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1
“저기…… 왜 이렇게 조용하죠?”
호남단가의 일상은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사도학과 남궁천의 싸움도 그렇지만, 마당에서 뛰어노는 단소미의 웃음소리 때문이기도 했다.
그 소리들이 바로 호남단가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제갈연은 조용한 세가의 분위기에 인상을 썼다. 그녀가 이 세가로 들어온 뒤로 매일같이 떠들썩했기에 조용한 것이 불안하기까지 했다.
“다들 나갔어요.”
자그마한 술병을 손에 쥐고 흔들며 호연지가 웃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느긋함을 즐기고 싶은 것인지 표정이 폈다.
“당신은 아침부터 술인가요?”
그런 호연지를 바라보며 제갈연이 고까운 시선을 보냈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있으니 그게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호연지가 축 툇마루 기둥에 몸을 늘어트렸다.
“어쩔 수가 없는걸요. 오늘은 좀 쉬어도 된다고 했으니까요. 딱히 할 일도 없고…….”
“하아…… 그래서 이 사람들은 다 어디 간 거죠?”
“나갔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막 일어난 것인지 부스스한 몰골로 나타난 제갈운이었다.
그의 모습은 다소 초췌했는데, 이는 몰락한 추문세가의 뒤처리를 하기 위해 밤새 홍원창과 희의를 한 탓이었다.
나가요?”
“그래, 마차를 타고 간 걸 보면 어디 놀러가는 것 같더구나.”
순간 제갈연이 인상을 썼다.
같이 가려면 다 같이 갈 것이지 왜 자신은 놓고 간단 말인가? 마치 자신들은 차별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돌아오면 한마디 해야겠네요.”
“하하하, 기분이 상한 모양이구나.”
“아니거든요?”
뾰로통한 표정에 제갈연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잠시 짜증이 났을 뿐이지.
그때, 가만히 두 사람을 바라보던 호연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멀리 갔어요.”
“응?”
“에?”
“엄청 멀리 갔다니까요? 몇 달 못 돌아온다고 하던데?”
“어헝?”
제갈운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몇 달 동안 집을 비운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면 미리 언질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
“듣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제갈 가주님께 세가를 잘 부탁한다고 전해 달라고 했어요.”
쿵!
제갈운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그것은 제갈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퀭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없는 장원은 너무나도 넓었다.
청소는 물론이고 무엇을 한다 해도 인원이 적을수록 힘들 수밖에 없었다.
시종 하나 없는 이 넓은 장원을 고작 셋이서 지켜야 한다니?
벌써부터 앞일이 막막했다.
“우리 버려진 거야?”
제갈연의 목소리가 제갈운의 마음의 비수를 꽂았다.
* * *
“추문세가라…….”
만후량이 입술을 곱씹으며 어이없이 웃음을 지었다. 추문세가는 오랫동안 만금상단이 뒤를 봐주고 있던 곳이다.
추문원의 능력이 만후량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고, 호남에서 들어오는 자금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런 곳의 자금줄이 끊긴 것은 실로 큰 타격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수하들을 보내어 다시금 호남을 되찾아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던 만후량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기지 못할 싸움을 걸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게다가 시기는 좀 일렀을지라도 추문세가의 몰락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의 주군, 그분의 적이 있는 곳이므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작게 한숨을 쉬며 재차 고개를 젓는 순간.
“잘 생각했다.”
목소리가 들렸다.
짧은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누가 한 말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만후량이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땅을 바라봤다.
얼굴을 바라보는 것조차 불경스럽다는 듯이.
“앉아라.”
“예…….”
“때론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지. 그런 면이 있기에 내 너를 곁에 두는 것이다. 아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혈마의 물음에 만후량이 호흡을 고르며 답했다.
실수나 실언을 하진 않을까 싶어 몸은 극도로 긴장한 상태이며, 손은 공손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움직이지 않았다.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냐?”
“흑풍신마…… 그자의 칼이 언제쯤 호남에 닿겠습니까?”
“하하하! 글쎄다. 성정이 급한 자이니 힘을 되찾는 즉시 움직일 테지.”
호탕하게 웃음 짓는 혈마의 소리를 들으며 만후량은 애써 웃었다.
흑풍신마의 강함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런 이의 힘이 호남에 닿는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하지만, 아직 그는 완성되지 않은 그릇이었다. 그렇기에 그 그릇이 완성되기도 전에 부서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혹, 호남에 있는 그자가 먼저 움직이는 것은?”
“글쎄다…… 아마 그리된다면…….”
혈마가 잠시 뜸을 들이며 고심했다.
흑풍신마의 힘이 강한 것은 사실이나 천 년 전에 천하를 쥐고 흔들었던 혈마와 단우현에 비한다면 조족지혈.
본래의 힘을 되찾지 못한 지금 상황이라면 더더욱 상대가 안 될 터였다.
“짓밟히고 망가지고 부서질 테지. 철저하게…….”
그런 말을 하면서도 혈마는 웃었다.
