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65
“저기 있다!”
우르르 몰려든 낭인들과 무인들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크게 소리쳤다.
오십 명 가까이 모여 있는 그자들은 하나같이 살기를 뿜으며 검을 뽑았다.
일제히 검이 뽑히는 소리는 웅장하리만큼 크게 들렸다.
그들의 앞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검을 쥐고 있었지만 눈에 촛점이 없었다.
온몸은 이미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보이는 얼굴 또한 못지않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그 모습은 검도 제대로 쥐지 못할 것처럼 보였였는데, 손에 쥔 검은 결코 떨어트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단단히 그러쥐고 있었다.
“각오해라-!”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제아무리 실력이 미천하다 하여도,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들이 있는 법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삼삼오오 모였고, 생각없이 일을 벌이기도 했다.
“그만두시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조차 무시했다.
힐끗 눈짓하자 무림맹의 무사들로 보이는 자들이 다급하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며 이곳에 모인 낭인들은 비웃음을 지었다.
저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보고 그만두라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 않은가?
일검만 휘두르면 그 목을 취할 수 있고, 이 무림에 이름을 떨치고 부와 명예를 얻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것이 실수라는 명백한 사실 또한 깨닫지 못한 채.
촤촤촤촤악-!
무수히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덤벼드는 것과 동시에 육편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모습은 참으로 흉측하였고, 오랫동안 무림에 몸 담았던 이라 하여도 역겨울 수밖에 없다.
“우욱!”
“우웩!”
곳곳에서 토악질을 시작했다.
눈앞에서 동료가 친우가, 어이없이 죽어 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모용혁문은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
서거걱-!
마치 양 떼 사이로 뛰어든 늑대처럼 흉폭한 그의 검이 눈앞에 있는 이들을 죽이고 베었다.
이건 난전이 아니라,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끄아아악!”
“도…… 도망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이들이 도주를 결심했지만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달려드는 모용혁문에게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도망치는 이들의 뒤를 쫓으며 검을 휘둘러 한 명의 목을 더 베어 버렸을 때.
“이 놈-!”
소림승 하나가 장력을 뿜으며 모용혁문의 앞을 막아섰다.
그 순간, 뒤에서 검기가 날아들며 그 장력을 요격했다.
쾅!
육중한 소리와 함께 폭음이 일었다.
깜짝 놀란 소림승이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 빠르게 튀어나오며 그를 향해 검을 뻗었다.
쇅-!
순식간에 날아온 검날이 소림승의 목을 노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기겁한 소림승이 고개를 틀고, 휘청이는 균형을 바로잡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펑-!
주먹과 검이 부딪치고, 두 사람 모두 주르륵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모용혁문이 무언가를 발견하였는지,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눈앞에 있는 모든 이를 죽일 것 같았던 모용혁문의 살기가 씻은 듯 사라지더니, 이내 몸을 날려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태상가주!”
누군가 그를 불렀지만 어떤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
장내의 모두가 점이 되어 사라진 모용혁문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오-!”
쩌렁쩌렁!
소림승을 비롯하여 모용혁문의 뒤를 쫓고 있었던 이들이 느닷없이 나타난 모용세가의 무인들을 노려보며 큰소리를 쳤다.
모용혁문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었는데, 눈앞에서 놓쳐 버렸으니 그 분한 마음이 오죽할까?
무림맹의 사람들이 이를 갈며 모용세가의 무인들을 쏘아봤다.
“우리가 있는 한 누구도 태상가주께 해를 입히지 못한다!”
모용세가 측 누군가가 소리를 쳤다. 그것은 진심을 담은 한마디였기에, 무림맹의 기세가 더욱 사납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사사사삭-!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곳을 향해 돌아가자, 한 무리의 인물들이 빠르게 경공을 펼치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순간 무림맹과 모용세가의 무인들 모두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동시에.
펑펑펑펑-!
누군가 날린 연막탄이 터지며 한순간 시야를 가렸고, 그들은 모용혁문이 사라진 곳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갔다.
“천도회!”
모용세가의 장로가 이를 갈았다.
* * *
남궁소혜가 쓰러진 지 닷새가 지났다.
좋은 약재를 쓰고도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오늘도 단소미는 사도학과 함께 약초를 캐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거 봐요, 할아버지!”
“오- 또 좋은 약초를 캤구나. 잘했어, 잘했다.”
사도학과 단소미는 약초를 캐기 위해 제법 먼 거리까지 이동했다.
세가 인근의 약초들은 이미 단소미가 끝장을 낸 탓에 남은 약초가 거의 없었던 탓이다.
사도학은 경공으로, 단소미는 백호의 등에 타 이동하니, 마차를 타고 수 시진을 이동해야 할 거리도 단숨에 주파해 버렸다.
제법 깊숙한 산으로 들어오자 널린 것들이 약초였다.
비록 영초는 찾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래도 산꾼이라면 눈이 돌아갈 만한 질 좋은 약초들을 수없이 캐고 있는 단소미였다.
사도학 또한 주섬주섬 호미를 들고 약초를 캐며 웃었다.
