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
* * *
묘한 분위기를 감지해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또한 경공은 중원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빠르며, 눈치가 좋고 손이 노련해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런 이가 바로 장삼태다.
‘시벌…….’
단우현의 명령으로 관아 인근에 숨어 있던 장삼태는 일단의 무리가 무언가를 둘러업고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최대한 멀리서, 기척이 들키지 않게.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장삼태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상대는 고수였다. 그것도 자신보다 몇 배는 뛰어난 이들이었다.
자칫 들켰다간 뼈도 추스르지 못한 채 저승의 문을 열어 버릴 것이었다. 저들이 찾고 있는 것은 비단 홍원창만이 아닐 테니까.
단우현의 명령만 아니었다면 당장 이곳을 떴을지도 모른다.
-현령은 우리에게 필요한 녀석이다.
-예?
-필요한 녀석이다.
-그런데요?
장삼태는 머리를 문지르며 울상을 지었다. 아직도 맞은 곳이 지끈거렸다.
반문 한 번 했다고 머리를 때리다니. 가뜩이나 좋지 않은 머리가 더 나빠진 느낌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놈들이 말로만 듣던 표풍대인가?’
너무 먼 거리여서 사실상 확인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관아에 침투하고도 멀쩡하게 나오는 점, 하나하나 기도가 대단하다는 점을 볼 때 흑도회에서도 유명한 표풍대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이 그런 이들을 쫓고 있다는 생각하니 전신에 소름이 오싹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우현의 명령을 거역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딜 가는 거냐?’
장삼태는 그들을 조심스레 따랐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최대한 소리 없이 움직였다. 그래도 도둑질을 하던 가락이 있어 이런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였다.
한데 저들이 등에 메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 같아 보이기는 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혈을 짚어 놓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뒤따르는데, 이윽고 놈들이 인적 드문 인근 야산에서 멈춰 섰다.
장삼태는 재빠르게 주변을 확인하며 녀석들이 잘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혀, 현령?’
마침내 보이는 풍경은 장삼태의 눈을 의심케 했다. 설마하니 현령을 직접 잡아 올 줄이야. 무어라고 반항하는 현령과 그런 그를 비웃고 있는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망할…….’
기이한 약을 쓴다.
척 봐도 좋지 않은 것임이 한눈에 느껴졌다.
침을 꿀꺽 삼킨 장삼태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현령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을 본 그는 곧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저놈이 이런 곳에서 죽으면 일이 더 꼬인단 말이다.’
홍원창은 현령이다.
보통 현령이라면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이다. 사실 목숨 걸고 구해 줄 필요 또한 없다. 그러나 호남 악양의 현령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는 단우현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이였다. 장원의 문제도 그렇지만, 단우현과 무림인들 간에 분쟁이 생긴다면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 외에도 어떤 방식이든 간에 화소미에게도 도움이 되면 되었지 결코 해가 될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를 구하는 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거기다 이놈이 죽고 나 혼자 도망치면…… 아마도 난 맞아 죽겠지. 시벌…….’
장삼태는 눈물을 머금고 달렸다.
일단은 구하고 봐야 한다. 홍원창을 구하는 게 맞아 죽는 것보다 백배 나을 테니까.
아마도 단우현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여 자신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시벌! 한 번 뒤지지 두 번 뒤지냐!?’
사사사삭-!
경공으로 한순간에 뻗어 나간 장삼태가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방추곡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야!”
빠르다.
눈으로 좇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빨랐다. 손은 미처 반응할 수 없었고, 그저 들려오는 바람 소리만이 누군가 다가왔음을 알렸다.
방추곡이 다급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퍼걱-!
“꺼어억!”
홍원창을 붙잡고 있던 수하 한 명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기습적으로, 그리고 빠른 경공으로 치고 들어온 한 수를 막지 못한 것이다.
이런 순간적인 기습은 장삼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놈!”
방추곡이 놀라 소리치며 검을 내질렀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이 장삼태의 어깨를 스쳤다. 베였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나, 그보다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스친 것으로 그칠 수 있었다.
