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13
한때, 흑풍신마 그는 언제나 고고했다.
천산마교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무렵, 이 땅은 그야말로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어느 누구 하나 세력을 만들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야망과 힘이 넘치는 이들이 모여 피를 뿌렸다.
이 땅은 무림인들을 위한 곳이었으며, 칼을 쥘지 모르는 이들은 접근조차 하지 않는 생지옥이었다.
그런 곳에서 흑풍신마는 그 이름을 날렸다.
단순히 욕망을 이루기 위해 힘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피린내 나는 지옥을 끝내자, 다른 곳처럼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 보자는 이유였다.
그 당시 어깨에 힘을 줬던 이들을 모조리 꺾었으며, 그렇게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자, 그의 앞에 무릎 꿇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지금은 삼천이라 불리는 천무광을 알게 된 것도 바로 그때쯤이었다.
그 당시의 천무광은 흑풍신마에 비하면 약했고, 충성심도 강했다.
그런 상황에서 소문을 들었다.
중원에 나타난 무신이라는 자에 대한 소문을.
수많은 강자들을 꺾고 천하를 피로 물들인 자.
무신(武神), 무극신마(武極神魔), 투귀(鬪鬼) 등.
그 이름 앞에 붙은 별호가 너무나도 많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혈마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도 그때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흥미를 가진 것이 흑풍신마의 실수였다.
이 땅을 평정한 뒤, 마교를 세우고 자신의 힘이 천하제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생지옥이라 불리던 곳을 일통하였으니 그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지 않을 리가 없었다.
흑풍신마는 수하들과 함께 마교 역사상 첫 중원 정벌을 하기 위해 움직였고, 최대의 목적은 무극신마라 불리는 이를 꺾고 수족으로 삼거나, 목을 쳐 내는 것이었다.
자신이 천하제일임을 증명하기 위해.
마교의 진격을 막아 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중원에도 뛰어난 고수들이 많았으나, 하나의 세력으로 뭉치지 못하였고, 앞으로 나서서 통솔할 만한 인물도 없었으니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마교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고 단숨에 온 중원을 집어삼킬 듯했다.
그러다 마주했다.
청해에서 사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통해 수많은 마교도들이 사천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길 한가운데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자를 말이다.
그자는 천살성임을 증명하듯 붉은 눈동자를 형형하게 빛냈으며, 수많은 마교도들과 흑풍신마를 눈앞에 두고도 여유를 잃지 않는 얼굴.
무료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마교도들을 바라보며, 가지런히 내려놓았던 검을 만지작거리는 그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흑풍신마가 난생처음으로, 겨루어 보지도 않은 이에게 겁을 먹은 순간이었다.
“후우…….”
흑풍신마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몸을 젖혔다.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했다.
기세등등했던 전력의 절반을 잃었으며, 흑풍신마 또한 그 싸움에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그 모든 일들이 오로지 한 사람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흑풍신마는 혈마에 대한 증오심으로 그를 뛰어넘고자 노력했지만, 지금도 무신을 상대로는 그저 두려움에 떨 뿐이었다.
‘새로이 눈을 뜨며 보았던 혈마도 분명 강했지만…….’
무언가 고민하던 흑풍신마는 이내 한숨을 쉬었다.
이제 와 그런 것을 생각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은 자신에게 치욕을 준 혈마를 죽이기 위해, 힘을 쌓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 과정에서 다시 이 중원을 피로 물들여야 할지라도!
끼이이익-!
그때, 누구도 부르지 않았건만 그가 앉아 있는 방의 문이 열렸다.
드넓은 내실로 누군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한순간에 깨뜨렸다.
순간, 흑풍신마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감히 허락도 없이 다가오는 이를 죽이려 했던 그의 손은 돌덩이가 된 것처럼 멈췄고, 입에서는 그 어떤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분명 내부는 어두웠지만 어둠쯤은 그를 알아보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흑풍신마는 뚜렷하게 드러난 상대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켰다.
“어째서 네놈이…….”
이제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
난생처음으로 두려움과 공포를 알려 준 자.
천 년 전, 모든 무인들의 경외를 받았던 자.
흑풍신마의 손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틀림없이 환상이라 생각하며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써 보았지만, 오히려 정신이 맑아질수록 이것이 현실임을 직시하게 되었다.
“오랜만이구나. 이렇게 얼굴을 보는 건 천 년 만인가?”
단우현의 목소리가 흑풍신마를 현실로 끌고 왔다.
* * *
먼 곳에서 바라보는 천산마교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을 만큼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곳을 살피는 남궁소혜는 무척 진지한 표정이었다.
십만마도가 모여 있는 복마전.
그런 곳에 고작 셋이서 들어갔으니, 혹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 같았다.
