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33
그날은 달이 뜨지 않는 밤이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였고 풀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조용한 정적만이 분위기를 가라앉게 했다.
사아악-!
이윽고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핏방울이 모여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함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이들의 수는 열.
전신을 혈의로 두르고 얼굴마저 보이지 않는 그들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붉은 눈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커다란 장원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은 어떤 감정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목각인형처럼.
그들의 목적은 지극히 단순했다.
저 세가 안에 있는 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
그리고 한 아이를 끌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이들은 어떠한 신호조차 주고받지 않고 움직였다. 그러나 마치 잘 훈련되어 있는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나아가며 진형을 짜고 있었다.
어디서 어떤 공격을 받더라도 대비를 할 수 있게끔.
훈련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이윽고 그들은 귀신처럼 날아올라 높은 담장을 뛰어넘었다.
카캉-!
동시에 가장 앞선 이가 칼을 휘둘렀다. 속절없이 쏟아지는 칼날이 눈앞에서 번뜩였다. 그러나 이들은 당황하지 않고 그것을 모두 쳐 냈다.
“허…… 이것 참 재미있구나. 막아 내다니?”
막혀 버린 검로를 생각하며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역력하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기습적으로 뿌린 한 수를 혈의인들이 막아 냈기 때문이었다.
“힘이 약했던 거 아닌가?”
“그럴 리가? 분명히 죽일 생각으로 휘둘렀다네.”
어둠 속에서 걸황 방노백이 모습을 드러내며 인상을 썼다. 조금 전부터 이상한 기척을 느꼈는데, 설마 이런 놈들이 나타날 줄이야.
게슴츠레 눈을 뜬 방노백은 가만히 혈의인들, 혈귀조를 바라봤다.
처음 보는 복장과 그들이 보여 준 경공 또한 방노백의 머릿속에 없는 것들이었다.
‘암중에 숨어 있는 단체인가?’
열 명의 혈귀조를 바라보고 있는 방노백의 기분은 복잡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파가 갈라져 있는 상황인데, 저런 이들까지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앞으로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거 보통 놈들이 아니야. 쉽지 않겠는데?”
삐딱한 방노백의 말에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을 다한 한 수는 아니었어도, 다른 누구도 아닌 검황의 검이다.
그것을 막아 내었다는 것은 비등한 실력을 지녔거나 그 무공이 특별하다는 말.
그때, 가장 앞서 있는 혈귀조의 한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죽여라.”
문답무용(問答無用).
시퍼런 칼날처럼 날선 눈빛을 빛내며 내뱉은 그 말에, 남궁천과 방노백은 단숨에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자가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실력이 아님을.
어쩌면 오황 수준에 오른 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수하들도 마찬가지로 낮은 수준으로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웃음을 지은 남궁천이 기세를 가다듬었다.
“무슨 생각으로 들어왔는지 이 노부는 잘 모르겠네만…… 살기를 가지고 남의 집에 들어왔으니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리게.”
* * *
잠을 자고 있던 남궁소혜가 눈을 떴다.
곁에 단소미가 조용히 잠을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궁소혜는 천천히 손을 뻗어 단소미의 수혈을 짚었다.
그 행동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누가 보더라도 수혈을 짚은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직후 그녀가 침상 옆에 놓아두었던 검을 잡았다.
한순간, 어둠 속에서 붉은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캉-!
정확히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칼날을 쳐 낸 남궁소혜가 재빠르게 단소미를 끌어안고 침상을 벗어났다. 그러나 상대 또한 포기할 생각은 없는 것인지, 그대로 검을 뻗어 남궁소혜의 가슴을 노렸다.
카카캉-!
무겁다.
그녀는 상대의 공력이 자신보다 높음을 깨달았다.
한 수 한 수, 검이 부딪칠 때마다 묵직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손목이 다 욱신거렸다.
심지어 단소미까지 끌어안고 싸우고 있는 상황인 만큼, 남궁소혜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혜야!”
콰당-!
그때, 방문을 부수며 제갈연이 안으로 들어왔다.
혈의를 입은 이를 보는 순간, 제갈연은 잠시 망설임도 없이 검을 뻗었다.
카카캉-!
제갈세가 특유의 신묘한 검법이 정교하고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침입한 사내를 완벽히 막아서기에는 다소 모자랐다.
주르륵-
제갈연과 남궁소혜가 동시에 밀려났다.
“이자는 대체 누구야?”
“모르겠어! 지금 밖도 난리가 난 것 같은데…….”
남궁소혜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소리를 들었다.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리자 마장강과 권무진을 비롯하여 세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마당에 나와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정리를 못했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검황과 걸황이 있다.
심지어 이 집 어딘가에서 숨어 모든 상황을 살피고 있는 살황 또한 있을 것이다.
이 중원에서 손꼽히는 강자 세 명이 있는 곳이므로 빠르게 정리가 되었어야 하는 상황인데, 충돌하는 소음은 오히려 더욱 크게 들려왔고, 그것은 곧 호각지세라는 뜻이었다.
심지어 눈앞에 있는 저 사내는 남궁천과 방노백의 이목을 속이고 들어왔다.
