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36
“어이쿠…… 썩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장삼태는 비틀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눈앞에는 죽은 사내의 시신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는데, 처참하게 뭉개진 그 모습은 천마회천공에 제대로 맞은 흔적이었다.
“어지러워…….”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반 시진 동안 격렬한 싸움이 이어졌고,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어섰다.
단우현과 오면서 수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죽어도 골백번은 더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아…… 또 이렇게 살아남았네.”
그는 한탄하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런 고수와 맞붙는 삶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삼태에겐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일이라며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힘이 빠진 다리를 애써 움직이며 쓰러져 있는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고 혼절한 상태.
그는 아이를 결박한 밧줄을 풀어 주고 고개를 돌렸다.
쾅-!
커다란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동시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흔들렸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장삼태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단우현의 짓일 것이다.
‘아니, 이곳까지 왔으면 좀 도와주든가. 사람이 고생하고 있는데 혼자 휙 가 버리냐?’
잘못했다간 죽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에휴…… 개자식…….”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아이를 한쪽에 숨겨 놓은 그가 침을 뱉고 힘겹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단우현은 장삼태를 버렸지만 장삼태는 단우현을 버릴 수 없었다.
사실 단우현이 당한다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었으니, 무언가 챙길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싶어서 가는 것이었다.
또한 고수들의 싸움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하였다.
남궁천과 사도학의 말이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단우현 정도 되는 고수라면, 지금은 깨닫지 못해도 나중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꾸역꾸역 산을 올랐다.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이 다소 격렬하다.
단우현이라면 단박에 상대를 제압할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예상 외로 격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주륵-
장삼태가 식은땀을 흘렸다.
단우현이 격전을 벌인다?
생각만 해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천하의 단우현을 상대로 저리 오래 버틸까 싶었다.
“도대체 어느 미친놈이야?”
투덜거리며 조금 더 거리를 좁혀 보았다.
한참 동안 덜덜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자, 곧 무수히 많은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이 단우현이 한 짓이었다.
“다음 생에는 저 인간 보지 않도록 뒤진 다음에야 태어나라. 아미타불…….”
오랜만에 합장하며 명복 아닌 명복을 빌어 주었다.
이윽고 한 걸음을 내디디며 움직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시체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장삼태가 한껏 인상을 쓰며 발을 휘둘렀다.
“썩을…… 창피하게시리…….”
굉음이 들리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조금 더 움직이자 커다란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조금 전 지진 탓에 무너져 내린 듯 입구가 거대한 돌로 틀어막혀 있었다.
그러나 장삼태의 시선이 향한 곳은 동굴이 아니었다.
동굴 앞에서 두 사람의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었다.
그것은 눈으로 본다 한들 장삼태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뭐 보여야지, 뭐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장삼태가 짜증 섞인 투로 언성을 높였다.
* * *
제사장의 금나수는 그야말로 괴공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기이막측했다.
손에 독기가 서려 있어 붙잡히는 순간 맹독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상대가 단우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한 수조차 버티지 못하고 맹독에 당해 한 줌 핏물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파파팟-!
두 사람이 빠르게 손을 뻗었다.
금나수를 파훼하고 강권을 날렸다.
쾅!
주먹 속에 맺혀 있는 무시무시한 기세가 제사장의 몸을 가격했다.
가슴을 얻어맞은 그가 주춤대며 물러섰다.
그러나 큰 타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벌써 수십 합.
천 년의 세월이 지나 눈을 뜬 뒤로 이렇게까지 싸워 본 적이 없었던 단우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크윽…… 제법이로구나.”
그러나 반대로 제사장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 중원 천지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이는 오로지 혈마밖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그였다.
혈마신교에서도 이인자인 그의 강함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단우현과 수십 합을 겨루고도 승부를 내지 못하였으니,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살기를 쏘았다.
심즉살(心卽殺).
살기를 뿜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지.
하지만 제사장의 살기는 단우현에게 닿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단우현이 유유히 제사장을 향해 걸었다.
슥-!
한순간에 사라진 단우현의 신형에 제사장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눈으로 쫒는 것이 아닌 감각으로 찾는 것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고수들에겐 눈으로 보고 막는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으므로.
쾅-!
주르륵-!
또다시 몇 걸음이나 밀려났다.
이번에는 한 차례 몸을 크게 휘청이며 균형을 잃었다. 다시금 몸을 추스르려는 순간, 뻗어진 단우현의 손가락에서 빛살과도 같은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제사장은 깨달았다.
저것에 맞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대로 몸을 비틀어 피해 내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는지, 한 줄기 빛살이 그의 어깨를 관통하며 사라졌다.
어깨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와 동시에 피가 마구 솟구쳐 올랐다.
“이건?!”
분명히 경험했던 수법이었다.
아득히 먼 기억 속에 가두어 놓았던, 결코 꺼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격통과 함께 그의 머릿속을 자극했다.
그사이 단우현의 몸이 흐릿해지며 제사장의 코앞에 나타났다.
