밖으로 나서며 사도학은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힐끗하며 단우현의 얼굴을 확인해 보니, 그 또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은 그런 부류의 인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알량한 힘만 믿기에 타인을 깔보는 자들,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던 이가 자신의 위치를 넘보려 하면 어떻게 해서든 짓밟으려 하는 자들이었다.
“호위들의 실력은 일류를 오갔네. 틀림없이 무슨 일을 벌일 테지.”
“그래 봐야 돼지가 하는 일이다. 머리가 얼마나 굴러가겠나?”
단우현의 물음에 남궁천과 사도학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너무 뚱뚱해 제 몸도 제대로 못 가눌 것 같은 막충헌 모습이 돼지 같기는 했다.
과연 어떤 식으로 수작을 부려 올까?
그것이 몹시 궁금해졌다.
* * *
씩씩거리는 막충헌은 좀처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감히 금은학 따위가 자신을 동등하게 바라보다니?
오랫동안 호남의 상권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막충헌이기에 더더욱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더군다나 호위로 데려간 이들은 손조차 써 보지 못하고 치욕을 당했다. 어찌나 대단한 검술을 지녔는지 물불가리지 않고 죽이려 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대단한 실력을 지닌 고수가 분명합니다. 그 가면을 쓴 자 말입니다.”
호위대장이 아직도 떨리는 손을 매만졌다.
그 일격에 그는 검을 휘두르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고절한 수법이었다.
“호남단가라, 결코 쉽게 봐서는 안 될 곳입니다.”
“이 멍청한 놈아! 추문세가가 금환상단을 끝장내라 하였다! 싫어도 놈들과 부딪쳐야 한단 말이다!”
금은학을 감싼 것은 다름 아닌 호남단가의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금은학의 행동으로 보아, 마치 주군처럼 깍듯이 모시고 있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막충헌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혹…… 추문세가가 저희를 토사구팽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럴 리가! 우리가 해마다 그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돈이 얼마더냐? 또한 오랫동안 거래해 왔고, 서로 신뢰를 쌓은 관계다. 어찌 그런 식으로 우리를 버리겠느냐?”
“……그렇습니까?”
“그래! 추문원을 의심하지 마라! 놈은 우리에게 이득이 될 것 같으니 일을 벌이라 한 것이야.”
호위대장이 신음을 흘렸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막충헌의 추문세가에 대한 신뢰는 대단했다. 마치 충성을 바치는 신하의 모습이었다.
추문세가가 원한다면 목숨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바칠 것 같은 눈빛.
고작해야 거래 상대를 대하는 태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막충헌은 그제야 조금 머리가 돌아가는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놈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 이들이 누구더냐?”
“객잔은 물론이고, 악양에 사는 돈 좀 있는 자들은 전부 그들의 술을 마십니다. 물론, 양은 한정되어 있습니다만…….”
막충헌이 입에 물고 있던 장죽에 불을 붙이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새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뿜어져 방 안을 채웠다.
“아이들을 보내 전부 압박해라. 금환상단이 아닌 호남상단과 거래를 하지 않는다면 망한다는 걸 되새겨 주란 말이다.”
자금줄을 모조리 끊을 작정이었다.
상단을 하나 망하게 하는 데 그만한 수단도 없었다.
아무리 좋은 술을 판다 해도 살 사람이 없으면 쓰레기나 다름없다.
특히 악양의 상인들 대부분이 막충헌에게 빚을 지고 있으니,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또다시 새하얀 연기를 내뿜은 막충헌이 숨을 골랐다.
“어차피 작은 상단이었으니 여유자금이 그리 많지도 않을 터…… 제깟 놈이 얼마나 버티겠느냐?”
막충헌의 입가에 짙은 웃음이 맺혔다.
오늘 받았던 치욕을 반드시 되돌려 주리라 다짐하며.
* * *
명령을 받은 이상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상단에서 돈을 받고 뒷일을 해결해 주는 낭인들의 철칙이었다.
이들을 과연 낭인이라 해야 할지 왈패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그들은 악양의 저잣거리로 향했다.
모여 있는 수만 해도 이삼십은 되지 않을까 싶은 수였다.
건장한 체구와 손에 쥐고 있는 흉흉한 느낌의 병장기, 험상궂은 얼굴과 주위를 둘러보는 날카로운 눈매가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압박감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저잣거리에 들어섬과 동시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 낭인들이 누구에게 고용된 이들인지 모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호남상단의 뒷일을 봐주는 낭인들기에 혹 어떤 상인이 또 멋모르고 호남상단과 척을 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한데.
“크큼…….”
“허험!”
난동을 피워야 할 인간들이 주변을 맴돌며 헛기침만 내뱉고 있었다.
이리저리 딴짓을 하기도 하고 자신들도 어색한 것인지 땅을 바라보는 자들도 있었다.
상인들 또한 처음에는 놀랐으나 곧 자신들의 생업에 집중을 하며 저 왈패 같은 낭인들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거기! 이상한 짓 하지 마라!”
“이놈의 왈패 새끼들! 자꾸 저자거리 얼씬거렸다간 곤장 쳐 맞는 수가 있어!”
바로 포졸들 때문이었다.
저잣거리 곳곳에 포졸들이 깔려 있다.
악양의 모든 포졸들이 이곳의 전부 모여 있는 것인지 상당한 수가 돌아다니며 단속을 하고 있었다.
치안 유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포졸들은 결코 이 저잣거리를 떠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게 뭔 일이여!’
‘저 새끼들은 왜 안 가는 거야?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아무리 막 나가는 낭인들이라 해도 건드려선 안 되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관인들이었다. 또한 상인들도 엄연한 민간인이다 보니 자칫 포졸들 앞에서 겁박을 했다간 수배령이 내려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막충헌의 지엄한 명령을 받았지만, 포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저 저잣거리에서 시간을 축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