결국 참다못한 남궁소혜가 검을 들었다.
“우리가 도와…….”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당장이라도 달려가려는 남궁소혜에게 권무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는 조소가 걸려 있었다.
명백히 남궁소혜를 비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궁소혜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
그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맞는 말이네. 우리가 가 봐야 발목만 잡지 않으면 다행이지. 뭐라도 할 수나 있겠어?”
장삼태가 모닥불을 피우며 중얼거린 것이다.
슬슬 날이 저물 시간이니, 곧 돌아올 이들을 위해 저녁이라도 준비하려는 듯했다. 그 느긋한 모습에 남궁소혜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제외하면 다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장주님이 왜 우리를 데리고 여기까지 온 거 같아?”
“그거야…… 힘이 필요하니까……?”
남궁소혜의 대답에 권무진과 장삼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뛰어난 여인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상황을 읽는 눈이 부족했다.
“멍청하긴!”
“뭐라고요!?”
“생각을 좀 하라고, 이 멍청아! 네 할아버지나 사 어르신이 그냥 고수냐? 아주 엄청난 고수란 말이야. 거기다 우리 장주님까지! 이 세 명이 뭘 할 때, 우리의 힘이 필요하겠냐?”
그야 물론 아니었다.
남궁소혜 또한 그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왜 자신들을 데려왔단 말인가.
예전처럼 장원을 맡겨 놓고 자기들끼리 갔다 오면 그만인 것을.
남궁소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장삼태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아이고, 이 답답아.”
그가 고된 여행 탓에 잠을 자고 있는 소미를 가리켰다.
“우리는 저 아이의 보모(保母) 역할로 따라온 거다. 혹시라도 장주님 없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면 소미를 지키면서 시간을 끌라고 말이야.”
“엑?”
“그것도 몰랐어?”
“아, 아니,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딱 보면 답 나오지! 아무튼 죽어도 걱정은 하지 마라. 장주님이 복수는 해 줄 테니.”
남궁소혜가 지끈거리는 미간을 부여잡았다.
가만 생각을 해 보면 장삼태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만큼 단소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화가 나는 취급이었다.
“그럴 거면 소미를 안 데려왔으면 되잖아요?”
“부모 마음을 전혀 모르는군.”
권무진이 한숨을 쉬었다.
“뭐…… 뭐가요?”
“악양에서 천산까지는 무척 먼 거리다. 그 긴 시간 동안 아이와 떨어져 있는 게 더 불안하지 않을까?”
“윽…….”
“이제야 좀 알겠냐?”
“몰라요!”
결국 두 사람의 비난을 받은 남궁소혜는 한껏 붉어진 얼굴로 오두막에 들어갔다.
두 사람이 피식 하며 웃었다.
“남궁세가의 앞날이 걱정이네, 걱정이야.”
“너무 그러지 마라. 아직 어려서 경험이 부족할 뿐이니까.”
권무진은 남궁소혜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녀도 성장하면 더 나아질 것이다.
그때, 장삼태의 묘한 시선이 꽂혔다.
권무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또 뭐냐?”
“혹시 좋아하슈?”
히죽히죽-
장삼태는 마치 약점이라도 잡았다는 듯 입가를 들썩였다.
권무진은 가만히 장삼태를 바라봤다.
정말로 가끔, 가끔 저놈의 혓바닥을 뽑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같은 곳에 사는 사람이고, 단우현이 신뢰를 보내는 녀석만 아니었어도 죽여도 몇 번을 더 죽였을 것이다.
“되었다. 네놈과 말을 나눠 봐야 나만 손해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뭐…….”
“그러다 진짜로 죽는 수가 있다.”
“내가 말로는 맨날 두세 번씩 죽는 것도 모르오?”
“하아…….”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권무진이었다.
저놈의 혓바닥과 싸움을 해 봐야 득이 될 것이 없다. 그럴수록 화가 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니까.
저놈의 세 치 혀를 뽑아 버리지 않는 이상 말이다.
쾅-!
바로 그때.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폭음이 먼 거리에서 들려왔다.
그들은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서 천산마교를 내려다볼 때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전각.
척 보아도 교주의 거처인 천마각이 지금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모두 숨을 삼켰다.
저 큰 건물이 단숨에 무너져 내리다니, 도대체 얼마나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말인가?
“저건…….”
마장강이 마른침을 삼키며 그곳을 바라봤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만큼 무시무시한 공력이 느껴졌다.
장삼태가 파르르 입꼬리를 떨면서도 눈을 떼지 않고 그 광경을 끝까지 바라봤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중원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정파 무림의 어떤 세력도 마교의 본산에는 발조차 들이지 못했다.
한데, 단우현 저 인간은 마교 안으로 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마교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천마각을 무너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