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1
툇마루에 주저앉은 화소미는 양손에 만두를 꼭 쥔 채 입에 야금야금 넣고 있었다. 저잣거리에서 파는 것이 아닌, 장삼태가 직접 만들어 준 것이기에 더욱 맛있는지 벌써 세 개째 먹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홍원창은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저 아이가 며느리로 들어온다면……?’
고작해야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였지만 장래를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훌륭하게 성장할 것 같았다.
수줍음이 많은 것이 다소 흠이기는 하지만, 저 아이가 가지고 있는 배경은 그러한 단점 따위는 단숨에 짓누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더군다나 은근히 귀엽다.
본디 사내자식보다는 딸을 원했던 홍원창으로서는 저 화소미라는 아이가 며느리로 들어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문제는 내 자식이 못났다는 건데…….’
홍원창은 가만히 아들을 떠올려 봤다.
악양의 현령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아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무공 수련을 하면서 일곱 살이지만 정말로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는 데다, 악양의 어린아이들을 수하 부리듯 한다.
과연 화소미가 그놈을 마음에 들어 할까?
결론은 ‘아니다’였다.
저 아이의 얌전한 성격으로 보건대 아들과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오?”
“흐음, 저 화소미라는 아이 말일세.”
“소미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소?”
“우리 며느리로 들인다면…….”
“지랄도 풍년이오. 그런 소리를 장주님께 했다간 당장 관아를 뒤집어엎어 버릴 것이오.”
오싹-
한순간이지만 홍원창은 정말로 소름이 돋았다.
단우현의 성격을, 그리고 그의 힘을 눈앞에서 목도한 홍원창이다.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다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것 또한 익히 알고 있다.
홍원창이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물론…… 농일세.”
“농으로만 생각하쇼. 괜히 건드렸다간 목숨이 아홉 개라도 모자랄 테니.”
“커험!”
“그래도 뭐, 저 아이가 잘나긴 했지. 인물 좋지, 배경 좋지. 조금 더 크면 학당에도 보낼 터인데 머리가 좋으니 글 실력도 좋지 않겠소? 암, 최고의 신붓감이고말고.”
“큼! 우리 아들도 최고의 신랑감이네. 얼굴은 그럭저럭 되는 데다 싸움도 잘하지. 비록 머리가 비긴 했지만 그만한 놈이 없어.”
욕을 하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장삼태가 묘한 시선으로 홍원창을 바라봤다.
뭐라 한마디 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계속해서 화소미를 칭찬하다간, 이 양반의 아들이 너무나도 불쌍해질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겐가?”
“저 아이 간식을 만들어 주고 수련 좀 하다 왔소.”
수련이라는 말에 홍원창이 눈을 반짝 빛냈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그 또한 과거에는 무림인을 꿈꿨던 자.
비록 지금은 현령으로서 나름대로 자부심 또한 있지만, 아직 그러한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이번 일로 인하여 무공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졌으니, 단우현이 직접 알려 준 무공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커컴! 그것 말인가? 단 대협께서 알려 주었다던?”
“알려 주긴 개뿔, 그냥 저잣거리에서 파는 비급이라 하지 않았소?”
“그래도 조언을 해 주시고 자네가 그것을 적었다면서?”
“그래 봐야 삼류 무공이오.”
홍원창은 피식 웃었다.
이놈, 단우현의 한마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작해야 삼류 무공이라고는 하지만 그 가치가 억만금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홍원창이 주섬주섬 품에서 은자 하나를 꺼냈다.
“이것을 줄 테니 내주게나.”
“꺼지쇼.”
“아니, 이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막말을 뱉는 것이야! 그런 비급은 저잣거리에서 새로 사면 되지 않으냐.”
“그럼 그쪽이나 새로 사쇼. 난 필요 없으니.”
장삼태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홍원창이 돈을 주고 사려는 것을 보니 그 삼류 무공비급이 제법 돈이 된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물론 원래부터 줄 생각 따위는 눈곱만치도 없었지만 이렇게 되면 최대한 이익을 뽑아야 했다.
“거참…… 그럼 열 냥은 어떤가?”
“스무 냥을 줘도 모자랄 판국에 열 냥이 뭐요?”
크윽- 하며 홍원창이 얼굴을 붉혔다.
홍원창도 그제야 장삼태가 자신의 생각을 읽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된다면 의도치 않게 많은 돈을 내주어야 할 듯했다.
하지만 단우현의 말이 적혀 있는 비급이라면 그 정도 가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홍원창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내 은자 스물닷 냥에 사겠네.”
“주쇼.”
“지금은 없으니 나중에 관아로 찾으러 오게나.”
“흥,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거요? 돈 가져오면 드리리다.”
‘이 새끼가?’
홍원창의 잔뜩 붉어진 얼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장삼태는 콧방귀를 뀌고, 홍원창은 분노를 삼켰다.
그런 두 사람을 가만 바라보던 화소미는 재미가 없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장삼태가 있고 홍원창이 있다. 분명 사람의 숫자는 전과 같은데 이상할 정도로 휑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 이유를 이 작은 아이는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단우현의 부재였다.
어디로 갔을까?
