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79
제갈연은 멍한 시선으로 단가 안을 둘러봤다.
주위에는 익숙한 면면들이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이는 당연히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남궁소혜였다.
그녀는 다소 머쓱한 표정으로 앞에 서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이제 좀 괜찮아?”
‘그럼 괜찮고말고.’
벌써 열흘이 지났는데 안 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제갈운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도 이제는 시간 속에 파묻혀 버렸다. 벌써 열흘이나 지났고 좀처럼 눈을 뜨지 못했던 제갈운은 어제 정신을 차렸으니까.
하지만 그의 반면에 기분 나쁜 것도 있었다.
제갈운과 제갈연이 그렇게 고생을 하며 동굴 속에 처박혀 있을 때.
빠직-!
“윽!?”
제갈연의 손에 쥐어져 있던 호두 하나가 으깨져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 경쾌한 소리에 남궁소혜가 시퍼렇게 죽은 표정으로 안색을 살폈다.
무섭다.
평소 온화하고 누구보다 여자다운 제갈연이기는 하지만, 가끔 눈이 돌아가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아이였다.
이럴 때는 사천당가의 당문혜가 비교적 참 상냥해 보였다. 그 아이도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악귀나찰로 제법 유명한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너는…… 지난번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도 여기에 있었다는 거지?”
“어…… 으…… 응…….”
“그렇게 생고생을 하면서 네 할아버지를 찾아다니고…… 행방불명된 네 소식을 알아보려 백방을 수소문했는데…… 그런데 그런 우리를 보고도 씹었다?”
“씨, 씹다니!?”
깜짝 놀라는 남궁소혜를 보며 제갈연은 싱긋 웃었다. 그러곤 슬그머니 다가가 향긋하게 올라오는 소혜의 향기를 맡았다.
‘누군 땀 냄새만 났었는데……!’
그 생각을 하며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었다.
“너 참 진상이구나.”
“윽!?”
흥-!
제갈연이 거처를 향해 성큼성큼 움직였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동안 저 머리끝까지 오른 화가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다.
남궁소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 진상…… 내가……?”
그녀의 마음이 무너졌다.
* * *
“이제 좀 괜찮은가?”
정신을 차린 제갈운을 바라보며 단우현이 물었다. 심각한 중상을 입고 열흘 가까이 눈을 뜨지 않았던 자다. 심신의 피로가 극에 달했을 테니 말을 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제갈운은 살짝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괜찮다네. 이 정도로 끙끙거리면 어떻게 무림맹 총사를 해 먹었겠는가?”
그 웃음에는 다소 씁쓸함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돌려 남궁천을 바라봤다. 다소 굳어져 있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펴지며,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감사드립니다…… 맹주님…….”
“허허, 이제 나는 맹주가 아니라네. 그런 말 하지 말게나.”
큭! 하며 제갈운이 작은 신음을 흘렸다.
자신의 마음속에 남궁천은 영원한 맹주였다. 비록 한쪽 팔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절대강자이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살아 계셔서…… 살아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뚝뚝 눈물을 흘리며 남궁천의 소매를 붙잡았다. 부들부들 팔이 떨려 왔지만 결코 놓으려 하지 않는 듯 강하게 힘을 주었다.
“자네 또한 그러네. 잘 있어 주어 정말 고맙다네.”
남궁천 또한 그 눈가에 희미하게 눈물이 맺혔다. 제갈운과의 추억은 서로 안 세월만큼 많았다.
고락(苦樂)을 함께한 동지나 다름이 없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제갈운이 습격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른 누구보다 먼저 달려간 이유 또한 그러했다.
“백면검(白面劍)…… 그것이 맹주님이셨군요.”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많은 이들이 그리 부릅니다. 백색의 가면을 쓴 외팔이 노인을…… 그리고…….”
제갈운의 눈동자가 반대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틀림없이 지난번 보았던 그 노인이었다.
마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자 말이다.
가면을 쓰지 않으니 그 얼굴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흑면자(黑面者)가 당신이었습니까? 마교주.”
“흥…….”
“이런 곳에 두 분이 모여 있다니 다른 이들이 알면 기절할 일이겠지요.”
정마를 대표하는 절대 고수 두 명이다.
오래전부터 정파와 마교가 계속해서 부딪쳤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결코 한 자리에 함께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제갈운의 시선이 다시금 단우현을 향해 돌아갔다.
‘이자의 힘인가?’
정파와 마교, 이 거대한 두 단체의 수장을 아무런 잡음 없이 데리고 있다. 단우현이 이들보다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제갈운 또한 결정해야 했다.
침상에서 힘겹게 일어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리는 이들은 없었다. 무언가 확고한 결심한 사내의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선 제갈운이 단우현의 앞에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제갈운…… 미력하나마 힘이 되고 싶소. 받아 줄 수 있소이까?”
고개를 숙인 것치고는 다소 대범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제갈운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제갈운은 고개를 들지 않고 단우현의 말을 기다렸다.
