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22
“무황성이 섬서를 침공했을 당시에 느닷없이 생겨난 곳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넘겼습니다…….”
기천유는 과거를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신을 신봉하라.
그리하면 복이 오고 죽지도 늙지도 않는 몸이 될 것이고, 인계(人界)를 벗어나 선계(仙界)의 오를 것이다.
그러한 말이 떠돈 것은 무황성이 섬서 침공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구파일방이 반으로 갈라지고 화산은 무황성을 제대로 막아 낼 여력조차 없을 때였다.
구파일방, 그것도 화산만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들이 사파의 영역이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던 그때.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파고든 것이 바로 무신교라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설파(說破)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무공을 익힌 자들은 물론이고 무공조차 모르는 양민들까지.
이윽고 무황성이 섬서에서 물러나며 곧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오히려 상황은 더더욱 심각하게 변하였다.
이름난 낭인들이 교주를 붙잡으려 애를 썼지만, 그 압도적인 힘 앞에 연이어 무릎을 꿇자 사람들은 더욱 열광하였다.
몇 달 사이에 광신도들이 생겨나고 곳곳에서 일이 벌어졌다.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어, 어떤 부모들은 제 자식을 교주에게 바쳤습니다. 어떤 이는 전 재산을 바쳤으며 또 다른 이는 교주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처단한다며 길거리에서 칼을 휘둘러 수십 명을 죽였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결코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화산이 있는 마을에서도 누군가 칼을 휘둘러 사람을 상하게 했고, 서안에서도 저잣거리 내에서 난동을 부려 수십 명을 죽인 자도 있었다.
또 교주에게 바칠 돈이 없는 이는 강도짓을 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으며, 제 자식을 팔아 그 돈을 마련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목숨조차 아깝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는 무신의 무 자만 들어도 치가 떨릴 지경입니다.”
단우현이 파르르 입꼬리를 떨었다.
딱히 그러한 별호에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려 왔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혈마신교 천마신교 등.
누군가를 신봉하고 따르기 시작한다면 맹목적인 이들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파탄이 일어나는 법이다.
심지어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가 정상적이지 않다면 더더욱 그렇다.
혈마가 그러했고 흑풍신마가 그러했듯이.
단우현이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군…….”
단우현은 등을 돌렸다.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이들이 어떠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추궁했을 법도 하지만, 아무리 봐도 놈들의 뒤를 쫓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가자.”
“엥? 그냥 가십니까?”
“있어 봐야 좋을 것 없어 보이는구나.”
저벅저벅-
두 사람이 다시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는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걷는 소리 또한 들리지 않게 되자, 기천유가 한숨을 쉬며 땅에 주저앉았다.
“후우- 정말 무서운 자로구나. 눈을 마주하는 순간 빨려 들어갈 것 같더군.”
“엄청난 고수 같았어요. 어쩌면 십존이나 칠성의 경지에 오른 자일지도…….”
“어찌 되었건 우리는 화산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사로잡은 이들을 넘기고 일을 보고한 뒤 놈들의 뒤를 계속해서 쫓아야 하니.”
기천유의 말에 화산오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운 경험이기는 했지만, 그보다 급한 것들이 있다.
* * *
“거봐, 그냥 갈 리가 없지.”
지금까지 단우현은 애써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무신교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날이 샘과 동시에 서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을 가린 채 걷고 있으니,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포졸들이 의심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정말로 잡으려 합니까?”
“여흥이다.”
장삼태는 안다.
단우현이 지금 무엇을 하기 위한 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려 급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것도 알았다.
한데, 결국 무신교라는 곳이 단우현의 발길을 붙잡았다.
‘등신들.’
하필이면 건들 사람이 없어 단우현의 심기를 건들까?
가장 단우현의 심기를 건드는 장삼태가 할 말은 아니지만, 결코 좋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벌써부터 들고 있었다.
“하지만 말입니다. 화산조차 잡지 못한 자들을 우리가 어찌 잡습니까?”
장삼태는 그 부분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산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의 정보력은 물론이고, 힘 또한 한때나마 구파에서도 으뜸가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무신교를 뒤쫓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그만큼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쉽게 꼬리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 거지.’
눈앞에 교주가 있었는데 도망치게 내버려 두었다. 아마 단우현의 입장에선 그 자체가 여흥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잡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지.
힐끗 단우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장삼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요.”
“묻지 않았다.”
“…….”
장삼태는 마치 지옥 속에 발을 들였다 나온 것 같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단우현은 이미 장삼태의 생각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장삼태가 헛기침을 내뱉더니 입을 열었다.
“하오문이라도 뒤져 볼까요?”
“그런 곳에서 나올 정보였으면 진즉 잡았을 테지.”
하오문의 정보력이 최고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화산 또한 하오문을 뒤져 봤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다면 가 봐야 돈만 뜯기는 일이 될 거다.
더군다나 지난번 일도 있고 말이다.
단우현이 끄응 하며 작은 신음을 삼켰다.
지금은 일단 방이라도 잡고 잠시 상황을 지켜봐야 할 때 같았다.
* * *
“아직도 찾지 못하였느냐?”
