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3
사천 성도 어귀에 있는 다루는 성도 내에서 가장 큰 곳이었다.
악양의 다루처럼 주변을 휘도는 물길은 없었지만, 사방에 피어 있는 꽃들만 보아도 이미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광경이었다.
단우현과 단소미는 그곳에 앉아 있다.
눈앞의 탁자에는 향 좋은 차들이 놓여 있었다.
“대단하군.”
단우현의 시선이 다루를 둘러봤다. 좋은 것도 좋은 것이지만 내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더욱 놀랄 만한 일이었다.
마치 다루를 통째로 빌린 것 같은 느낌.
아니, 느낌이 아니라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에요. 아저씨 취향은 잘 모르겠어서 말이죠.”
지약이 살짝 웃음을 지었다.
호남에서 살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 보았지만, 단소미의 아버지인 단우현만큼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매일 무표정이었기 때문이지만, 그의 성정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 조금 더 정답일 거다.
“와아…… 사천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
단소미가 맛조차 모르는 차를 마셨다. 다소 떨떠름한 맛이긴 했지만, 비싼 것이라 하니 일단은 마셔야겠다는 생각만 있는 것 같았다.
“응! 사천에서 가장 유명한 다루인걸. 소미를 위해 특별히 온 거야.”
“그런데 왜 사람이 없어? 유명하면 사람이 많아야 하는 거 아니야?”
지약이 다소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이곳으로 오기 전 사람을 보내 손님을 전부 내보냈고, 상당한 돈을 들여 다루를 통째로 빌린 탓에 누구도 들어오지 못했다.
장사가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다.
“오…… 오늘은 사람이 없는 거야. 원래 줄을 설 정도로 엄-청 오래 기다려야 하거든…….”
“그렇구나…….”
단소미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수긍했다.
지약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다소 식은땀을 흘리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 날씨가 조금 더운 탓인가 보다 하며 넘겼다.
“그런데 사천에는 왜 있는 거야?”
“으음…… 너야말로 왜 있는 거야? 여긴 은근히 위험하다고.”
지약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물었다.
사천은 정파의 영역이고 청성을 비롯하여 아미, 사천당문까지, 구파일방과 팔대세가의 세력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따지고 보자면 어쩌면 중원에서 이보다 안전한 곳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바로 사천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팔대세가가 무림맹을 탈퇴하고 천도회를 만들었으며, 청성과 아미는 그것을 고깝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여, 이 세 곳이 틈만 나면 충돌하였으니,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흉흉함이 넘쳐 났다.
구파일방을 따르는 자들과 팔대세가를 따르는 자들.
그런 이들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아빠랑 유람! 헤헤, 더 먼 곳으로 간대!”
“조, 좋겠네…….”
지약이 힐끗 단우현을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여전히 표정하나 바꾸지 않은 채 차를 마시고 있는 그는 보는 것만으로도 거북함이 몰려들었다.
“아…… 그런데 저 애는……?”
단소미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힐끗 한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조금 전 호위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든 채, 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들고 있는 사내아이와 호위들이 보였다.
팔이 떨리는지 부들거렸다.
지약이 싱긋 웃었다.
“괜찮아. 저게 무공 단련이래. 하루에도 몇 시진씩 저러고 있더라고.”
“으응…… 힘들어 보이네.”
단소미가 주륵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벌을 받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저 사람들이 지약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의문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사천에는 무슨 일이더냐? 보아하니 너 혼자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단우현의 시선이 지약의 시선과 마주했다.
틀림없이 단소미와 비슷한 나이, 한참이나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냉정했다.
윽! 하며 지약이 작은 신음을 흘렸다.
단우현의 눈빛에는 저쪽에 있는 사내아이와 호위들만이 아닌, 숨어 있는 그림자들마저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그게 있잖아요, 아저씨. 지약이는 딱히 나쁜 짓을 하러 온 게 아니에요.”
“안다.”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보는 것 좀 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지약은 꾹 참았다.
어쩌면 아버지나 백부와 있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실은 보…… 보물찾기를 하러…….”
“보물찾기?”
지약이 우물쭈물하며 주섬주섬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곱게 접혀 있는 그것을 천천히 펼쳐 내자, 커다란 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사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백부님네 집에서 발견한 건데요! 분명 엄청난 게 잠들어 있을 거예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지약이 양손으로 탁! 하며 탁자를 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험심 가득한 그 표정에 단우현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탁자에 놓인 지도를 바라봤다.
확실히 사천 어딘가를 가리키기는 하는 것 같다.
아니, 조금 더 명확히 이야기를 하자면, 엉성하게 그려져 있는 이 낙서 같은 그림이 마치 사천 성도 인근을 그려 놓은 것 같다는 뜻이다.
“이것을 찾으러 호남에서 이곳까지 왔느냐?”
“저, 저도…… 아버님의 유람을 따라왔어요.”
지약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온 것은 맞다.
다만 지도가 이 자그마한 아이의 손에 있는 것을 보니,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본인이 찾으려 했으리라.
