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50
단우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끝난 싸움의 여운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었다.
“하아…….”
더 이상 부활 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죽음을 선사해 주었으니 후련해야 마땅한데, 어찌하여 마음이 이리도 답답할까?
이 또한 과거의 잔재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괜찮으십니까요?”
쪼르르 허겁지겁 달려온 장삼태가 물었다.
단우현은 그런 장삼태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너는 내가 두렵지 않으냐?”
“예?”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우현은 진심으로 물었다.
천 년 전, 그리고 지금도 살생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천살성의 기운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운명, 그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장삼태는 가장 가까이 있던 존재다.
특히 지금 이곳에는 혈마교도들의 시체가 천이 넘었다.
또한 눈앞에서 인간 같지도 않은 싸움을 본다면, 누구라 할지라도 겁에 질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장삼태의 얼굴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몸을 떨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단우현에게 겁을 먹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아니, 원래 무서웠는데 뭘 새삼스럽게 또 무섭습니까?”
“하하.”
그 한마디에 단우현이 묘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연하게 들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바라보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무엇이냐?”
단우현이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장삼태가 지고 있는 짐이었다.
꽤 무거울 것 같았는데, 그것을 아주 소중하게 짊어지고 있었다.
“뭐긴 뭡니까, 돈이지.”
“쯧쯧, 이런 곳에서 도둑질을 했느냐? 그 손버릇은 어딜 가지 않구나.”
“아니! 장주님이 시켰잖습니까?!”
흠- 하며 단우현은 생각했다.
그러다 아! 하는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어차피 사라질 곳이니 무엇을 가져가든 누가 뭐라 하겠는가? 기왕 장삼태가 이곳까지 왔으니 재산이나 좀 늘려 볼까 시켰던 기억이 그제야 떠올랐다.
“그렇구나.”
“그냥 넘어가지 맙시다 좀…….”
한순간 정말로 못된 도둑이 된 것 같았던 장삼태는 입술을 삐죽이며 한숨을 쉬었다.
가끔 단우현을 보고 있자면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게 취미 같아 보였다.
“그럼 이제 여기 일은 끝난 것입니까?”
“그래, 하지만 잠시 기다려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우현이 슬쩍 몸을 움직였다. 폐하나 다름없는 곳을 걷고 또 걸으며 어디론가 향하더니 무너진 전각 앞에 섰다.
“뭡니까 여긴?”
“보고 있어라.”
단우현은 발로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땅을 뒤적이기도 했다.
잔재 속에서 무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장삼태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윽고 단우현이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장삼태를 향해 휙 던졌다.
“그나마 멀쩡하고 쓸만해 보이는구나.”
“이…… 이것은 뭡니까?”
“비급이다.”
장삼태가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을 자신에게 주는 것인지 장삼태는 이해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사도학이 무슨 무공을 잡탕처럼 익히느냐며 호통을 쳤는데 말이다.
“건질 수 있는 것은 건져야지. 하물며 필요한 이가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이게 저한테 필요한 것입니까?”
“그래.”
“어디에 말입니까?”
장삼태가 무공 비급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윽고 조금 전 단우현이 한 말을 되새겼다.
“풍운잠형보…… 경공 아닙니까?!”
“그래.”
“전 경공 쓸 줄 압니다만?”
장삼태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경공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는 장삼태다. 비록 단우현이 예외적인 인간이라 그런 것이지, 다른 이들이라면 쉽사리 붙잡히지 않을 자신까지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경공을 익히라고?
그렇지 않아도 단우현이 알려 준 지법조차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필요조차 없는 무공을 익히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것을 익히면 나에게서 도망칠 수도 있을 텐데.”
“이 장삼태! 목숨 걸고 익혀 보겠습니다!”
쩌렁쩌렁-!
장삼태는 크게 고함을 내지르며 속으로는 환호했다.
경공을 익히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또한 단우현이 저런 말을 했으니 반드시 익혀 두 번 다시 붙잡히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전의를 불살랐다.
이윽고 단우현이 장삼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꿈은 깨지 않을 때가 좋은 법이다.
* * *
객잔으로 돌아온 단우현과 장삼태는 눈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지친 듯 방 앞 복도에 쭈그려 앉아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매향.
장삼태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툭툭 어깨를 건드렸다.
그제야 매향이 조심스레 눈을 뜨며 장삼태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흐릿했지만 점차 초점이 잡히고 커다란 눈을 끔뻑였다.
“뭐하냐, 너?”
방을 코앞에 두고 왜 복도에서 잠을 자고 있는가?
심지어 사내도 아닌 여인이 말이다.
“……왔어요?”
그러나 매향은 대답하지 않고 다소 졸린 시선으로 장삼태와 단우현을 번갈아 바라봤다.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니, 혹여 돌아오지 않지는 않을까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윽고 서서히 잠이 깨는 것인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그것보다 큰일 났어요!”
