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
“흠…….”
늦은 밤, 곤히 자고 있는 화소미를 모닥불 곁에 둔 단우현은 신음은 삼켰다. 함께 살자, 데리고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니 먼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즉, 집을 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니 일단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살짝 난감해졌다.
머릿속에 이미 집 모양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정착해서 살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었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소박한 꿈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짓는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일단 주위를 바라봤다.
어른 한 명과 아이 한 명, 두 명이서 살 집이기는 하지만, 아이가 뛰어 놀아야 할 공간이 필요하니 조금 넓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인적이 드문 산속이니, 굳이 좁게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럼 제일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은 집을 지을 터였다.
주변은 수풀과 나무, 그리고 바위들로 가득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치워 내는 것 또한 상당한 일이었다.
인부들 수십 명이 달려들어 터를 닦는 데만 보름이 넘게 걸릴 것이다.
단우현은 낡은 천에 감싼 채 지금까지 꺼내지 않았던 검을 들었다.
그것을 쥐고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사아아악!
기이한 기세가 날아들더니, 한순간 주변이 원형으로 번뜩였다.
느닷없이 바람이 몰아치고는 곧 잠잠해졌다.
쩌저적-!
이내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은 놀라웠다. 빼곡하게 들어찼던 나무들이 밑동이 잘린 채 넘어갔다.
바위들은 산산조각 나 버렸고, 거친 땅은 평평하게 자리 잡았다.
수풀들은 어디로 갔는지 존재하지도 않다.
한순간에, 인부 수십 명이 족히 보름은 넘게 일해야 가능한 양을 단숨에 해치워 버리는 신기(神技)를 부린 것이다.
일검에 나무들을 베어 내고, 바위를 가루로 만들고, 수풀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결코 내력 조절에 능하다 하여 펼칠 수 있는 수법이 아니었다.
“으으으음!”
느닷없이 들려온 큰 소리에 화소미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뜨려 했다. 수많은 나무가 한꺼번에 넘어가는 소리는 천둥 번개가 치는 것만큼 크게 들려왔으니까.
하지만 다시 푹 쓰러지며 잠들었다.
단우현이 수혈을 짚었기 때문이다.
“잠시 자고 있는 편이 나을 거다.”
이런 광경을 보여 준다면 신선이니 뭐니 하며 호들갑을 떨 것이 분명했다.
특히 단우현은 신선이란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
“다음은 기둥을 세울 나무를 다듬어야지.”
뭐든 집의 기본은 바로 나무이다. 기둥을 세우고 그것에 벽을 세우는 형태이니 만큼 목재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촤촤촤촤악-!
머릿속에 그려진 대로 나무를 향해 칼을 내질렀다. 단순히 몇 번 휘두르자, 하나하나 그 역할에 맞는 목재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만약 옆에서 목수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필시 수제자로 받아 달라며 무릎을 꿇고 비는 촌극이 벌어졌을 터였다.
어느새 그 많던 나무들이 모조리 깎여 나갔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목재들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이것들을 이용해 하나하나 조립해 나가는 것이었다.
단우현은 잘라 놓은 목재들의 역할을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다. 기둥을 땅에 박고 차근차근 건물을 올려 나갔다. 그렇게 많던 목재들이 순식간에 하나의 집으로 변하고 있었다.
“괜찮기는 한데 조금 크군…….”
기둥을 세우고 보니 상당히 컸다.
웬만한 장원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였다. 칸칸이 나눠 놓은 것들을 생각해 본다면, 방 또한 상당히 많았다.
하긴 어린 시절 수십 명이 지낼 수 있는 집을 생각했던 것이니 자연스레 그럴 수밖에.
두 명이서 생활하기에는 집 자체가 너무 컸다.
‘조금 잘라 낼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커 봤자 황제의 구중궁궐만 하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다음은 벽을 세워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벽도 나무를 끼워 맞추어 짓는다. 하지만 이미 뼈대를 세우는 데 목재를 다 사용했다.
다시 목재를 만드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지만 그래서는 재미가 없다.
“황토로 집을 지으면 굉장히 따뜻하대!”
문득 어린 시절 같은 거지패에 속해 있던 한 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황토를 이용해 벽을 세우면 바람을 잘 막아 주고 겨울에는 상당히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했다.
생각해 보니 악양으로 가는 길에 황토를 조금 본 것 같다.
그렇다면 망설일 것은 없었다.
* * *
화소미는 부스스한 몰골로 눈을 떴다.
새벽닭이 시끄럽게 우는 시간이 아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에 저절로 눈을 뜬 것이다. 어제 분명 노숙하였으니 햇볕이 자연스럽게 내리쬐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으응?”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 순간, 화소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분명 하루 전까지만 해도 수풀과 나무들만 무성했던 공간이었다.
한데,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공터가 생겼고 커다란 집 한 채가 지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단우현이 문짝을 달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는 눈을 비볐다.
아무리 어리지만 생각이라는 게 있으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끙 하며 신음을 삼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서 내려 준 선물인가?
“일어났느냐?”
“아저씨, 이상해요. 집이 있어요.”
