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62
“모용세가라면 그놈의 세가였던가?”
단우현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얼굴을 떠올리며 물었다. 당시 잠시 본 것이 전부였고, 워낙 광인처럼 발광해 댄 탓에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군. 확실히 전 무림맹주였던 것은 알겠는데…… 이상하게 생긴 놈이었지.”
비웃음을 머금은 한 마디에 이들이 몸을 움찔했다.
남궁세가의 검황이 기둥이라 한다면 모용세가 역시 모용혁문이 바로 기둥이다.
그를 위해 죽고 사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단우현의 한마디는 그들의 마음을 짓밟는 것과 동일했다.
자연히 살기가 치솟았다.
“이놈……! 말을 함부로 뱉는구나.”
“웃기는 녀석들이로군.”
정파의 길을 걷고 있다면, 세가의 이름을 더럽힌 모용혁문을 처단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저들의 머릿속은 다른 모양이었다.
“네놈들이야말로 하는 행동이 지나치구나.”
단우현은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퍼걱-!
그것은 한순간에 벌어졌다.
단우현의 눈앞에 서 있던 자의 상체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칼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다른 무기를 손에 쥔 것도 아니었는데 고작 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상대를 죽였다.
눈앞에서 동료가 죽는 순간까지, 모용세가의 무사들은 단우현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으며, 또한 인지조차 할 수 없었다.
“곧 다 같이 보내 줄 테니 먼저 가거라.”
단우현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 * *
“소혜야?!”
남궁천은 급하게 들어오는 남궁소혜를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
단소미를 안아 들고 달려오는 표정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아이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땅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하아…….”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몸 곳곳에는 혈흔이 가득했다.
그녀의 것도 있었으며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또한 등에 나 있는 상처는 생각보다 깊어 바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조차 위태로울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장삼태마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안색이 시퍼렇게 죽어 있는 남궁소혜의 상태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의원을 부르게! 어서!”
제갈운이 장삼태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가장 발이 빠른 그였기에 신속하게 움직이면 불상사는 없으리라.
장삼태가 허겁지겁 장원 밖으로 뛰쳐나갔다.
세가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기겁한 매향이 입을 틀어막았고, 권무진과 마장강이 황급히 다가와 남궁소혜를 조심스레 들어 옮겼다.
그들의 행동은 무척이나 신속하고 조심스러웠다. 이윽고 남궁소혜의 방으로 들어가 침상에 내려놓음과 동시에 남궁천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며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방 안에 남은 사도학이 소혜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입을 열었다.
“검상이다.”
“안다!”
남궁천이 이를 갈며 소리를 쳤다.
누가 자신의 손녀딸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화가 치밀어 미칠 것만 같았다.
남궁천은 상처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등이었기에, 피와 엉겨붙은 옷을 칼로 잘라 벗겼다. 깊은 검상이 눈에 보였다.
“감히 어느 놈이!”
쿠오오오-!
방 안에 격렬한 기세가 소용돌이쳤다. 사도학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실금했을 만큼 무거운 기세가 퍼져 나갔다.
“그러고 있을 때냐? 응급처치가 먼저지, 이 녀석아!”
“크윽…….”
화를 가라앉힌 남궁천은 서둘러 피를 닦아 내고 지혈초를 발랐다. 그래 봐야 간단한 치료에 지나지 않았다.
속히 의원이 오지 않는다면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하아…… 하아…… 하…… 할아버지…….”
“그래, 그래, 소혜야! 여기에 있느니라!”
들려오는 미약한 숨결에 남궁천이 그 손을 붙잡았다.
희미하게 뜬 눈으로 남궁소혜가 이것만큼은 꼭 말을 해야겠다는 듯 입술이 달싹였다.
“소…… 소미를…… 소미가.”
“안다! 소미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남궁천은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다 죽어 가는 상황에서도 자기보다 단소미를 걱정하다니.
빠드득!
그러나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그저 조용히 되물었다.
“누구더냐…… 어떤 놈이 너를 이리 만들었느냐!”
“하아…….”
그러나 남궁소혜는 대답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옅은 숨을 고르는 것이 이제야 안심을 하고 기운이 빠져 혼절한 것 같았다.
“이거 봐라.”
그때, 사도학이 한 상처를 가리켰다.
베인 상처의 부위와 베였을 상황을 토대로 유추해 본다면, 한 가지 무공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모용세가!”
“그래, 직계는 아니고 방계 쪽 무공인데……?”
사도학 또한 무수히 많이 모용세가와 부딪쳐 본 적이 있는 고수인 만큼, 그들이 펼치는 무공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비록 작은 상처이기는 하지만 모용세가의 검술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것만으로도 남궁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놈들……!”