자신에겐 말도 없이 떠났기에 불안한 마음을 쉽게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은 아닌지, 아니면 어디 가서 해코지라도 당한 것은 아닌지.
장삼태는 물론이고 홍원창까지 아무런 말을 해 주지 않으니 그 불안한 마음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다른 아이들보다 몇 배나 성숙한 화소미도 단우현이 오래 보이지 않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드는지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흑…….”
“아이고, 소미야! 무슨 일이냐! 울지 마라, 울지 마!”
“우쭈쭈! 뚝-! 뚝-!”
건장한 사내 두 사람이 어린아이 하나를 달래기 위해 장원이 크게 들썩이는 순간이었다.
* * *
장원을 벗어난 단우현은 산길을 타고 움직이며 방추곡이 이야기했던 장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먼 데다 장소 또한 불분명한 탓에 쉽게 찾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았다.
“장원에만 박혀 있다 이리 나오니 제법 신기하군.”
옛 생각이 조금 나는 듯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중원 곳곳을 홀로 돌아다닐 그 무렵 말이다. 가슴에는 세상을 품었고 두 주먹에는 사내의 꿈을 품었다.
홀로 이러한 길을 걸으며 밤이건 낮이건 풍경을 볼 새도 없이 무공에만 빠져들었을 때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것 또한 삶의 재미 중 하나이지 않을까?
물론 이런 것도 재미다.
사사삭-!
일단의 무리들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길을 틀어막고 칼을 겨누었다.
험악한 인상, 수많은 무리로 보아 평범한 자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자들도 아니었다.
그래서 흔히 이렇게 말을 한다.
산적 나부랭이라고.
“이런 것도 또 오랜만이군.”
무수히 많이 부딪쳤다.
사실 어린 시절 그의 무공 실력을 올려 준 것은 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후에는 이놈들이 단우현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녹림십팔채라는 것을 만들어 우르르 몰려다닌 적도 있었다.
“하하하! 이놈! 길을 지나가려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라.”
“흔해 빠진 말은 변함이 없구나.”
이 또한 과거의 잔상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놈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 하는 행동거지들은 천 년 전 그놈들과 비교해도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다소 퇴보한 것도 같다. 그때 그놈들은 눈치라도 있었으니까.
“무엇하느냐!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가진 것을 다 내놓지 않고!”
“가진 것이 없는데?”
“뭐……?”
뜬금없는 말에 산적들이 당황하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백의 장삼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이 다소 빈곤해 보였다.
옷은 조금 낡아 있었다. 게다가 봇짐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니 짐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꼴을 보아하니 전낭 하나 차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뭐…… 뭐야, 네 녀석. 무슨 생각으로 산길을 걷는 거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산세를 보고 있었지.”
부드러운 한마디에 산적들은 할 말을 잃었다. 단우현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의 심금을 울리고 알게 모르게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던 탓이다.
채주로 보이는 사내가 큼, 하며 헛기침을 뱉었다.
“이놈아, 이 길은 산적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야. 돈 없이 함부로 오갔다간 당장 죽어도 원망할 수 없다고.”
“하하, 충고해 주는 건가? 고맙군. 앞으로 참고하겠다.”
산적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고맙게 받아들이는 단우현의 행동에 채주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평생 이 짓만 해 왔던 그였지만, 그래도 사람의 인성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천자산으로 가는 길이 이곳이 맞나?”
“천자산? 그 무서운 곳으로 가려고? 이놈, 이제 보니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먼.”
채주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호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천자산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올 수 없는 곳.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위험한 이유는 그것과는 좀 달랐다.
귀신이 붙은 곳.
혹은 죽음의 산.
그곳이 바로 천자산이다.
“잘 들어라, 이 멍청아.”
“그래, 말해 보거라.”
“천자산은 말이다, 호남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왜?”
“……그냥 위험한 곳이다.”
이유 따위를 알 리가 있나?
직접 들어가 본 것도 아니고.
채주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다 위험하다고 하니까 그 또한 위험하다 생각하는 것이지,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저…… 채주.”
“뭐야?”
“안 뺏습니까?”
수하의 말에 채주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있는 이 사내가 워낙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탓에 홀딱 넘어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산적이다.
그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이 없다면.
퍽-!
채주는 칼을 바닥에 거칠게 꽂으며 눈을 부리부리 매섭게 치켜떴다. 그러곤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놈! 가진 것이 없다면 홀딱 벗고 가거라!”
“상관은 없다만 그보다 조심하는 게 좋을 텐데…….”
“뭐?”
또다시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 들렸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찰나,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산적들은 깜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채, 채주, 저쪽에!”
누군가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거리가 너무 먼 탓에 자세히 보이지 않았으나,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니 흐릿하기는 하나 인영의 정체가 드러났다.
여인이었다.
여인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매섭게 달려왔다. 그러곤 산적들을 바라보며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이 녀석들! 산적이렷다?”
여인은 고함을 지르며 말에서 몸을 날렸다.
그 모습은 한 마리의 비조를 보는 것처럼 화려했다. 어찌 사람이 저리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는지, 그리고 허공에서 몸을 날리면서 검을 뽑을 수 있는지, 산적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슥-
그때 단우현이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동시에.
촤아악-!
여인의 칼날이 산적들을 향해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