혈마가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만후량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단우현이 사라진 지 수개월, 흑풍신마의 죽음을 알게 된 지도 그만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사라진 녀석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이라면 괜찮다.
아니, 과거의 단우현이었다면 크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과거와 같지 않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만큼 불안한 것은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무신 단우현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최대한 아이들을 풀어놓았습니다만…… 도무지…….”
“호남단가는?”
“돌아온 흔적은 없습니다. 애초에 그곳 근처로 아이들을 접근시키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만후량이 식은땀을 흘리며 어렵사리 답했다.
실패했다, 찾지 못한다, 모른다, 이런 말을 내뱉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목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혈마는 시큰둥한 시선으로 만후량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딱 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느닷없이 어둠 속에서 십여 명의 수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뻘건 안개를 뒤집어쓴 채 나타난 그들은 혈마 앞에서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혈귀조(血鬼鳥)!’
만후량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혈귀조는 혈마교를 지탱하고 있는 암살조 중 한 곳이었다. 그 실력은 살각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이고, 은밀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지금까지 모습을 숨긴 채 드러내지 않았건만 이들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였다.
“가라. 호남단가에 있는 쥐새끼들을 죽이고 그 딸년을 내게 데려오너라.”
만후량은 숨을 삼켰다.
혈마는 지금까지 혈마궁 내부에 있는 이들을 부리지 않았다. 언제나 외부에 있는 이들을 이용해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그런 혈마가 혈귀조를 부린다는 것은 결국.
‘몰리고 있다?’
만후량은 설마 하며 속으로 그 생각을 부정했다.
그러나 권좌에 앉아 있는 혈마가 오늘따라 작게 보이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을 다시 한 번 부정하며 믿고 있던 주군에 대한 충성심을 일깨웠다.
‘그럴 리가 없다! 나의 주군이 누구신데!’
만후량은 고개를 숙였다.
* * *
서안 객잔에 있는 방 안에서 장삼태가 손을 깔짝깔짝 움직여 보았다. 지난번에는 그조차 불가능하였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수준을 회복한 것인지 조금씩이나마 움직여지고 있었다.
그는 방 밖에서 보이는 창문을 가만 바라봤다.
시끄럽게 사람들이 오가는 광경이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아무 일조차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하여 바짝 긴장해야 했다.
주위로는 칼을 찬 무인들이 이리저리 경계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포졸들 또한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만큼 섬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애초에 말이야…….”
장삼태가 하아 하며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들어 주는 이도 없건만 혼자 내뱉는 독백이었다.
“뭔 일이 벌어져도 뭐라도 나오겠어?”
만 하루 동안 밖을 지켜보고 있는 장삼태는 답답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그 기분을 아는가?
단우현 또한 제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식사조차 방에서 하니 무슨 방구석 폐인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무신교고 지랄이고 갈 길이나 가면 좋을 것을 말이야…….”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무신의 후예라 해 봤자 직접적으로 무신과 연관도 없을 게 분명했다. 천 년 전 사람과 안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사람일까?
“운 좋아서 무신의 무공 익혔다고 제자 행세할 필요까지야…….”
장삼태가 답답한 부분은 그거였다.
그 무학을 얻어 익혔다고 굳이 그 이름까지 지켜 줘야 할 필요가 있는가? 장삼태의 입장에선 그런 시간조차 아까웠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당장 호남으로 달려가 단소미와 놀아주는 편이 더 좋았다.
물론 단소미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안다.
그 생각을 하니 축하고 어깨가 늘어졌다.
‘그놈의 고양이 새끼들…….’
백묘와 백호.
그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그나마 그놈들이 나타난 뒤부터 단소미는 장삼태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그놈들과 노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생각할수록 암울했다.
그렇다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을 두들겨 팰 수도 없고.
아니, 애초에 백묘는 그 날렵함 때문에 때릴 수 없었고, 백호는 덤볐다간 오히려 물어뜯길 것 같아 손을 댈 수도 없었다.
암울한 장삼태가 어깨를 늘어트렸다.
밖에서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다.
“꺄아아아악!”
여인의 비명 소리였다.
그곳을 향해 시선이 돌아갔다.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한 여인이 주저앉았고, 한 무리의 사내들이 여인의 전낭을 잡아챘다.
그것도 모자라 주위에 있는 다른 이들이 잽싸게 좌판을 뒤엎고 점주의 돈을 빼앗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장삼태가 멀뚱멀뚱 그것을 바라봤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은 서안이다.
포졸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저런 짓을 벌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부리나케 도망치는 이들의 뒤를 포졸들이 급하게 뒤를 쫓았다.
하지만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한 패거리인 자들도 있구나.”
느닷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장삼태가 깜짝 놀랐다.
멍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리자,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단우현이 죽립을 들고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뒤를 쫓는 포졸들을 향해 있었다. 어찌 보면 전력으로 잡으려 애를 쓰는 것 같으나, 일부러 넘어지며 동료를 방해하는 등 도망치는 이들을 붙잡지 못하게 유도하고 있었다.
그 행동을 주시하고 있던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나가자꾸나. 주변을 둘러보고 싶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