이윽고 장삼태는 홍원창을 둘러업은 후 재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쫓아!”
그 외침에 장삼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머리 위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어느새 나타난 흑의인의 칼날이었다.
장삼태는 그대로 몸을 날려 나무 사이로 파고들었다.
경공에 자신이 있다는 건 이럴 때 좋았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 하여도 이렇게 빼곡한 나무들 사이를 단박에 빠져나갈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촤촤촤촤악-!
“으힉?!”
날아든 암기가 나무에 틀어박히는 소리가 격렬했다.
다시 머리를 숙이는 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도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이었다. 힐끗 시선을 돌리자 엄청난 속도로 뒤를 쫓는 무리가 보였다.
‘제길, 어쩐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사람뿐.
그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온갖 욕설이 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대신 그럴 정신까지 끌어모아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스윽-!
느닷없이 눈앞에서 어느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순간에 나타난 그는 등장과 동시에 손을 뻗어 단검을 휘둘렀다.
빠르다.
피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
한데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간 익혔던 태극권이 펼쳐지며 그의 오른손이 신묘하게 움직였다.
고작해야 한 손이라고 방심해서는 안 되었다. 그 손아귀에 맺힌 묘한 기운에는 흑의인이 가진 내력과 상반된 힘이 깃들어져 있었으니까.
퍼걱-!
“커억!”
가슴을 기습적으로 얻어맞은 흑의인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이 정도의 충격이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몸은 풀어질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충격은 더욱 심하게 들어왔다.
“헉, 헉……!”
장삼태는 쓰러진 이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동그랗게 치켜뜬 두 눈은 쓰러진 이를 주시한 채 떨어지지 않았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그 광경을 눈에 새기며 침을 삼켰다.
‘내, 내가 한 거 맞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상대가 고작해야 일격에 쓰러지다니?
조금 전 경공을 펼쳐 기습한 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무려 정면에서 맞상대한 것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장삼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쉬지 않고 달렸다.
뭔가를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장삼태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중 방추곡은 눈에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추격해 오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얼마 가지 못해 따라잡힐 것 같았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괴물 같은 인간이다. 이 정도 소란이 일었으면 금방 눈치를 챌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침을 삼켰다.
단우현은 반드시 올 것이다.
지난번처럼.
돈을 빌어먹게도 좋아하고 알게 모르게 싸가지 없는 놈이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을 외면할 만큼 썩어 빠진 놈은 아니었다.
그는 결코 자신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빌어먹을! 내가 다른 인간도 아니고 그놈을 믿고 있어야 한다니……!’
인생 참 뭐 같다.
* * *
그 시각.
단우현은 조용히 장원 밖에 나와 있었다.
한 손에 검을 쥔 그는 달빛을 바라보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치 무언가를 느끼는 사람처럼, 혹은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다.
손에 쥐고 있는 검의 감촉이 좋았다.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한, 단우현의 동반자. 그래서 그런지 이 검을 쥐고 있노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고는 했다.
스르릉-!
단우현이 검을 뽑았다.
천 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날카로운 칼날이 드러났다. 무인으로서의 삶을 산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빛바램조차 없는 이 검이야말로 천하의 명검 그 자체였다.
“많은 피를 마셨으나 너는 나와 다르구나.”
단우현이 피를 본 만큼 이 검 또한 피를 마셨다. 하지만 둘은 같으면서도 극명히 달랐다.
아직도 조금이나마 피를 갈구하는 단우현과는 다르게, 이 검은 그저 덤덤히 단우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 천하의 명검 중 으뜸이라 불리는 천파검(天破劍)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단우현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마치 춤을 추듯 우아한 몸놀림이었다. 내리쬐는 달빛이 검날을 더욱 빛내었고, 움직이는 단우현의 모습은 한 번 쳐다보는 순간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솨아아아악-!
단우현이 검을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그의 주위로 거친 바람이 몰아치더니 한순간 주변이 크게 흔들리는 듯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단우현만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