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56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겠지?”
황보권이 주먹을 말아쥐며 쏘아봤다.
남궁세가의 위상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이 자리에서 남궁소혜를 벌한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남궁소혜는 여유로운 눈빛으로 황보권을 바라봤다.
전혀 기죽지 않은 그 표정은 오히려 상대를 위축시켰다.
황보권과 황보영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일일이 상대하기도 귀찮으니 한꺼번에 덤벼.”
당찬 한마디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세 사람이었다.
남궁소혜의 검술이 대단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것은 수년 전 일이었고, 그간 자신들 또한 상당한 수련을 통해 실력을 올려왔다.
후기지수 중 최강이란 수식어를 언제나 달고 다녔던 남궁소혜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합공한다면 결코 무사치 못할 것이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황보권이 위협하듯이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검황을 배출한 남궁세가.
팔대세가의 정점 남궁세가.
정파의 최강의 검 남궁세가.
그런 수식어들은 이제 사라졌고,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한때 아무리 남궁소혜가 강했다 하여도 그것은 과거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저런 자신감을 보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죽여 버리겠어!”
그때, 황보영이 달려들었다.
조금 전 얻어맞은 것이 꽤 아팠는지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혔다.
내지른 주먹에 살기마저 감돌았다.
소리친 것처럼 단번에 남궁소혜를 때려죽이겠다는 듯 힘을 실은 것이다.
파파팟!
과연 황보세가라 감탄할 정도로 묵직한 주먹.
움직임 또한 상당히 빨라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 대단했다.
사사삭!
그러나 남궁소혜의 움직임은 그것을 뛰어넘었다.
가볍게, 마치 깃털처럼 움직였다.
그것은 남궁세가의 절기인 무애검법의 움직임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을 보고 당문혜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창천무애검법의 아닌 데다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남궁소혜는 마치 어디를 공격해도 피할 것 같았고, 그 깃털과도 같은 몸놀림은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게 말이 되는가?
파파파팟-!
황보영의 권각은 그저 허공만을 갈랐다.
“너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생긋 웃음을 지은 남궁소혜가 손을 내질렀다.
손날을 세워 마치 칼을 휘두르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퍼걱-!
“아악!”
남궁소혜의 손날이 황보영을 후려쳤다. 황보영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나더니 이내 휘청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콜록콜록!”
거칠게 기침을 내뱉으며 숨을 몰아쉬는 황보영.
“약하네……. 너무 약한 거 아니야?”
그걸 본 남궁소혜가 조소를 입에 걸며 중얼거렸다.
사실 황보영의 실력은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상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우현과 함께하면서 겪었던 모든 일이 남궁소혜를 한층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심지어 환조검의 검형까지 익히고 있는 그녀는, 이미 후기지수라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수준이 높아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 빌어먹을 년이!”
챙-!
황보권이 욕설과 함께 도를 뽑아 들었다.
순식간에 뻗어 나간 일도가 매서운 선을 그으며 남궁소혜를 노렸다.
그 순간, 남궁소혜의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부드럽고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 단박에 도가 그리는 궤적 안쪽으로 파고들며, 손날로 황보권의 턱을 후려쳤다.
퍽!
깔끔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름대로 맷집이 대단하다고 자부했던 황보권의 몸이 어이없이 무너졌다.
쿵!
그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널브러지는 것과 동시에, 남궁소혜는 그대로 진연화를 향해 날아갔다.
“이익!”
진연화는 당황했다.
설마 두 사람이 저렇게 쉽게 쓰러질 줄이야?
남궁소혜가 후기지수 중 최강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 또한 남궁세가라는 이름 탓에 부풀려진 명성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실제 그녀의 싸움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격이 달랐다.
그 움직임은 물론이고 상대를 위압하는 방법까지 말이다.
입술을 질끈 깨문 진연화는 매섭게 검을 뿌리며 사방으로 검세를 펼쳤다.
다가오는 남궁소혜를 조금이나마 떨쳐 내려는 수법.
빈틈없이 찔러 들어오는 검은 무척 화려하였으나, 그보다 남궁소혜의 움직임이 사람들을 더욱 경악하게 만들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검로를 흘리고 피해 냈다.
상처조차 입지 않았고, 옷자락 하나 잘려 나가지 않았다.
실로 기기묘묘한 움직임을 지켜본 모든 이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조차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발에 힘을 주며 나아가니, 마치 화살처럼 쏘아진 그녀의 신형은 어느새 진연화의 뒤에 나타났다.
“윽?!”
“계속할래?”
손날이 진연화의 목에 닿았다.
실제 검이었다면 이미 피를 보았을 것이다.
진연화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쥐고 있던 검을 내려놓으니 그제야 남궁소혜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마지막으로 돌린 시선에는 당문혜의 모습이 있었다.
지금까지 어떤 말도 하지 않은 그녀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당문혜는 나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 다행이네. 너와는 싸우고 싶지 않았거든.”
“많이 강해졌구나…….”
“정말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그래…….”
당문혜가 살짝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렸다. 쓰러져 있는 두 사람 따윈 알 바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떠났다.
애초에 그들이 좋아서 함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서서히 멀어지는 당문혜의 등을 바라보며, 남궁소혜가 어깨를 으쓱하곤 그녀 또한 발길을 옮겼다. 괜한 곳에서 시간을 너무 잡아먹은 것 같았다.
