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90
주르륵-
고작 풍압에 지나지 않지만 백호의 몸은 오 장 가까이 밀려났다.
그러나 금세 정신을 차린 백호는 균형을 잃지 않고 사납게 이빨을 들이밀었다.
한순간에 땅을 박찬 백호가 거리를 좁히며 거대하고 육중한 앞발을 휘둘렀다.
콰직!
슬쩍 피해 내자 두꺼운 나무가 모래성처럼 부서졌다.
그러나 끝이 아니라는 듯 다시금 다가오더니 그 이빨을 들이밀며 단우현의 목덜미를 노렸다.
퍽-!
“결국은 짐승이로군.”
올려쳤다.
아가리를 벌리는 것과 동시에 단우현의 손바닥이 백호의 턱을 후려쳤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백호의 입이 순식간에 닫혔고, 그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하나, 애초에 사람과 짐승은 몸의 구조부터가 다르다.
떠오른 백호는 그 자리에서 빙글 돌아 여유롭게 착지했다. 얻어맞은 곳이 다소 얼얼한 듯 얼굴을 털어 내었지만, 그리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진 않았다.
“제법이구나.”
단우현은 놀랐다.
방금 전 한 수는 죽이기 위한 일격이었다. 한데 그것을 버텨 냈다는 건 백호의 수준이 정말로 신수에 버금간다는 말일 터.
아주 오래전 이무기를 잡았을 때가 떠올랐다.
며칠을 부딪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호승심이 들끓었다.
하나, 단우현은 심호흡을 하며 기세를 가라앉혔다.
지금 이 자리는 호승심을 해결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단소미를 되찾아야 했으니, 싸움을 즐기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단우현이 온몸에 바람을 두르고 서 있다.
그 모습만으로도 상대를 압박하기에 충분했다.
쾅-!
하나, 거대한 소용돌이를 몸에 두르고 있는 단우현을 보면서도 백호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땅을 구르고 노려봤다.
어찌나 그 힘이 강한지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다.
단우현의 눈매가 좁아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상대가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기에 그의 기세 또한 사뭇 달라졌다.
장난스런 표정이 얼굴에서 지워졌다.
비록 그 수준이 남궁천이나 사도학에게 미치지 못하는 영수였으나, 내뿜는 기세만큼은 그 둘에 비견될 정도로 대단했다.
백호는 더욱 낮게 자세를 잡았다.
단박에 뛰어오를 생각인지 다리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흉악하기 짝이 없는 기세가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며 그대로 땅을 딛고 단우현을 향해 쏘아져 나아갔다.
한순간, 백호의 움직임을 놓쳤다.
그러나.
쾅-!
“사람과 짐승은 다르지. 하여, 같은 힘이라면 짐승이 몇 배는 더 강한 것은 당연하고.”
단우현의 시선이 뒤를 바라봤다.
언제 움직였는지 백호가 거대한 발을 휘둘렀다. 한데, 그 묵직한 발톱은 단우현 주위에 머물러 있는 바람을 찢지 못했다.
거센 폭풍을 찢기에는 그 힘이 부족한 것이다.
“하나, 사람이든 짐승이든 단순한 힘으로는 오행의 이치를 뚫지 못하는 법이다.”
단우현이 가볍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날카로운 발톱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그의 전신에 머무르고 있던 바람이 소용돌이처럼 뻗어 나가 백호를 집어삼켰다.
촤촤촤촤악-!
소리조차 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이 바람에 닿은 모든 것을 휩쓸었다.
맹렬한 속도로 허공을 휘돌던 백호의 몸이 찢어지며 사방으로 피가 터졌다.
감히 어느 누가 이것을 막아 낼 수 있는가?
털썩!
자욱한 피를 뿜으며 백호가 쓰러졌다.
움찔움찔 몸을 떨고 있기는 하나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강렬했던 눈빛에서도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힘이 빠졌음에도 단우현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만큼은 여전히 매섭고 날카로웠으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죽일까?’
백호의 영단이 그렇게 몸에 좋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이것을 단소미에게 준다면 불로장생까지는 아니어도 굉장히 튼튼하게 자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되었다. 영물을 잡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하니…….”
단우현은 과거 이무기를 떠올리며 웃었다.
죽어 가던 놈의 얼굴이 지금 눈앞에 있는 백호와 비슷했다.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준 것만으로도 저 백호는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백호와 단우현의 격전 탓에 일렁이던 기세가 가라앉으니, 다시금 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은 마치 단우현의 기분을 헤아려 주는 듯 부드럽게 그를 감싸 안았다.
그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단우현이 정면을 바라봤다. 손을 뻗어 수풀을 걷어 내자, 분명 남궁소혜와 수련을 했던 그 장소가 틀림없음에도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 드러났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꺄르르-!”
단소미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옆에는 새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다소 새침한 느낌으로 도망을 다니고 있었다.
단우현의 걱정과는 다르게 단소미는 무사했다.
치맛자락이 찢겨 나간 것이 보이기는 했지만, 상처가 난 것은 아닌 듯했다.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눈꽃에도 관심이 없는 것인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귓가에 머물렀다.
