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76
과거 정파의 중심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무림맹이라 말했을 것이다.
하나, 구파일방의 세력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곳의 또다른 기둥이었던 팔대세가가 무림맹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만든 곳이 바로 천도회.
오랜 세월 동안 무림맹 하나만이 정도의 중심이라 불렸지만, 천도회가 생겨난 뒤부터는 그러한 말이 사라졌다.
이제는 많은 무인들이 다른 의문을 품고 있었다.
천도회가 강할 것인가 무림맹이 강할 것인가?
열 명 중 여섯은 천도회의 편을 들었다.
지금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나 검황을 만들어 낸 남궁세가가 아직까지 건재했으며, 곧 모용세가와 제갈세가가 합류한다면 그 힘은 더욱 막강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천도회의 회주는 바로 하북팽가의 팽도웅이었다.
거대한 도를 쓰는 하북팽가의 도법은 실로 난해하고 위력적이라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절기였고, 하북팽가의 현 가주 팽도웅의 인지도가 제법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십존의 일인 맹력도(猛力刀) 팽도웅.
그러나 팽도웅을 아는 있는 이들은 속으로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역사가 짧은 단체는 구멍이 많을 수밖에 없다.
팽도웅을 그것을 해결해야 했다.
더욱이 무림맹을 떠나 단체를 세웠다는 것과 정도 무림을 둘로 갈라놓았다는 것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성토하는 이야기도 들어야 했다.
더군다나 그가 회주 자리에 실력으로 오른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회주가 되었어야 하는 것은 남궁세가의 가주나, 사천당가의 가주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팽도웅이 회주가 된 것은 많은 이들의 뜻에 따른 결정이기는 했어도,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은 자들이 선뜻 내준 것이기도 했다.
지금 그 팽도웅은 다소 짜증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이 인간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이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붙잡았다.
천도회의 가장 큰 목적.
회를 조금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
그가 바로 제갈세가의 머리, 제갈운이었다. 한데, 그의 모습이 사라진 채 도통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갈세가 인근에 수많은 이들을 깔아 놓고 감시를 하였으며, 혹시나 행방을 알고 있는 자가 있을까 싶어 은밀하게 쫓아다녔음에도 제갈운을 찾을 수가 없었다.
벌써 몇 달인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수준이었다.
“후후, 개방의 정보력을 이용할 수 없으니 더 힘이 드는 것 같소.”
사천당가의 가주 당중악이 차를 들이켜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개방의 정보력이 얼마만큼 중요했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하나, 막상 그들을 이용하지 못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각 세가의 정보력은 물론이고 낭인들과 상인들의 정보까지 뒤져 보고 있었지만, 제갈운은 마치 땅으로 꺼졌거나 하늘로 솟구친 사람처럼 그 존재 자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웃을 일이 아니오, 당 가주! 하루빨리 그를 데려와야 할 것 아니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걸 지금 어쩌라는 것이오?”
“……큭.”
팽도웅은 인상을 썼다.
사천당가의 가주 당중악의 이죽거림이 화가 났으나, 큰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은 바로 당중악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 탓이었다.
똑같은 십존이라 하지만 그 격이 달랐다.
심지어 당중악은 어린 시절부터 최고의 후기지수라 불렸던 남궁운과 호각지세를 이루었고, 그 때문에 지금도 팔대세가 가주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존재였다.
회주라는 직책 때문에 고분고분 따라 줄 때도 있긴 하였으나, 당중악이 이렇게 강하게 나오면 팽도웅 또한 절로 몸이 위축되었다.
“제갈운이 천도회로 찾아온다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맞네. 굳이 그자에게 목맬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필요한 것은 머리를 쓰는 자일 뿐, 그런 자들을 찾아본다면 상당히 많을 것이오.”
다른 가주들이 당중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팽도웅 또한 그런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하나, 제갈운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은 결코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자들이 모를 리가 없지만 다들 당중악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것이다.
팽도웅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무림맹에게만큼은 빼앗기지 않기를 빌어야 할 판국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고민은 무림맹 또한 하고 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 * *
장사에서 동정호의 물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악양이 있다.
그 중간에 약초꾼들이 자주 찾는 자그마한 산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장소가 한 군데 있었다.
근처에 곰이 사는 동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곰은 사납기로 유명했다.
몇몇 사냥꾼들조차 퇴치를 하려 하다 도리어 시체조차 찾지도 못한 상황이 몇 번씩이나 벌어지다 보니, 이제는 인근에 있는 마을사람들조차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곳이다.
한데, 그곳에서 기이하게도 모락모락 연기가 나고 있었다.
틀림없이 사납기로 유명한 곰이 사는 동굴이었는데 말이다.
또한 곰의 흉포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이상하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또한 결국 착각이 아니었다.
“하아…….”
여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불을 뒤적였다.
