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
* * *
이른 아침부터 관아가 발칵 뒤집혔다.
하옥된 죄수 대부분이 죽임을 당했고, 살아남은 이들 또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또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으나 현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그를 찾기 위해 수색조가 꾸려져 악양 내부는 시끌시끌해졌다.
“또 흑도회 놈들 짓이구먼.”
“쯧쯧, 현령만 안됐지. 어디서 시체가 되었을 게야.”
“에끼! 그런 소리 말게. 그래도 얼마나 대단한 분인가. 흑도회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뻔히 알면서 흑도지회까지 토벌하지 않았던가.”
그건 그렇지, 하며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무림인도 아닌 일개 현령이 해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홍원창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들 또한 자발적으로 홍원창을 찾아 나섰다. 겁 없이 흑도회를 건드리고 토벌 명령을 내렸다는 이유로 강직한 현령이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 *
그 시간, 악양에서 서쪽으로 약 한 시진 거리에 있는 장원에는 아침 일찍 일어난 화소미가 멍한 표정으로 마당에 나와 있었다.
잠이 덜 깬 게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이가 신기한 것이다.
“…….”
“하하, 아, 안녕하신가.”
모르는 사람.
화소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슬그머니 단우현을 찾았다. 그리고 저기 먼 곳에서 단우현의 모습이 보이자 저도 모르게 뜀박질하여 그의 등 뒤로 쏙 숨어 버렸다.
“하, 하하…….”
홍원창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저 아이가 바로 은인의 딸이로군.’
그런 생각을 하니 어딘지 모르게 닮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단우현과는 다르게 다소 수줍음이 많은 모양이었다.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그로서는 친해지고 싶기도 한데, 도통 다가와 주려 하지 않았다.
“인사하거라. 현령이다.”
“현…… 령이요?”
화소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현령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화소미가 있던 마을에는 현령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작기도 했지만 도망친 농민들이 만든 화전민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우현이 인사를 하라고 했기에 용기를 낸 화소미가 중얼거렸다.
“화…… 소미에요.”
“하하, 홍원창이라 한다. 나도 네 또래의 사내자식이 있으니 한번 놀러 오너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친…… 구?”
화소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부모님이 죽은 뒤로 또래 아이들과 만난 적이 없었다. 언제나 곁에 있는 것은 단우현과 장삼태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친구가 그리웠던 것도 사실이다.
화소미가 힐끗 단우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단우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심심하면 놀러 가도 괜찮다.”
“와아-!”
물론 혼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테지만, 친구를 만든다는 데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저 기쁜 표정을 보고 있으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화소미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마당에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심심했는지 창고로 들어가 낚싯대를 챙겨 나갔다.
“지금쯤이면 소문이 났을 테지?”
“예, 틀림없습니다.”
단우현의 말에 장삼태가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관아가 습격당했다. 흑도회에 의해서. 심지어 현령인 홍원창마저 실종되었으니 황실이 이 사안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더니.”
단우현은 피식 웃으며 방추곡의 말을 떠올렸다.
흑도회의 본회는 호남과 호북의 경계에 있었다. 호북은 제법 세력이 큰 문파가 많으니 오히려 그 무림인들 사이에 숨어 있기 쉽고, 호남은 이렇다 할 큰 세력들이 없으니 활동하기 좋다.
숨는 데 제격이고 도망치는 것도 수월하다. 회주라는 자의 머리가 생각보다 더욱 비상한 듯했다.
“당장 왕부에 알려 토벌령을 내리겠습니다.”
홍원창은 이를 갈았다.
흑도회의 본거지를 알았으니 가만 놔둘 생각이 없었다. 쫓아가 부수고, 수뇌의 목을 쳐 버릴 심산이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농락하고 황실을 기만한 죄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단우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무림인이다. 군이 움직여 봤자 통하지 않을 테지.”
관에서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흑도회도 많은 이들이 죽을 테지만, 그 뿌리가 완전히 뽑혀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흑도의 족속들은 바퀴벌레만큼이나 끈질긴 면이 있었다. 하여 단박에, 그리고 한꺼번에 짓밟아 버리지 않으면 다시 슬금슬금 기어들어 온다.
“삼태는 장원을 지켜라. 포박해 놓은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고.”
“예.”
“그리고 현령은 내일 악양으로 들어가 포졸을 이끌고 삼 일 뒤까지 그곳으로 오너라.”
홍원창과 장삼태는 단우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으로 보면 무언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그 생각이 읽히지 않았다.
“내가 가지.”
그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단우현은 틀림없이 강하다.
하지만 한 단체를 상대할 수 있을까, 물으면 의문이 들었다. 특히 중소문파라면 모를까 흑도회 같은 거대 세력은 무림맹주조차 단신으로 무너트리지 못하는데, 어찌 그런 일을 하려는 것일까.
단우현은 그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피식 웃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희들 앞일이나 걱정해라. 그런 쓰레기 하나 이기지 못하는 꼴이 영 안쓰럽더군.”
“크큼!”
“험!”
통보를 끝낸 단우현이 움직였다.
