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1
“흐음…….”
수하의 보고를 들은 가중평은 술잔을 들이켜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다른 곳도 아닌 금환상단의 상단주가 북경행을 결심했다는 게 이상했다.
‘그럴만한 돈과 물품이 남아 있었나?’
금환상단을 털고 얻은 술과 비단은 상당한 양이었다.
아무리 호연지가 밤새 술을 빚었다 하여도, 훔친 양의 절반조차 채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남은 술을 끌어모아 북경으로 가는 것이라면 위기에 빠진 금은학의 입장에선 돌파구가 될 것이다.
한 나라의 수도인 만큼 북경에는 많은 술이 공급됐다.
더군다나 고관대작들이 모여 살다시피 하는 곳이니, 많은 이들이 호연세가의 술을 찾고 있을 터.
그런 곳에 예전보다 더 훌륭해진 호연세가의 술이 들어간다면 어찌 되겠는가.
‘추문세가가 가만있지 않겠지.’
북경에서 소비되는 술 대부분을 추문세가에서 공급했다. 그곳에 호연세가의 술이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발생한다면, 가중평 하나의 목으로는 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건드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짜 상행을 이용해 놈들을 일소하려 했던 계획을 짠 것은 다름 아닌 가중평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이없이 실패하였고, 이제 금환상단이 기다렸다는 듯이 상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분명 함정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섣부르게 상행을 방해했다간 같은 수법으로 당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그냥 놔두는 것도 미친 짓이다.
만에 하나 상행이 진짜였고, 그 술이 북경으로 들어간다면 그땐 정말로 끝이었으니까.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다급히 그를 찾아왔다.
“총관!”
막충헌이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거대한 몸을 이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화가 잔뜩 나 있는 듯, 시선이 매서웠다.
“금환상단 놈들이 감히 북경으로 상행을 간다고?!”
“끄응……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지금 뭘 하고 있는 겐가! 당장 그 건방진 놈들을 막아야지!”
“그러니까 시기가 너무 절묘해 함정이 아닐까 하고…….”
“이런 정신 나간 작자를 봤나!”
막충헌이 언성을 높이며 씩씩거렸다.
당장 단매에 가중평을 때려죽일 것 같은 살기가 넘실거렸다.
가중평의 숨이 턱턱 막혔다.
“네놈이 그러니 욕을 처먹는 게야! 대가리를 굴릴 때와 행동할 때가 있다는 것도 모르느냐!”
“하지만 상단주…… 지금은…….”
“당장 고취산을 불러! 그놈에게 아이들을 추려서 보내란 말이다!”
고취산이라는 말에 가중평은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떤 상황이든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인간을 이용하는 편이 가장 쉬운 법이다.
고취산이라면 설령 함정일지라도 그것을 깨트리고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했다.
가중평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고개 숙인 그가 의미심장한 비소를 지었다.
고취산을 이용해 금환상단을 친다면 함정이든 아니든 간에 실패할 리는 없으니, 금환상단과 호남단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이목이 그쪽으로 쏠려 있을 때, 훔쳐 온 물건들을 처분한다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건소춘도 불러라. 장물은 그놈에게 파는 것이 가장 좋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는 막충헌이었다.
“뜻대로…….”
아무리 그가 추문세가의 힘으로 이 자리에 올라왔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가진 상재 또한 상당한 수준임을 새삼 느끼는 가중평이었었다.
* * *
습격은 대낮보다 야밤에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어둠은 시야를 좁히고, 은연중 사람에게 공포를 심어 주기 때문이다.
고취산은 야심한 밤에 불빛이 비치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를 정확히 세 보지는 않았으나 쟁자수를 포함하여 대략 오십여 명 정도 되는 듯했다.
그렇게 대단한 실력을 지닌 인물들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정말로 저걸 밟아 버리기만 하면 은자 백 냥을 주는 건가?”
고취산이 슬쩍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곳에는 가중평이 서 있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거짓은 아닌 듯 보였다.
“좋아. 간단한 일이로군.”
“다른 이들은 놓쳐도 되지만 금은학은 반드시 죽여야 하네. 또한, 물품이 상하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겠지?”
“물론이지.”
고취산은 씩 웃음을 지었다.
그는 마교에서 도망친 배교자(背敎者)였다.
천하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주먹은 바위조차 뭉개 버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중원 역사상 가장 금강불괴에 가까운 이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도는 외공의 대가였다.
“오늘 일은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대주.”
“흥, 그래도 방심은 하지 마라. 저 속이 시커먼 새끼들이 맡긴 일이니까.”
“하하!”
가중평이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겉보기엔 쉬운 일일 테지만, 만약 그 가면을 쓴 자가 있다면, 결코 쉽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너는 이곳에서 지켜보도록…… 일이 정리되면 내려와라.”
“물론이오.”
고취산은 가중평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날렸다.
고작 상행을 터는 것이고,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낭인들이 모여 있어 봐야 그에겐 한 주먹거리나 다름없었다.
이런 자질구레한 일은 빨리 끝내는 편이 좋았다.
고취산은 수하들과 함께 빠르게 상행을 향해 접근했다. 늦은 시각인지라 대부분 쉬고 있고, 보초를 서고 있는 이들 외에는 경계할 가치조차 없어 보였다.
다만 이상한 점은 금은학으로 판단되는 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뭐, 죽이다 보면 나올 테지.’
그가 피식 웃음을 짓고 몸을 날렸다.
훅!
바람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비상했다.
쿵!