“아아…… 어떡하지……?”
덩그러니 남은 진연화가 쓰러진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망연하게 한숨을 쉬었다.
* * *
다음 날.
남궁소혜는 오랜만에 치장을 했다.
화장도 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고 고급스런 귀걸이와 목걸이를 찼다.
손에는 반지를 끼고 머리를 질끈 말아 올렸다.
입술에는 연지를 발랐다.
은은한 향을 뿌리고 붉은 궁장을 입은 그녀가 문을 나섰다.
“헉?!”
“워메?”
“저…… 저게 뭐…….”
“헐…….”
곳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권무진, 마장강, 장삼태와 사도학, 그리고 남궁천까지 얼빠진 시선을 보냈으며 단우현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한 발을 내디디며 우아하게 손짓했다.
“잠시 나갔다 올게요.”
“그…… 그래라…….”
적응되지 않는 것인지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모습은 가끔 연회를 열었을 때 정도밖에 보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오 년은 넘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한껏 치장한 남궁소혜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단소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자.”
“에, 네네!”
단소미가 잔뜩 신이 나 남궁소혜의 손을 붙잡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알려 주지 않았지만, 그저 가자는 대로 어디든 따라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반대로 그 모든 상황을 지켜 본 이들이 그저 멍 했다.
자신들이 본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치장하는 것에 자신이 있다는 매향조차도 볼을 꼬집어 볼 정도다. 남궁소혜가 기본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치장을 하는 순간 이 정도까지 일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은 한 쪽에 있는 단우현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것이냐?”
“모르겠는뎁쇼?
단우현과 장삼태가 신음을 삼켰다.
* * *
남궁소혜는 또다시 악양의 거리로 향했다.
저잣거리에 도착한 순간부터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길을 걷던 사내들이 그녀를 바라보다 엎어지기 일쑤였으며, 멍한 시선으로 귀신에 홀린 것 같은 사내들도 보였다.
몇몇은 이것이 꿈이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선녀강림(仙女降臨).
아마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선과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
우아한 발걸음으로 단소미를 이끈 남궁소혜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어제 갔던 고급 물품들만 취급하는 가게였다.
그곳에는 여전히 허영을 채우고 싶어 찾아온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남궁소혜가 그곳으로 한 걸음 들어가자,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 집중하며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어…… 어서 오세요…….”
어제와 같은 여인이 다가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옅게 화장한 덕분에 어제 본 남궁소혜를 떠올릴 수 있었으나, 분위기상 이렇게 공손하게 대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궁소혜는 그녀를 무시하며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느긋하게 자리를 잡았다.
품에서 전표 한 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탁! 하고 놓인 것을 바라보며 모든 이들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못해도 금자 백 냥은 되는 금액이다.
그것을 바라본 순간 점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점주가 반색하며 다가와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찾으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저희 가게는 말이죠…….”
“설명은 됐고…… 소미야, 골라 보렴.”
“네? 제가요?”
“그래, 네가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 골라 보렴.”
생긋 웃음을 짓는 그녀의 말에 단소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 따라온 것은 아니었는데…… 하며 열심히 마음에 드는 것을 찾고 있었다.
그때, 점주가 비싸 보이는 옷 한 벌을 소개시켰다.
“이것은 말입니다. 저 서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물품으로…… 손님께서 입으신다면 그야말로 천상선녀가 따로 없으실 듯합니다. 너무 잘 어울리실 거예요.”
“어제 왔을 때에는 그런 소리 하지도 않으시더니 이상하시네요.”
“네? 어제…… 말입니까?”
“예. 어제요.”
“어제…… 오셨습니까?”
점주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점원들을 바라봤다. 그러다 남궁소혜가 한 점원을 바라보며 생긋 웃음을 짓는 것을 발견했다.
“어제 저 봤죠?”
“네?”
“어제와는 태도가 많이 다르시네요.”
잠원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하는 것을 보며 점주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재빠르게 남궁소혜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한껏 미소를 지으며 노리개 하나를 가지고 왔다.
“혹, 기분 상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의미로 드리는 것이 아닌…… 너무 아름다우셔서…….”
노리개였다.
어제 단소미에게 사 주려 했던 노리개가 점주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남궁소혜가 흐음- 하며 살짝 흥미를 가진 듯 손을 뻗어 쥐어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묻어났다.
“고맙군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십니다. 해서…… 이 옷이 말입니다만…….”
남궁소혜의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점주가, 다시금 옷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가려 할 때. 한창 구경을 하고 있던 단소미가 다가와 남궁소혜의 소맷자가락을 잡아끌었다.
“무슨 일이니?”
“필요 없어요.”
“응?”
“소미는 옷 안 살래요. 대신 저기에서 당과 사 주세요.”
그 한마디에 남궁소혜가 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점주의 안색이 사색이 되어 버린 것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가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하네요. 그리되었으니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죠.”
“그…… 그러십니까.”
“예, 그럼 수고하세요.”
사뿐사뿐.
남궁소혜는 조금 전 받은 노리개를 단소미에게 건네주며 그곳을 벗어났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주시하던 점주의 시선이 어제 그 여점원에게 향했다.
점주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 * *
“호호호.”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밖으로 나와 당과를 사기 위해 걸어가던 남궁소혜가 통쾌함을 감추지 못한 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게 있단다.”
의문 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단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녀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