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73
퉁퉁 부어 있는 얼굴을 매만지며 남궁강은 세가를 빠져나와 악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남궁세가의 일원들이 따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들이다.
“하하, 그래도 소혜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구나.”
먼 산을 바라보며 남궁용이 중얼거렸다.
말은 태연하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래, 너는 어찌 보았느냐?”
“……귀신을 보았습니다. 절대 저 근처에는 평생 가지 않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남궁강이 아픈 얼굴을 매만지며 울상을 지었다.
사람의 주먹이라는 게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두 번 다시 단우현이라는 자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공포가 새겨졌다.
남궁세가의 일원들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덤벼야 할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듣기론 저곳에 군자검과 마천군이라는 자들이 산다고 했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그런 소리를 했지…….”
객잔의 점소이가 알려 주었던 것이다.
마천군이라 한다면 틀림없이 사도학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가 가면을 쓰고 악양의 거리를 수호하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데, 그렇다면 군자검은 도대체 누구일까?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 단우현이라는 자가 아닐까요……?”
“아니, 노인이라 하지 않더냐.”
다른 이의 말에 남궁강이 고개를 저었다.
틀림없이 두 사람 다 노인이라 하였으니, 젊은 단우현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는지 남궁강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같은 생각을 하셨습니까? 저도…….”
“그분이 어떤 분이신데 그런 가면을 쓰고 영웅 놀음을 하신단 말이냐.”
사도학이 그러고 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검황 남궁천이?
고상하고 고고하며 언제나 점잖기만 한 사람이 바로 검황이었다.
“외팔이라는 것도…….”
가면을 쓰고 있었던 탓에 얼굴을 보지 못하기는 하였지만, 그 목소리는 틀림없이 남궁천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팔을 잃은 부친의 모습을 말이다.
남궁강이 고개를 돌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이를 쏘아봤다.
“있을 수 없다! 절대 말이다.”
“하지만…… 저길 보면…….”
누군가 한 곳을 가리켰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린 남궁강이 숨을 삼켰다.
낭인으로 보이는 몇몇 이들과 뒤섞인 한 노인이 보였다. 가면 탓에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 움직임과 노련함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군자의 검이 그리도 가볍게 보였는가 그대들?”
“이…… 이 자식! 다 늙은 노인네가 어디서 영웅 흉내를 내는 거냐!”
“허허허, 이 모습은 진실 되지 않은 모습. 이 노부는 아직 이립도 되지 않았다네!”
“노부라 했잖아, 이 새끼야!”
“새끼라니? 어린 녀석이 말이 거칠구나. 군자의 가르침을 더 받아야겠느냐?”
악양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웃지 못할 광경에, 남궁강은 할 말을 잃었다.
먼 거리이기는 하나 또렷하게 그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말투에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거침없이 남궁세가의 절기를 뽐내며 낭인들을 두들겨 패자, 곳곳에서 ‘군자검! 군자검!’하는 환호성이 들려 왔다.
“허허허- 이 군자검! 언제나 어디서든 그대들의 부름이 있다면 달려오겠네.”
그런 말을 남기며 휙 하고 몸을 날렸다.
화려한 경공을 펼치며 높은 지붕 위에 안착한 남궁천은, 정말로 영웅이라도 되는 양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몸을 감춰 버렸다.
“…….”
“…….”
“가…… 가주님.”
“말하지 말게.”
“그…… 그렇지만 지금…….”
“아무 말도 하지 말게!”
“하오나…….”
“우린……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야.”
남궁강과 남궁용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땅을 바라봤다.
자신의 부친과 조부가 저런 식으로 놀고 있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 * *
“어휴, 정신이 없네.”
남궁소혜가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부채질을 했다. 아버지와 오라비의 창피한 모습을 그대로 단우현에게 보였으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네 할아비가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그렇…… 죠.”
남궁소혜가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남궁천이 제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았다면, 눈에 불을 켜고 두들겨 팼을 것이다.
남궁용이 처참한 모습이긴 하나 두 발로 이 세가를 나갔다고 한다면, 반대로 남궁강은 기어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을 거다.
본디 자식에게 엄격했던 남궁천이었으니, 그런 모습을 직접 봤다면 결코 참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기분 좋은가 보구나.”
“네? 아…….”
단우현이 남궁소혜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얼굴을 붉히고 투덜거리면서도 알게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걱정해서 찾아온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저렇게 보여도 제 가족이니까요.”
“다행이구나.”
“네, 정말로 그래요.”
단우현은 낚시를 하러 간 단소미를 떠올렸다.
그 아이와 만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가족과도 같은 느낌이 되었을까? 단순히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진실로 가족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 생각을 하다 이내 번뜩 정신을 차렸다.
“하하.”
“왜 웃어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자 남궁소혜가 묘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러나 대답을 하지 않고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지그시 눈을 감고 술잔을 입에 대었다.
‘가족을 가지고 싶었던 것은 나였구나.’
단우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처음에는 단소미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 아이가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걷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가족을 가장 갈망했던 것은 다름 아닌 단우현이었다.
