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2
건장한 산적들이 여인 하나 이기지 못하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인이 무림에서도 나름 이름을 날리고 있는 데다, 무림맹의 요직에 앉아 있는 인물이라면?
또한 팔대세가의 한 곳, 남궁세가 소속이라면?
아무리 한창때의 산적들이라 하여도 이길 수 없는 노릇이다.
촤라락-!
“끄어억!”
수많은 산적들이 단숨에 쓰러졌다.
장내를 정리한 여인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운이 좋았군요. 제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
단우현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여인의 미모가 출중하여 넋을 잃기라도 한 걸까?
분명 여인의 미모는 보기 드물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태어나 지금까지 숱한 여인을 보았음에도 마음 한번 동한 적이 없었던 단우현이다. 그런 이가 고작해야 첫 만남에서 마음이 동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일까?
잠시 여인의 검을 바라보던 단우현이 중얼거렸다.
“멋진 검술이군.”
“그런 소리를 많이 듣죠.”
여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검술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또한 남궁세가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 또한 가득한 여인이다. 누군가 세가의 검술을 칭찬하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돌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일깨웠다. 뭔가 하며 고개를 돌리자, 단우현이 쓰러진 산적들의 품을 뒤지는 게 보였다.
“뭘…… 하는 건가요?”
“보면 모르나?”
“모르니까 묻는 거예요.”
“돈을 챙기고 있다.”
‘그러니까 왜?!’
울컥하며 머리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세가의 검술을 칭찬할 만한 안목을 지닌 이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행동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이놈들의 돈은 누군가에게서 빼앗은 것일 테지.”
“그렇죠.”
“그걸 내가 주운 거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심지어 주웠다니? 엄연한 강탈이지 않은가.
여인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미간을 부여잡았다. 어쩐지 괜한 사람을 구해 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산적이라도 그들의 돈을 강탈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단우현은 말없이 산적의 품에서 은자 한 냥을 꺼냈다. 그러곤 여인을 향해 슬쩍 내던지니, 은자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여인의 손 위에 툭 떨어졌다.
“뭐죠, 이건?”
“수고비.”
‘이 사람이 진짜?’
여인은 나름 부족할 것 없이 자랐다. 대남궁세가는 팔대세가의 기둥이라 불리는 곳,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은자 한 냥을 받으니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챙긴다고 할까?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더 줘요.”
“그게 전부더군.”
거짓말도 아주 잘한다.
조금 전 상당한 은자를 챙기는 걸 봤다. 한두 냥 정도가 아니라 수십 냥은 될 법하였는데, 단우현은 내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인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은자를 돌려주었다.
“필요 없나? 배가 부른가 보군.”
“배가 고파 본 적이 없어서요.”
“그렇군. 그래서 검에 자만심이 깃들어 있는 것인가?”
“뭐라고요?”
여인이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단우현을 노려봤다.
그 순간.
휭 하고 바람이 몰아쳤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로 강한 돌풍에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았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다 바람은 멎었고,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 없어?”
그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있어야 할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일에 볼을 꼬집어 보았다. 통증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이 상황이 결코 거짓은 아닌 것 같은데, 어찌 이리도 꿈처럼 느껴진단 말인가.
여인은 크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러곤 몇 번이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단우현이 있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귀신에게 홀린 것만 같았다.
“도, 도대체 뭐야…….”
여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 *
호남, 천자산.
천자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중원 오악으로 꼽히지는 않으나, 그것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산이었다.
험한 산세는 물론이고 곳곳에 펼쳐져 있는 절경은 드높은 산맥을 타고 오르며 먹고사는 약초꾼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누구든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자산은 죽음의 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여 산 인근의 마을 사람들조차 초입만 드나들 뿐,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신기한 마을이군.”
그 마을에 들어선 이는 단우현이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곳이었다. 사람들은 많아야 이백 명이 될까 싶을 정도였고, 곳곳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기는 하지만 집 외에 용도가 크게 따로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나마 한쪽에는 자그마한 객잔이, 그 뒤로는 기루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 기루가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마을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기루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코를 자극했다. 여인들의 분 냄새가 상당히 심하게 다가왔다.
단우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이런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다.
단우현은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객잔 너머로 기루가 보이고, 창가에 앉아 있는 기녀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죽어 있군…….’
그 말인즉 마음이 비었다는 것이다.
기녀들의 신세가 어딜 가나 비슷하기는 하겠지만, 저 여인들은 기이하게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마음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단우현은 천천히 걸어 객잔으로 들어섰다. 문을 여는 순간 곳곳에서 시선들이 느껴졌다. 낯선 객을 경계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기하여 바라보는 것인지 알 길이 없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단우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앉자 점소이가 달려왔다.
“헤헤, 안녕하십니까? 이 마을엔 처음이십니까?”
“그렇다.”
“워낙 외진 곳이라 사람들이 잘 찾지 않으니 객을 받는 것도 드문 일이지요. 헤헤헤, 그보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상당히 친근감 있게 다가오는 점소이었다.