한순간에 상행 한가운데로 떨어지자, 육중한 소리와 함께 땅이 크게 진동했다.
자고 있던 이들이 놀라서 일어났고, 경계를 서고 있던 이들은 눈을 부릅떴다.
“금은학이라는 놈이 어떤 놈이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그 외침에 모든 이들이 기겁했다.
그 목소리에 실린 내공을 통해 상대가 보통이 아님을 짐작한 것이다.
겁을 집어먹은 낭인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 하나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군!”
그가 주먹을 움켜쥐고 가장 가까운 이를 향해 일격을 내지르려는 순간.
팡팡-!
흐릿하게 보이는 두 인영이 고취산을 향해 다가왔다.
“윽!?”
고취산은 날카롭게 그의 요혈을 노리는 검 한 자루를 쳐 내고 몸을 숙였다.
하나, 동시에 머리를 향해 두 자루에 소도가 뻗어져 옴을 느꼈다.
오싹-
날카로운 한 수였다.
결국 그는 두 걸음을 물러서며 대치했다.
칼을 휘두른 두 사람 또한 여유롭게 자리를 잡으며 고취산과 그 수하들을 경계했다.
“우…… 우와아아악!”
그때, 쟁자수를 비롯한 호위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짐수레를 지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살려 줘-!”
“이, 이런 말은 못 들었다고!”
칼을 들어야 할 호위들은 물론이고 쟁자수들까지 한꺼번에 도망을 치기 시작하니, 주변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푸하…… 푸하하하하-!”
그 모습을 지켜본 고취산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하였지만, 이런 식으로 짐을 지키는 놈 하나 남지 않고 우르르 도망가는 건 처음이었다.
“이게 금환상단의 수준인가? 정말 우습구나!”
고취산의 수하들마저 비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에 칼을 겨누고 있던 두 사람 또한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더니 도주하려 했다.
“놓치지 않는다!”
고취산은 이 두 사람을 놓쳐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금은학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아마도 이 둘은 알 것 같았으니까.
앞으로 튀어 나가 한 수를 뻗으려는 순간.
그보다 빠르게 치고 들어온 칼날이 그의 목줄기를 노렸다.
서늘했다.
오싹함이 온몸을 감돌았다.
고취산은 이것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 한 수임을 깨달았다.
빙글 몸을 돌리며 가까스로 칼날을 피하자, 우두커니 서 있던 사내가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내던졌다.
펑펑-!
연막탄이 터졌다.
가뜩이나 어둠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연막까지 주변으로 퍼지자, 사방이 깜깜했다.
기감을 이용해 상대를 찾으려 했지만, 이미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들을 쫓을 수가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경공이 빠른 데다, 아무리 밤눈이 좋아도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뒤를 쫓는 건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상대는 분명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비록 쟁자수들과 호위들이 도망치긴 했어도, 저들의 뒤를 쫓았다간 자칫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차피 상행의 짐과 수레는 다 이곳에 있지 않은가.
“별 싱겁지도 않은 놈들이로군.”
고취산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기껏 흥이 올랐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해 보기 전에 일이 끝나 버렸다.
열 대의 짐수레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고,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봐, 총관…… 정말로 이걸로 된 건가?”
“흠…….”
어이없이 상황이 마무리되자 가중평이 다가오며 신음을 흘렸다.
고취산을 물러나게 한 이인조를 보긴 했지만 금은학은 없었다.
심지어 가면을 쓴 이들도 아니었다.
제법 한 수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냥 물러섰다.
‘설마 다른 노림수가 있는 건가? 아니면 짐수레에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은 건가?’
가중평이 고취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네만 짐수레의 천을 걷어 보겠는가?”
“그 정도야 쉽지.”
고취산이 김빠진 표정으로 수하들에게 눈짓했다.
그들이 하나둘 수레 앞에 서더니 칼을 이용해 밧줄을 자르고, 천을 걷어 냈다.
수십 개의 항아리가 짐수레 전체에 실려 있었다.
“이건 그 호연세가의 술 맞지? 하하하! 정말로 그냥 짐만 놔두고 도망쳤군.”
“…….”
가중평은 이 요상한 상황에 더욱 인상을 썼다.
정말로 모두 호연세가의 인장이 찍혀 있는 술독이었다.
한 수레당 십수 개씩.
이렇게나 많은 술이 북경에 풀렸다면 정말 큰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환상단의 입장에선 더욱 필사적으로 방어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것이 못내 가중평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그가 인상을 쓰며 술병 하나의 봉인지를 찢었다.
손가락으로 그것을 찍어 입에 가져다 댄 순간.
“!?”
가중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석상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무언가에 충격이라도 받은 얼굴이었다.
“뭐야? 그렇게 맛있나?”
고취산이 호기롭게 웃음을 지으며 술독 하나씩 수하들에게 던졌다.
안 그래도 워낙 유명한 술이다 보니 한번 구해 마셔 보려 했는데 이거야말로 일석이조나 다름없었다.
봉인지를 찢고 크게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푸확!”
“우웩!”
“커억!”
고취산과 수하들이 입안에 머금은 술을 토했다.
침을 몇 번이나 뱉었고, 누군가는 토악질을 하며 입안 가득 퍼진 악취를 없애려 발악했다.
이윽고 한참 동안 토악질을 하던 고취산이 가중평의 멱살을 잡아챘다.
“시벌! 이거 오줌이잖아!”
당했다.
‘이놈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꾸민 거지?’
가중평은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