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66
“으윽…….”
그로부터 이틀 뒤, 남궁소혜가 서서히 눈을 뜨며 신음을 흘렸다.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탓에 몸 여기저기서 통증이 일었다.
흐리멍텅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문득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단소미를 바라봤다.
“어머……?”
왜 이 아이가 여기에서 잠을 자고 있을까?
남궁소혜는 의아한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등에서 전해진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잊고 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이윽고 시퍼렇게 질린 그녀가 슬쩍 단소미의 상태를 살피며 작은 신음을 흘렸다.
어디하나 상처 난 곳이 없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라. 그 아이는 다친 곳이 없으니…….”
“단 공자……?”
“용케 일어났구나. 칠 일 동안 잠만 자고 있어서 죽은 줄 알았더니.”
“치, 칠 일이나요?”
“그래.”
남궁소혜는 당황한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칠 일 동안 일어나지 못한 채 잠을 잤다는 말이 도통 믿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더구나. 자칫 죽을 수도 있었다고 하더군.”
“그…… 그래요?”
남궁소혜는 덤덤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보자면 기실 그녀 또한 이미 죽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등에 꽤 깊은 상처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그녀는 하등 상관없다는 듯이 단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 약초들을 구해 왔다. 지금까지 네 병시중을 든 것도 이 아이지.”
“아…….”
남궁소혜는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녀가 있는 방 안은 약초 냄새로 가득했다. 질 좋은 것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만큼 그 냄새가 평소 맡았던 약초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기분이 다소 풀어진 것인지 남궁소혜가 웃음을 지었다.
“살아서 다행이네요…….”
“그런 놈들에게 당하다니 아직 수련이 부족한 모양이로군.”
“아하하…….”
남궁소혜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만약 그 자리에 단소미가 없었고 단신으로 검을 주고받았더라면 어쩌면 이겼을지도 모른다. 상대 또한 상당한 강함을 가지고 있기는 하였지만, 남궁소혜 역시 전심전력을 다 보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수련 부족이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더욱 정진해야죠.”
“그래. 잘 생각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요양하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리 말을 하며 단우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깨어났으니 더 이상 곁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모른다.
뒤에서 짧은 탄성과 아쉬운 듯한 한숨이 들렸으나, 단우현은 거침없이 그곳을 벗어났다.
* * *
“이건 어때요?”
제갈연의 말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장삼태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그 말에 수긍하며 웃었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헤헤헤.”
“……정말로요?”
제갈연이 의심스런 표정으로 장삼태를 바라봤다.
단순히 가락지를 보여 주며 어느 것이 어울리냐를 물어보는 것에 불과한데, 기이하게도 사내들이 뭘 끼든 뭘 하든 고개를 끄덕이며 어울린다 말을 하고 있었다.
평소 보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제갈연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입죠! 이 장삼태의 눈은 틀림없습니다요! 어느 것을 끼든 잘 어울리실 겁니다요!”
특히 장삼태의 행동이 이상했다.
평소 하지도 않은 존대를 하는 데다, 깔보던 시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단우현을 대하는 듯한 태도에 제갈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
“크큼!”
“혹, 저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헤헤헤, 그런 천벌 받을 짓을 하겠습니까요?”
장삼태가 손을 사삭 비비며 식은땀을 흘렸다.
지그시 노려보는 그녀의 시선을 억지로 피했다.
그야 무서울만 했다.
눈앞에서 모용가의 무인들을 향해 그녀가 내뱉은 말, 그리고 보였던 모든 행동을 종합해 보았을 때, 제갈연이 얼마나 무서운 여인인지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권무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보이던 그 당당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장강은 자존심이 있어 대답을 하지 않지만, 은근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제갈연의 말에 무조건 수긍하는 듯했다.
“그래요?”
제갈연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찌푸렸으나, 사내들이 도통 입을 열지 않으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혹,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보았지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고 저들이 저런 행동을 취할 만한 일을 벌인 기억조차 없었다.
“이상하네. 정말…… 뭐가 문제지?”
등을 돌려 사라지는 그녀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장삼태가 그것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악마 같은 년…….’
죽어 가는 이를 향해 날리는 조소, 무서운 행동 하나하나가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으니 얼마나 대하기가 어렵겠는가?
자신이 그 입장이 된다 생각한다면 오금이 저릴 만큼 두려움이 엄습했다.
심지어 마지막 보였던 한 수가 기겁할 만한 것이었다.
다 죽어 가던 이의 목을 손가락으로 꿰뚫다니?
제갈세가의 지법이 그리 흉악한 줄 몰랐다.