“뭐…… 뭐가?”
“사람들이 다 난리예요! 장백산의 신선이 화가 났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이상한 사람들이 막 도망치기도 했어요!”
호들갑을 떨며 매향은 큰소리를 쳤다.
당시를 생각하면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굴마저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용케 도망을 치지 않고 이 자리에 남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장삼태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신령이 노하기는 했지. 그런데 너는 왜 도망 안 가고 여기 있었냐?”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마을 전체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사람이 존재치 않는 것처럼 고요함만이 감돌았으니, 분명 장백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도망을 다들 친 것이다.
상당히 먼 거리임에도 들려왔다는 것은, 단우현과 혈마의 힘이 재해 수준임을 다시금 인식하게 만들어 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때, 매향이 다소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그건…… 당신이 여기 가만있으라고…….”
“어엉?”
“그러니까…… 당신이 여기 있으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내가 도망갔다가 못 만나면 어떻게 해요? 난 갈 데도 없는데…….”
기가 센 여자라고 생각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매향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장삼태를 쏘아봤다.
그 시선에는 장삼태에 대한 서운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장삼태는 매향의 말에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잊은 것인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단우현이 피식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렇단다. 잘되었구나, 좋은 처자를 만나서.”
“아…… 자, 장주님 이건 그게 아니라…… 이게……!”
장삼태는 허둥지둥거리며 제대로 말을 뱉지 못했다. 난생처음으로 여인에게 이런 관심을 받아 보는 탓에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장삼태의 어깨를 두들긴 단우현이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하였는지 멈칫했지만 다른 이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탁!
문이 닫히자 장삼태와 매향,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오랜만이구나.”
방 안으로 들어온 단우현은 인사를 하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방 안에 있던 인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차를 따라 주었고, 조심스레 그의 앞에 잔을 내밀었다.
“정말이에요. 너무 오래되어 얼굴조차 잊을 만큼…….”
“그렇구나.”
인영은 창밖을 바라보았고, 단우현은 찻잔을 들었다.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
“많이 변하셨어요.”
“그래, 너도 말이다.”
“후후, 천 년이나 흘렀는걸요?”
인영이 빙글 몸을 돌려 단우현을 바라봤다.
싱긋 웃음을 짓자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여인의 미모에 혹하지 않는다고 하던 단우현조차 잠시잠깐 얼빠진 표정을 지었을 정도다.
“예전에는 누구도 곁에 두려 하지 않으셨는데…… 이제는 사람이 있군요. 선계에 올라간 삼천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어요.”
“그 아이들이 등선하였느냐?”
“네, 천무제를 몰아내고 새로운 팔선이 되었지요. 누구 덕분에 말이에요.”
“그렇군. 그럼 무신도경은…….”
단우현의 질문에 여인은 잠시 뜸을 들였다.
한참 동안 생각을 하는 듯 눈을 감더니 이내 단우현을 바라보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사악-!
한 걸음을 내디뎠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서 있던 창가 자리에는 무수히 꽃잎들이 휘날렸다. 달콤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유혹적인 냄새가 코를 찌르며 방 안을 풍겨 왔다.
“누군가에겐 새로운 무신과 혈마가 필요했을 테지요. 당신과 혈마를 아는 누군가가…….”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그녀가 매혹적인 소리를 냈다. 귓가에 속삭이는 그 한마디는 달콤하면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런 종류였다.
단우현이 손을 내질렀다.
마치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손날이 번뜩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여인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 또다시 꽃잎이 휘날렸고, 어느새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싱긋 웃었다.
“천무제인가…….”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지요.”
여인은 고혹적인 손짓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사람을 유혹하듯 매력적인 움직임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이가 단우현이 아닌 장삼태나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그녀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덮치려 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러 왔지요. 무신께서 나서지 않았다면 소녀는 평생 숨어 살아야 했을 테니까요. 이걸로 두 번째인가요?”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한 일이 아니다. 결국 단우현 본인을 위해서, 그리고 단소미를 위해서 벌인 일이니 누군가에게 감사를 받을 필요조차 없었다.
“되었다. 나를 위한 한 일이니…….”
“쿡쿡 그러네요. 어찌 되었든 이렇게라도 다시 뵙게 되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이 은혜를 갚게 되는 날이 오기를 빌겠습니다.”
여인은 그런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방긋 웃음을 지으며 등을 돌리는 순간.
촤륵-!
아홉 개나 되는 꼬리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 뿌연 안개와 함께 여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누가 본다면 현실이 아닌 꿈속이라고 착각할 만한 광경이었다.
단우현이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구미호…… 많이 컸구나.”
과거의 인연을 떠올리면서 그 고리가 아직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