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9
“끄으으…….”
홍원창은 작은 신음을 내뱉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이 멍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에 시야마저 흔들렸다. 그리고 온몸이 아프다는 것을 깨달으며 시선을 돌리는 순간, 느닷없이 누군가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웁?!”
홍원창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휘둥그레 치켜뜬 시선으로 입을 틀어막은 존재를 바라봤다.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끄집어내 봐도 이런 이를 만난 적은 없었으니까.
사사삭-!
그때 수풀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수많은 인영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 재빠르게 주변을 수색했다.
주륵-
식은땀이 흘렀다.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처지가 떠오른 것이다.
“조용히 할 거면 놓겠소.”
사내의 말에 홍원창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머릿속에서 어떠한 상황인지 인지하였으니, 함부로 떠들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사내가 천천히 손을 놓았다.
다소나마 숨통이 트이자 홍원창이 중얼거렸다.
“이, 이게…… 도대체…….”
“약에 취했던 것 같소. 지금은 조금 나아졌소?”
“약…… 그, 그렇군. 놈들이 나에게 뿌렸던…….”
아직 정신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놈들이 먹인 약이 완성된 것이 아닌지라 깊게 중독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다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어이없이 웃었다.
틀림없이 죽었다고만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 살 수 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다만 자신의 가족들만 무사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 있었다.
“한데 당신은 누구요?”
“장삼태, 단 장주님의 수하요.”
“그분의?”
이제야 앞뒤 정황이 들어맞는다.
하긴 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홍원창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분의 도움을 몇 번이나 받는 것인지……. 이 은혜는 평생 갚아도 모자라겠구나.’
감동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홍원창을 지켜보던 장삼태는 히죽 웃었다. 일부러 빚을 졌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 이래야 화소미가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살게 될 테니까.
물론 이곳을 빠져나간다는 전제하에서.
“놈들은 아마 죽을 때까지 우릴 쫓을 것이니 단단히 각오하시오. 여기서 살아 나가야 복수를 하든 뭘 하든 할 테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홍원창을 보며 장삼태 또한 마음을 굳혔다.
가까스로 몸을 숨기기는 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지금 당장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최대한 장원과 가까워져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단우현이라면 필시 장원 인근까지만 가도 눈치를 채고 달려올 것이다.
이 정도 인원이, 이런 살기를 품고 접근한다면 화소미 때문이라도 문을 박차고 튀어나올 인간이니까.
“이쪽으로!”
“자, 잠깐. 어디로 가는 것이오?”
“최대한 장원 쪽으로 가야 하오. 단 장주님이 오실 수 있게 말이오.”
홍원창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 죽은 것과 다름없던 목숨이다.
여기서 장삼태를 따르다 죽나, 혹은 붙잡혀 죽나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두 사람은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여기다!”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가 귀를 세차게 때리며 다가왔다. 점점 커져 가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장삼태가 등을 돌렸다. 주위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빌어먹을! 되는 게 없어!”
장삼태는 자세를 잡았다.
제일 먼저 칼을 들고 다가오는 세 명의 사내가 보였다. 저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장삼태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지렁이도 밟으며 꿈틀댄다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장삼태가 세 방향에서 치고 들어오는 칼날을 주시하며 손을 내지르려는 순간.
사아아아악-!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깨달았다. 자연적으로 생겼다고는 볼 수 없는 바람, 아니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은 기세가 반월의 형태로 날아오고 있었다.
기세였지만 분명히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마침 장삼태를 죽이기 위해 칼을 내지르던 이들이 멍한 시선을 보였다.
그리고 순간.
서거걱-!
몸이 갈라졌다.
설마 그들은 이럴 때 이런 무지막지한 공격이 날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반 토막이 되어 잘려 나간 신체들이 피를 뿌리며 온갖 장기를 쏟아 냈다.
털썩, 털썩-!
이제는 육편 조각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신체가 어이없이 널브러졌다.
“이, 이게…….”
홍원창이 그 참상을 바라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의 머릿속으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으니까.
그것은 흑도회의 인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 방추곡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만 한 사람만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으며 이런 말을 내뱉었다.
“시벌, 올 거면 빨리 오든가…….”
* * *
무신(武神).
중원 역사를 통틀어 그러한 칭호를 받은 이는 유일무이(唯一無二), 단우현 한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소림의 체계를 세웠다는 달마나 무당에 올라 신선이 되었다는 삼봉, 마교의 기틀을 바로잡고 십만마도의 정점이 되었다는 천마조차 그러한 칭호를 얻지 못했다.
왜일까?
저들 또한 필시 한 시대를 풍미한 절대고수라는 점은 틀림없으나 무극신마만큼 이 중원에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였고, 또한 수많은 패배를 겪기도 하였다.
하나, 오로지 무신만이 무패(無敗).
그렇기에 전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벅, 저벅-!
