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2
사천 성도로 들어선 단우현은 가장 먼저 객잔을 잡고 그곳에 몸을 눕혔다.
오랫동안 마차를 타고 온 탓에 제대로 몸을 눕히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그 탓인지 오랜만에 누워 보는 침상은 그야말로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했다.
모든 이들이 단잠에 빠지고 곧 날이 밝았다.
가장 먼저 눈을 뜬 것은 단우현이었다.
곁에는 새근새근 잠을 청하고 있는 단소미의 모습을 확인했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천이라…….”
사천 성도.
예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사람들의 복장이나 말투, 행동.
많은 것들이 바뀌었으며 불어오는 바람마저 어딘지 모를 이질감을 주었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지난번 안휘에 갔을 때도 느꼈지만 영 적응되지 않는구나.”
하지만 이조차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으응…….”
그때, 단소미가 꾸물꾸물 손가락을 움직이며 신음을 흘렸다.
나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어 들여다보았더니, 스르륵 하며 눈을 뜨고 똑바로 단우현을 올려다봤다.
“으음…….”
“일어났느냐?”
단소미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눈을 비비며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아직도 잠에 취해 있는 것인지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여기는……?”
“사천 성도다.”
“……?”
단소미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런 곳에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 이내 번뜩 눈이 뜨였다.
“성도!”
“하하, 그래.”
그제야 유람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리 밑에서 곤히 자고 있었던 백묘가 깜짝 놀라 부리나케 구석에 몸을 숨겼다.
꼬리를 바짝 세우는 것을 보니 제법 심하게 놀란 것 같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단소미의 시선은 창밖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우와-.”
탄성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나가 볼 테냐?”
“그래도 돼요?”
“길을 걷는 것에 되고 안 되고 가 어디에 있겠느냐?”
“그럼 나가 볼래요.”
단소미가 환한 웃음으로 창가에서 멀어졌다.
얼굴을 씻고,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벌써 마음이 들뜬 것 같았다.
단우현이 그것을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봤다.
* * *
둘이서 이렇게 길을 걷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던 탓에 신경을 써 주고 싶어도 그럴 겨를이 없었다.
총총걸음으로 앞서 나아가는 단소미의 등을 바라보는 단우현 또한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의 입가에 맺힌 미소 때문인지, 지나가는 여인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제일 먼저 저잣거리를 찾았다.
과연 사천의 성도인지라 그런 것인지 저잣거리의 크기도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서역으로 가기 위한 상인들도 보였으며, 그들을 호위하는 표사들.
낭인들과 무림인들까지 섞여 있는 탓에 인산인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와……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조금 전 사 주었던 꼬치를 입에 물고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단소미가 휘둥그레 눈을 떴다.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은 탓이다.
“그렇구나…….”
단우현 또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단우현이 단소미를 보호하듯 끌어안으며 한 발 내디뎠다. 순간 가볍게 바람이 불어오더니 몰려 있는 사람들 사이로 공간이 생겨났다.
“이리로 가면 될 거 같아요!”
그것을 발견한 단소미가 부리나케 뛰어갔다. 뛰다 넘어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신이 난 단소미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조심…….”
결국 단우현이 조심하라 말을 하려는 순간.
툭 하며 누군가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악!?”
단소미가 쓰러져 바닥에 넘어지기 직전에 어느새 다가온 단우현이 손을 뻗어 붙잡았다.
그러나 부딪친 이는 땅을 뒹굴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 검파를 붙잡는 것이 단우현의 눈에 들어왔다.
“윽?!”
그러나 그자는 차마 검을 뽑지 못한 채 제자리에 굳었다. 마치 무언가가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괜찮으냐?”
“네, 네, 소미는 괜찮아요.”
단소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앞을 바라보니 넘어진 사내아이가 이를 갈며 쏘아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단소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내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이런 씨……!”
불만 가득한 표정에 아이가 단소미를 쏘아봤다. 그 시선에 겁을 먹은 것인지 단소미의 표정 또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괜찮아?”
“뭐?! 너 지금 내가 누구인 줄은 알고 이런 짓을 한 거야?”
그 한 마디에 사내아이 곁에 서 있던 이들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섰다. 딱히 어떻게 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닌 듯하지만, 충분히 사람을 위협할 만한 기세를 뿌리고 있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저 사내아이가 누구인지 아는 이들은 곳곳에서 혀를 찼다.
“큰일 났구먼.”
“그러게 말일세. 하필 걸려도……. 쯧쯧, 또 누구 하나 죽어 나가겠는데?”
곳곳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차마 아이를 건드리진 않을 테니 보호자로 보이는 그가 몰매를 맞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으응?”