한참 동안 쫓기던 고양이가 뿔이 난 듯, 등을 돌려 단소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날카로운 발톱을 보고 놀란 단우현이 주먹을 쥐었는데, 단소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양팔을 벌려 뛰어오는 고양이를 끌어안으며 털썩- 넘어졌다.
주변에 수풀이 가득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어딘가 다쳤을지도 몰랐다.
“아하하-! 너무 귀엽다!”
단소미의 만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옷이 더러워졌음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고양이의 몸에 흙이 묻어 있나 살피며 여기저기 털어 주는 세심함까지 보였다.
주먹을 쥐고 있던 단우현이 손을 풀며 피식 웃었다.
‘저런 아이였지…….’
자신의 몸보다 다른 이의 몸을 먼저 생각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 마음이 영물에게도 전해진 듯, 어느새 발톱은 사라지고 할짝할짝- 단소미의 볼을 핥았다.
“앗! 아빠?”
그때, 단우현을 발견한 단소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깜짝 놀란 것은 삭월묘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캬악!
꼬리를 치켜세우며 단우현을 위협했다.
그러나 단우현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유유히 단소미를 향해 걸어가며 삭월묘에게 시선을 주었다.
움찔!
삭월묘가 단우현과 눈을 마주하기 무섭게 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돌리더니, 조심스럽게 단소미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시선을 마주친 것에 불과 하지만, 결코 단우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을 길들였구나.”
“예쁘죠?”
다리 사이에 숨어 있는 삭월묘를 들어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냐옹!
작게 우는 소리가 몹시 귀여운지 행복한 표정으로 품에 안고 얼굴을 비볐다.
“키워도 돼요?”
“하하, 그렇게 마음에 들었느냐?”
“네! 소미는 이 아이의 엄마가 될 거예요!”
“응?”
단소미가 손가락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봉분이 만들어져 있었다. 얼어붙은 땅을 파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돌을 이용해 수차례 땅을 내리쳐 결국 봉분을 만든 모양이었다.
그 탓에 단소미의 손 여기저기가 터져 있었다.
단우현이 한숨을 쉬었다.
“네가 말이냐?”
“네! 약속했어요! 평생 돌봐주겠다고.”
“하하, 아직 네 앞가림도 못하는데 이것을 돌봐주겠다고?”
단우현의 반문에 단소미가 뿔이 난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소미가 평생 돌봐줄 거예요! 아빠도, 이 아이도!”
“나도 말이냐?”
“당연하죠. 소미의 아빠인걸요?”
단소미가 묘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평생을 함께 있기로 한 사이가 아니었던가? 혹 자신만의 착각인가 싶어, 저도 모르게 그렁그렁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시집을 가면 이 아비 곁에는 있지 못할 텐데?”
그제야 단소미가 정신을 차리며 아! 하는 작은 탄성을 질렀다. 확실히 시집을 가면 집을 나가야 하니 단우현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단소미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단우현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요! 소미는 시집 같은 거 가지 않고 평생 아빠랑 있을 거니까요.”
평생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웃었다.
그 한마디가 단우현의 표정을 더 부드럽게 풀어냈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이 저 말이 진실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에 한 약속을 지키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마음이 녹아내리기엔 충분했다.
단우현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단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평생 떨어지지 말고 함께 있자꾸나.”
“네! 그럼 키워도 되죠?”
기회를 놓치지 않는 모습에 단우현이 웃음을 지었다.
“이만 돌아가자.”
냐옹-!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단소미의 품에 안겨 있던 삭월묘가 바람을 타고 온 냄새를 맡았는지 느닷없이 폴짝 뛰어 어디론가 달렸다.
“앗?! 어디 가!”
단소미가 소리를 치며 뒤를 따라 달렸다.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는 것인지 작은 녀석인데도 상당히 빠르게 달려갔다.
단우현 또한 느긋하게 그 뒤를 따랐다.
한참을 갔을까?
먼저 달려간 단소미가 우두커니 선 채 질린 표정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단우현은 그것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호…… 호랑이가…….”
“그래, 호랑이로구나.”
“다쳤어요…….”
호랑이에 대한 무서움보다 피를 흘리며 다친 것을 더 걱정하는 모습에 살짝 어이가 없어진 단우현이 헛웃음을 흘리며 앞을 바라봤다.
삭월묘가 호랑이의 상처를 핥아 주고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저 둘은 아는 사이 같았다.
틀림없이 백호가 자신의 영역 내에 있는 삭월묘를 지켜 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도와줘야겠어요!”
그때, 단소미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피를 흘리고 쓰러진 동물을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물릴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불쌍하잖아요…….”
크릉-
백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불쌍하다는 말이 심기에 거슬린 모양이었다. 하나, 일어설 기력은 없는 듯 그저 소리만 냈다.
단우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도와줘요!”
“호랑이를 말이지?”
“네! 호랑이든 사람이든 똑같은 생명이잖아요.”
단우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단소미를 말릴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달려가려는 소미를 만류하며 단우현이 다가갔다.
피를 흘리고 있는 백호의 시선과 마주쳤다.
크릉!
경계 어린 소리가 들렸으나 단우현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가 피를 닦아 주자 백호의 고개가 움직였다.
또다시 백호와 단우현이 시선을 마주쳤다.
병 주고 약 주냐는 뜻이 명백하게 담긴 시선에 단우현이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