지금 당장 흑도회의 본회를 향해 출발하는 듯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낚시를 하고 있는 화소미를 보기 위해 나가는 것이리라.
천천히 걸어가던 단우현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하다못해 맞고 다니지 않을 정도는 되거라. 그 나이에 창피하지도 않으냐?”
“윽……!”
“크크큼!”
태어나 지금까지 현령이 되기 위해 공부만 하고 살았던 홍원창.
살아남기 위해 오로지 경공에만 매진했던 장삼태.
이 두 사람이 어색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단우현이 나가고 장삼태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시벌, 뭐든 다 지 기준이야, 애새끼가.”
“허어! 은공께 그게 무슨 소리더냐!”
“아니, 뭐 내가 틀린 말 했소? 지는 싸움도 잘해, 집도 잘 지어, 돈도 많은 새끼니 거칠 게 없지. 하지만 우린 아니잖아! 안 그렇소?”
“크큼!”
홍원창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반박하기 힘들었다.
검술을 조금 익히기는 했으나 삼류조차 되지 못하는 실력이었다. 평생을 그렇게 노력하였는데도 안 되는데, 그런 말을 들었으니 그 또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드러워서 수련 시간을 더 늘리든가 해야지, 원.”
“응? 그대도 무공을 익혔는가?”
“아, 그 왜 있잖소? 저잣거리에서 파는 태극권. 그걸 가지고 저 새끼가 이래라저래라 한 걸 적어 놓은 게 있는데, 요즘 그걸 익히고 있소.”
홍원창은 눈을 반짝 빛냈다.
이 사내는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단우현 정도 되는 고수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기연 중 최고의 기연이라 할 수 있었다.
고작해야 삼류 무공이기는 하지만 단우현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틀림없이 인생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홍원창은 슬쩍 장삼태에게 다가갔다.
“크음! 그 뭐냐,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좀 볼 수 있는가?”
장삼태는 두 눈을 껌뻑이며 홍원창을 바라봤다.
‘이놈이 왜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온담? 기분 나쁘게시리.’
장삼태는 싱글벙글 웃으며 기대에 차 있는 홍원창의 얼굴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이내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좆 까쇼.”
* * *
“연락이 두절돼?”
“에, 예, 그렇습니다.”
사마찬의 질문에 사내는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하옥되어 있던 이들은 대부분 죽었으며, 남은 이들 또한 살아난다 해도 입을 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했다.
현령 또한 실종되었으니 임무를 완수했다 생각해도 이상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벌써 만 하루가 지났음에도 전서구 한 통 오지 않는다.
정보통을 통해 놈들의 위치를 백방으로 수색해 봤지만 그 또한 정확한 것을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만 돌아오고 있었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죽었을 확률은?”
“일 할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미 임무는 완수하였으니 돌아오는 일만 남았기에…….”
“그 은거기인인지 은둔 고수인지 하는 놈에게 죽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쾅-!
사마찬이 탁자를 후려치며 쏘아봤다.
일 처리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있는 사내를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나 가까스로 참아 냈다.
“하, 하지만 마지막으로 온 연통에 그런 말은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은둔 고수가 정말로 존재하였다면, 애초에 모든 일들이 실패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사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때문에 사마찬도 반박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현령이나 누군가의 뒤를 봐주는 존재가 있었다면 습격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후우- 이것 참…….”
사마찬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긴 한숨을 토했다.
뭐가 자꾸 꼬이는 듯한 이 느낌은 무엇인가.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되는 일은 하나 없고 엉켜 버린 실타래처럼 계속해서 꼬이기만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다른 아이들을 보내 볼까요? 아직 장삼태라는 자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아니다. 현령이 행방불명되었으니 경계가 삼엄할 것이다. 괜히 꼬리 잡힐 일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지.”
탁탁-
사마찬은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며 초조함을 드러냈다.
어찌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단 말인가.
문득 얼마 전 만난 용하다는 점쟁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대의 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겠구려.”
딱히 점을 믿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하기도 했고, 제법 잘 맞춘다는 소문까지 난 자여서 특별히 데려와 점을 치게 했다.
물론 그 저주에 가까운 말을 듣자마자 목을 쳐 버리기는 했지만, 뜬금없이 그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수색대를 편성하겠습니다.”
수하의 목소리가 정신을 일깨웠다.
그렇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라진 놈들의 행방을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한다. 만약 놈들이 누군가에게 붙잡혀 이곳의 위치라도 불었다간 뜻하지 않은 사고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아이들로 추려라. 호남 일대를 샅샅이 뒤져야 하니 되도록 경험이 풍부한 자들로.”
“알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수하가 밖으로 나가자 그제야 한숨을 내쉰 사마찬은 미간을 부여잡으며 이를 갈았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흑도회를 건드린 놈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리라. 상대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이렇게까지 했다면 자살하고 싶어 안달이 난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놓치지 않는다.
반드시 붙잡을 것이다. 놈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버리기 전에는 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사마찬은 주먹을 굳게 쥐고 타오르는 듯한 시선으로 허공을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