적막 가득한 그 공간을 깨트린 것은 한 사람의 발소리였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그 소리는 빠르지도, 혹은 느리지도 않다.
듣고 있노라면 여유로움이 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방추곡은 침을 삼켰다.
‘뭐, 뭐야…….’
조금 전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아무리 머릿속을 뒤집고 헤쳐 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사람이 펼쳤다고 하기에는 도가 지나친 것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 공기는 무엇일까?
양어깨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거대한 압박감.
모든 이들이 자리에 멈춰 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의 동공이 파르르 떨리며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흐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풀을 가르며 나타난 그의 모습에 침이 넘어갔다.
평범하다.
왜소해 보이는 체구,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성인 남성의 키. 그러나 달빛을 맞으며 나타난 그의 모습에 방추곡은 숨이 멎을 것 같은 강한 압박감을 받았다.
‘뭐야, 저건……!’
바라보는 순간, 등골에 오싹함이 가시지 않았다.
달빛에 빛나는 그의 눈동자는 마치 홍염을 머금은 듯 붉게 달아올라 있었으며, 고고하다 못해 오만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선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시벌…….”
그러한 침묵과 적막을 깬 것은 장삼태의 목소리였다. 힘이 풀린 것인지 주저앉은 채로, 눈앞에 나타난 단우현을 보고 있었다. 툴툴거리는 투가 역력하기는 하나, 어딘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단우현이 고개를 돌려 장삼태를 바라봤다.
“소란스럽군.”
“저놈들이 그랬습니다요. 저흰 아닙니다.”
장삼태가 방추곡과 흑도회의 인물들을 가리켰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고자질하는 것 같은 우스운 상황이었다.
하나 단우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슥- 고개를 돌려 방추곡을 바라봤다.
“흑도회?”
“크윽……!”
내뱉은 한마디에 묵직한 힘이 실렸다.
가볍게 내뱉은 것이었으나 방추곡의 본능은 경종을 울려 댔다. 말에 실려 있는 힘 자체가 지금까지 만났던 무인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누, 누구시오……? 우리는 흐, 흑도회외다. 그것을 알고도 앞을 막는 것이오?”
두려움에 말조차 섞고 싶지 않았으나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한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상대는 틀림없는 강자. 자신들이 무슨 수를 쓴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인간이 분명했다.
“우, 우리 흑도회는…….”
“쓰레기가 모여 봤자, 쓰레기일 뿐이지.”
빠드득-!
방추곡은 이를 갈았다.
공포조차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평생 몸담아 온 흑도회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방추곡이었다. 그곳을 욕한다는 것은 단순한 모욕 이상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우현을 바라보고 있는 방추곡의 시선이 변했다.
“쓰레기가 아니오! 흑도회는……!”
“그렇다면…….”
단우현은 무언가 이야기하려는 방추곡의 말을 끊고 슥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시선이 흑도회의 인물들을, 그리고 장삼태와 홍원창을 한 차례 훑어본 뒤 피식 웃었다.
“증명해 봐라.”
* * *
장삼태와 방추곡은 자신의 눈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단우현이 강하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면 이런 일 또한 쉽게 해결되리라 예상은 했다.
한데.
퍼걱-!
“끄아아악!”
“아아아아악!”
이것은 도가 지나칠 정도다.
홍원창은 단우현이 장백산과 그 수하들을, 장삼태는 그가 흑도회 잔당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손을 내지른다.
단순히 내지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흑도회의 인물들은 궁지에 몰린 쥐새끼처럼 발악하였으나 속수무책이었다.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아이와 무림 고수의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저, 저 괴물 새끼…….”
장삼태가 부르르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수월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장삼태 본인은 저들에게 고작해야 한 수를 먹이고 도망치느라 바빴는데, 설렁설렁 움직이는 단우현은 그냥 그렇게 상대를 제압해 버렸다.
빠각-!
“끄아아악!”
단우현은 단전을 모조리 부수고 있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반항해 봐야 소용조차 없었다.
“대, 대단한 대협이오…… 저, 정말…….”
“대단하긴, 시벌……. 저게 괴물이지 사람이오?”
“시, 시벌?”
홍원창이 치켜뜬 눈으로 장삼태를 쏘아봤다. 수하라고 하더니 감히 주인에게 욕을 뱉다니,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인가?
“그대는 주인에게도 욕을 하나?”
“니미럴, 안 들리는 자리에선 황제 욕도 하는데 뭔 상관이유.”
“뭐? 이런 개잡것을 봤나!”
“뭐? 잡것? 구해 준 은혜도 잊었냐?”
“그래, 이 쌍놈아! 어디 감히 종놈 따위가 주인을 욕해? 물곤장이라도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한순간 장삼태는 입을 닫았다. 상대가 현령이라는 사실을 완벽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오래되기는 하였지만 수배 상태인 범죄자라는 사실 또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장삼태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니미…….’
그사이, 서서히 장내가 정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