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27
“무신도경…… 이라…….”
마차를 타고 이동을 하고 있는 단우현은 품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무신도경이라 쓰인 이 책은 상당히 낡아 있다. 단순히 사람의 손을 많이 탄 탓에 낡은 것이 아닌, 실제 긴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무신교를 창시한 교주가 어찌하여 종교의 이름을 무신으로 지었으며, 또한 화산파조차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강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천일조화공…….’
무신도경의 내용에는 천일조화공과 한때 단우현이 펼쳤던 무공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심지어 다른 것도 있었는데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어 버렸다.
물론 구결이 완벽하지 않고 그저 추측에 의해 만들어져 흉내만 낸 조잡한 것이기는 하지만, 천일조화공에 무척 근접했으며, 단우현의 무공을 상세히 살핀 흔적도 곳곳에서 보였다.
도대체 어떤 누가?
단우현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생각 없이 교주를 죽인 것이 래도 실책이었던 듯했다.
“뭘 그렇게 빤히 보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밖을 보십시오! 벌써 산서 성도가 보입니다.”
산서라는 말에 단우현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산서 성도인 태원의 풍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치 황제가 살 것 같은 커다랗고 웅장한 건물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무림맹을 떠올리게 했다.
“저것은?”
“모르십니까?”
“모르니 묻지.”
“그거 잖습니까, 그거!”
장삼태가 호들갑을 떨다,
단우현의 날카로운 눈빛에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 뭐더냐…… 그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뭔데?”
“아…… 거시기, 그 거시기입니다.”
“네놈의 흉물을 말하는 거냐?”
“흉물이라뇨?!”
장삼태가 거칠게 소리를 치며 씩씩거렸다.
“그놈! 권무진이 있던…….”
“무황성?”
“예! 무황성입니다.”
“그렇군.”
무황성은 사파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사파의 무인들 구 할이 무황성을 따랐고, 그곳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적무성은 오황의 일인으로 사파를 이끄는 고수였다.
장삼태는 주변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무황성도 무황성이지만 그의 시선을 자극할 만한 것들이 많았다.
사파의 성지인 태원에는 수많은 여인들이 몰려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이유인즉, 사파의 호걸들이 워낙 여인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는데, 태원의 홍등가는 북경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한 미모 한다는 여인들이, 유곽 주인들에게 팔려 산서로 넘어오거나, 북경에서 이름을 날렸던 기녀들도 삼삼오오 태원으로 몰려들었다.
고관대작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덜 까다로웠고, 혹 누군가 진상을부려도 무황성의 무사들이 막아 주고 있으니 보다 안전했다.
게다가 워낙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탓에 나이가 들어도 외곽촌으로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여러 측면에서 북경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한 곳이 결코 아니었다.
“헤헤헤.”
“…….”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장삼태가 침을 주륵 흘렸다.
“오늘은 여기서 묵는 거 확실하죠?”
“그래.”
“정말입니까? 거짓말 아니죠? 놀리는 거 아니죠?”
“그렇다니까.”
단우현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발정 난 개를 보는 듯한 눈빛에도 장삼태는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진짜 기루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구경만 하는 것인데 뭐 어떤가?
지나가는 여인 하나 구경 못하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히히 하며 웃음을 지은 장삼태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이곳에 온 적 있느냐?”
“예전에 몇 번 정도 말입니다.”
“그렇군. 괜찮은 쉴 곳이 있느냐?”
당장 유곽이나 기루로 가자고 말하려던 장삼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단우현이 그런 곳에 갈 사람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인간은 왜 그렇게 빼는 거야?’
설마 인간인데 성욕조차 없을까?
‘아니면 혹시…… 고자?’
그런 생각을 하던 장삼태가 무언가 불길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느덧 다가와 있는 단우현의 손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아이코!”
“다 보인다.”
“아니, 아무런 말도 안 했습니다만?”
“네놈 생각하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지. 쓸데없는 생각 말고 앞장서라.”
불만스런 표정에 장삼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단우현의 앞에선 생각조차 자유롭지 못한 신세였다.
울상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 * *
“불가한다.”
“어찌 이러시는 것이오! 일 년이 넘도록 아들의 복수도 제대로 못한 아비의 심정을 진정 이해조차 못하는 것이외까!”
패력도 마독진의 아비 마철권이 살기 어린 시선으로 적무성을 노려봤다.
아들이 죽은 지 벌써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으나, 그 복수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무성이 온갖 수를 써 대며 그것을 막아섰던 탓이다.
그야말로 이가 갈리는 일이다.
그토록 믿었던 권무진은 배신하였고, 비록 덜떨어지기는 하였으나 하나뿐인 아들을 허망하게 잃었다.
