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53
“공청석유라…… 좋은 것을 먹었구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단소미의 등에 손을 얹은 단우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상대의 기혈에 자신을 공력을 흘려 넣으며 말을 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단우현은 무척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남궁천과 사도학이 놀라 기겁을 했다.
“괘…… 괜찮은 것인가? 그리 말을 해도?”
“문제없다. 고작 말 몇 마디에 문제가 생긴다면 나약한 정신력을 탓해야지.”
“크큼!”
“크험!”
남궁천과 사도학이 헛기침을 하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단우현 같은 이례적인 존재들을 제외하면 현 중원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무인인 두 사람이지만, 아직도 다른 이의 기혈에 손을 댈 때에는 주화입마를 걱정하여 말 한마디는커녕 숨도 조심해서 쉴 만큼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탓이다.
그런데 단우현은 그것을 정신력 문제라 말한 것이다.
뚱한 표정으로 사도학이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장백산에 갔다 왔다며?”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해결된 것이냐?”
“잘이고 뭐고 없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행했을 뿐이지.”
“신선놀음하고 있네.”
단우현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투덜거리는 사도학의 목소리도, 진지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궁천의 시선도 익숙한 일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인지도 몰랐다.
“되었다.”
단소미 내부에 있는 천일조화공의 공력을 다스린 단우현이 조심스레 손을 뗐다.
가부좌를 틀고앉아 있던 단소미가 스르륵 쓰러지는 것이 보였는데, 낮에 펑펑 울어서 알게 모르게 지쳐 있던 탓에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단우현이 단소미를 안아 들고 침상에 눕혔다.
아마 한동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단잠을 자고 있는 단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조심스레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항상 그가 앉아 있던 툇마루다.
서서히 밤이 오고 달이 떠올랐다. 그 달빛이 세가 전체를 아우르자, 평소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 그렇지만 머릿속에 있는 기억과 변하지 않은 모습을 눈에 새겼다.
“좋구나.”
하아- 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평온을 찾은 것 같았다.
그간 여정에 피로가 한 번에 몰려들었다. 그렇다고 그간 편히 쉬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라 할 수 있으나, 이곳이야말로 단우현이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탁-!
옆을 돌아보니 남궁천이 앉아 있었다.
언제 가지고 온 것인지 술 한 병을 꺼냈다.
“호연지가 만들어 놓은 술이라네. 그 아이도 그간 많이 성장했어. 마셔 보겠나?”
“좋지.”
단우현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어느새 사도학까지 그 자리에 끼어 앉았다.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럴 것이라 예측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남궁소혜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지고 왔다.
“자요! 먹어요.”
“응? 네가 했나?”
“못 믿겠다는 표정 짓지 말아요. 나도 그간 많이 늘었다고요.”
남궁소혜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럴싸한 요리들이다. 비록 장삼태의 실력에 이르지는 못할 테지만, 먹고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놀렸다.
잘 볶은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괜찮군.”
“그렇죠? 이 남궁소혜, 한다면 한다니까요.”
“그래…… 그렇구나.”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호연지의 술이 조금 더 깊은 맛을 내는 것도, 남궁소혜가 전혀 하지 못했던 요리를 하게 된 것도.
또한 사도학이나 남궁천의 기세가 달라진 것도.
그것이 바로 시간이 흐르고 변해 간다는 것이리라.
단우현은 술잔을 기울이며 하늘을 올려 다 봤다.
‘나 또한 변했을까?’
천 년 전, 그 당시 단우현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지금 단우현이 변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씁쓸하면서도 재미있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말이다.”
“뭐냐?”
“아까, 삼태 그놈과 함께 온 여인은 누구인가?”
제법 반반하게 생긴 여인이 삼태 놈과 딱 붙어 있으니 무척 이상했다.
“삼태 녀석의 연인이다. 정작 본인은 부정한다만…….”
“엑?!”
“뭐!?”
“어엉?”
순간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세 사람의 표정이 급변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장삼태가 연인을 만들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남궁소혜는 마치 절망해 버린 표정이다.
“이…… 있을 수 없어…….”
“…….”
남궁천마저 입을 다물었다.
손녀딸은 아직 좋은 소식이 없는데, 장삼태가 먼저 인연을 만났다니,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태어나 지금까지 여인이라고는 수하나 기녀들밖에 몰랐던 사도학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며 손에 쥔 술잔을 부쉈다.
파삭-!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것을 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잡아 와라.”
“넷!”
남궁소혜가 부리나케 장삼태의 거처로 달려갔다.
* * *
“끄으으으…….”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장삼태는 신음을 흘렸다. 오랜 여정으로 쌓인 피로를 풀며 기분 좋게 잠을 자고 있던 중에 느닷없이 납치를 당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끌려오자마자, 사도학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보았고, 저도 모르게 땅에 머리를 박았다.
“좋으냐?”
마치 건들거리는 파락호의 질문처럼 들렸다.
한껏 각을 잡은 사도학에게서는 알게 모르게 살기마저 느껴졌다.
“뭐…… 뭐가 말입니까?”
“아직 정신 못 차리지?”
“예?”
장삼태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이렇게 벌을 받고 있는 것 자체가 괜한 사람을 잡고 있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소 고까운 표정으로 되묻자.
