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4
“이게…… 어찌 된……?”
막충헌이 덜덜 떨리는 시선으로 물었다.
몇 번이나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자신들은 틀림없이 악양에, 그리고 금환상단에 있어야 했다.
한데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파르르-
입꼬리가 푸들푸들 떨려 왔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나, 머리로도 그리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갈운……!”
고취산은 상황을 이해하며 이를 갈았다.
안 그래도 무언가 느낌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마치 안개 속에서 오감이 둔해진 듯한 감각.
그는 그것을 과거에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과거, 정마가 충돌한 적이 있었는데 완벽하게 정파를 압도하고 있던 상황에서 제갈운이 진법으로 반격을 꾀했고, 결국 마도는 대패하였다.
이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탓이다.
지금 이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취산과 막충헌은 틀림없이 악양으로 달렸다고 생각했지만, 머릿속에서 그리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 실제로는 진법에 갇혀 장사 인근만 빙글빙글 돌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장사로 돌아와 관아를 습격했다.
진법의 영향으로 안개가 깔려 있는 상황이었기에 피아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머릿속으로 이곳이 악양이라 굳게 믿고 있었으니, 검을 휘두르는 것에 망설임조차 없었다.
“네 이놈-! 감히 관아를 습격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크게 소리치며 한 인물이 앞으로 나섰다. 관복을 입고 있는 그자는 악양의 현령 홍원창이었다.
주위로는 무수히 많은 관병들이 창을 겨누고 있었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빠져나갈 구석은 없어 보였다.
“이건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막충헌은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린 그가 등을 돌려 관아 안쪽을 바라봤다.
이 모든 것들이 함정이라면…… 그리고 이곳이 정말 장사의 관아라면 그가 죽인 이는 누구겠는가.
“크으윽!”
지금 눈앞에 벌어진 모든 일들은 그저 악몽이리라.
그런 마음으로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하려 했지만, 이죽거리는 제갈운과 눈이 마주치자, 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개자식들, 죽여라! 저놈들을 전부 다 죽여 버리라고!”
막충헌의 수하들이 분연히 검을 겨누었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그들도 깨달았다. 그러나 아직 가능성은 있었다.
생존자 하나 남지 않는다면, 이 자리의 모두를 살인멸구한다면, 어느 누가 호남상단의 짓이라 생각하겠는가?
이성을 잃은 그들은 일제히 살기를 내뿜었다.
“너희들이 해 봐라.”
단우현의 말에 남궁소혜와 권무진 그리고 홍원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터벅터벅 앞으로 나서는 그들의 발걸음에는 다소 과할 정도로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단우현과 사도학, 그리고 남궁천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린아이들 싸움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는 듯, 그들의 표정에는 긴장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저 녀석, 고취산 아닌가?”
그때, 남궁천이 고취산을 알아보며 사도학을 바라봤다. 마교에서도 나름 이름을 떨쳤던 고수였으니, 남궁천 또한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오래전 정마가 부딪쳤을 당시에도 꽤 큰 활약을 했던 인물로, 권각을 주로 쓰며 몸이 상당히 단단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제법 이름을 날렸던 정파의 고수들 상당수가 고취산의 주먹 아래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흐음, 저런 녀석이 있었던가?”
그러나 사도학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가면 때문에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 보았을 때, 제법 실력이 있었지. 정파의 많은 고수들이 저자에게 명을 달리했네. 아마 그때도 엄청난 공을 쌓았던 것으로 기억하네만?”
“클클, 그런 놈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사도학은 귓구멍을 파더니 손에 묻은 이물질을 불었다.
마교는 강했다.
강함을 숭상하는 만큼 언제 어디에서 강자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것이 마교였다.
공을 세웠다고 해서 하나하나 그 이름과 얼굴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제법이구나.”
단우현이 지그시 상황을 바라보며 웃었다.
홍원창이 막충헌과 고취산의 수하들을, 권무진이 막충헌을 상대하고 있었으며, 남궁소혜가 고취산을 막아 내고 있었다.
남궁소혜의 검술 또한 대단한 기교가 느껴졌고, 검에 실린 힘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고취산은 무기 하나 없이 손에 낀 권갑으로 그녀의 검로를 막아 내며 빈틈을 노렸다.
내력 또한 만만치 않은 수준인지 한 수 한 수에 실려 있는 힘이 무거웠다.
그가 주먹을 뻗을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릴 정도였다.
“윽!”
결국, 남궁소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낭패한 표정이 가득했다.
“이런, 완전히 말려 버렸군.”
“어이쿠…….”
단우현의 신랄한 평에 남궁천이 이마를 감싸 쥐었다.
누군가와 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수에 말리지 않는 것이었다.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에 되도록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것은 남궁소혜의 실수였다.
그녀도 그것을 인지하였는지 어느 순간부터 검술이 변했다.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창천무애검.
예리함과 쾌속함으로 중원에서 손꼽히는 검법이었다.
설령 고취산이라 하여도 쉽게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낭패를 본 표정으로 검을 피했다.
그러나 검날은 고취산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꺾이며 가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완벽하게 상대의 움직임을 읽은 것이다.
남궁소혜의 검은 거침없이 고취산을 꿰뚫을 듯했다.