그가 천천히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장삼태를 비롯하여 권무진 마장강, 사도학과 남궁천, 남궁소혜, 비록 이 자리에 없기는 하지만 제갈연과 제갈운까지.
한데 모여 있으니 정말로 가족과도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중 특별히 정이 가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기분 좋은 느낌이다.
푸근하게 웃음을 짓자 그 모습을 지켜본 남궁소혜의 뺨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그녀가 짐짓 다른 곳을 바라보며 얼굴의 열을 식혔다.
그때, 벌컥 대문이 열렸다.
느닷없는 상황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대문을 향해 쏠렸다.
홀로 바둑을 두고 있던 사도학마저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다급해 보이는 제갈운의 모습이 보였다.
“헉…… 헉…….”
“무슨 일인데 그리 숨을 헐떡이는 것이냐?”
단우현은 흥미조차 없는 시선으로 제갈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모용세가의 일은 정리가 되었다.
제대로 공표가 되지는 않았으나 모용혁문은 이미 시체가 되었고, 그 일을 정리하였으니 더 이상 문제가 터질 리가 없었다.
한데 제갈운의 모습을 보니 그 또한 아닌 것 같았다.
“사…… 사파의 지존…… 적무성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뭐야?!”
뜬금없이 들려오는 말에 가장 놀란 것은 사도학이다.
적무성이라면 오황 중에서도 말단.
크게 신경을 쓸 만한 자가 아니기는 하였으나, 한 단체의 수장이며, 사파를 통솔하고 있는 절대자였다.
그런 이가 살해당했다는 것은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틀림없이 사파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 무림은 바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사도학의 입장에선 상당히 곤란한 일이었다. 혼란스런 마교를 수습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그 힘이 과거와 같다 할 수 없으니, 자칫 대전이라도 벌어지는 날엔 좋지 못할 꼴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놈이 왜 죽어? 반란이라도 일어났단 말이야?”
“그, 그게 아니옵고…….”
제갈운 또한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오문주의 전서구가 아니었다면 그 또한 허황된 소문이라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
“정체를 모를 이들이 나타나 하루아침에 무황성을 무너트리고 적무성을 죽였다 합니다.”
단우현이 조금 흥미를 나타냈다.
그 정도 힘을 숨기고 있는 이들이 혈마신교 이외에 또 있었다는 것이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그날 도망친 놈들이거나 혈마 놈 탓에 숨죽이고 있던 이들일 테지.’
역시 무림이란 끊임없이 무언가가 벌어지는 수라장이었다.
한번 발을 디딘다면 결코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말이 바로 이 때문이다.
“해서, 그것이 큰일이더냐?”
“예? 아…… 뭐 그렇습니다만…….”
단우현이 당황하는 제갈운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한 모금 넘긴 뒤 빈 잔을 내려놓으니, 제갈운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닫고 아- 하는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놈들이 칼을 쥐고 악양에 쳐들어오는 것이냐?”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버려 둬라.”
녀석들이 악양으로 와 행패를 부린다면 또 모를까, 먼 곳에서 벌어진 일을 굳이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제갈운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 총사였을 때 생긴 버릇이 나온 것이다.
사실상 무황성의 전복은 악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탓에 큰일이랄 것도 없었지만, 사파의 기둥인 무황성이 무너지고 오황의 한 축이었던 적무성이 죽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그것을 보고하러 달려왔다.
마치 무림맹에 있었을 때처럼 말이다.
제갈운이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괜히 뛰어왔나 싶었다.
“그러게 뭐랬어요.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니까요.”
제갈연이 다소 사나운 눈초리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악양에서부터 이곳까지 뛰어오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
제갈세가 입장에서 큰일이 난 것은 분명 하지만, 단우현이라면 눈곱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는데도 듣지를 않았다.
“…….”
제갈운이 그 시선에 기가 죽어 고개를 숙였다.
“아니, 사파 새끼들 움직이는 게 한두 번인가? 지난번에도 그렇고…… 안 그래?”
“……왜 나한테 묻냐?”
“네놈이 사파 새끼잖아.”
권무진이 움찔하며 장삼태를 쏘아봤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과거를 상기시키는 그의 말에 괜스레 울컥했다.
한 대 쥐어박을까 싶어 주먹을 굳게 쥐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장삼태가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며 어느새 단우현의 곁에 달라붙었다.
“허허허, 적무성이 당했다면 상대 또한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겠지.”
그때, 대문을 열고 남궁천이 안으로 들어섰다.
슬그머니 가면을 벗으며 내뱉은 한 마디에는 몹시 흥미가 서려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의 오황, 적무성을 죽였다는 것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그러나 반대로 제갈연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어느새 남궁소혜 옆에 자리를 잡은 그녀는, 안주를 집어 먹으며 생각했다.
‘그래 봐야……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더 하겠어?’
제갈연이 무시무시한 괴물들보다 더한 눈앞의 인간들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슬쩍 제갈세가의 연락해 무슨 일이 생기면 이곳으로 도망치라고 전서를 날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