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44
수 시진 뒤.
진기를 유도하며 단전을 만들고 그 안에 다시금 공력을 흘려넣은 남궁천은 상당히 지쳐 있는 듯 식은땀을 흘리며 한숨을 쉬었다.
공청석유로 생긴 진기는 어찌어찌 잡을 수 있었지만, 단우현이 집어넣은 기운은 무엇이 그리 강한지 쉽사리 제어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 버렸고, 남궁천 또한 상당한 심력을 낭비해야만 했다.
“후우…….”
남궁천이 자신의 진기를 갈무리하며 호흡을 골랐다.
고작해야 어린아이 진기를 유도하는 것에 불과한데, 마치 주화입마에 걸린 고수의 진기를 바로잡는 것처럼 힘이 소비됐다.
그가 한숨 섞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남궁소혜가 잠들어 있는 게 보였다. 침상에 머리를 기댄 채 새근새근 숨을 고르고 있는 모습이지만, 그녀의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남궁천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괜찮으십니까?”
“응? 벌써 왔는가?”
남궁천은 그제야 제갈운이 이 자리에 있음을 깨달았다.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할 만큼 집중했던 것이다.
“그래, 가 본 곳은 어찌 되었는가?”
“아이들의 말대로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었습니다. 천천히 하나하나 조사를 다시 해 봐야겠습니다만…… 일단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것은 확실합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갈운이 고개를 저었다.
저런 공간을 만들 정도의 단체나 고수라면 응당 그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내부를 아무리 뒤져 보아도 어떤 이가 무슨 목적으로 기관진식을 설치하였고, 무신도경을 가져다 놓았는지 아직도 그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무신도경이라는 건 확인해 보았는가?”
“흠뻑 젖은 상태라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글자들이 전부 물에 번졌기에…….”
“흠…….”
남궁천은 단소미를 바라봤다.
아이들이 벌인 일이라고는 하지만, 꽤 거하게 한 건 해 주었다. 무신도경이라면 능히 무림의 비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것을 물에 던져 버렸다니?
“하면 그 두 사내는?”
“시체로 발견 되었습니다.”
“시체? 누가……?”
“아마…… 백묘의 짓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작은 짐승의 흔적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구먼…….”
남궁천이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 사내들이 어떤 식으로 그곳의 지도를 얻었는지, 무슨 목적으로 침입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무신의 후예인 단우현에게 있어 어쩌면 대단히 중요한 장소일지도 모르기에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무림맹이나…… 천도회에……?”
“아니, 내부를 조사할 만큼 한 다음, 출입구를 전부 막아 버리게. 벽력탄을 사용해도 되니 더 이상 그곳이 드러나지 않게 조치하는 것이 맞겠군.”
제갈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신도경이 있던 장소라는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많은 무림인을 불러모을 가능성이 있었다.
자칫 커다란 사고로 비화될 수도 있으니, 더 이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지 않도록 철저하게 조사하고 폐쇄하는 것이 좋았다.
위험한 물건일수록 날파리가 꼬이는 법이니.
“그건 그렇고 소미는 괜찮습니까? 아이들이 걱정을 많이 합니다.”
“이제 괜찮다네. 다만…… 공력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할 테지.”
남궁천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단소미의 몸에는 일 갑자가 넘는 공력이 잠들어 있었다. 자칫 생각 없이 움직이다 그것을 끌어낸다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고를 일으킬 것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공력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는 남궁천이었다.
* * *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래, 다 왔구나.”
장삼태는 환호를 내지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길림성으로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그들은 이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비록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먼 여정의 절반을 끝냈다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았다.
“이곳의 풍경은 중원과 새삼 다르구나.”
“이곳을 넘어가면 조선이니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 나라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니까 말입니다.”
장삼태가 주위를 둘러봤다.
북쪽에서 내려온 여진족들의 모습도 보였으며, 조선 사람으로 추정되는 백의를 입은 자들도 있었다. 한족보다 오히려 이민족들이 더 많은 것 같은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생각보다 무림인들의 수가 적은 것은, 이곳이 중원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웅장한 산이네요. 저 멀리 보이는 저게 장백산이죠?”
“그렇지.”
매향이 먼 거리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장백산을 가리키며 혀를 내둘렀다. 이곳으로 오면서 많은 것들을 보았지만, 저만큼 웅장한 산은 없었다.
절로 시선을 빼앗기는 느낌이 영산은 바로 저런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선인들의 고향이라고도 부르지.”
“자, 장백산이 말입니까?”
“그래.”
장백산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또한 많은 전승들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했다. 구미호, 신선, 산신령, 선녀, 그러한 설화와 신화들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는 곳이 바로 장백산이었다.
물론 단우현이 있던 과거에 그랬다는 것이지, 지금은 다른 중원오악에도 많은 전승들이 전해지고 있으니 특별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장백산은 꼭대기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운무를 보고 있자면, 정말로 신선이 사는 곳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곳으로 가는 겁니까?”
