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6
제갈연이 보기에 이 세가는 참으로 이상했다.
팔대세가가 아닌 오대세가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때부터, 이 정도 무림을 수호했던 제갈세가였다.
자연스레 그 역사가 깊을 수밖에 없고, 덕분에 정사마에 대한 개념이 뚜렷하게 잡혀 있었다.
한데 이 장원은 다소 이상했다.
먼저 검황 남궁천이 있다.
죽을 줄로만 알았던 검황이 살아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의 곁에는 사상 최악의 마두라 불리는 사도학이 있었다.
정파와 마교?
숙적이라 할 수 있으며, 또 마교도들에게 죽어 나간 자들을 생각해 본다면 당장 칼을 쥐고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데, 두 사람은 유유자적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연이어 들리는 것을 보니, 상당한 친분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이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니 웃기지 않은가? 다른 정파의 명숙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길길이 날뛰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다.
심지어 권무진은 무황성 출신이었다.
꼴을 보아하니 무황성을 빠져나온 것은 맞는 것 같았고, 이제는 사파의 무인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였지만, 그 뿌리가 무황성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난번 마장강까지 보았으니 이 세가에는 정사마의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다.
“하아…… 이상하잖아.”
툇마루에 앉아 있는 제갈연은 한숨을 쉬었다. 이런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을 해 보지 않았던 탓에, 놀라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의심을 했다.
‘심지어 저 아이…….’
또르르 하며 눈알을 굴려 한 쪽을 바라봤다.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 남궁소혜가 보였다. 호연지라 불린 여인과 함께 음식을 나르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우연찮게 지나가던 단우현의 얼굴을 보고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이 보였다.
‘저건 아무리 봐도…….’
저 남자에게 반한 것처럼 보였다.
천하의 남궁소혜가 누구에게 반하는 일이 벌어지다니?
뭇 남성들의 동경이었고 누구보다 많은 구혼자들이 줄을 섰던 아이다.
그럼에도 사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저 차가운 여인이,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상황을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이곳에는 정말 놀랄 만한 일들이 가득했다.
“뭐가 좋다고…….”
제갈연은 혀를 찼다.
저런 남자에게 반한 친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애까지 있지 않은가?
못난 것 하나 없는 남궁소혜가 뭐가 좋다고 저런 남자에게 반한 건지 모르겠다.
무공이 고강해서?
‘무공이 고강하면 뭐 하냐고 성격에 하자가 있는데…….’
호남상단의 일이 정리되고 벌써 두 달.
그간 곁에서 단우현을 지켜보았던 제갈연은, 단우현의 성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궁천은 물론이고 사도학과 심지어 아비인 제갈운에게도 반말을 했던 것이다.
나이도 한참 어려 보이는 사람이 말이다.
툴툴거린 제갈연이 시큰둥한 시선으로 마당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옆자리에 누군가 앉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던 제갈연이 다소 놀란 시선으로 옆을 바라봤다.
“헤헤.”
‘앉아도 돼요?’라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단소미가 보였다.
손에 든 커다란 접시에 당과 네 개와 만두 두 개가 있는 것이 보였다.
“방금 아침…… 먹지 않았니?”
제갈연이 다소 질린 시선으로 물었다.
아침을 먹은 지 반 시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간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에 꽤 놀란 것이다.
저렇게 무작정 먹다간 결코 좋지 않을 것 같은데 하는 시선을 보냈다.
“맛있어요!”
“맛있는 거야 알지. 하지만 그렇게 먹으면 살찔지도 몰라?”
“헤헤, 아빠가 그랬는데 소미는 엄-청 예뻐서 많이 먹어도 살 같은 거 안 찐대요.”
한순간 제갈연이 눈썹을 들썩였다.
‘얘, 뭐라는 거니?’
환하게 웃는 단소미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밉살스레 보였다.
어린 시절, 무공보다는 학문에 집중하였고, 또한 먹는 것을 좋아했던 탓에 살이 많이 쪘었던 제갈연이기에 꽤 비수로 꽂히는 말이었다.
“그런 말 함부로 믿으면 안 돼. 여자는 조금만 관리를 안 하면 확 찌거든. 곧 소미도 뚱뚱해질지도…….”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단소미를 바라봤다. 놀리려는 의도가 가득했고, 덕분에 그 표정이 꽤 익살스럽게 변해 있었다.
“으음-!”
만두를 입에 물려 했던 단소미가 동작을 멈췄다.
두 손에 쥔 만두를 가만 바라보며 몇 번이나 신음을 삼켰다.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는 것처럼 만두에 박혀 있는 시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제갈연을 바라봤다.
또랑또랑한 그 눈동자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지…… 진짜요……?”
“윽……!”
제갈연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놀리려 했지만 울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저런 시선으로 바라보면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제갈연이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기척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소미야. 맛있게 먹고 언니랑 놀면 되니까.”
“정말요?”
“그럼, 실컷 놀면 살 같은 거 안 쪄요-.”
어느새 다가 온 남궁소혜가 단소미를 등 뒤에서 꼭 끌어안고 힐끗 제갈연을 바라봤다. 가늘게 치켜뜬 시선이 꽂히자 제갈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어린 애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애일수록 관리를…….”