남궁소혜는 주륵 식은땀을 흘렸다.
어쩌면 밖에 있는 이들보다 더욱 위험할지도 몰랐다.
스윽-!
그때, 눈앞에 있던 사내의 몸이 흐릿해졌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남궁소혜의 검이 쏜살과도 같이 움직였다. 장소를 특정할 수 없으니, 사방에 검기를 뿌릴 심산이었다.
카카캉-!
들려오는 쇳소리에 상대의 위치를 파악한 그녀가 반보 뒤로 물러서며 크게 횡으로 검을 그었다.
서걱-!
“윽?!”
그러나 검은 어김없이 허공을 갈랐고, 오히려 남궁소혜의 등에서 시뻘건 피가 튀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은 고수라면 당연한 일.
사내는 오히려 남궁소혜의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다.
“…….”
사내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착지했다. 이번에는 단숨에 두 여인을 베어 버리겠다는 듯이, 지그시 바라보며 검을 역수를 쥐었다.
두 사람이 한껏 긴장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사내가 한 걸음 내디뎠다.
푸욱-!
“커억!”
그 순간, 사내의 목에 단도가 파고들었다. 시꺼먼 운무(雲霧)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살황 비천웅의 칼날이 사내의 목줄을 끊고 숨통을 막았다.
“……살수란 본디 틈을 노리는 법이지.”
비천웅은 쓰러져 가는 이를 바라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한수에 보이는 틈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것이야말로 살수의 자격이며, 그 극의를 이루었기에 살황이라 불리는 것이다.
비천웅이 비수를 뽑으며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 * *
주르륵-!
남궁천은 묵직한 힘을 흘렸음에도, 수 걸음이나 밀려난 것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제법이구나.”
상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마치 본능만이 남아 있는 인형 같았지만, 그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벌써 백여 합이 넘었음에도 승부가 나지 않으니, 눈앞에 있는 상대가 남궁천의 수준에 필적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괜찮으냐?”
“허허, 네놈 걱정이나 하거라.”
남궁천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웃음을 지었다. 힐끗 바라보니 너덜너덜해진 몰골의 걸황이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주변에는 다섯 구의 시체가 처참하게 뭉개져 있었다.
“거들어 주랴?”
“허허, 되었으니 다른 아이들에게 가 보거라. 아직 몇 놈 더 남지 않았느냐.”
방노백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이곳은 정리가 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안쪽은 아니다. 아직까지 권무진과 마장강 제갈운 등이 남아 있는 혈귀조를 상대로 꽤 고전을 하고 있었다.
그가 쯧쯧 혀를 차며 등을 돌리는 순간.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걸음을 멈추고 깜짝 놀라 등을 돌렸다.
이것은 틀림없이 남궁천의 기세였다.
그가 난생처음 보는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몰린 것은 실로 오랜만이네. 하여 노부 또한 진지하게 임해야 할 것 같군.”
남궁천은 검을 고쳐 쥐었다.
그의 몸에서 압도적인 기세가 피어올랐다.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혹은 만인을 무릎 꿇리는 패도적인 기백.
마치 천하의 제왕을 마주한 것 같았다.
주륵-
방노백마저 식은땀을 흘렸다.
“…….”
상대 또한 불안함을 느꼈는지 긴장 어린 시선으로 남궁천을 바라봤다.
사람마저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사도학, 그놈과 승부를 내기 위해 창안한 무공이지만…… 어쩔 수 없으니 자네에게 먼저 보여 주도록 하겠네.”
남궁천은 씨익 웃었다.
오래전, 중원을 활보하며 온갖 악인들을 잡아 죽였던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방노백은 깨달았다.
남궁천은 지금 몹시 즐거워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 그리고 자신의 검을 막아선 이를 꺾어 버리겠다는 결의가 전해졌다.
그의 검에 실린 것은 설령 사도학이라 해도 결코 무시하지 못할 힘이었다.
‘저놈, 도대체 뭘 만든 거야?’
방노백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그 순간.
위기감을 느낀 사내가 선공을 취하며 달려들었다.
여력을 남겨 두었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한계까지 공력을 쏟아부은 그의 칼날이 정신없이 휘둘러졌다.
빈틈이 존재치 않는 것처럼 허공을 빽빽하게 메우며 다가오는 검세.
방노백은 저것을 쉽게 막아 낼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카카카카캉-!
남궁천의 검이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검에 맺혀 있는 기운은 태산보다 무거웠으며, 그 움직임은 창공을 노니는 용처럼 위엄이 서려 있었다.
거칠고 사납게 몰아붙이는 야수와도 같은 검세를 단숨에 찍어누르고, 감히 제왕을 향해 이빨을 들이미는 이를 징벌했다.
캉! 캉! 카캉!
아무리 빠르고, 견고한 검도 제왕의 걸음을 멈출 수 없듯 사내의 검은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서걱-!
남궁천의 검이 사내의 검과 몸을 양단했다.
촤아아악!
검에 실린 힘이 어찌나 무거운지 피가 튀긴커녕 바닥만 적셨다.
남궁천은 여전히 기세를 잃지 않고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검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제왕검형(帝王劍形)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