“그래, 있구나.”
“분명히 어제는…….”
“어제도 있었다. 다만 조금 낡았기에 손을 본 거지.”
“아니에요, 어제는 분명히…….”
“어제도 있었다.”
“…….”
“…….”
화소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분명 자신의 기억에는 이렇게 멋진 집은커녕 초옥 한 채도 없었던 곳이다.
하지만 저리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분명 단우현의 말이 맞을 것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는가.
어쨌든 집이 생겼다는 것이 기뻤다. 더군다나 이 집은 동정호 코앞에 있으니, 몇 걸음만 나가면 바로 물가로 갈 수 있었다.
물고기를 잡기도 수월할 것이다.
쪼르르-
화소미는 종종걸음으로 단우현의 곁으로 다가갔다. 단우현은 이제 막 마지막 창문을 달고 있었다.
그제야 집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이었지만 화소미는 조금 이상했다.
어제도 있었다는 낡은 집이 굉장히 깔끔해 보였으니까.
심지어 벽이 황토다.
어린 그녀도 알고 있을 만큼 구하기 어려운 황토로 지어진 집이 버려졌다니?
하지만 단우현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리라.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멋지네요. 집이 엄청 커요! 마치 장원 같아요!”
“마음에 든 것 같아 다행이구나. 이것을 짓는 데 꽤 공을 들였거든.”
“지어요?”
“……아니, 보수를.”
“아…….”
화소미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단우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서 다행이군.’
그때, 단우현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헤헤, 굉장히 멋져요. 그런데 담장이 없네요? 그래서 버려진 건가요?”
“…….”
단우현의 눈빛이 번뜩였다.
* * *
집에서 약 사 리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커다란 절벽이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그 웅장한 절벽은 누가 봐도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오를 수 없을 듯했다.
늦은 밤.
그곳에 단우현이 서 있었다.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죠?”
딱히 도둑 따위를 걱정해 본 기억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마음을 먹고 다가오는 순간 숨을 쉬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화소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집은 완벽해야 한다.
그것도 상당히 멋들어지게 지어 놓은 집이니, 그만큼 더 완벽해야 했다. 담장이 없는 장원을 본 적이 있던가?
아니, 없다.
장원에는 담장이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단우현이 직접 지은 것이다. 완벽하지 못하면 안 된다.
그가 누구인가. 무신이라 칭송받았던 자가 아닌가.
무엇을 하든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절벽을 바라보고 있던 단우현이 그대로 검갑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천지를 뒤엎는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 * *
“…….”
“…….”
화소미는 말없이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담장이 생겼다. 집 주위를 완벽하게 둘러싼 그것은 높이도 상당히 높았다.
밖에서는 안이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도대체 이건 언제 생겨난 것인지.
“담장이…….”
“원래 있었다.”
“네에?”
“원래 있었다.”
“저…… 아무 말도 안 했는걸요.”
화소미가 어색하게 웃었다. 납득을 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넘기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집터를 둘러보며 포옥 작은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느냐?”
“그게요, 아저씨. 왠지 되게 허전하지 않아요?”
“…….”
* * *
동정호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다. 그곳 마을 사람들은 헤매다 제를 지내는데, 다름 아닌 마을을 오랫동안 지켜 주고 있었던 노송(老松)에게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린다 하는 제였다.
그 노송은 아주 오래전 팔선 중 한 명이 심어 놓았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액운을 막아 주고 마을이 크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전해졌다.
소나무는 상당히 컸다.
천 년을 넘게 그 자리를 지켜 온 나무였으니 그 웅장함을 말해 무엇할까. 소나무는 마치 마을을 지키듯 그 거대한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뻗으며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 마을 노인 중 한 명이 산보 삼아 노송을 향해 걸어갔다. 아침마다 노송에게 하루를 잘 부탁한다며 비는 것이 그가 어린 시절부터 계속되어 온 일과였다.
하지만.
“헉?!”
없었다.
그 자리를 번듯이 지키고 있어야 할 노송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는 마치 누군가가 파낸 흔적들이 역력하였고, 파인 땅에는 그 줄기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게거품을 물었다.
* * *
“와…… 와, 어제 없었…….”
“있었다.”
“……네.”
화소미의 말을 자른 단우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커다란 장원이 생겼다. 악양에 있는 장원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거다.
공터에는 천 년 묵은 노송이 그 줄기를 뻗은 채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화려한 모양과 색을 지닌 돌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한쪽에 크게 연못마저 파 놓았으니, 이제야 비로소 만족스러웠다.
“하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실 아직 할 일이 굉장히 많다. 침상은 물론이고 쓸 수 있는 집기들까지 하나하나 만들어야 한다. 더군다나 아이를 굶길 수 없으니 낚시도 가야 하고.
할 일이 생기니 비어 있던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바쁘다.
이런 기분 좋은 바쁨을 얼마 만에 느껴 보았는가.
무공을 익히지 않아도 보람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요…….”
“쉿, 아무 말 하지 마라.”
단우현은 화소미의 입을 꾹 다물게 했다.
이 아이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 때마다, 어디선가 분명 절규가 터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