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48
아무런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를 지키고 있던 수많은 수하들, 강림술을 이용해 되살렸던 과거 수족들.
누구 하나 영혼의 기척이 없었고,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영혼마저 소멸된 것처럼.
혈마는 파르르 눈꼬리를 떨었다.
창밖에서 보이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터벅터벅-
드넓은 혈마교.
불과 수 시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교인과 수하들이 저 거리를 가득 채웠던 곳이 지금은 그저 싸늘한 정적만 감돌았다.
바람을 타고 짙은 피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저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대는 무신, 어쩌면 이럴 수 있지 않을까 여겼어야 마땅하다.
‘아니, 저 녀석이 이곳으로 찾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거였다.’
그 뒤늦은 깨달음이 충격을 안겼다.
단우현은 혈마의 예상을 모두 뒤집어엎어 버렸다.
이제는 과거 그가 알던 무신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권좌 위에 장식해 두었던 검 한 자루가 휘리릭 날아들어 혈마의 손에 쥐어졌다.
끼이이익-!
그 순간.
거대한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온몸에 피가 묻어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오싹한 느낌이 엄습했다.
혈마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으나, 이내 태연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쏘아봤다.
“오랜만이구나.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
오만한 한마디에 걸음을 멈춘 단우현이 가만 혈마를 쳐다봤다.
어떤 생각을 하는 건지 전혀 읽을 수 없는 표정.
마치 비웃는 것 같기도 했고, 무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침묵이 한동안 두 사람을 휘감았다.
그것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단우현이었다.
“예전보다 못하더군.”
단우현은 과거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그보다 못한 현 상황을 꼬집은 것이었다.
과거, 혈마의 교도들은 강했다.
지금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때의 혈마교도들은 다 죽었다.
그간 평화로운 무림이 이어졌고, 투쟁이 사라진 무림에서 무인들의 전체적인 실력이 낮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단우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단 무력뿐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혈마교도들은 비록 죽음을 눈앞에 둔다 하더라도 적을 두고 도망치지 않았다.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군을 향해 전진하는 무신을 막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다.
수천여 명의 교도들이 그리 죽어 나갔다.
다리가 잘리면 기어서, 팔이 잘리면 이빨로.
그마저도 없으면 온몸을 던져 단우현을 막아서던 광신도들은 이제 존재치 않았다.
“네놈이 무엇을 알겠느냐. 천 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음을…….”
“그런가 보군.”
조소를 머금은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하는 듯하면서도 수하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혈마에 대한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것을 바라보며 혈마가 이를 갈았다.
언제나 만인 위에 있었던 혈마는 최강이라 불리는 무신이 싫었다.
그가 보이는 여유조차 증오스러웠다.
그렇기에 더욱 그를 가지고 놀다 죽이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이후로 네 이름은 무림에 존재치 않을 것이다.”
혈마는 웃었다.
단언하는 무신을 바라보며.
“웃기는 소리로군. 내가 누구인지 잊었느냐?”
“잘 알지……. 팔선의 우두머리 천무제(天武帝)의 제자.”
“…….”
순간 혈마가 묘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존재치 않을 것이다.
아니,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이하여 단우현은 알고 있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네놈을 죽인 것은 나였고, 강림술을 펼칠 수 있는 이들 또한 모두 죽였다.”
그렇기에 혈마가 다시금 살아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 혈마가 되살아나기라도 한 듯이 누군가 정사마를 암중에서 조종했고, 종국엔 삼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우현을 죽이기 위해 많은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이윽고 그들 모두를 베여 죽였을 때.
마치 그때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타난 팔선.
아무리 단우현이라 하여도 수만에 이르는 이들과 수일밤낮 동안 격전을 벌였으며, 공력이 무한정이라 할 수 없으니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후에 나타난 팔선은 그가 방심한 틈을 타 봉인하였다.
당시,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미약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천무제를 똑똑히 보았다.
“네놈을 부활시킨 것은 천무제겠지. 그에게 제자 하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네놈이었더군.”
단우현이 품에서 책을 꺼내 던졌다.
툭 하고 혈마의 발밑으로 떨어지려는 것이, 곧 붕 떠서 혈마의 손에 쥐어졌다.
“무신…… 도경?”
척 보아도 오래된 것.
고작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책이 아님을 알 수 있었기에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혈마는 당황을 금치 못하고 눈동자가 떨려왔다.
과거 무신과 혈마의 이야기.
누가 써 놓았는지 모르겠으나 마치 곁에서 보았던 것처럼 상세했으며, 가장 끝에는 혈마와 단우현의 무공을 비교하듯이 혹은 누군가에게 알려 주는 것처럼 분석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비록 그것이 완벽하다 할 수 없었으나, 충분히 둘의 무공을 익히고 펼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만약 무림에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모든 무림인들이 이 무신도경을 찾기 위해 전 중원을 뒤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장백산…… 알고 보니 이곳이 천무제가 제자를 키웠던 곳이었더군.”
