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4
그로부터 며칠 뒤, 사천성도에 머물고 있었던 단우현은 마차를 타고 다시금 이동을 시작했다. 먼 거리이니 만큼 짧게 쉬고 움직이려 했던 것을, 지약 탓에 발목이 잡혀 이틀이나 더 시간을 허비했다.
다그닥- 다그닥-
마부석에 앉아 있는 장삼태는 고개를 돌렸다. 마차 안이 아닌 마부석에 앉아 있는 단우현의 모습을 제법 신기하게 바라봤다.
바람을 쐬고 싶다는 말하였는데, 이미 한 시진 동안 앉아 있었으니 충분히 쐰 것 아닌가?
함께 앉아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니 이제 그만 들어가 주었으면 했다.
장삼태가 조금 올라온 머리를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장주님.”
“뭐냐?”
“그게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간 단우현의 기분이 영 좋지 않아 보이던 탓에 차마 질문을 던질 수가 없었다. 가져간 지도를 품에 고이 넣은 뒤로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무언가 단우현의 과거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알 것 없다. 알아 봐야 좋은 것도 아니니.”
“하하! 그럼 몰라도 됩니다. 암요! 세상은 몰라도 되는 게 너무 많지 않습니까?”
장삼태가 히죽 웃음을 지으며 말을 몰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 한 말이다.
장삼태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와 관련이 있을 거다. 그렇다면 궁금해 하면 안 되는 것이고, 또한 깊게 관여해서도 안 되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지약이, 그 아이는 대체 누구입니까? 제법 이름 있는 집안의 아이로 보이는데…… 겁도 없는지 혼자 다니고 말입니다.”
“아직 멀었구나. 그 아이 주변에 숨어 있는 그림자들만 스물이 넘었다. 하나같이 일류와 절정고수들로만 말이지.”
“엑?”
아직 기감을 읽는 것에 약한 장삼태에겐 그저 아이 혼자 다니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묘한 기척들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이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장삼태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헛기침했다.
“그…… 그런 이들이 숨어 있었습니까? 어쨌든 그렇다면 정말 엄청난 집안의…….”
“호남 왕야의 친딸이다.”
“엑?!”
조금 전 놀란 것보다 더욱 눈동자가 커졌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 인간이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호…… 호남왕부의 치…… 친딸이라면……?”
장삼태가 더듬더듬 하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영친왕의 딸이에요. 그 말은 곧 군주라는 소리죠. 더군다나 호남왕야는 현 황제의 동생이고, 상당히 돈독한 사이니, 그 권력이 오죽 강할까요?”
장삼태는 머리를 굴렸다.
“그렇다면 지약이 황제조차 애지중지한다는 그 군주란 말입니까!?”
당황한 장삼태가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단우현에게 물어봐도 그건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서다. 남궁소혜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군주가 맞을 거예요. 지난번 왕부에 갔을 때 언뜻 봤거든요. 꽤 당황하던걸요.”
일전에 호남왕부에 갔을 때를 떠올리며 남궁소혜는 웃음을 지었다. 소미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내가…… 그런 분을 알고 지내다니…….”
꿀꺽 하며 장삼태가 마른침을 넘겼다.
소미가 학당에 다닐 때나, 악양에서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바래다 준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지약에게 호통을 치거나 무례를 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장삼태는 슥 목을 쓰다듬었다.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이내 아! 하고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래그래, 왕야가 대수냐? 옆에는 그보다 더한 놈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왕족보다는 곁에 있는 단우현이 무서웠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으니까.
더군다나 단우현이라면 왕족이니 황족이니 신경조차 쓰지 않게 잘근잘근 밟아 씹어먹을 것 같은 귀신이었다.
퍽!
“아이코-!”
“앞을 보아라. 마차가 흔들리지 않으냐.”
“그렇다고 때리기는…….”
장삼태가 고통이 엄습해 오는 뒤통수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단순히 앞을 보지 않아 때린 것이 아닐 거다. 아마도 마음을 읽었을 것이라 확신을 하며 모든 생각을 접었다.
이럴 때는 그냥 무념무상(無念無想)을 유지하는 편이 좋았다.
“그건 그렇고 정말 시끄럽네요.”
남궁소혜가 자그마한 입술을 들썩이며 한숨을 쉬었다. 천도회와 무림맹이 갈라지며 중원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두 단체가 직접적으로 부딪치지는 않지만,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는 탓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평화로운 무림만 보았던 남궁소혜의 입장에선 다소 적응되지 않는 일이었다.
“본래 무림이란 시끄러운 법이다. 그래야 칼을 휘두르는 맛이 나지.”
“그런 건가요?”
“그래. 예전이었다면 말이지.”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눈을 붙이는 것인지 잘은 알 수 없었지만, 남궁소혜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한 채 어깨를 으쓱했다.
세차게 달려가고 있는 마차 안으로 휑한 바람이 불었다.
