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73
장사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남궁소혜는 가만히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몇 시진 전에 잡힌 손이기는 한데, 아직까지 그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에 홍조가 드리워졌다.
사내의 손을 잡고 걸은 것은 태어나 처음이다.
물론 식구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남궁소혜는 번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손을 잡힌 것도 잡힌 것이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이 있었으니까.
“나는…… 장사에 갈 필요가 없었던 거 아니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랬다.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장사에 갔다. 하지만, 한 것이라곤 하오문 사람을 만난 것뿐이고, 남은 시간에는 저잣거리를 한 바퀴 돈 후, 몇 가지 음식을 사 먹고 돌아왔다.
수 시진을 걸려 간 곳을 고작해야 한 시진도 안 되어 돌아왔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빠져들었다.
그사이, 단우현은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권무진이 들어오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사한 것들을 보고하려는 것인지, 권무진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남궁소혜가 슬그머니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최근 추문세가와 호남상단이 접선했다는 정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행적을 좇아 보았는데 추문세가의 총관 두악칠이 은밀하게 호남상단에 들른 적이 있다 합니다. 그 뒤에…….”
“막충헌이 금환상단에 찾아왔다.”
“그렇습니다.”
남궁소혜는 깜짝 놀랐다.
추문세가와 호남상단, 둘 다 이름있는 명가였다.
‘추문세가는 술을 빚는 가문이고…… 호남상단은 상인인데……?’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두 곳에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추문세가의 술은 호남상단을 통해 유통되는 만큼, 이 둘은 굉장히 깊은 관계일 것이다.
한데, 그녀가 알기로 추문세가는 그리 대단한 무력을 지닌 가문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 열 명을 붙잡고 묻는다 해도, 추문세가보다 호남상단이 더 대단하다 치켜세울 것이다.
그런데 추문세가의 부탁을 호남상단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들어주었단 말인가.
물론 친분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응당 추문세가에서도 어느 정도 움직임을 보였어야 했다.
한데, 추문세가는 일절 움직이지 않고 호남상단만 열심인 상태였다.
심지어 다른 이도 아닌 호남상단의 상단주가 직접 두 팔 걷고 나섰다.
이것은 굉장히 특별한 일이었다.
호남상단의 힘이나 명성을 생각해 본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마치 상하 관계에 있는 것 같잖아?’
당연히 추문세가가 위였다.
정말로 그런 걸까?
“또한 근래에 호남상단에서 대규모 상행을 준비 중인 모양입니다.”
“상행이라…….”
“상당히 큰 거래인지 준비하는 시간이 제법 깁니다. 어쩌면 훔친 물건을 팔아치우기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을 테지.”
단우현은 흠- 하며 작은 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잃은 것은 되찾아야 한다.
마음 같아선 성격대로 부딪치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니 상황을 잘 파악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지 않던가?
거기까지 생각한 단우현이 씩 웃었다.
“저쪽은 훔쳤으니 우린 빼앗아 오는 걸로 하지.”
“……예?”
“네?”
그 말을 남긴 단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느긋한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지금 방금 뭐라 그랬지?’
‘뭘 빼앗아?’
‘설마?’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 단우현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그의 손에 급조한 듯 보이는 복면 세 개가 들려 있었다.
남궁소혜가 이마를 부여잡고 끙 한숨을 쉬었다.
“그건 왜요……?”
“보면 모르나?”
“복면인 건 알아요! 왜 가져왔냐고 묻는 거죠!”
“넌 왜 당연한 걸 묻나.”
“정말…… 강도질을 하려고요?”
자신의 입으로 내뱉고도 믿을 수가 없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세가는 명문 정파로서 공명정대(公明正大)하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뭘 하라고?
그녀는 진저리가 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우리는 빼앗긴 것을 되찾아 오는 거다.”
“차라리 더 열심히 증거를 찾는 게 어떨까요?”
“나온다면 말이지.”
치밀하게 계획된 도둑질이었다.
그 많은 양을 하룻밤 사이에 가져간 것만 보아도 또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도, 치밀하게 계획되어 진행한 일임을 느끼게 했다.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힘으로 억눌러 입을 열게 한다면 가능할지도 몰랐지만, 단우현은 그런 짓을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상대는 호남에서 가장 큰 상단이이었고, 고관대작들과도 인연이 많을 테니 그쪽을 힘으로 겁박했다간 일이 틀어질지도 몰랐다.
단소미가 있으니 휘말릴지도 모를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소혜가 우물쭈물하자 단우현이 한숨을 쉬었다.
왜 간단한 걸 못하냐?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복면을 쓰고, 호남상단의 마차를 탈취한다. 간단한 일이다. 일각조차 걸리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아니, 그런 걱정을 하는 게 아닌데요…….”
너무 쉽게 범죄를 계획하는 단우현을 보며 남궁소혜는 미간을 꾹꾹 눌렀다.
단우현의 무위를 알고 있으므로 쉬우리란 것은 안다.