“네놈!”
“시끄럽구나.”
단우현이 가볍게 손을 놀렸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간 장력이 제사장의 가슴을 후려쳤다.
쾅!
육중한 소리를 내며 그의 몸이 바닥으로 엎어졌다.
“크억!”
고통스런 신음이 터졌다.
수십 합.
비등했던 것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했고, 어느새 제사장은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음에도,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별 볼 일 없는 것은 똑같구나.”
뜻 모를 말에 제사장의 생각이 한순간 멈췄다.
이윽고 뻗어 온 강력한 힘을 피해 땅을 구르고 벌떡 일어섰다.
동시에 단우현을 향해 맹독이 실려 있는 장력을 퍼부었다.
콰콰콰쾅-!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마구 흔들렸다.
거리를 벌리면서도 반격할 틈을 주지 않는 파상공세.
이런 엄청난 실력자에게 틈을 보이는 건 곧 승기를 빼앗기는 것과 같았으므로 제사장은 온 힘을 다한 공격을 퍼부으며 상대를 끝장낼 준비를 마쳤다.
눈을 빛낸 제사장이 비상하며 날아간다.
장력에 흔들렸을 단우현의 목을 단박에 잘라 버리려는 듯, 날카롭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퍼걱-!
“끄아아아아악!”
느닷없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단우현이 제사장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뽑아 버렸다.
그것은 사람의 팔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쉽게 뽑혔다.
“꼴에 살아 있다고 아픔은 느끼나 보군.”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였으나, 이놈은 시체였다.
그 영혼은 이미 죽어 구천을 떠돌던 중이었다. 만약 강림술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했을 자.
그렇기에 사람이지만 사람이라 생각지 않았다.
휑한 어깨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제사장은 물러섰다.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으로 단우현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사람의 목소리라 할 수 없는 괴성이 그의 목에서 새어 나왔다.
그의 혼란스런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멍청하긴…….”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어……. 네, 네놈은 마치…… 그 녀석을…….”
누군가를 떠올린 제사장이 눈앞에 있는 단우현을 황급히 뜯어보았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하다가, 이윽고 휘둥그레 치켜뜬 시선으로 파르르 눈꼬리를 떨었다.
어찌 된 것일까?
왜 그자가 이런 곳에 있는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정녕 현실인가?
기억 속, 아주 깊숙한 곳.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깊숙한 곳에 묻어 놓고 떠올리지 않았던 그 남자.
그에 대한 기억이 마치 봇물 터지듯 제사장의 뇌리를 강타했다.
“무…… 무…… 무극신마…….”
“오호…… 이제야 나를 알아보는구나?”
단우현이 비릿한 조소를 머금으며 웃어 보였다.
그 순간, 제사장은 까마득한 어둠을 보았다.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 안심했던 괴물.
그가 눈앞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사장은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 어찌…… 사, 사, 살아 있는 것이냐…….”
“혈마, 그놈이 알려 주지 않더냐? 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그…… 그럴 리가, 그분은 아무것도…….”
제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혈마에게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제사장이라는 위치에서 아이들의 시신을 이용해 혈마를 따를 이들에게 강림술을 내리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따라서, 그것 외에는 알려 줄 필요도, 알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 그것이 천추의 한이 될 줄이야.
제사장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물러섰다.
다른 이도 아닌 무극신마였다.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던 공포라는 두 글자가 그를 옥죄어 왔다.
과거 눈앞의 괴물이 만들어 낸 참화가 떠올랐다.
단신으로 혈마신교에 쳐들어와 단 몇 수만에 그의 머리를 날려 버렸던 절대자.
그의 귀신같은 검기(劍技)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할 수 있었다.
“강림술도 아닌데, 어…… 어찌 예전과 같은 몸으로 천 년씩이나…….”
“네놈들은 빨리 죽은 탓에 모를 테지만…… 그 이후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
단우현은 말을 마치고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여태껏 뽑지 않았던 그것.
단우현의 진심을 담은 검이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며 제사장을 압박했다.
수십 합.
제법 잘 버틴 것이지만, 지금까지 단우현은 본신절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나를 또 죽이려는 건가?”
“그래, 네놈은 여기서 또 죽는다.”
“흐흐흐, 나를 죽이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입을 열지 않아도 괜찮다. 죽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
제사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가 내뱉은 말은 절대적이라 할 만큼 반드시 지켜졌다.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신의 앞에서 도주는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파르르 입꼬리를 떨며 손을 들어 올렸다.
제사장의 모든 공력이 한 손에 담겼다.
“팔다리 하나 정도는 가져가겠다!”
“욕심이 과하구나.”
단우현이 제사장을 내려다보았다.
혈마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에서 살아왔던 제사장은 또다시 무신이라는 이름 앞에 좌절을 맛봐야 했다.
핏발이 잔뜩 선 제사장의 두 눈동자에 천천히 검을 휘두르는 무신의 모습이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