남궁천이 등을 돌렸다.
직계가 아닌 방계라면 틀림없이 그 모용세가의 가솔들이 악양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더 이상 친우에 대한 우정이나 자신이 걷고 싶었던 정도의 길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후회할 거라고 했지…… 그놈이.”
“그래! 후회하고 있다! 놈을 죽이고 그 씨를 말렸어야 했거늘! 이 늙은 놈이 괜히 주책을 부려 후회하고 있다!”
쩌렁쩌렁-!
남궁소혜 앞에서 할 소리가 아님을 알고 있으나, 남궁천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살아생전 이렇게 화가 난 적은 처음이다.
모용혁문이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하고 한쪽 팔을 잃었을 때도,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당시에도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들끓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질근질근 입술을 씹으며 조금이라도 빨리 의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 *
“대단하군. 한두 명에게 당한 상처가 아니던데…… 그런 와중에 소미는 상처 하나 없다니.”
마장강이 혀를 내두르며 남궁소혜의 상처를 떠올렸다. 이곳까지 안고 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몇 걸음 걷다 쓰러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먼 거리를 달려왔다는 건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소미한테는 엄마나 다름없는 여인이다. 남궁 소저 또한 마찬가지지. 그러니 더욱 이를 악물고 달려온 거 아니겠나?”
권무진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과연 자신이 같은 상황이었다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권무진이었다면 진즉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하여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야말로 모정이나 다름없다.
가끔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모습이야말로 봉황단주이자, 권무진이나 제갈연, 그리고 정파 무림인들이 알고 있는 남궁소혜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도대체 누가…….”
질근질근 입술을 씹으며 툇마루에 앉아 있는 제갈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곁을 백호와 백묘가 지키고 있었는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인지 가만 앉아 자리만 지켰다.
매일같이 티격태격하는 친우지만 어린 시절부터 함께였고, 그 정은 어디로 가지 않는 법이다.
제갈연에게 있어서 남궁소혜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고, 그런 친우가 상처를 입은 모습은 보고 싶지도 않았다.
제갈연은 언제나 생각했다.
‘남궁소혜처럼 되고 싶다.’
머리가 비상한 것이 아니라 무공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이 중원을 호령하며 누구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그 모습은 동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장난을 치거나 놀리며 더욱 괴롭혔다.
그런 남궁소혜가 크게 다친 모습은 실로 충격이었다.
“흉흉하구나.”
“장주님-!”
세가 안으로 들어선 단우현은 곳곳에서 느껴지는 매서운 기세에 주변을 둘러봤다.
평소 같은 밝은 분위기가 아닌 다소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다.
마치 폭풍전야 같았다.
단우현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썼다.
“주군, 남궁 소저가…….”
“안다.”
단우현의 한 마디에 모든 이들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그러고 보니 말도 안 되는 팽이 놀이를 하다 급작스레 사라졌는데, 그것이 전부 이 때문이었던 것인가?
제갈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단우현을 향해 다가갔다.
“누구죠?”
“뭐가 말이냐?”
“소혜를 저리 만든 자들 말이에요. 누구인지 알고 계시죠?”
“물론이다.”
단우현의 한마디에 제갈연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강하게 단우현을 노려봤다.
“걱정하지 마라. 때가 되면 알아서 기어 나올 테니.”
“…….”
당장이라도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려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단우현은 다소 침착하게 이야기하며 툇마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여유마저 부렸다.
“주군…… 이렇게 쉽게 넘길 만한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권무진이 날카롭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밖에 나갔던 남궁소혜가 당했다.
그 말은 누군가 호남단가를 향해 시비를 건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비록 남궁소혜가 완전히 이 세가의 사람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함께 있던 시간을 생각해 보자면 이제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단소미를 보호하다 저렇게 된 만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짓을 두 가지나 벌인 것이다.
그러나 단우현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다들 살기가 짙구나.”
단우현 또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 잘 알았다.
그 또한 단소미를 생각하면 당장 녀석들을 붙잡아 사지를 잘라 버리고픈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 당장 그들을 찾아내 죽인다 한들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 남겠는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들을 이룬 그 순간, 공들여서 쌓아 올린 모래성이 눈앞에서 부서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수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단우현은 분노를 한편에 묵혀 두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웃음을 짓는 그의 모습은 마치 날카롭게 벼려 놓은 칼날과도 같았다.
그 앞에 선 권무진이 움찔 몸을 떨었다.
“삼태는 가서 하오문주를 불러와라.”
“예!”
평소라면 심부름이나 시킨다며 인상을 썼을 장삼태도 서둘러 달려나갔다.
단우현의 기분이 영 좋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