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6
남궁소혜는 가끔 말이라는 건 참으로 웃기다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의 처지만 보아도,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커다란 장원에 있다.
동정호 인근에 이러한 장원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만큼 아름다웠다.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기둥과 벽은 모두 깨끗했다.
동정호가 앞에 있어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았고, 장원 내부에 꾸며진 온갖 장식물들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보아라.
“으…….”
그녀는 새하얀 손으로 옷을 하나하나 빨기 시작했다.
생전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집안일을 지금 하고 있었다.
개울가에 빨랫감을 들고 나간 아낙네들과 같은 복장인 그녀, 누구도 무림맹의 봉황단주 남궁소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허름한 모습이었다.
퍽퍽-!
빨랫방망이를 열심히 내리쳤다.
그때마다 화를 토해 내는 듯 격한 소리가 들렸다.
“내 신세가…… 내 신세가…….”
남궁소혜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무림맹 봉황단 단주이자, 팔대세가의 정점이라 불리는 남궁세가의 금지옥엽, 훗날 검후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인재라면 많은 이들이 떠받들어 주던 그녀가 말이다.
‘그냥 도와 달라고 했던 건데…….’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대로 있다간 정말로 굶어 죽든가 개방에서 업어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덕분에 화소미라는 작은 아이의 도움으로 이 장원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사실 은자 몇 냥 적선 받았으면 되는 일이었고, 세가나 맹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당장 갚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단우현은 절대 함부로 돈을 내주지 않았다.
‘머무는 동안 일을 하라니…….’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빨랫방망이를 두들기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가 되면 돈을 주겠다고 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고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괜스레 울화통이 터졌다.
단우현은 그녀 덕분에 산적들에게서 제법 두둑한 은자를 챙기지 않았던가.
“거참, 빨리 좀 하쇼! 뭔 빨래를 하루 종일 해?”
“뭐예요?”
“아니, 내 말이 틀린가? 벌써 한 시진째 빨래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는 거요! 할 일이 태산인데!”
“그럼 어떡해요! 때가 지워지지가 않는데!”
“더 팍팍! 세게 내려치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수? 아까 밥 먹은 힘 다 어따 쓰는겨?”
부글부글-!
남궁소혜를 힘들게 하는 것은 또 있었다.
바로 이 장삼태라는 겁대가리를 상실한 인간.
하루 종일 곁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감시라도 하는 것인지 주변을 서성였다. 그러다 단우현이 보이면 느닷없이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쓰는 시늉을 하거나, 일하는 척을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얄미운지 그녀가 눈썹을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댁이 하시든가!”
“아니, 그쪽 일이지 내 일은 아니잖수. 밥 빌어먹고 사는 게 쉬운 일이 줄 아쇼? 이런 거라도 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지. 쯧쯧, 그쪽은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요?”
“윽……!”
오기가 생겼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났던 그녀는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때문에 괜스레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며, 완벽하게 일을 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더욱 거세게 방망이질을 했다.
“에이씨! 이 인간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아, 그만 떠들고 두들기라고!”
“알았다고요!”
“왜 소리를 질러!?”
“그쪽이 먼저 소리쳤잖아요!”
남궁소혜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다는 심정에 몸을 떨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장삼태는 지금쯤 얻어터졌을 것이다.
* * *
악양.
동정호 때문에 유명한 그 현에는 이제는 더욱 유명한 인물이 생겼다.
바로 현령 홍원창, 지금까지 그 누구도 어찌하지 못했던 흑도회를 퇴치한 그는 백성들은 물론이고 무림인들과 황실에서도 주목을 받는 신성이었다.
그런 홍원창은 오늘 관아로 가지 않고 자신의 장원에 머물고 있었다.
집무실에 앉아 있는 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였으며,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최대한 괜찮아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의 앞에는 한 사내가 앉아 덤덤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단우현.
홍원창이 가장 존경하지만 사실상 황제보다 더욱 어려운 존재가 지금 이 집무실 안에 있었으니까.
“이것입니다.”
홍원창은 떨리는 손길로 커다란 목갑을 건네주었다. 열어 보려 하지 않는 단우현의 모습에, 그가 조심스레 목갑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휘황찬란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금자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대단하군, 짧은 시간에 잘도 준비했어.”
“금자 백 냥입니다. 왕부에서 이번 일에 대한 포상으로 건네준 것이니 단 대협의 것입니다.”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갑을 챙겼다.
생각했던 금액과 딱 맞아 떨어진다. 사실상 현상금 명목으로 받았다면 이보다는 더 큰 금액이 오가야 했지만, 현령인 홍원창을 내세웠으니 그 모든 금액을 다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왕부에서 내려 온 포상금이다.
사실 홍원창이 가져도 무방한 만큼, 그 마음을 받아들여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그놈들은 이제 어찌 되는 거지?”
“어제 왕부에서 직접 찾아와 놈들을 끌고 갔습니다. 아마 그대로 동창으로 넘겨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홍원창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금의위도 무섭기는 하지만 황실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들이라 하면 바로 고자 놈들, 동창이라 할 수 있다.
뛰어난 무공은 물론이고 잔인한 고문술, 과연 뭐 하나 없는 놈들이라 쌓여 있는 성욕을 그런 식으로 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무서운 놈들이다.
“동창이라…….”