* * *
“후우…… 드디어 갔네요.”
지약은 저 멀리 사라지는 마차를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소미를 떠나보내는 것이 몹시 아쉽기는 했지만, 그 아이에게는 그 아이의 여정이 있는 법이다.
마음 같아선 따라가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신세가 한스러웠다.
하다못해 단우현과 아버지가 친하기라도 했다면 어떻게든 말을 꺼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지난 이틀간 두 사람은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너무 바쁜 탓이다.
“도대체 그게 뭐였을까요?”
총총걸음으로 왕부를 향해 돌아가며 입을 뗐다. 누군가 곁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을 거는 그 모습은 제법 이상했다.
하지만 빈 공간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렸다.
-알 수는 없습니다만…… 단우현이라는 자와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소미의 아버지 말이죠?”
지약이 단우현을 떠올리며 끄응 신음을 삼켰다.
지도를 빼앗긴 것이 무척 억울하기는 하지만,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혼쭐을 내 주었을 테지만, 소미의 아버지인 단우현에게만큼은 불가능했다.
사실 지약에게 있어선 아버지나 백부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단소미의 친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소미에게 듣기도 하였지만 이미 그 전에 조사해 보았기 때문이다.
황실의 땅을 마치 제 땅처럼 쓰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단우현이 나타난 시점부터 악양의 치안이 몹시 좋아진 것도 있었다.
물론 어린 그녀가 조사를 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조사를 시켰고, 그 결과물을 들은 전해 들은 것이다.
“무섭죠?”
-……그리 물으신다면 무섭고 두렵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인가요?”
지약은 지금 말을 하고 있는 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잘 알았다.
황실 제일의 고수라 불리며 한때 금의위를 진두지휘했던 전 금의위지휘사(錦衣衛指揮使).
그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것으로 설명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희의 존재를 꿰뚫어 봤습니다. 가끔 주위를 둘러보듯 하며 눈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 마치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습니다.
“그, 그래요,?”
지약이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정말로 무서워 보이기는 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결국 그 지도의 비밀을 풀지도 못하고 날려 먹긴 했지만, 소미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지약이 왕부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한 발 내딛고 후우 숨을 고른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움찔-!
그곳에는 한 사내아이가 멀뚱멀뚱 서 있었다.
“엄청 편히 잘 잤나 보네. 얼굴이 반들반들해. 잘 쉬었어?”
“아, 아니, 그게 말입니다…….”
사내아이는 흠칫 몸을 떨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사천성을 다스리는 왕야의 아들.
그러나 지약의 아버지보다 권력이 약하고, 현 황제의 친형제가 아니라, 이복형제이므로 지약에게 함부로 대들지 못했다.
지약, 아니 주지약이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왔다.
“일단 머리 좀 박을래?”
“네넵!”
사내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맨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주지약이 우아하게 사내아이의 등에 올라타며 후우- 한숨을 쉬었다.
“좋은 여행이 되어야 할 텐데…….”
“끄으으으…….”
사내의 고통 어린 신음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 * *
“이거…… 참…….”
불타는 전경을 바라보고 있는 두 승려가 있었다.
그들은 목탁을 두드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한탄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의 살이 타는 냄새가 지독할 만큼 바람을 타고 왔다.
“대곤륜이…….”
불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곤륜파.
구파일방의 한 축이자 오랫동안 이 청해의 수호자로서 군림해 온 자들.
서쪽으로는 마교를 틀어막고 남쪽으로는 세외를 막아섰으며, 북쪽으로는 포달랍궁을 견제하던 정파의 든든한 기둥.
그런 곤륜파가 불타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두 승려는 한탄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이리도 많은 이들이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지는데, 하늘은 어찌하여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아니하는가?
와르르-!
불타고 있던 곤륜파의 전각이 무너졌다.
불길은 더욱 사납게 날뛰었고, 불어오는 바람은 그것을 더욱 부채질했다.
화마(火魔)가 들러붙은 것처럼 결코 꺼질 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였단 말인가.”
“곤륜은 청해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데…… 이곳이 무너졌다는 것은…….”
두 승려가 동시에 서쪽을 바라봤다.
시선 끝에 보이지도 않을 천산마교의 모습이 그려졌다. 지금 이 곤륜의 참사는 그들이 중원으로 나서겠다는 선전포고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무언가가 있단 말인가?
아무런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승려들은 머리가 아팠다.
“어쩌면 최근 날뛴다는 흡혈신마의 짓일지도 모릅니다.”
흡혈신마라는 말에 두 사람의 눈빛이 좁아졌다.
포달랍궁에서 이곳 청해까지, 얼마나 긴 여정이었는가? 그것이 전부 그 흡혈신마를 붙잡기 위함이었다.
하나, 불타고 있는 곤륜에선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설령 저 불길이 꺼진다 하더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이 남아 있을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두 승이 고개를 숙이며 염불을 외웠다.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죽은 이들의 넋을 빌어 주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