하지만 명문세가의 사람에게 강도질을 시키는 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겁이 나면 빠지면 된다. 말리지 않을 테니.”
피식 웃는 그의 모습에 남궁소혜의 얼굴이 구겨졌다.
‘겁이 난다고? 이 남궁소혜가?’
무서울 것 하나 없이 살아온 그녀다. 상행을 따르는 호위들도 고작 이삼류밖에 되지 않을 텐데, 그런 이들에게 겁을 먹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눈살을 찌푸린 남궁소혜가 입술을 씰룩였다.
“그럴 리 없잖아요.”
“그렇다면 뭐가 걱정이지?”
“남궁의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이미 현판까지 내려간 곳에 더럽히고 자시고가 어디 있나?”
“윽……!”
상처를 푹 찌르는 한마디에 남궁소혜는 풀이 죽었다.
축 처진 어깨로 바닥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마음 같아선 ‘그래, 망했다! 어쩔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화가 나지만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단우현이기에 그녀는 한쪽에 주저앉아 훌쩍였다.
“무진이는 상행이 출발하는 시각과 자세한 경로를 알아보아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네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다.”
단우현이 자그마한 종이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든 권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 갈무리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권무진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휑하니 사라진 권무진의 자리를 바라보던 단우현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받은 것은 배로 돌려준다.
그것이 단우현의 방식이었다.
‘겁도 없이 내 물건을 빼앗아 갔으면 그만한 각오를 해야지. 아니 그런가?’
* * *
호남상단의 상행은 그로부터 삼 일 뒤, 장사현에서 출발하여 강서성으로 향했다.
대규모 상행임을 보여 주듯 호위만 오십 명에 달하였고, 짐꾼도 수십은 되어 보였다.
물건을 실은 마차 또한 줄을 이을 정도로 많았다.
무엇이 그리 많은지 십여 대의 짐수레에는 한가득 짐들이 쌓여 있었는데,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함인지, 검은색 천으로 짐수레 전체를 감싼 모습이었다.
산적들이 본다면 눈이 뒤집힐 만큼 대단한 상행이었는데, 가장 앞서가는 이들이 든 깃발 때문인지 누구도 감히 다가오지 않았다.
대로로 접어들어 한참을 이동하다 산길을 탔다.
강서로 가는 지름길이며, 대로가 생기기 전부터 호남상단에서 이용해 온 길이었다.
짐수레가 덜컹거릴 정도로 길이 험했지만 그걸 감수할 만큼 빠른 길이었다.
“왜 하필 이런 길로 가는 겁니까?”
신입으로 보이는 호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주절거렸다.
말을 타고 있기는 하지만 말 위에서도 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이런 길을 고를 필요가 있었을까?
대로로 갔으면 조금 돌아갈지라도 더 편했을 것이다.
“시끄럽다. 조용히 경계하는 데 집중해라. 아무리 우리가 호남상단이라 해도 습격을 받지 않는 건 아니니.”
“아니, 어떤 미친놈이 호남상단을 건드린단 말입니까? 그것도 이 호남 땅에서!”
신입 호위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호남에서 가장 큰 부자인 만큼, 상당한 권력과 힘을 지닌 곳이 바로 호남상단이었다.
그렇기에 녹림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다소 성의 표시는 했다.
“간혹 있는 법이지. 주제 파악도 못하는 미친놈들이 말이야.”
호위대장은 피식 웃었다.
갓 산적질을 시작한 놈들이나 돈에 미쳐 날뛰는 놈들.
그런 정신 나간 놈들이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이 정도 대규모 상행이라면 평범한 이들도 눈이 돌아갈 법했다.
“응?”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호위대장은 때마침 앞쪽에 무언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커다란 통나무 하나가 쓰러진 채 길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마차들이 자리에 멈춰 서는 것과 동시에 호위들이 칼을 뽑았다.
스릉스릉-
쇳소리가 날카롭게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네가 가서 확인해 봐라.”
“예!”
수하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쓰러진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누가 인위적으로 쓰러뜨린 것인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넘어간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잠시 나무를 살펴보던 수하가 고개를 돌려 호위대장을 바라봤다.
그가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적입니다!”
“모두 경계하라!”
외침이 들려오기 무섭게 호위대장이 경계를 명했다.
상행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주변을 살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라는 것처럼 호위들의 행동은 일사불란했으며 동시에 칼날처럼 차가운 살기가 넘실거렸다.
감히 덤벼드는 이들은 모두 도륙해 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수풀 속에서 수십 개의 그림가가 날아들었다.
마치 대형을 갖추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쏟아지는 그것에 깜짝 놀란 호위들이 검을 휘둘렀다.
“멈춰라!”
갑자기 날아온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호위대장이 황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늦었다.
호위들의 칼은 이미 그것을 베고 지나갔으니까.
펑펑펑펑-!
새하얀 연기가 삽시간에 주위를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