“으흠, 어릴수록 말이지?”
제갈연이 움찔했다.
남궁소혜의 눈빛은 마치 과거의 너를 생각해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제갈연의 손을 느닷없이 붙잡았다.
“뭐…… 뭐야?”
“뭐긴 뭐야.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마라. 그런 말 몰라? 두 달이나 놀았으면 이제 밥값 좀 해야지.”
그런 말을 하며 남궁소혜가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왠지 모르게 사악해 보이는 것은 결코 제갈연의 착각이 아니었다.
* * *
“마…… 말도 안 돼!”
남궁소혜는 눈앞에 벌어져 있는 것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근래 잘할 수 있게 된 요리 몇 개를 가지고 제갈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데, 제갈연은 마치 숙수라도 되는 것처럼 능수능란하게 요리를 만들어 내었고, 어느새 한 상 가득 먹음직스런 음식을 올려놓았다.
접시에 담겨 있는 모양이 어찌나 예쁜지, 남궁소혜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것 같았다.
탁탁 손을 털며 어깨를 으쓱한 제갈연의 시선이 꽂혔다. 자신만만한 그 표정은 ‘어때? 너도 이런 거 할 수 있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 그러고 보니 먹을 걸 엄청 좋아해서……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었지…….’
잊었다.
왜 중요한 사실은 꼭 잊어버리는 것일까?
“엄청 맛있어요!”
“그래? 고마워.”
한입 집어먹은 단소미가 환한 표정을 지었다. 장삼태의 음식만큼은 못하지만, 근래 먹어 본 것들 중에서 이만큼 맛있는 음식은 없었다.
“이 정도면 밥값 하는 거야?”
제갈연이 남궁소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에 남궁소혜가 파르르 입꼬리를 떨었다.
‘그래, 음식은 잘 할 수 있지! 그럴 수도 있어!’
사람이라는 게 누구든 잘 하는 것 정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남궁소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처음 자신이 이 장원에 들어왔을 때처럼, 적응되지 않는 집안일을 시키며 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워 보일 테다.
남궁소혜는 그리 생각을 하며 주먹을 꾹 쥐었다.
“아니! 아직 남았어.”
“그래?”
그 마음과 반대로 제갈연의 자신만만한 표정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 * *
파다닥-!
올라온 물고기 한 마리가 거센 반항을 했다. 그러나 남궁소혜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붙잡고 바늘을 뽑아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지 제법 능수능란했다.
반대로 제갈연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어때? 낚시는? 이건 오늘 저녁에 먹을 찬거리야.”
“흐음, 그래?”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바구니를 들어 올린 남궁소혜는 반짝 눈을 빛냈다.
어디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보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제갈연은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슬쩍 낚싯대를 들어 올려 보니 미끼는 사라진 채 빈 바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잠깐 기다려 봐.”
“어디를 가려고?”
“기다려 봐 글쎄.”
제갈연은 콧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어디를 가나 싶어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곧 완벽히 사라진 제갈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남궁소혜는 확신했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승리다.
무공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제갈연을 이겨 보지 못하였기에 오늘 이 승리는 무척 그녀의 기분을 고조시켰다. 절로 콧노래가 새어 나왔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 시간이 흘렀는가?
사라졌던 제갈연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한 손에는 커다란 바구니가 들려 있었는데 멀리서 봐도 제법 묵직해 보였다.
“뭐…… 뭐니 그건?”
당황한 남궁소혜가 물었다.
그러자 제갈연이 싱긋 웃음을 지었다.
“고기지, 물고기. 오늘 저녁 찬으로 먹는다면서?”
그런 말을 하며 제갈연이 바구니 안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반 시진동안 낚시를 했어도 고작 서너 마리밖에 잡지 못했던 남궁소혜와는 달리, 양손을 다 합쳐도 셀 수 없을 만큼 물고기들이 가득했다.
남궁소혜가 입을 쩍 벌렸다.
“어…… 어…… 어떻게 이걸……?”
믿지 못할 광경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낚시라고는 해 보지도 못한 제갈연이다. 그런데 고작해야 반 시진 만에 이만큼 물고기를 잡았다고?
믿을 수가 없어 멍하니 제갈연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제갈연이 더욱 환한 미소를 보였다.
“사 왔어.”
“뭐…… 뭣!?”
“사 왔다니까. 이 길을 따라 좀 올라가면 낚시꾼들이 많은 곳이 있거든. 거기서 사 왔어. 엄청 싸게 말이지.”
“어어……?”
당황하는 남궁소혜의 모습이 보였다.
제갈연은 마치 그것을 보며 즐기는 것 같았다.
긴 앞머리를 한 차례 쓸어 넘기며 다소 오만한 표정으로 남궁소혜를 내려다봤다.
“왜 돈이 있는데 바보같이 낚시를 해? 손에 비린내 나잖아. 이렇게 돈 주고 사 오면 될 것을…….”
“어…….”
“설마 너, 사 온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아니지?”
“…….”
“그렇지? 깔깔깔.”
제갈연이 깔깔 웃음을 터트리며 바구니를 들고 세가를 향해 들어갔다. 다소 발걸음이 가벼워 보이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남궁소혜는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의 바구니 속 물고기들이 마치 비웃듯 크게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