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99
“흑풍신마? 누가 죽어?!”
사도학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뒤틀려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이기를 빌었다.
그러나 또박또박 흘러나오는 장삼태의 말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고, 몇 번을 반복하여 들었음에도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도대체 흑풍신마라는 놈은 누구인가?
어디서 나타난 개떡 같은 녀석인가?
제대로 정신을 수습할 수 없었던 사도학이 이윽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 충격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로군.”
단우현이 툭 하고 말을 뱉었다.
한숨을 쉬는 모양새가 그리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그저 그 날카로웠던 시선이 바뀌어, 어딘지 모르게 애잔하고 슬프게 변했다.
남궁천이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들겼다.
사도학이 그 손길을 뿌리치며 인상을 썼다.
“설마 내가 네놈처럼 풀 죽어 있는 걸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어? 아니었는가?”
피식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사도학의 눈빛이 다시금 본래의 것으로 되돌아오며 남궁천에게 향했다.
“원래 마교 놈들이 그래. 강자 앞에 굴복하는 게 그곳에선 자연스런 섭리라는 거다. 심지어 내가 있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지.”
사도학은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고, 그 상황을 노리는 이들도 있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장로들이 아닌 다른 놈이라는 것이 제법 웃기기는 했지만, 이것이 바로 몇 세기간 마교에서 벌어져 온 권력 투쟁이었다.
단지 슬픈 것은 동방구가 자신에 대한 충심을 굽히지 않아 죽었다는 것이다.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가장 마교도답지 않았던 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도학이 콧방귀를 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정말 아무렇지 않아! 진짜야!”
“묻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묻지 말라고 하는 소리다, 이놈아!”
쾅!
강하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남궁천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말은 저래도 꽤 충격을 받았을 게야. 수십 년 동안 이끌었던 곳이니까.”
“그럴 테지.”
단우현이 후룩 하고 차를 마셨다.
마교의 일 따위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도리어 남궁천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흑풍신마가 누구인가? 그 때문에 자네도 이 아이들을 보낸 것이지?”
남궁천이 장삼태와 마장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게 먼 거리를 보냈다는 것은, 단우현이 무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장삼태와 마장강 또한 단우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들도 이름을 듣긴 했어도 정작 누구인지 전혀 알지를 못했다.
하여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그것에 답하듯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마교를 세운 장본인이라 하더군.”
“마교는 천 년 전에 세워진 곳이라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남궁천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애초에 마교는 힘을 숭상하는 이들이 삼천의 일인이었던 천무광을 따르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던가?
“본인이 그렇다 하니 그런 것일 테지.”
단우현이 대수롭지 않게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본인의 입으로 흑풍신마라 선언을 했다는 점에서 무언가 있기는 했을 거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단우현의 시선이 무언가를 바라봤다. 거대한 백호 한 마리가 단소미와 호연지를 둘러업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그 본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법이지.”
“그게 무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선문답을 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닌지라 남궁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고, 소미야-!”
그때, 장삼태가 무언가를 보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쌘 몸놀림으로 창문을 넘어 혼절해 있는 단소미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이윽고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저도 모르게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호…… 호랑이?”
왜지? 왜 호랑이가 여기에 있지?
그 어마어마한 덩치에 저도 모르게 위압감을 느꼈다. 다가오면 죽는다 하는 백호에 낮은 울음소리 또한 장삼태의 걸음을 멈추게 한 원인이었다.
“뭐…… 뭐야? 당장 소미를 내려놔, 이것아!”
기수식을 취하며 달려들 준비를 마쳤다.
그래 봐야 백호의 발톱 한 번 막지 못하고 죽게 될 테지만, 단소미를 어떻게 해서든 구해 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괜찮아요. 놀라서 혼절한 것이니까…….”
장삼태는 호연지를 바라봤다.
호연지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보였다. 제대로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드는지 호흡마저 거칠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백호의 등에서 내려 단소미를 끌어안았다.
장삼태가 가만 호연지를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누구냐, 너?”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
세가에 여인이라고는 남궁소혜밖에 없었는데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났다.
가녀리고 어딘지 모르게 청초한 느낌이었다.
그가 슬그머니 등을 돌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단우현에게 물었다.
“첩입니까요?”
빡-!
“아아악!”
손바닥이 머리통을 매섭게 두들겼다.
강한 충격에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단우현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신음을 흘리는 장삼태를 발로 치우며 물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의 표정에는 화가 난 낌새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호연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추…… 추문원을 만났어요.”
“복수를 했나 보군…….”
한마디 문답으로 상황 파악이 끝났다.