한번 꺼지면 다시 붙이는 게 힘들었으므로 최대한 불을 살리려 노력 중이다. 그 불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고기의 냄새도 그녀의 상념을 방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여인은 힐끗 옆을 돌아봤다.
중년 사내가 누워 코를 골고 있는 게 보였다.
입고 있던 옷은 누더기가 되었고, 추운 날씨 탓에 사냥한 짐승의 가죽을 여기저기 걸치고 있다.
수염은 또 얼마나 오랫동안 자르지 않았는지 덥수룩한 것이 마치 산적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미쳐 정말.’
그것을 바라보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았다.
하지만 중년 사내의 꼴을 보고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의 상태 또한 말이 아니었으니까.
질 좋은 비단은 다 해지고 찢어져 걸레짝이나 다름이 없었다.
피부는 또 얼마나 상했는지 각질이 일어나는 데다, 여기저기 터지고 피가 난 흔적들이 역력했다.
여인의 입장에선 이 생활이 참으로 곤혹이다.
도대체 몇 개월을 이렇게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좋은 집, 좋은 침상에서 잠을 잤던 그녀이기에 이만큼 곤혹스러운 상황은 또 없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게 다 그 사람 때문이야…….’
여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운을 이리 만든 사내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제갈운은 언제라도 그 사내와 인연을 만들 수 있게 이곳에 머무르며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도 안다.
무림맹이나 천도회의 사람들이 그를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고, 그것이 이런 궁벽한 생활을 이어 가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혼자 그렇게 살면 되지! 왜 나까지…….’
여인, 아니 제갈연은 속으로 자신을 고생시키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갈운이었다.
그렇다면 제갈운 혼자 자취를 감추고 이렇게 살면 된다.
그런데 죄 없는 딸까지 붙잡고 보내지 않는 이유가 뭘까?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으냐, 하하하!’
그 어이없는 이유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의 멱살을 붙잡고 싶었다.
칼도 뽑으려다 말았다.
진심으로!
빠각-!
그녀가 저도 모르게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부쉈다.
생각하니 화가 더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부서진 나뭇가지를 꾹 쥐고 자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때, 코 고는 소리가 멈추고 목소리가 흘렀다.
“걱정하지 마라. 이 생활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테니.”
잠을 자고 있었던 제갈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딸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는 다소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잠을 자는데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온몸을 찌르는 살기가.
제갈운의 시선이 부서진 나뭇가지를 힐끗거렸다.
“그 말을 벌써 몇 번째 들었는지 아세요?”
“곧 누가 찾아올 것이야. 정말이다.”
“그게 누구예요, 누구냐고요!”
“커컴……!”
제갈운은 흐린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단우현이라는 자의 모습에서 검황을 보았다.
물론 죽은 검황의 그림자가 느껴졌다고 하여 그 본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선택한 것이 근방에 머물며 필요한 시기에 나타나 도움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그에게 보일 생각이었다.
한데, 지난 수개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도움을 주려 해도 뚝딱뚝딱 해결해 버렸다.
머리를 쓸 새도 없다.
기이한 가면을 뒤집어쓴 이들이 나타나 해결해 버렸다고 들었다.
물론 단편적인 정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단우현의 곁에 심상치 않은 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지난번 보았던 그 마교의 인물일 테지.’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나는 자였다.
그런 이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이 오싹하리만큼 두려웠다.
그렇기에 더욱 단우현이라는 자와 함께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자라면…….’
검황을 죽인 이를 찾았을 때, 그 복수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까지 해 보았다.
그렇기에 제갈운은 이곳에서 단우현을 살피는 것을 그만두지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제갈연은 쌍심지를 치켜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잖아요? 세가의 일은요? 전부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려고요?”
“그것은…….”
“이제 검황께서 없으시니 그 단우현이라는 사람에게 꽂히셨나요? 정말 소름 끼쳐요…….”
제갈연이 진심으로 소름이 끼치는지 양팔을 문질렀다.
아버지가 처음 검황을 보았을 때가 생각났다.
그분을 몇 년씩이나 따라다녔는데, 해우소까지 쫓아다니는 바람에 검황이 난색을 표했던 기억이 있었다.
제갈연의 인생 중 그만큼 창피한 기억도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이지만 때론 무서웠다.
언젠가 저 성격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될 때도 있었다.
제발 누가 저 성격 좀 고쳐 주길 바라는 그녀였다.
긴 한숨을 쉬는 순간.
머지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고개가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갔다. 의도나 확신이 없는 이상, 이런 곳에 사람이 올 리가 없었다.
심지어 들려온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서너 명,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제갈운이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서서히 다가오는 이들의 모습이 뚜렷해지는 순간.
스르르릉-!
검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제갈운…… 이런 식으로 만난 것은 실로 유감이다.”
툭 하고 내뱉어진 말에 제갈운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쪽에 둔 검을 집었다.
상대의 기세는 확실한 살기.
곱게 죽어 줄 수는 없었다.
“오늘 이곳이 네 무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