“꼭 농사를 짓는 것 같구나.”
“헤헤, 한번 해 보실래요? 소미가 농사 엄청 잘하거든요.”
“그래? 이 할애비는 빨리 먹을 수 있는 게 좋을 거 같구나.”
“고구마는 어때요? 굉장히 달잖아요. 다들 고구마 좋아해요.”
“에잉! 인석아, 그거 먹으면 방귀만 뀌지 않느냐?”
사도학의 불만 섞인 한마디에 단소미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고구마를 많이 먹으며 부룩부룩 방귀가 나올 때가 상당히 많았다.
생각만 해도 웃긴지 만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갈까?”
“아니에요! 소미는 저쪽에서 잉어를 잡을래요.”
“잉어?”
갑작스런 낚시 이야기에 사도학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출발할 때 낚싯대를 왜 챙기나 싶었는데, 낚시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잉어찜이 몸에 그렇게 좋데요. 언니한테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잉어가 보양에 좋긴 하지.”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느낀 듯 얼굴을 굳힌 사도학이 바로 표정을 수습하고, 단소미를 바라보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럼 낚시를 하고 있어라. 이 할애비는 주변 산책 좀 하고 올 테니.”
“네! 금방 오셔야 해요.”
“하하, 물론이다.”
단소미가 낚싯대를 쥐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백호와 백묘가 호위하듯 따라가니 무슨 일이 생겨도 안심이었다.
단소미의 모습이 멀어지자 사도학은 돌연 표정을 굳히며 등을 돌렸다.
그가 천천히 걸어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느껴지는 기척이었으나, 경공을 발휘하며 순식간에 나아갔다.
천마경신보는 중원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공.
그의 신형이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한 걸음에 수십 장씩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그렇게 반각 정도 이동했을 때였다.
사도학이 돌연 경공을 멈추었다.
“오랜만이다?”
그는 다소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이를 바라봤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초췌해진 모습.
예전의 모습을 결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하지만 기세만큼은 그 광인이 모용혁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사도학의 인사에 모용혁문은 살기로 답했다.
“그러다 죽는다, 너?”
툭하고 내뱉은 사도학의 한마디에 모용혁문은 인상을 썼다.
검황인 남궁천에게는 그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시기와 질투심만 가득했다.
반면, 사도학에게는 마음속 깊이 두려움을 안고 있는 모용혁문이었다. 단순한 패배를 당한 것이 아닌 뼛속 깊이 영혼마저 좌절시킬 정도에 패배를 안긴 이가 바로 사도학이었으니까.
그 두려움이 은연 중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꼴이 말이 아니구나. 이제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어.”
“…….”
“이 근처까지 온 것을 보니 정말로 단우현 그놈을 노리고 온 것이냐?”
“단…… 우현……!”
빠드득!
단우현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모용혁문은 이를 갈았다. 치솟은 살기가 마치 하늘이라도 꿰뚫을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사도학이 피식 웃었다.
온몸을 저리게 만드는 살기, 예전 모용혁문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도학은 눈앞에 있는 모용혁문이 정말 살아 있긴 한 건지 의문을 가졌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돌아가라. 이 앞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사, 도학…….”
“돌아가라.”
사도학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서 검붉은 마기가 치솟았다.
모든 것을 집어삼켜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막대한 기운다.
사도학은 결코 이 앞으로 모용혁문을 보내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었다.
저놈이 남궁천을 향해 칼을 들이밀든, 단우현을 죽이고자 하든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하지만 이 앞에는 단소미가 있었고, 이미 한 차례 나쁜 경험을 겪은 그 아이에게 지인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막아선다.
모용혁문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것을 바라보며 사도학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지금이라면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좋은 승부를 볼 수 있겠지만, 이 녀석과의 승부는 사도학이 아닌 다른 이의 몫이었다.
“네놈도 나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 그러니 다른 길로 돌아가라. 네놈을 죽일 놈은 따로 있으니까.”
마음 같아선 당장 죽이고 싶지만 꾹 참았다.
남궁천이 이제야 칼을 들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방해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그를 존중한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조금이라도 정신머리가 남아 있다면 생각을 해라. 이게 마지막 경고다.”
사도학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돌아가.”
검붉은 마기에 닿은 그의 주변은 그야말로 죽음의 땅으로 변해 갔다.
파릇파릇 피어오른 새싹들이 검게 시들었고, 나무가 죽어 갔으며, 산새들의 소리마저 사라졌다.
사도학.
그의 진정한 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검을 쥔 모용혁문이 마지막 남은 이성을 억지로 끌어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여기서 사도학과 싸우면 진다는 생각은 없지만 팔다리 정도는 내줘야 한다고 여긴 것일지도 모른다.
매서운 기세와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던 그가 천천히 등을 돌려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갔다.
결코 사도학이 두려워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듯, 그는 천천히 멀어졌다.
이윽고 서서히 사라져 가는 모용혁문을 보며 사도학이 한숨을 쉬었다.
“후우…… 머저리 같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