캉-!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완벽하게 꿰뚫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남궁소혜의 검이 튕겨져 나왔다. 마치 강철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단단함이 검 끝에서 느껴졌다.
고취산은 반탄력에 휘청거리는 남궁소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강하게 일격을 내질렀다.
콰앙-!
“아악!”
제대로 얻어맞은 남궁소혜가 힘없이 날아갔다.
이 장 정도 날아간 그녀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착지했다.
주르륵 뒤로 밀리는 그 모습을 보니, 힘을 분산시켰음에도 상당한 충격이 남은 것 같았다.
“크하하-! 금강불괴나 다름없는 이 몸에 네깟 년의 조잡한 검술 따위가 통할 성싶으냐?”
“큭…….”
남궁소혜는 이를 악물었다.
얻어맞은 가슴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못 이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건만 금강불괴라니?
그런 경지가 정말로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외공이나 호신강기의 한 종류인지 고민했다.
‘설령 금강불괴라 해도 상대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남궁소혜가 다시금 달려들었다.
조금 전보다 더 빨라진 움직임.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나 다름없는 몸놀림은 아무리 고취산이라 해도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하나, 아무리 빠르다 한들 기척이라는 것이 남기 마련이었다.
고취산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의 등 뒤로 돌아간 남궁소혜가 보였다.
그녀가 몸을 비틀며 회전력을 실어 검을 찔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신속하게 날아간 검날을 고취산의 몸에 닿기 전 또다시 강하게 비틀어 회전시켰다.
콰콰쾅-!
엄청난 힘.
지금까지 남궁소혜가 보여 준 기술과는 위력부터가 천지 차이였다.
아직 제대로 완성된 검술은 아닌 듯 상당한 내력을 소모한 것처럼 보였으나, 목석처럼 움직이지 않았던 고취산의 몸을 날려 버렸다.
“저…… 저건?”
“제법이로군. 환조검의 한 수를 펼치다니. 비록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잘도 익혔군…….”
딱 한 번 보여 준 검법이었다.
물론 단우현이 펼쳤을 때의 완벽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녀는 부던히 노력하여 그것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재능이 결코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크으윽…… 아프군. 하지만! 이게 비장의 한 수냐? 고작 이것이?”
멀찌감치 날아갔던 고취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먼지를 털었다.
옷이 찢겨져 나가기는 했지만, 그의 몸 어디에도 상처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남궁소혜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를 완벽하게 막아 낸 것이다.
“말도 안 돼…….”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남궁소혜였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자신 있던 한 수였다. 이것이라면 권무진은 물론이고 마장강까지 일격에 쓰러뜨릴 것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쩡하다니?
“하하! 놀랐느냐? 이 몸은 금강불괴를 이루었다. 네년의 이쑤시개 같은 검이 이 몸에 생채기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냐?”
먼지를 털어 낸 고취산이 달려들었다. 거리를 좁히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 경계하고 있었던 남궁소혜가 재빠르게 몸을 날려 피했지만, 고취산의 주먹은 쉽게 피할 수 없었다.
그녀가 호신강기를 펼쳐 공격을 막아 내려 했다.
하나, 너무 늦었다.
‘그렇다면 반격한다.’
쏟아지는 기세를 가르며 남궁소혜의 검 또한 마주 뻗어졌다.
쾅-!
격렬한 부딪침과 함께 남궁소혜가 주르륵 밀려났다.
울컥하며 한 사발의 피를 토한 그녀의 모습은, 내상을 입은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그 눈빛만큼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비아냥거리는 고취산을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리듯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며 한 손으로 검을 겨누었다.
“미친년.”
고취산이 침을 뱉었다.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수하들 대부분이 홍원창과 병사들에게 발이 붙잡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고, 막충헌 또한 권무진과 수차례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빨리 저 계집을 정리하지 않으면 좋게 끝나지 않으리라.
고취산은 검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그녀를 비웃었다.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승산이 있었을 텐데 말이야.”
“…….”
“하하, 그래도 중원 최초로 금강불괴가 된 이 몸에게 죽었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가거라.”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고취산을 올려다보며 남궁소혜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었음에도 여유가 있는 그녀의 모습에 고취산이 인상을 썼다.
“뭐가 우습나?”
“내가 죽는다고 당신이 이 상황을 어찌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게 너무 우스워서 말이죠.”
“미친년.”
고취산이 사납게 웃었다.
사실 이런 년은 쉽게 죽이는 것보다 울고 불며 애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욱 즐거웠다.
그가 ‘팔다리 하나씩 끊어 놓고 즐겨 볼까?’라는 생각을 할 때.
쏴아아악-!
느닷없이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바람은 한순간에 주변을 휘감더니 곧 사라져 버렸다. 격렬한 전투를 벌이던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방금 몸을 스친 바람이 마치 칼날과 살심을 머금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금강불괴라고? 우습군.”
어느새 옆에 나타나 우두커니 선 채 고취산을 내려다보고 있는 자.
단우현이었다.
남궁소혜마저 그 목소리와 차가운 표정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고취산에게서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는지 시선을 거두었다.
“커억.”
모든 이들이 그것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금강불괴라고 자부했고, 설령 그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 하여도 강기가 아니라면 생채기조차 낼 수 없었던 고취산.
그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내용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휑한 바람구멍만이 커다랗게 뚫린 채 뚝뚝 핏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