딱히 고를 것도 없었다. 배가 많이 고픈 것도 아니고, 가볍게 요기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으니까.
단우현은 덤덤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소면 하나.”
“헤헤, 알겠습니다. 금방 가져다 드립죠.”
점소이가 크게 웃으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의자에 몸을 기댄 단우현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객잔 안에는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자들이 있었다.
엉거주춤한 모습과 표정으로 음식을 먹으면서도 단우현을 힐끗거리며 주시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이 굉장히 수상해 보였다.
단우현은 소면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이 객잔에 머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헤헤, 안녕히 가십시오!”
뒤에서 들려오는 점소이의 외침을 들으며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객잔과 거리가 다소 멀어진 순간,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침은 검붉었다.
마치 독이나 약이라도 뒤섞인 듯한 색.
점소이, 혹은 다른 누군가가 수작을 부렸음이 분명했다.
하나 수작을 부린 것치고는 누군가 따라오거나 지켜보는 시선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정도 양이면 이 마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 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단우현은 피식 웃으며 다시금 걸었다. 민가들이 많은 곳을 스쳐 지나가며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간간이 노파들의 근심 어린 얼굴이 보였다.
어린아이들도 몇 보이기는 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다. 반면 건장한 사내들은 꽤 많이 보였다.
여인들도 그 수가 지극히 적어 지나가면서도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여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어딘가 모자라 보였다. 나이가 다소 젊다 생각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얼굴이 못났거나 팔다리 하나씩은 절뚝거렸다.
또한 길바닥에는 목내이처럼 말라비틀어진 이들이 여기저기에 누워 있었다.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몸에서 흐르는 냄새가 참으로 역했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것인지, 혹은 다친 곳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탓에 구더기라도 들끓고 있는 것인지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다음으로 단우현이 향한 곳은 기루가 있는 곳이었다.
물론, 여자를 품거나 술을 마시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기루로 들어서는 순간,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품에 무언가를 넣고 있는 것인지 다소 엉거주춤한 모습이었다.
그는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걷고 있었고, 단우현의 시선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내를 주시했다.
이윽고 어느 순간, 그는 기루 앞을 지키고 있던 한 남자를 바라보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 개자식들, 죽어!”
“이, 이 새끼가!”
사내는 거칠게 칼을 휘두르며 기루를 지키고 있는 이를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칼날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낸 문지기가 주먹을 거칠게 내질러 사내를 후려쳤다.
퍽퍽-!
“미친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죽여라! 그래, 죽여! 남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남의 마누라와 딸을 다 잡아 가 기루, 컥!”
얻어맞은 사내의 몸이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그만큼 문지기의 주먹은 셌다.
곧이어 안에서는 우르르 건장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사내는 이렇다 할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한 채 얻어맞기 시작했다.
“여, 여보!”
기루 위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먹이는 여인의 시선이 맞고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그때, 느닷없이 뒤에서 한 사내의 팔이 뻗어 나오더니 여인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결코 평범하다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돌렸다. 누구 하나 그 사내를 구하기 위해 다가오는 이들은 없었다. 이미 이런 일에 만성이 되어 이제는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역시 이 마을은 이상했다.
평범한 마을이라 볼 수 없었다.
파락호들이 난동을 부리는 일은 어딜 가나 있지만, 이처럼 기세등등하게 무엇 하나 거리낄 것 없이 행동하지는 못한다.
단우현은 한숨을 쉬었다.
“그, 그 마을 전체가 흐, 흑도회의 것이오.”
머릿속을 울리는 방추곡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단순한 장난질 혹은 자신은 속이기 위해 한 말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막상 와 보니 아니었다. 정말로 그의 말대로 이 마을은 흑도회가 장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짧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가는 순간, 해야 할 행동은 이미 정해졌다.
단우현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걷어찼다.
가볍게 내지른 발길질에 돌멩이는 산산조각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하여 날아갔다. 그것을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으며, 무언가 날아온다는 걸 깨달은 이 또한 없었다.
퍼퍼퍼퍽-!
“끄아악!”
“꺽!”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내를 두들기던 파락호들의 입에서 터진 비명이었다.
얻어맞은 이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토악질을 했다. 피와 음식물이 뒤섞인 토사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뭐, 뭐야?”
“누구냐!”
깜짝 놀란 이들이 크게 소리 쳤다. 갑작스레 동료가 쓰러진 것을 본 다른 파락호들 또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주위에는 새까맣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수히 많은 파락호들이 들어차 있었다.
“네놈이냐?”
곳곳에서 욕설과 위협이 난무했다.
그러나 단우현은 대답 없이 그들을 둘러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이들은 없었다.
내뱉는 목소리에 실린 내력이 그들의 귀를 후려쳤고, 곳곳에서 귀를 부여잡고 괴성을 지르는 이들이 속출했다.
“팔다리 하나씩은 가져가도록 하지.”
스산한 한마디가 바람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