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7
호남단가는 그 크기도 크기였지만 담장 너머에 자급자족할 수 있는 밭이 꽤 커다랗게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 수확을 한 뒤로, 작물을 심지 않았고 비가 쏟아진 탓에 평평하게 바뀌어 버린 그 밭은, 다시 한 번 괭이질을 해야만 이 써 먹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변해 있었다.
낚시를 하고 돌아오던 단우현은 그 밭에서 요상한 상황을 보고야 말았다.
힘들게 괭이질을 하는 남궁소혜가 있었던 것이다.
꽤 땀을 흘리고 있는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었다. 덕분에 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는데, 이런 산중이 아닌 악양이었다면 지나가는 남성들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았을 거다.
“…….”
그가 한동안 선 채 남궁소혜를 바라보더니 푹 하고 한숨을 쉬었다.
“뭘 하는 거냐?”
결국 물었다.
괭이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남궁소혜가 번뜩 고개를 돌리며 단우현과 시선을 마주쳤다. 자신의 몰골이 그리 좋지 않음을 깨달은 것인지 얼굴을 붉혔다.
“보…… 보면 몰라요? 괭이질하잖아요.”
남궁소혜의 풀 죽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옆을 보니, 느긋하게 소 위에 누워서 사과를 베어 먹고 있는 제갈연이 보였다.
열심히 괭이질을 하는 남궁소혜와는 다르게, 악양으로 가 소를 빌리고 그것을 이용해 힘 하나들이지 않고 받을 갈고 있었다.
그 느긋함을 바라보며 남궁소혜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라더니 그 말이 딱이로군.”
“아니거든요?! 연아가 치사한 거예요!”
“치사하긴? 효율 좋게 일하고 있다고 말해 줄래?”
제갈연의 말이 맞았기에 남궁소혜는 할 말이 없었다.
혼자서 고작 한 줄의 밭을 갈 때, 제갈연은 서너 줄의 밭을 갈아 버리니 어디 비교가 되겠는가?
단우현이 어이없이 웃으며 제갈연을 바라봤다.
“소를 빌릴 돈은 어디서 났지?”
“다 늙은 소 빌리는 것쯤이야 간단하죠. 이래 봬도 침술에는 약간 조예가 있어서 다리에 침 한 번 놔주고 빌려 왔답니다.”
제갈연이 방긋 웃음을 지었다.
기술은 돈이 된다. 남궁소혜처럼 검 하나만 바라보고 산 것이 아닌 만큼, 다재다능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제갈연이었다.
제갈운 탓에 산에 틀어박혀 험한 생활을 했으나, 본디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돈을 버는 것쯤 우습지도 않았을 거다.
“그렇군. 제법인데?”
“고맙네요. 이 정도면 밥값 하는 건가요?”
“그래. 앞으로도 그렇게 해 주었으면 싶군. 어디에 있는 누군가는 일에 쓸모가 없어서 말이다.”
“뭐예요 그게!? 지금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남궁소혜가 한껏 뿔이 난 표정으로 단우현을 쏘아봤다. 제갈연에게 자꾸 말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은데, 단우현까지 저러고 있으니 괜스레 화가 났다.
불만스런 표정으로 강하게 괭이를 내리쳤다.
퍽퍽! 하며 땅이 파였다.
괜한 곳에 화풀이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 광경에 제갈연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님이 찾으시는 거 같던데요?”
“알았다.”
제갈연의 말에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등을 돌리기 직전 여전히 불만스러워하는 남궁소혜를 바라보며 웃음을 날려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 정말!”
뒤에서 남궁소혜의 불만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앙칼진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세가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단우현이 오고 있음을 짐작한 것인지,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제갈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지?”
터벅터벅 자연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단우현은 제갈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았지만, 그의 입에선 또박또박 제갈운의 질문에 대답이 흘러나왔다.
“금환상단의 일입니다만…….”
“그것은 금은학에게 맡겨 둔 일이다. 네가 상관할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까?”
제갈운은 흐음- 하며 신음을 삼켰다.
세가에 몸을 담는다 하였으니 응당 전반적인 것들은 자신이 관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나 단우현은 상단의 일은 금은학에게 맡겨 두었으니, 간섭도 하지 말고 보고조차 하지 말라 했다.
할 일을 명백하게 구분 지으라는 뜻이다.
제갈운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라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괜찮다.
일이 하나가 줄면 그만큼 다른 것에 집중을 할 수가 있으니까. 어쩌면 단우현은 그런 것들을 배려해 준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이 인간이 정말 그럴 거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표정을 풀었다.
천천히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단우현의 뒤를 따르며 제갈운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추문세가의 움직임이 최근 활발해졌습니다. 아무래도 곧…….”
“올 거란 말이지?”
“예, 상황으로 보건데 총력전을 벌이려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 호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제갈운은 호남상단이 추문세가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개 술을 파는 세가의 힘이 호남 전체를 아우르는 상단보다 강하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 일이긴 하나, 이 중원은 납득되지 않는 일들도 간간이 벌어지기 마련이라는 걸 그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현 상황에서 추문세가는 반드시 호남단가를 없애버릴 필요가 있었다.