“여자 말이다, 여자! 네놈이 감히 나를 내버려 두고 여자를 만들어?”
“아니, 시벌! 그럼 만드시든가! 그러고 내 여자 아니라고요!”
“이놈 봐라? 여자가 따라야 만들지!”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말입니까!”
“나도 소개시켜 달라고!”
사도학의 외침에 장삼태는 한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뿐 아니라 단우현이 미간을 움켜잡았고, 남궁천과 소혜가 슬그머니 거리를 벌리며 쓰레기를 보듯이 사도학을 쳐다봤다.
이윽고 장삼태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늙은이가! 나이 차이를 생각해야 할 거 아냐!?”
“뭐!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이 노망난 늙은이를 봤나?”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장삼태의 모습에 사도학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장삼태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간 단우현과 함께 있어서 단우현만 조심할 줄 알았지, 다른 늙은이들에 대한 것들을 완벽히 잊어버렸다.
기겁하며 휘둥그레 눈을 치켜뜨는 그 찰나.
사도학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아이코야!”
얻어터진 장삼태가 주저앉자 남궁천이 사도학을 말렸다.
사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장삼태를 두들겨 화풀이할 일은 아니었다.
“그만하게나. 이 아이 말도 들어 봐야 할 것 아닌가?”
“어르신…….”
사도학을 만류하는 남궁천의 마음에 감격을 받은 듯 장삼태가 남궁천을 바라보며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역시 정파의 대협과 마교의 악적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에? 아무것도 안 했는뎁쇼?”
“혹시 밤에 몰래 숨어 들어갔다든가…… 약점을 잡았다든가? 아니면 납치라도 했느냐?”
“…….”
장삼태가 얼빠진 표정을 남궁천을 바라봤다.
사도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그…… 정말로 아무것도 안 했는…… 아악!”
남궁천이 슬그머니 손을 뻗어 장삼태의 가슴을 꼬집었다. 평범한 사람의 손도 아니고 검황의 손이다 보니, 고통이 골수까지 치밀어 올랐다.
“인석아, 아무리 여자가 급해도 그렇지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니란다.”
“아, 글쎄 나는…… 끄아악!”
“허허허, 아직도 반성할 줄 모르는구나. 그 귀여운 아이에게 무슨 짓을 벌였는지 이실직고해라.”
온몸을 꼬집어 대는 통에 장삼태는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픔에 땅을 뒹굴며 그만하라 외침에도 이 악귀와도 같은 인간은 도통 들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때,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매향이 보였다. 엎어져 있는 장삼태를 일으켜 세우더니, 그의 옷에 묻은 흙을 조심스레 털어내 주었다.
하나하나 보이는 행동에 모두들 기겁하며 바라봤다.
이윽고 매향이 생긋 웃음을 짓고 앞에 있는 이들을 하나둘씩 둘러봤다.
그 웃음은 생각보다 아름다워 모두가 멍하니 쳐다보게 만들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서 쫓아다니는 겁니다.”
“정말로 괜찮은 거냐? 협박당하는 게 아니고?”
“네, 그런 적 없답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추측들 하지 마시고…… 괴롭히지 않으셨으면 하는데요?”
톡 쏘는 말에 사도학이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당찬 여인일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는데 그보다 더 대단한 것 같았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여 그런 것이었으나, 똑바로 사람을 주시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남자를 건들지 말라는 위협 섞인 경고가 느껴졌다.
“가요.”
매향이 억지로 장삼태의 팔을 이끌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 모습에 사도학이 좌절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에요? 다 늙어서 저게 무슨 짓이람?”
투덜투덜.
매향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회포를 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장삼태를 괴롭히고 있었다.
울컥 화가 나 저도 모르게 끼어들어 버렸다.
‘감히 누굴 건드려?’
쌍심지를 치켜뜬 매향이 독기 어린 눈을 빛냈다.
“아, 몰랐어요?”
그때, 지나가던 매향의 발걸음을 붙잡은 여인이 있었다. 한 곳에 우두커니 선 채 오독오독 말린 고구마를 씹어먹고 있던 제갈연이었다.
“뭐가요?”
“저분들이 누구인지요.”
제갈연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확인했다.
“몰라요. 꼭 알아야 하나요?”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예요. 왜냐면…… 천하오황이시거든요.”
이윽고 어깨를 으쓱한 제갈연이 쿡쿡 웃음을 짓고 남궁소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야, 괜찮냐?”
“지금 뭐라고…….”
장삼태가 슬그머니 매향의 얼굴을 보았다. 한껏 굳은 채 핏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처, 천하오황……?”
“그래, 몰랐지? 저 양반이 마황이야.”
“누가…… 요?”
“네가 쌍심지 치켜뜨고 지랄한 늙은이. 푸하하, 대단하다니까 진짜.”
장삼태가 크게 웃음을 지으며 툭툭 그녀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때, 매향이 하늘을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굳은 얼굴을 고쳐 싱긋 웃음을 지으며 장삼태를 툇마루 쪽으로 밀어냈다.
“저는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장 소협께서 무언가 잘못을 단단히 한 것 같아요. 어서 가서 싹싹 비세요.”
“엉?”
“어서 가서 내 몫까지 싹싹 빌라고, 이 새끼야-!”
퍽!
장삼태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며 언성을 높이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