그때, 피식하며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 머리를 쓰는 놈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놈들 대부분이 자기 이익에 반하면 주인조차 뜯어먹는 녀석들이니까.”
“저는…….”
“하지만 괜찮겠군. 세가 내에 머리를 굴릴 놈들이 없었는데 대신해 줄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이 제갈운, 머리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합니다.”
단우현이 의자에 앉아 삐딱한 자세로 제갈운의 모습을 응시했다. 쏟아진 눈빛은 마치 칼날과도 같아 그의 전신을 꿰뚫어 버리는 것 같았다.
제갈운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허락을 하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궁천에게서조차 느껴 보지 못한 기세에 숨이 턱턱 막혀 왔다.
“먼저 네 능력을 보여야지?”
능력을 보이라는 한마디가 제갈운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남궁세가만큼은 아니지만 제갈세가 또한 본래 오대세가의 한 축이며, 정파 무림을 이끌어왔던 두뇌다.
그런 이를 이끌려 한다면 응당 자격이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단 대협 또한 보여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제갈운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말투는 언제나 정중했다.
지난번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말투이기는 하지만, 어느새 고개를 들어 단우현을 바라보고 있는 제갈운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단호함과 결의가 가득했다.
제갈운은 단우현이라는 자가 그런 그릇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추측하였고, 그렇기에 호남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하나, 실제로 그 능력을 제대로 확인한 적은 없었다.
“나를 누군가를 품지 않는다. 네 충성심은 이 늙은이에게나 줘라.”
그 말과 함께 단우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유로운 한마디는 너 따위는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는 뜻이었다.
시험을 받을 만한 위치가 아님을 상기시키며, 그 충성심은 자신이 아닌 남궁천에게 향하라 말했다.
결국 단우현은 제갈운의 충성 따윈 안중에도 없고, 품을 마음 또한 없다는 뜻이었다.
다만 자신이 따르려 하는 자의 곁에 머물며 이곳에 남아 있고 싶다면 그 실력을 증명해라.
그런 의미가 담긴 말에 제갈운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뭐, 원래 저런 인간이지.”
사도학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한껏 마음을 굳게 먹고 남궁천이 아닌 다른 이에게 거둬 달라고 말한 제갈운이 단박에 차이니 그 모습이 제법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것을 제갈운 또한 아는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 * *
방을 나온 단우현은 생각했다.
제법 재미있는 자였다.
자신을 품으려면 능력을 보이라니,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여태껏 있었는지 가만 생각해 봐도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세월의 흐름부터가 다르다.
천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단우현이라는 존재를 아는 이들은 없었다.
만약 단우현의 정체를 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오히려 그의 앞에 기가 죽어 고개조차 들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천 년 전의 자신을 모르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단우현은 미소를 지으며 별채를 빠져나왔다.
느긋하게 산책을 하는 것처럼 몸을 움직이며 정원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마당 한편에 주저앉아 있는 남궁소혜를 발견했다.
“뭐하는 거지?”
“그게…… 좀…… 붕괴된 정신을 바로잡고 있다고나 할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저도 모르겠네요.”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남궁소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옷에 묻어 있는 흙을 가볍게 털어 내고, 단우현의 앞에 서서 작은 한숨을 쉬었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머뭇거렸다.
그 모습에 단우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봐라.”
“따, 딱히…….”
단우현은 게슴츠레 눈을 좁혔다.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자 남궁소혜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 얼굴은, 다소 부끄러움이 담겨져 있었다.
“없으면 이만 가마.”
“저기 단 공자!”
뒤돌아 다른 곳으로 향하려는 단우현의 옷깃을 꾹 쥐었다.
역시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금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그녀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호흡을 고르더니, 몇 번이나 입술을 들썩이다가 이내 지그시 그의 눈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고 있죠?”
“뭘 말이냐?”
“삼천의 일인…… 남주련의 진신절기…….”
“그게 어쨌다는 거지?”
역시, 하며 남궁소혜는 작게 중얼거렸다.
천 년 전 인물의 무공을 단우현이 알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머릿속에 맴돌고 있던 어떠한 의심이 확신에 가까워졌다.
남궁소혜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알려 줘요! 창천환조검이라 했죠? 그 무공을 저에게 알려 주세요.”
“남궁의 절기 또한 못지않을 텐데?”
“저는 더 강해지고 싶어요. 그러니 알고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남궁소혜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남주련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심지어 그 사람이 정말로 남궁세가를 일으킨 사람이었다면, 남궁소혜가 그것을 익히는 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남궁소혜는 쉽사리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것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왜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남궁소혜는 호흡을 골랐다.
단우현의 물음에 그녀가 할 대답은 하나였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똑바로 그를 응시하며 입술을 뗐다.
“당신이 무신이라 확신하기 때문이에요.”
처음으로 단우현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휑한 바람이 몰아치며 두 사람을 격렬하게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