금환상단을 노리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테고, 그러기 위해선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을 거다.
다른 곳도 아닌 호남상단을 한순간에 밀어 버릴 정도에 힘을 가진 곳이 바로 호남단가라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뒷공작을 하는 것보다 정면에서 쳐부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예, 명분은…….”
단우현이 멈춰 섰고 제갈운 또한 발길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호남단가 한쪽에 있는 호연지를 향해 돌아갔다. 오늘도 술을 만드느라 땀을 흘리고 있는 저 여인은, 꽤 피곤한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호연세가를 걸고넘어질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방식일지는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만…….”
“…….”
단우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연지를 향해 다가갔다. 그 발걸음 소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던 호연지가 정신을 차리고 단우현을 바라봤다.
“아! 단 가주님, 오셨어요?”
“그래, 오늘 술은 꽤 잘되었나 보군. 냄새가 다르다.”
“자신작이거든요.”
호연지가 자그마한 박을 이용해 술을 퍼 단우현에게 건네주었다. 받는 것과 동시에 알싸하게 풍겨 오는 그 향은, 지금까지 만들었던 어떤 술보다 달콤함을 안겨 주었다.
제갈운마저 군침을 집어 삼켰다.
“괜찮군. 이 정도라면 호연세가의 술이라 자신할 만하구나.”
“그래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을 해 주니 호연지의 입이 귀에 걸렸다. 매일같이 구박만 받다가 오랜만에 들려오는 칭찬이다.
긴장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어졌다.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단우현이 박에 남아 있는 술을 제갈운에게 건넸다. 그러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만히 호연지를 응시했다.
그 시선에 호연지의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왜 그렇게 보세요? 얼굴에 뭐 묻었나요?”
“그런 것은 아니다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다.”
“뭔가요?”
호연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 질문을 한다? 괜스레 긴장이 된 나머지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혹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지난번에 말했던 것 기억나나?”
“말했던 것이요?”
“추문세가의 건이다.”
“……물론 기억하고 있죠.”
추문세가라는 말에 호연지의 눈빛이 활화산마냥 불타올랐다. 평소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와는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생각에 바뀐 것은?”
“없어요. 반드시 그들에게 제가 당한 모든 것을 되갚아 주어야 해요.”
그런 조건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호연지는 지그시 단우현의 눈을 피하지도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한 치 물러섬 없는 그 시선에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그렇지, 그런 조건이었지.”
“네, 그래서 지금 그 이야기하는 건…… 혹시?”
“글쎄, 어떨지 모르겠군.”
단우현이 더 이상 말없이 등을 돌렸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한마디에 호연지는 인상을 썼지만, 단우현은 어떤 말도 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호연지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사라져 가는 단우현의 등을 응시했다.
“무슨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터벅터벅-
또다시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단우현의 곁을 따랐다.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지만, 마치 처음부터 모든 것을 준비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것 따위 없다.”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에 제갈운이 인상을 썼다.
상대가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우현이 보여 주고 있는 저 여유는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제갈운의 시선에 궁금증을 읽었는가?
앞서 가던 단우현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제갈운을 바라봤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느냐?”
“숨은 칼입니다.”
제갈운은 일말에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알고만 있다면 귀신도 적의 계획도 그 어떤 것도 무섭지 않다. 그러나 품 안에 숨겨진 칼날만큼은 두려워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남궁천이 그리되지 않았던가?
제갈운이 조금만 더 깊게 생각을 하고 그 칼날을 찾아내었더라면, 남궁천이 팔이 잘리는 일도, 남궁세가가 몰락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
“그렇지…… 하지만 그 보다 더 두려운 것은 말이다.”
“예?”
“얕은 수작 따윈 범접할 수조차 없는 압도적인 힘이다.”
“……!”
제갈운은 순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감각에 빠져 들었다. 단우현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만근짜리 추처럼 어깨를 짓눌렀고, 그와 함께 전신을 뒤덮는 거센 힘은 살마저 떨리게 했다.
꿀꺽 침을 삼키며 애써 시선을 고정했다.
그것만으로도 심력이 다하여 쓰러질 것 같았다. 정신력으로 이를 악물며 참아 내고는 두 다리로 땅을 딛고 버텨 섰다.
그리고 단박에 깨달았다.
자신이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분석하며 상대를 예측하는 데 시간을 버리고 있는 사이, 이미 단우현은 생각을 끝마치고 모든 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부터 사도학과 남궁천이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추문세가가 아닌 호남단가가 한발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어쩌면 나는…….’
제갈운은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이 단우현이라는 자.
본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는 자가 아닌가 하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검황과 마황을 곁에 머물게 만든 힘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파르르 입꼬리가 절로 떨렸다.
천재적인 두뇌로 모든 것을 계산하고 앞으로 벌어진 일을 예측하여 계획을 짰던 제갈운은, 그 모든 것들이 단우현보다 늦었음을 인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