단우현이 어이없어 하며 웃자 지약이 푹 고개를 숙였다.
“하…… 하지만 지약이라면 혼자서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다 사고가 나지.”
단우현이 지그시 지약을 바라봤다.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유람을 하는 곳도 사천이니 이것을 찾아 아버지를 기쁘게 해 줄 요량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가문을 이끌어 가는 가장은 자식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제법 어른스러운 아이인 것 같았으나, 이제 보니 영락없이 어린아이였다.
“도와줄게!”
그때, 단소미가 후다닥 다가가 지약의 손을 붙잡았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소미는 도와줄 생각이 가득했다.
말려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단우현이 지그시 지도를 살펴봤다.
과거의 일이 머릿속을 강하게 자극했다.
슬쩍 고개를 돌린 단우현이 손을 들고 있는 호위대장을 바라봤다.
“데려와야 할 사람이 있는데…….”
* * *
“뭐라굽쇼?”
어느새 불려 온 장삼태가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 행동에 두 어린아이의 고개가 따라 돌아갔다.
특히 지약의 눈빛은 별을 머금은 것처럼 반짝였다.
장삼태의 민머리가 이 작은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네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느닷없이 끌려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는 단우현을 보며 장삼태는 인상을 썼다. 그러나 아직 잘못한 것이 떠오르지 않으니, 가만 지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
“진짜라니까요?”
붕붕 고개를 내저으며 기겁했다.
그러자 두 아이의 고개 또한 자연스럽게 내저어졌다. 민머리를 따라 움직이는 그 모습이 제법 우스꽝스러웠다.
“그럼 네 전대의 것이냐?”
“아닙니다! 진짜로요! 우리 사문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요!”
만약 이 지도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사문은 물론이고 자신 또한 아작이 날 것임을 잘 알았다.
기실 지난번 일로 인하여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놀라운 상황이었다.
“어…… 어느 놈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척 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래 된 것 같습니다만?”
장삼태가 이리저리 지도를 살폈다.
힘 줘서 건드리면 바스러질 정도로 오래 되었다. 애초에 종이의 질이 좋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만한 세월이 흐른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꽤 많은 지도를 봐 왔지만 이만큼 오래 된 건 처음 봅니다. 이삼백 년은 족히 될 것 같습니다. 이걸 어디서 구한 것입니까?”
장삼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아침까지만 해도 그저 산책을 나간다는 표정으로 객잔을 나섰는데, 느닷없이 지약이라는 아이와 이런 귀중해 보이는 지도를 손에 넣었다.
어쩌면 이 인간이 단소미보다 더 운이 좋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부님 집에서…….”
“아니, 숙부라는 사람의 집이 얼마나 좋으면 이렇게 완벽하게 보관을 하고 있었담?”
“아…… 하하…….”
지약이 슥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 집에 수백 년 된 것들이 한둘이어야지.
더군다나 보관하는 방법 따위는 알지도 못했다.
그곳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수는 두 손가락을 다 합친다 해도 모자랄 정도일 테니까.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느냐?”
“그걸 제가 어찌 압니까?”
장삼태가 휘둥그레 눈을 뜨며 물었다.
애초에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수수께끼를 풀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척하면 착하며 대답이 나올 머리가 필요했다면, 애초에 장삼태가 아니라 호남에 있는 제갈운을 불렀어야 함이 맞았다.
“쓸모없기는…….”
“…….”
장삼태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한순간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주먹이 날아갈 뻔했다. 만약 그랬다면 목이 떨어졌을 테니, 극한의 인내로 참아 냈다.
“크큼! 그럼 장주님은 아십니까?”
“글쎄다…….”
단우현은 가만 지도를 바라봤다.
모양새는 틀림없이 사천을 가리키고 있다. 숲인지 산인지는 모르겠으나, 난잡하게 그려져 있는 그것들은 도통 무엇을 가리키고 무엇을 숨겨 놓았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달칵-!
“아?!”
찻잔을 향해 손을 뻗었던 단소미가 작은 소리를 냈다.
손을 너무 세게 뻗는 바람에 찻물이 엎어졌다. 순식간에 탁자를 적신 그것은, 어떻게 할 겨를도 없이 지도를 흠뻑 적셨다.
그 순간 지도의 모습이 점차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검게 물든 지도의 상단에는 기이한 문양이 나타났고, 낙서처럼 그려져 있던 지도가 마치 무언가를 가리키듯 뚜렷한 표시를 드러냈다.
“이, 이것은……?”
장삼태가 휘둥그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상단에 보이는 표식이었다.
마치 어떤 단체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흉흉한 귀신이 아수라를 집어 삼키는 형상이었다.
바라보는 이들을 더욱 기겁하게 만드는 것은, 틀림없이 붓과 먹으로 그려진 것이 분명한데, 물이 스며드는 순간 모든 선들이 붉게 변했다는 것이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오싹함이 감돌았다.
바라보고 있던 두 아이마저 시퍼렇게 질렸다.
단우현이 가만 그것을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이건 내가 가져가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