“예, 일단 넘어가면 살아나올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 그것으로 일단락된 것인가?”
“물론입니다, 하하하.”
홍원창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일로 세운 공은 모조리 자신의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들뜨고 좋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놈들 때문에 근래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두 다리 뻗고 잠을 자도 괜찮을 것 같다. 걱정거리가 없어진 셈이다.
후륵-
그때, 단우현이 차를 마시며 지그시 홍원창을 응시했다. 그 시선이 제법 날카로운 탓에 웃고 있던 홍원창이 표정을 굳히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듣자 하니 북경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하하, 아직 결정 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홍원창은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호흡을 삼켰다. 중앙 진출은 모든 권력자들의 꿈이나 다름없었다.
홍원창 또한 어린 시절부터 그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지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중앙 진출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한 갑작스럽게 두각을 드러내는 홍원창을 견제하려는 이들도 있을 테니, 황제의 포상을 받기는 해도 바로 중앙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또한 이번 일의 과정을 걸고넘어지는 이들도 많을 테니, 사실 북경으로 올라가는 것이 홍원창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의 진상을 물으려 할 것이니까.
그때, 단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만 조금 아쉽군.”
“걱정 마십시오. 대협! 이 홍원창, 중앙 진출을 한 다해도 절대 대협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참…… 고마운 말이로군.”
단우현은 피식 웃으며 차를 들이켰다.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천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누구의 기억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단우현이니까.
“참, 최근 약양을 찾는 무림인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괜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만…….”
“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날파리가 꼬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 우리 집에도 한 마리 있다. 똥파리가 말이지.”
“예?”
이해를 하지 못한 홍원창이 반문했다. 이틀 동안 워낙 바쁜 생활을 한 탓에 최근엔 장원에 가지 않았으니, 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똥파리라니? 장삼태 녀석을 말씀하시는 건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홍원창이 생각하기에는 장삼태만 한 똥파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꺄르르-
그때, 밖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슬쩍 자리에서 일어 선 단우현이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화소미가 마당을 돌아다니며 홀로 놀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음을 짓자, 홍원창 또한 기분 좋은 투로 입을 열었다.
“정말 착한 아이입니다. 요즘 드물게 말이죠.”
“안다.”
화소미가 착한 아이라는 것을 단우현만큼 잘 알고 있는 이가 또 있을까?
그렇기에 함께 있는 것이고, 저 아이니까 지켜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부드럽게 웃음을 짓자, 홍원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한데 이제 슬슬 학당에 보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학당?”
단우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곳이 있다고 들어 보기는 했지만 무언갈 배워 본 적이 없는 그였다. 때문에 딱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것들이 없어도 사는 것에 지장 받지는 않으니까.
이해를 하지 못하는 단우현의 표정에, 홍원창이 펄쩍 날뛰며 입을 열었다.
“요즘 아이들에겐 학당은 필수입니다, 필수! 어디 가서 아이가 글자 하나 읽지 못한다면 그만한 창피가 어디에 있습니까? 또한 친구들도 사귈 수 있고, 아이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생기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가 아니겠습니까?”
“흠…… 그런가?”
“예! 물론입니다. 하하, 제가 좋은 학당을 알고 있으니 소개시켜 드릴까요?”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지.”
망설이는 단우현의 표정을 보며 홍원창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은 법이다. 자신의 아이가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은 망설이지만 단우현은 반드시 넘어올 것이다.
‘장래 내 며느리가 될 아이인데 글자 하나 못 읽어서 쓰겠어?’
홍원창은 속으로 실실 웃었다.
화소미 며느리 만들기 계획이 차츰차츰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내 단우현의 시선을 받자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며 헛기침을 했다.
속내를 들키는 순간 죽을지도 몰랐다.
고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 * *
화소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장원보단 작지만 잘 꾸며 놓은 정원과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색다른 탓에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그렇기에 더욱 신이 났다.
홍원창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단우현은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화소미는 상관없다. 혼자 노는 것에 익숙했으니까.
심어져 있는 꽃을 바라보고 나비를 쫓는다.
자그마한 연못 안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이 신기했다.
집에서 흔히 보는 그런 물고기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비늘에 색이 있고 크기도 컸다.
‘이런 것을 비단잉어라고 하던가?’
화소미는 자그마한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연못에 담궜다. 커다란 잉어 들이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것을 보며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야! 뭐하는 거야?”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다.
깜짝 놀란 화소미가 화들짝 고개를 들어 올리며 정면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커다란 사내아이가 우두커니 서 있다.
덩치가 산만하고 주먹 또한 큼지막해 같은 또래는커녕 마치 자그마한 곰을 보는 것 같았다.
사내아이는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모르는 아이가 자신의 집에서 놀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처음 보는 아이인 데다 중요한 손님이 온다는 이야기조차 듣지 못하였으니, 조심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생각을 하였는지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사내아이가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화소미를 향해 다가갔다.
“뭐하는 거냐고 묻잖아.”
“으…….”
화소미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산만한 덩치에 아이가 다가오니 괜스레 두려움이 느껴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며 단우현을 찾았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간 단우현은 아직까지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사내아이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너 도대체 누구야? 여긴 우리 집이라고!”
“아, 그게…….”
큰소리에 깜짝 놀라 또다시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다리가 엉키며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아! 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화소미의 몸이 연못을 향해 곤두박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