“큭……! 어느 놈이 이런 것을!”
“뻔하지 않으냐? 팔선이다.”
“……!”
혈마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가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자세히 사정을 서술할 수 있는 이는 팔선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혈마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이를 갈았다.
스르릉-!
이윽고 단우현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소리에 혈마 또한 책을 버리며 검을 쥐었다.
팔선이 어떤 이유로 저런 것을 만들었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무신을 베어 죽이는 것만 생각해야 할 때였다.
혈마가 흔들리는 시선으로 앞을 보는 순간.
단우현이 이죽거렸다.
“버려진 것 아니냐, 스승에게.”
“이놈-!”
쾅-!
* * *
장삼태가 몸을 날리며 이곳저곳을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큰 건물들에만 들어가,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겼다.
어느새 등에는 한 보따리의 짐이 가득했다.
“아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장삼태는 주륵 식은땀을 흘렸다.
커다란 짐을 돌아보며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안에는 온갖 금은보화들이 가득했다.
혈마교 또한 사람이 살던 곳이므로 재화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단우현은 혈마를 찾아가기 전에 장삼태에게 말했다.
“도둑이니 도둑질을 해야지?”
“예?”
사람조차 없는 곳에서 무슨 도둑질인가? 심지어 시체가 가득한 곳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 하는 게 장삼태 아니겠는가.
하여, 그는 가장 큰 건물들만 골라서 털었다.
그가 등에 메고 있는 봇짐에는 막대한 양의 전표와 은자, 금자들과 보석들로 가득 찼고, 한평생은 놀고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장삼태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여 한숨을 쉬었다.
도둑질에서 벗어난 삶을 살겠다고 그렇게 결심을 하였는데, 어찌 된 것이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속으로 단우현을 몇 번 욕해 준 다음 고개를 돌렸다.
가장 큰 전각.
이제는 저곳만 남겨 놓고 있었는데, 이상하리만큼 감각이 찌릿거렸다.
마치 본능이 저곳만큼은 결코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여 몇 번이나 고민을 하는 사이.
쾅!
커다란 울림과 함께 전각 한쪽이 날아갔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크게 흔들리며, 곳곳에서 펑펑! 하는 연이어 폭음이 들려왔다.
촤르륵-!
마치 화산이 분화하여 불덩이들이 떨어지는 것처럼 전각의 파편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으아아악!”
장삼태가 부리나케 내달리며 그것을 피해 다녔다.
하나라도 맞는 순간 끝장이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좀 주변을 봐 가면서 싸워야지!”
거칠게 욕을 하며 흔들리는 전각을 쏘아봤다.
그러나 장삼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싸움은 점점 더 격렬해져 갔고, 그럴 때마다 더욱 장삼태를 위협하는 파편들이 날아다녔다.
장삼태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원치도 않는 경공 수련을 해야 했다.
* * *
콰쾅-!
무신과 혈마.
한때 중원의 어느 누구도 범접하지 못했던 존재들.
여전히 전설로 이름이 전해 내려오고, 그렇기에 실존하였는지 혹은 허상인지 말도 말았다.
그런 전설적인 무인들의 부딪침은 상상을 초월했다.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벼락이 떨어졌고, 진각을 밟을 때마다 지진이 일었다.
멀쩡했던 전각들도 더 이상 그들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검에는 짙은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한 수 한 수의 부딪힘이 지금 중원에 있는 최고수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힘을 내뿜었다.
촤촤악-!
두 사람이 검을 교차하는 와중에 무언가가 베여 나갔다.
단우현은 가슴팍이 베였고, 혈마는 볼에 상처를 입었다.
잘려 나간 앞섬을 바라보며 단우현이 씩 웃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것을 혈마가 이루었다. 확실히 오래전 그와 맞붙었을 때와는 격이 다른 강함이었다.
입가에 맺힌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고양감을 느낀 것이 얼마 만이던가?
조금 더 큰 힘을, 더 많은 움직임을 사용해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언제였던가?
무극신마라는 별호를 얻은 후부터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그 긴장감.
그것에 단우현은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검을 휘둘러 댔다.
“큭!”
그러나 반대로 혈마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지난번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힘은 물론이고 공력의 움직임까지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무신! 힘을 숨기고 있었느냐!”
이를 갈며 소리를 치는 혈마를 바라보며 단우현은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쾅!
두 사람이 훌쩍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이윽고 단우현이 혈마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무신이 아니다. 단우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