마치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만후량은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로지 한 사람만이 최고의 적수라 인정하고, 그를 상대하기 위한 강자들을 수없이 끌어들이거나 심지어 만들어 내기까지 하고 있는 혈마가 마치 그 적수를 얕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자를 너무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일까?
“하면 모용혁문을 보내 움직이지 못하도록 흔들어 놓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녀석은 움직이지 않는다. 칼끝이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위협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지.”
“자신감…… 입니까?”
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신이라 불렸던 그자는 자신의 힘이 얼마만큼인지 본인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하여, 누군가 어떤 작당을 한다 해도 콧방귀를 뀌며 지켜보다가 그것을 농락하는 것으로 상대를 유린했다.
그것이 바로 흑풍신마라는 이름을 들먹였음에도, 단우현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이리라.
“하면…… 흑풍신마가 제 힘을 되찾고 그자와 붙는다면 승산이 있다 보십니까?”
“좋은 승부가 될 것이다…… 다만 녀석이 지금까지 보여 준 것이 전부 진심이었다면 말이지.”
혈마는 그런 말을 남기며 게슴츠레 눈을 좁혔다.
* * *
덜컥덜컥-
호남에서 단숨에 중경을 넘어 사천으로 넘어간다. 빠르게 대로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은, 거리가 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밤이긴 하지만 마차는 멈추지 않고 이동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천성이 있었기 때문에, 노숙하는 것보다 그곳에 머무는 편이 좋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괜찮습니까?”
“뭐가 말이냐?”
“그…… 소미를 데리고 가는 것 말입니다.”
장삼태가 불안한 시선으로 말고삐를 잡은 채 뒤를 돌아봤다. 단우현의 품에서 곤히 자고 있는 단소미를 바라보는 눈빛에 걱정이 서렸다.
다른 곳도 아닌 천산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단우현이 벌일 일이 눈에 선했다. 또한 사도학마저 이를 갈고 있는 상황인 만큼, 마교가 뒤집어져도 단단히 뒤집어질 것이다.
그런 위험한 곳에 단소미를 데리고 간다는 것에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러느냐?”
“그거야…….”
‘댁이 가는데 안 벌어질 리가 없잖수?’
그렇게 반문하고 싶었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고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 상황에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단우현의 비웃음이다.
“걱정하지 마라. 네가 생각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테니…….”
‘퍽이나…….’
장삼태는 이런 일에는 단우현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다른 것이라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어떤 일을 해결할 때 그가 직접 나서면 좋은 꼴을 보지 못했던 적이 많은 탓이다.
“한데 제갈 가주를 데리고 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남궁천이 기이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다른 곳도 아닌 천산을 향해 가고 있는 길이다.
제갈운의 지략이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가 되지는 않을 터.
그런 상황에서 굳이 제갈운을 떼어 놓고 갈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아직 추문세가와 호남상단의 일이 완벽히 정리되지 않았다. 그 뒤처리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왜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눈빛을 보내자 남궁천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런 일은 홍원창이나 금은학에게 맡겨 두어도 충분했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능히 해낼 법한 손쉬운 일이니까.
“정말 그게 전부인가?”
남궁천이 묘한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고작 그런 이유로 제갈운을 남겨 둔 것 같지는 않다. 단우현이라면 그의 머리가 얼마나 쓸모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 테니까.
단우현의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그가 시선을 돌려주었으면 하거든.”
순간 착 하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껄껄 웃고 있던 남궁천마저 표정이 굳었다.
단우현의 입가에 맺혀 있는 비릿한 조소(嘲笑), 살짝이기는 하지만 그 웃음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꾸벅꾸벅 잠을 자고 있던 남궁소혜는 물론이고, 권무진과 마장강, 심지어 장삼태까지 주륵 식은땀을 흘리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특히, 남궁천과 사도학의 놀라움은 더 컸다.
지금까지 단우현의 많은 것을 보아 왔다고 자부를 하고 있던 그들이었으나, 지금 보여 준 단면은 그것과는 격이 달랐다.
마치 그가 가지고 있는 진심을 엿본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남궁천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이 분위기를 누그러트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탓이다. 그 생각은 정확했고, 단우현의 기세가 한순간에 사그라졌다.
“본디 칼이란 직접 상대를 겨누어야만 위협적인 법이다. 해서 지금까지 놔두고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남궁천과 사도학은 너무나도 잘 이해했다.
보이지 않는 칼날만큼 위협적인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칼이 직접 목을 찌르기 전까지는 날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한 무딘 칼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날을 벼르고 벼른다 하여도 칼이란 본디 찌르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
칼이 닿지 않은 상대에겐 조금도 위협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위협이 닿아야 움직이는 자들은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고, 어떤 함정이든 부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던 단우현이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단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칼이 닿기 전에 부러트릴 생각이다.”
그 한마디의 무게가 모든 이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철저히.”
단우현은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한없이 자애로운 웃음이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섬뜩함을 안겨 주었다.
저도 모르게 파르르 몸을 떠는 이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