그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인데, 복수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니, 울컥 치솟는 분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혹…… 그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이오?”
“그야…….”
‘알기는 알지.’
적무성은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당시 기억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듯 진저리를 쳤다. 검황과 마황이 함께 있는 것도 모자라, 그 장원의 장주인 사내는 이미 오황이라는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자였다.
‘그런 자를 건드리자고?’
차라리 수백 개의 말벌집을 건드는 편이 더 마음 편할 것 같았다.
그걸 모르는 마철권이 불쌍할 따름이다.
“모른다.”
“지난번 호남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만?”
“수하들이 뭔가 착각했나 보군.”
적무성이 휘휘 손을 내저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날 있었던 일은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사파의 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적무성이,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는 것을 어찌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웃긴 일이지.
“만약 이번에도 성주께서 움직이지 않겠다면, 이 마철권이 직접 나서겠소이다. 이것을 막을 권리는 성주께 없소!”
‘그러든가 말든가.’
한숨을 쉰 적무성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말리는 것도 지쳤다.
아들이 죽은 이후로, 어떻게든 복수를 감행하려는 마철권에게 계속해서 일을 주어 최대한 그의 분노가 희석되기를 바랐다.
하나,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도 그 복수심이 변하지 않았으니 더 이상 말려 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리고 마철권의 세가는 이제 없어도 그만이지…….’
마철권은 틀림없이 강했다.
그의 가문은 이 무황성을 세우는 데 일조한 세가인 데다 마철권 본인만 놓고 보더라도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대로 몇 년만 더 성장한다면, 다음 성주는 그가 될지도 몰랐다.
적무성은 결의에 찬 눈빛을 보이는 마철권을 주시했다.
그가 없어진다면 머리를 잃은 마씨세가의 세력을 흡수할 수 있을 테고, 적무성의 힘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마음대로 하게.”
마철권은 혀를 찬 뒤, 등을 돌렸다.
적무성은 필시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짐작 가지 않았다.
필시 호남에 있는 그곳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놈…… 지금은 네 마음대로겠지만 앞으로는 그리되지 않을 것이다.’
마철권은 적무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아들의 복수도 복수이지만, 그의 꿈인 무황성주 자리에 대한 욕망 또한 쉽사리 포기되지 않았다.
이번 일을 마무리 짓는 것과 동시에.
‘적무성을 끌어내린다.’
마철권은 자신에게 그럴만한 힘이 충분하다 믿고 있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마철권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이 밝다.
이런 날일수록 아들 마독진이 그리워졌다.
잘 대해 주지는 못하였지만, 함께 술잔을 주고받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다.
빠득!
저도 모르게 이를 갈며 천천히 걸었다.
마독진과 항상 술을 마셨던 곳을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 * *
어두운 밤, 한 사내가 조용히 눈을 떴다.
사내는 창밖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피하듯 조심스레 움직였다.
스륵스륵-
곁에서 다른 이가 자고 있었기에 사내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면서도 힐끗힐끗 자고 있는 이의 눈치를 살폈다.
조심조심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고작해야 침상에서 일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은데, 어찌하여 이렇게 조심스레 움직이는 것일까?
드륵-
문을 열면서 난 소리에 숨을 죽였다.
다행히 자고 있는 이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내가 조심스레 방을 빠져나왔다.
“후우…….”
흥건하게 젖은 식은땀을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다소 일렀다.
또다시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인 사내가 계단을 내려가 객잔을 빠져나왔다.
“하하하!”
밖으로 나온 장삼태는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양손을 하늘로 쭉 뻗으며 만세를 외쳤다.
단우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제법 힘들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혼자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니 그 정도 고생은 고생도 아니었다.
“힘들었어.”
장삼태는 가슴을 탁탁 두들기며 자신을 위로했다. 천산에서부터 단우현을 데리고 이곳 산서까지.
적지 않은 거리를 이동하며 매일같이 눈치를 봐야 했고, 또한 많은 싸움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그 기이한 지법을 익히느라 하루하루 지옥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그럼 단 하루뿐일지라도 그것을 풀어 줘야 하는 날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희희낙락(喜喜樂樂)하며 홍등가를 향해 맹렬하게 질주한 장삼태는 정말 자유를 만끽하는 인간 같았다.
그의 얼굴에 맺힌 미소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창을 통해 멀어져 가는 장삼태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잠을 자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단우현이었다.
방방 뛰고 좋아하며 사라지는 장삼태의 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단우현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멍청하기는…….”
이윽고 단우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자신이 그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그렇다면 단순히 멍청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을 우둔함이다.
“하지만 가끔 나쁘지는 않군.”
단우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달이었다.
장삼태도 그렇겠지만 단우현 또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