중상을 입은 추문원을 단소미가 발견했을 테고, 저 아이는 늘 그랬듯이 부상을 입은 추문원을 고쳐 주었을 거다.
그러다 호연지와 마주쳤고, 결국 일이 벌어졌을 터.
단우현이 두 마리 영수를 바라봤다.
“잘해 주었구나.”
백묘가 냐옹하며 작은 울음을 터트렸다. 단우현의 칭찬이 기분 좋은 것인지 폴짝폴짝 뛰어 그의 어깨에 올랐다.
크르릉 하며 낮은 울음소리를 낸 백호는 힐끗 단우현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담장을 넘어가는 것을 보니 사냥이라도 할 심산인 듯했다.
단우현이 웃으며 단소미를 호연지에게서 건네받았다.
“네 간절한 바람이 이 아이의 운에 닿았나 보구나.”
“……그런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복수를 한 셈이지 않더냐.”
호연지는 주먹을 꾹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추문원의 심장을 꿰뚫었던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조금씩 실감이 났다.
“상처입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
아무런 말이 없는 호연지를 바라보던 단우현이 등을 돌렸다.
단소미를 안은 채 천천히 방으로 걸음을 옮기며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어쩌면 추문원을 놓친 것도 그것을 위한 안배일 수도 있겠지.”
단우현의 말에 호연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 * *
단소미의 방 안에 앉아 있는 단우현은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아이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천천히 손을 뻗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고, 발그레한 볼을 매만지며 피식 웃었다.
아버지가 아이를 바라보는 상냥한 시선.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모습이기에 더욱 각별하고 특별했다.
“내가 너의 천운이었다면 너는 나의 천운이구나.”
이 아이는 천운을 머금은 아이다.
그렇기에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어야 하는 것이 맞다. 천운을 타고난 아이는 대개 그 꽃을 피우기 전에 자연스레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열이 태어나면 열이 모두 죽었다.
단소미는 모르겠지만 부모와 함께였던 마을이 몰살당한 것도, 거리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런데 단우현을 만나면서 단소미의 죽었던 별빛이 생기를 되찾았다.
이 아이에게 천운이란 바로 단우현을 말함이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자고 있는 단소미의 아미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곤히 자고 있던 아이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천운이란 본래 좋은 것만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 법이지.”
단우현은 지난날 벌어진 모든 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 일들이 단소미가 가지고 있는 천운, 그 반동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은 언제나 공평한 법이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 또한 있는 법.
단소미의 천운이 작용하면 그 반대의 일 또한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으응…….”
“깼느냐?”
“아빠?!”
단소미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멍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똑바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헤헤헤.”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곁에 있기에 안심이 된다는 웃음이었다.
단우현이 가볍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백묘랑…… 백호는요?”
“잘 뛰어놀고 있다.”
“그럼 언니는요?”
“잘 먹고 잘 잔다.”
“으응?”
단소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산에 오른 것까지는 기억했다. 거기에서 이상한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고, 그 뒤에 기억을 잃었다.
그런데 눈을 뜨니 집이다.
그 모든 것들이 환상이었던가?
의아함에 작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 밖에 나가 있어…….”
“자고 있었다.”
“네?”
단소미가 가만 단우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한 치 거짓도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그마한 손을 매만졌다. 그 따스한 온기에 저도 모르게 기분이 풀어졌다.
“자고 있었다. 늦게 일어났구나.”
“하지만 소미는…….”
“안 좋은 꿈이라도 꾸었느냐?”
으응?
단소미는 끙 신음을 흘렸다.
꿈이라는 것이 그렇게 현실처럼 생생할 수 있을까?
하나하나 전부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였기에 복잡한 표정으로 단소미가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던 단소미가 활짝 웃었다. 그 표정은 마치 어떤 것을 알고는 있으나,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듯, 안 좋은 일 따윈 깔끔하게 잊어버려 해맑기 그지없었다.
“네! 정말로 이상한 꿈을 꿨어요. 헤헤.”
“그렇구나. 다음에는 더 좋은 꿈을 꿔야 할 텐데 말이다.”
단우현의 말에 단소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와락 그 품에 안겨 볼을 비볐다.
그윽한 단우현의 냄새가 무척 기분이 좋았지 또다시 스르륵 잠에 빠졌다.
단우현이 다시금 단소미를 조심스레 눕혔다.
쿨쿨 잠든 아이의 이마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라.”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다.
단우현에겐 능히 그런 것들을 헤쳐 나갈 힘과 능력이 있었다.
저주나 다름없던 이 재능이, 세상을 농락하고 팔선의 분노까지 샀던 이 힘이, 이렇게나 쓸모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는 웃으며 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