그러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단소미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느새 소미는 얼굴에 떠올라 있던 두려움을 지우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장난스레 웃음을 지었다.
“헤헤, 소미는 점쟁이가 아닌걸? 네 이름을 어떻게 알아?”
“억……!”
한순간 사내아이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너무 작아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웃음을 터트리는 게 느껴졌다.
창피함에 치가 떨렸다.
“이, 이년이!”
“안 돼! 그런 말 쓰면 안 된다고 했어! 아이는 좋은 말만 써야 한대!”
뜬금없이 설교를 들은 사내아이가 입술을 씰룩였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설령 무례하기로 유명한 무림인이라 하여도 말이다.
사내아이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너희들! 뭐하는 거야! 내가 이렇게 당하는데도 참고 구경만 하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호위들이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작은 여자아이에게 손대는 건 그리 내키지 않으나, 주인의 명령이라면 칼을 뽑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다.
“원한은 없네만 미안하네. 죽이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게나.”
호위대장 격으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왔다.
주먹을 쥐고 단우현을 바라보는 것이, 아이의 아버지라 생각하고 대신 손을 쓰려는 듯했다.
단우현이 그것을 바라보며 살짝 표정을 뒤틀었다.
그 순간, 단소미가 호위들 앞으로 다가가더니, 사내아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응?”
“뭐…… 뭐야?”
단소미는 세상 물정을 몰랐다.
어린 시절 살던 곳은 척박한 화전민 마을이었고, 그곳에는 촌장만 있을 뿐, 높은 관리들이나 고관대작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또한 악양으로 넘어온 뒤에는 단우현을 만났으며, 높은 사람이라고는 현령밖에 없었는데, 그 또한 단우현을 극진하게 대우했고, 단소미에게도 항상 미소만 보여 주었으니,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을지언정 사과를 하는 입장이 되어 보지 못했다.
오로지 무서운 것은 사도학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최근 친밀해진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한때 홍진랑이 한 말이 있었다.
“잘 들어, 멍청아. 네 아버지 때문에 다들 너한테 굽실거리는 거지만, 다른 데 가서도 그러면 안 돼. 이 세상에는 네 아버지보다 높은 사람들도 있으니까. 잘못하다간 네 아버지만 더 곤란해질걸?”
조금 전,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단소미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소미가 잘못했어요.”
“윽……!”
사내아이가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는 단소미를 바라보곤 할 말을 잃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올리며 울먹이는 얼굴로 쳐다보는 모습이 사내아이의 심금을 울렸다.
“어쩌시겠습니까?”
호위대장이 사내아이에게 물었다.
단소미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했다.
평소라면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고함을 칠 사내아이였으나,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번 더 물어보는 것이 맞다 판단한 것이다.
“크…… 흠! 다, 다음부터는…….”
“다음부터는 뭐?”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순간, 깜짝 놀란 사내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 한 여자아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표정만으로도 사람들의 기를 죽이는 기품이 있었다.
놀란 것은 사내아이만이 아니었다.
그 호위들조차 침을 삼키며 황급히 물러섰다.
또한, 단소미마저 깜짝 놀랐는데,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며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지, 지약아……!?”
“오랜만이야, 소미야!”
앙칼진 소리를 내지르며 지약이 단소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와락 끌어안고 그 작은 볼을 비비며 마음껏 소미를 느꼈다.
“자, 잠깐, 답답해!”
“괜찮아, 괜찮아! 너무 오랜만에 만났는걸!”
정말 기쁜 표정으로 단소미를 끌어안은 채 한동안 놓지 않는 그 광경을 보고, 사내아이는 물론이고 호위들마저 놀랐다.
저 차갑디차가운 아이가 저런 해맑은 웃음을 보이다니? 심지어 두 아이는 무척이나 친한 사이처럼 보이지 않은가?
사내아이는 저승사자를 만난 것처럼 시퍼렇게 표정을 죽였다.
“아…… 아는 사, 사이입니까?”
“응!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친구인걸?”
지약이 슬쩍 떨어지면서 사내아이를 째려봤다.
그냥 친구도 아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친구.
그 말에 사내아이의 표정이 더욱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파르르 입꼬리가 떨리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때, 지약이 싱그러운 미소를 띠며 천천히 다가왔다. 사내아이의 시선에는 그 표정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두려웠다.
이윽고 가까이 다가온 지약이 사내아이의 어깨를 만졌다.
슬쩍 얼굴을 그의 귀에 가져가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조금 있다…… 나 좀 볼래?”
오싹-!
사내아이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