“뭐야? 네놈들 표정이 왜 그러냐?”
사도학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아, 그게 있잖습니…….”
장삼태가 당시 보았던 것과 일을 이야기 하려는 찰나, 걷고 있던 제갈연이 우뚝 멈춰 서서 힐끗 장삼태를 돌아봤다.
한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장삼태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제갈 아씨가 너무 아름다워서 말입니다. 이 장삼태는 평생 아씨를 모시고 싶다는 일념으로…….”
“지랄을 해라, 지랄.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다녔기에 얘들이 이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쯧쯧, 안 봐도 딱이로군. 본성이 나온 게지?”
“…….”
사도학의 한마디에 제갈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억지로 끄집어내 당황한 표정이었다.
“들은 적 있다. 한번 눈이 돌아가면 당가보다 더 독하다며?”
“아…… 아니거든요?”
“아니긴 뭘 아니야. 네 아비도 네가 화나면 눈도 못 마주친다고 하던데.”
제갈연이 휙! 하며 고개를 돌려 제갈운을 노려봤다. 한쪽에서 나무를 손질하고 있던 그가, 시선을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빠른 행동에 제갈연은 기가찼다.
“아니에요!”
“쯧쯧, 그런 성깔로 시집이나 가겠냐?”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찬 사도학이 천천히 걸어 그곳을 벗어났다.
남궁천과 한잔 걸치려는 것인지 손에 술병이 있었다.
그 모습에 제갈연이 숨을 골랐다.
울컥 치밀어 오른 화를 억누르려는 듯, 자신의 양손으로 뺨을 두들겼다.
찰싹거리는 소리가 무척 격렬했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장삼태는 물론이고 권무진과 마장강까지 몸을 떨었다.
이윽고 제갈연이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사람들이 가만 그녀를 바라봤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제갈연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사도학과 남궁천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시고 있는 두 사람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슨 일이냐?”
“아, 그러고 보니 들은 것이 있어서요.”
뜬금없는 질문에 사도학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판단을 한 것인지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시며 입을 열었다.
“뭔데?”
“이건 남궁 할아버님께 들은 이야기인데요.”
“응?”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는 제갈연을 바라보며 남궁천은 불길함을 느꼈다.
그도 이 아이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시가 돋쳐 있는 것 같은 느낌.
왠지 남궁천은 더 이상 입을 열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연아야, 가서 소혜의…….”
“많이 차이셨다면서요?”
“억?”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고백할 때마다 매번 차이셨다고 하던데, 그게 맞나요?”
“…….”
술병을 들고 있던 사도학이 그것을 떨어트렸다.
챙!
술병이 어이없이 깨져나갔다.
그러나 남궁천은 물론이고 사도학조차 그런 것 따위 일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입을 쩍 벌린 남궁천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반대로 사도학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더군다나 첫 고백 상대가…… 하필이면…… 진가유 님이셨다고……?”
진가유.
낭인이지만 그 실력을 인정받아 무림맹에 들어간 입지전적인 여인이었다.
엄청난 활약을 선보여 단숨에 고위급까지 올라갔으며, 종국에는 남궁천의 부인이 되었다.
지금은 병에 걸려 죽었으나, 젊은 시절 미모만큼은 중원제일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제갈연은 다소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적수의 여인을 사랑하다니…… 무슨 소설 같네요. 그렇죠?”
제갈연이 장삼태와 권무진을 돌아보며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한 채 석상처럼 굳어 그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사도학은 맹렬하게 몸을 떨었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당황스럽고 화가 났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제갈연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슬쩍 엉덩이를 들어 사도학의 곁으로 몸을 옮겼다.
그러곤 힐끗 저 먼 곳에 있는 제갈운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건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요…….”
“……뭐, 뭐냐.”
“사실인가요? 기녀 말고는 여인의 손조차 잡아보지 못했다는 게?”
“커억!”
“여…… 연아야?!”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는 사도학을 보며 제갈연이 싱긋 웃음을 지었다. 당황스러워하는 제갈운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가 잡아 드릴까요? 후후.”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전신을 떨고 있는 사도학을 한 차례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입가에는 명백한 조소.
“농담이에요. 단 장주님 정도라면 또 모를까.”
“억……!”
그런 말을 하며 또 한 번 비웃음을 지었다.
사도학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트린 그녀는, 그제야 만족스런 표정으로 천천히 남궁소혜의 방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잠시 후, 사도학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다 죽여 버릴 테다!”
“정신 차리게!”
“어, 어르신-!”
호남단가 전체가 크게 들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