“그래.”
“어…… 엄청 험하겠는뎁쇼?”
“하하, 산은 원래 험해야 오르는 맛이 있는 법이다.”
‘그게 아니라 지랄 맞게 힘들 거 같아서 말을 한 건데…….’
장삼태가 혀를 내두르며 속으로 불만을 토했다.
먼 거리에서만 봐도 산세의 웅장함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오르는 순간 정말 너무 힘들어서 신선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곳이다.
하여, 웬만해서는 오르고 싶지 않은 곳이며,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다소 꺼림칙한 느낌이었다.
“객잔이나 찾아라, 하루 이틀 묵기는 해야 할 테니.”
“알겠습니다요.”
장삼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객잔을 찾기 시작했다. 허름한 곳이 보이기는 했지만, 기왕 묵는 것이고 또한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닌 만큼 좋은 곳을 얻으려 필사적이었다.
장삼태가 선택한 곳은 제법 비싸 보이는 객잔이었는데, 중원에서 다소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요금이 쌌다.
세 개의 방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짐을 풀었다. 아직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지 않았는지 장삼태는 조금 쉴 생각이었다.
“좋기는 한데 말이지…….”
장삼태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방을 따로 잡은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이 생겨 무척 기쁜 표정이다.
다만 껄끄러운 것이 있는지 좀처럼 표정을 풀지 못했다.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막막하네…… 제길.”
천산에서부터 길림까지.
중원의 끝에서 끝을 여행한 것이다.
그 거리에 쏟은 시간만 수개월이었으며, 이곳에서 호남까지 돌아가는 거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본다면 일 년을 넘게 단소미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므로, 장삼태는 침상에 주저앉아 쓰린 마음을 달랬다.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이 더 많은 여정 같았다.
그때, 끼익 문이 열렸다.
문조차 두드리지 않고 들어오는 이를 향해 호통을 치려던 장삼태는, 그 인영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꿀꺽 말을 삼켰다.
“헤헤,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이야기를 하고자 왔다.”
깜짝 놀란 장삼태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단우현에게 의자를 권했다.
“헤헤, 차라도 내올깝쇼?”
“아니, 됐다.”
단우현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걸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 장삼태는 벌써 마음이 불안했다.
혹 어려운 일을 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당장 도망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단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까지 고생 많았다.”
“헤헤, 고생은요! 장주님을 모시는 게 이 장삼태의 일 아니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이 삼태의 기쁨이자 삶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우스우니 말이다.”
“…….”
‘마음에 없는 소리인지 아닌지 네놈이 어떻게 알아?’
장삼태는 그런 식으로 따지고 싶었으나 말을 꾹 삼켰다.
물론 절반 정도는 마음에 없는 소리가 맞았다.
하지만 지가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장삼태가 손을 비비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십니까?”
내뱉는 물음에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마치 장삼태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이 말이다. 그가 품에서 커다란 전낭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던졌다.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거라.”
“에?”
“장원을 부수고, 소미와 함께 이 중원 땅을 떠라.”
“예……? 그게 무슨 소리이신지.”
“너는 그냥 대답만 하면 된다.”
장삼태는 무척 당황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결코 허언으로 들을 수 없는 문제인지라 멍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다른 식구들에게 조금씩 나눠 주는 것도 잊지 말고…… 되도록 멀리.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 살아라. 너라면 소미 하나 정도는 거뜬히 키워 낼 테지.”
“아니……. 장주님, 지금 무슨 말씀을……?”
“듣고 대답만 하라 하였다.”
엄청난 위압감이 온몸을 덮쳤다.
장삼태는 힐끗 탁자 위에 놓인 전낭을 바라봤다. 천산에서부터 지금까지 모아 온 돈.
한평생 일도 하지 않고 계집질만 해도 남을 액수였다.
그런 돈을 맡기고, 소미와 함께 중원을 떠나라고?”
“제…… 제가 가지고 도망갈지도 모릅니다.”
“그럴 리가 없다.”
“소인은 도둑놈입니다만…….”
“그럴 놈이 아닌 것을 안다.”
“…….”
“결정했느냐?”
“아니! 생각해 보십쇼, 장주님! 무슨 유언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까!”
울화통이 터진 장삼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무섭지도 않는 것인지 그가 단우현의 눈을 직시했다.
그만큼 단우현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순간.
퍽!
장삼태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지금까지 가볍게 때렸던 것과는 다르게, 게거품을 문 채 어이없이 널브러졌다.
단우현은 그제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유언일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겠다만…… 지금은 부탁할 사람이 네놈밖에 없구나.”
그런 말을 하며 유유히 방을 떠나갔다.
등을 돌려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이윽고 객잔을 빠져나온 단우현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저 먼 곳에 장백산이 보였다.
“자…… 끝내 보자꾸나.”
그가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오래전 그의 본모습을 일깨우듯 살벌함이 가득했다.
하늘의 달빛마저 붉게 달아올라, 마치 피로 물든 길을 걷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